All Chapters of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Chapter 81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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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기분이 안 좋을 때 더 까다로워질 텐데….’유영은 이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서류를 펼쳤다.“요청하신 대로 수정한 방안입니다. 한번 확인해 보세요.”박연준은 서류를 펼치고 대충 훑어보았다.그 모습을 보고 있는 유영은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켰다.뭔가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남자에게서 풍기는 강렬한 카리스마 때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퇴짜를 맞으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유영은 혼란스러웠다.“감기 걸렸어요?”갑작스러운 질문에 유영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네?”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잠시 당황한 그녀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찬바람을 맞았더니 그런 것 같네요.”남자는 말없이 다시 시선을 서류로 돌리고 한 장씩 뒤로 넘겼다.오기 전까지 자신만만했던 유영이었지만 점점 어두워지는 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불길한 예감부터 들었다.박연준에게 퇴짜를 맞게 된다면 아마 입찰 때 심사도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이대로 진행하죠. 잘했어요.”유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이대로 통과한 건가?“토… 통과인가요?”“또 수정하고 싶어요?”“아… 아니요!”더 이상의 수정은 사양하고 있었다.이미 며칠 사이에 십 년은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남자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아까까지 표정이 어둡던 남자가 웃고 있으니 유영은 더 불안했다.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큰 키 때문에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가요.”“어디를요?”어딜 같이 간다는 거지?“병원에 가요.”남자가 먼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유영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같이 일을 했지만 아직 남자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그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그가 강성건설 대표라는 것과 성이 박씨라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그런데 이름도 모르는 거래 업체 대표가 그녀를 병원에 데려다준다고?“상태가 많이 심각해 보이네요. 주사라도 맞지 않으면 오후에 있을 최종 심사에 참여하지 못할 것 같은데 이런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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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유영은 차에 오른 뒤로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병원에 거의 도착할 때쯤에는 온몸에 한기가 돌면서 떨렸다.옷을 두껍게 입었는데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면 전형적인 고열 증상이었다.“추워요?”귓가에 남자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영은 피곤한 듯, 눈을 잠깐 뜨고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녀는 당장이라도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더니 남자가 겉옷을 벗어 그녀의 몸에 덮어주고 있었다.유영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잠들어 버렸다.병원에 도착한 뒤, 문 비서는 초조한 기색으로 박연준의 눈치를 살폈다.“대표님, 제가 할게요.”박연준이 소매를 걷어올리고 유영을 안으려 하자 문 비서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남자는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의 비서를 힐끗 바라보았다.문 비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요즘 이유영 씨에 대한 여론이 뜨겁습니다. 오해가 생길만한 상황은 피하시는 게….”“문 비서가 안고 들어가면 이상한 소문이 안 생길 것 같아?”문 비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사실 유영이 지금 누구와 함께 있든 그건 걸어다니는 화제거리였다.물론 상대가 박연준이라면 오히려 그의 눈치를 봐서 기사를 안 낼 수도 있었다.청하시에서 박연준은 저승사자로 유명했다. 강이한이 대외적으로 부드러운 이미지라면 박연준은 냉철하고 강직한 이미지였다.유영은 고열에 이미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아마 박연준을 찾아왔을 때도 억지로 버텼던 것 같았다.박연준은 그녀를 안고 응급실로 들어갔다.마침 병원을 나오던 강이한은 그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박연준의 품에 안긴 여자를 노려보았다.반면 박연준은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박연준!”강이한이 이를 갈며 으르렁거렸다.그는 현재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해외의 로열 글로벌 회장과 잠잠하나 싶더니 이번에는 강성의 박연준이 나타났다.대체 아내의 주변에는 왜 이렇게 남자가 꼬이는 걸까?한참이 지난 뒤, 유영은 추위에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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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그녀의 무덤덤한 반응은 남자의 분노만 더 자극했다.강이한의 준수한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이유영, 당신 이렇게 방탕한 여자였어? 해외에서 돌아온지 얼마나 됐다고 또 남자를 후리고 다니는 거야? 박연준은 대체 이런 여자를 뭐가 좋다고 따라다니는지 몰라!”“그건 잘 모르겠고 내가 좋나 보지.”유영은 이제 그에게 해명하는 것조차 귀찮았다.그런 태도가 강이한에게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사실 유영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병실에서 눈을 뜨고 옆에 강이한이 있다는 걸 발견했을 때, 전생에 끌려가듯 수술대에 오르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고 두 사람은 누구도 지지 않으려고 서로를 노려보았다.“참 할 말 없게 만드는구나, 당신은! 이러면서 이혼할 때 재산분할까지 해달라고?”“잘못을 해도 당신이 먼저 했는데 위자료를 요구하는 건 당연하잖아?”유영이 당연하다는 듯이 반문했다.결국 분을 못 이긴 강이한은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유영은 침대에 머리를 기댄 채, 씁쓸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수액이 끝난 뒤, 유영은 조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조민정은 시간이 좀 남았다면서 같이 밥을 먹고 강성건설로 가서 박연준과 만나기로 했다.오후에는 박연준과 함께 최종 입찰 심사 현장으로 가기로 했다.차에 오른 유영은 바깥을 바라보며 조민정에게 물었다.“밥은 어디서 먹어요?”어쩐지 점점 더 시내와 멀어지는 느낌이었다.조민정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대답했다.“순정동 별장으로 갈 거예요. 바로 거주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뒀거든요.”“순정동이요?”유영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순정동은 청하에서도 유명한 부자 동네였다. 5백만 평의 넓은 부지에 별장 단지 세 곳이 전부였고 거기 사는 입주민은 신분이 알려지지 않은 신비의 인물들이라고 들었다.그런데 순정동으로 간다고?조민정이 말했다.“회장님 지시예요. 소은지 씨네 집에 계속 있으면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서로 안 좋은 영향만 받으니까 순정동에 거처를 마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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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순정동.전에 말로만 들었을 때는 막연하게 호화 단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와보니 왜 그렇게 많은 부자들이 이곳으로 오길 희망하는지 알 것 같았다.별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유영이 보기에 이곳은 단단한 성채에 가까웠다.여왕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은 상상해 봤을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외삼촌은 언제 여길 구매했대요?”유영이 물었다.그때는 청하 시민 중에 구매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외에 거주 중인 외삼촌이 이곳을 소유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회장님은 세계 각지의 가치 있는 부동산에 투자를 많이 하셨습니다. 사실 잊고 있었던 곳인데 유영 씨가 거주할 곳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집사가 생각해 낸 곳이 이곳이에요.”유영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조민정을 바라보았다.“고용인들도 어제 모집했어요. 급하게 치우느라 미흡한 점도 많을 텐데 그건 이해해 주세요.”부자들은 다 이럴까?이렇게 좋은 땅과 집을 소유했으면서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니.유영은 저절로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여기 오기 전까지 외삼촌한테 이렇게 귀한 선물을 받아도 되나 고민했던 그녀였는데 지금 얘기를 들어보니 걱정할 것 하나 없었다. 기억도 못했던 곳을 갑자기 내어주었다는 건 그만큼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얘기였다.“미흡한 점이라뇨. 나한테는 아주 감지덕지죠.”유영이 말했다.홍문동으로 돌아가지만 않는다면 어디든 좋았다.식사가 끝난 뒤, 유영은 옷을 갈아입으러 옷 방으로 들어갔다.옷장을 열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물론 강이한도 그녀에게 사치품을 많이 설명했지만 이곳에는 세계 각지의 명품을 다 모아놓은 백화점을 떠올리게 하는 스케일이었다.“유영 씨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시즌 상품마다 한 벌씩 구매했대요. 앞으로 좋아하는 스타일 있으면 꼭 말해달라고 하시더군요.”“다 좋아요!”유영이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싫을 리가 없었다.예쁜 옷을 싫어할 여자가 어디 있을까!“외숙모랑 유라는 소박하게 입고 다녔던 거 같은데 외삼촌이 이번에 신경을 많이 썼네요.”유영이 감개무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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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정유라가 갑자기 자원봉사를 간다고 아프리카행을 선포한 뒤, 외삼촌은 모든 애정을 유영에게 쏟아부었다. 그녀를 데리고 각종 중요한 자리에 참석했고 온갖 보석과 액세서리를 사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유영은 세강 일가에게 아직은 자신과 정국진의 관계를 밝히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이런 명품 차를 끌고 다니는 걸 강이한이 안다면 미심쩍게 생각하고 조사에 착수할 게 분명했다.물론, 강이한은 이미 정국진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유영은 모르고 있었다.그는 오해로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자신과 10년을 동고동락한 여자가 갑자기 변심하고 다른 남자에게 간다는데 이유도 모르고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결국 유영은 조민정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조민정은 회장님 지시라고 딱 잘라 말했다. 유영은 그제야 조민정은 정국진의 말을 가장 우선으로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입찰 현장.유영은 박연준과 함께 자리했다. 박연준의 반대쪽에는 강이한과 조형욱이 자리했다.분위기는 좀 삭막했다.강이한은 조형욱에게 눈길을 보냈지만 조형욱은 고개를 푹 숙이고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유영이 박연준과 함께 입찰 현장에 나타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강이한을 포함해서 조형욱마저도 그녀가 박연준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강이한은 분노에 치를 떠는 반면, 유영은 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베이지 톤의 깔끔한 정장은 그녀의 유려한 이목구비와 차분한 분위기를 더욱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했다.몇몇 회사들에서 설계 도면을 제출했지만 모두가 심사 탈락이었다.그만큼 정부에서 동교 신도실 개발을 중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잠시 후, 박연준과 강이한이 설계 도면을 가지고 단상으로 올라갔다. 유영은 긴장한 얼굴로 박연준을 바라보았다.반면 박연준은 차분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핸드폰에서 문자 알림이 뜨면서 유영의 집중력을 분산싴켰다.확인해 보니 강이한에게서 온 문자였다.“나가서 얘기 좀 해!”유영은 박연준 옆으로 고개를 살짝 틀고 싸늘한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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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강이한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무조건 이기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실패한 것이다. 결과가 나온 순간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바닥에 던졌다.두 달이나 열심히 준비했고 모든 디자인 인력을 동원했다. 심지어 해외에서 엘리트 디자이너를 고용하기까지 했는데 결과는 참패였다.박연준에게 패한 게 아니라 전혀 승패에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아내 유영에게 패배했다.박연준이 제출한 설계 도면은 유영의 작업실에서 제출한 원본이었다.“대표님!”조형욱이 다급히 그를 불렀다.유영은 기분 좋게 박연준과 악수하고 있었다.강이한이 씩씩거리며 회장을 떠나던 순간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남은 작업은 문 비서와 상의해서 진행하면 됩니다.”박연준이 부드럽게 말했다.“감사합니다!”이건 그녀가 따낸 첫 번째 큰 거래였고 보란 듯이 성공하면서 자신감도 붙었다.“같이 식사할래요?”“좋죠.”유영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앞으로 대 고객이 되실 분인데 밥 정도는 당연히 같이 먹을 수 있었다.강이한의 강요로 전업주부로 전락했던 여자가 그를 딛고 일어선 첫걸음이기도 했다.강이한은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어떻게 하면 이 괘씸한 여자를 응징할까 생각했다.그런데 박연준과 함께 나와 그의 차에 타는 모습을 본 순간,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져 버렸다.뒤를 따르던 조형욱은 멀어지는 박연준의 차를 보며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쫓아가.”강이한이 차갑게 명령했다.준수하던 얼굴은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한편, 박연준의 차에 탄 유영은 공손한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좋아하는 레스토랑 있어요? 저는 외식을 많이 하지 않아서 어디로 가야 할지 종잡을 수 없네요.”전에 강이한과 사이가 좋았을 때도 외식할 때면 전부 그의 취향에 맞췄다.지금 생각해 보면 참 씁쓸한 기억이었다.전에는 시댁의 갑질에 그와 밖에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좋았고 어디를 가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그래서 외식해서 뭘 먹었는지 맛은 어땠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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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유영은 죄책감에 얼른 사과했다.“죄송해요.”“유영 씨 잘못은 아니죠.”박연준의 말투도 싸늘했다.강이한은 이미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유영은 지금 안 내리면 그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어쩔 수 없이 말했다.“밥은 제가 나중에 사드릴게요.”그 말을 끝으로 유영도 차에서 내렸다.폭발 직전인 강이한에 비해 박연준은 시종일관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유영이 내리자마자 문 비서는 재빨리 근처에서 다른 차를 불러왔다.차에 오르기 전, 박연준이 물었다.“그냥 이 차 타고 갈래요?”유영은 화들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이런 관심은 별로 원하던 바가 아니었다.어느새 그녀의 뒤로 다가온 강이한이 팔짱을 끼고 주도권을 주장하고 있었다.반면 박연준은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얼굴로 강이한을 바라보며 말했다.“너도 참 많이 변했구나.”강이한이 버럭 화를 내기 전에 박연준은 차를 타고 멀리 떠나버렸다.고개를 돌린 유영은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를 쏘아보았다.하지만 그와 싸우기는 싫었기에 가볍게 그를 지나치려는데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꽉 잡았다.“거기 서!”그는 유영이 최소한의 해명은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한편 뒤늦게 나온 조민정이 현장을 보고 다급히 유영에게로 다가왔다.“집에 갈까요?”“네.”모른 척 뒤돌아서려고 하는데 손목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유영은 담담한 눈빛으로 강이한을 바라보며 말했다.“이거 좀 놔줄래?”그녀의 덤덤함에 강이한은 더 큰 분노가 치솟았다.그는 그녀를 이끌고 자신의 차에 억지로 태웠다.“출발해!”“당신은 정말 미쳤어!”그 말을 끝으로 남자가 다가와서 그녀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유영이 분노와 수치심에 몸서리치며 손을 번쩍 든 찰나,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물었다.“둘이 차에서 뭐 했어?”“그게 무슨 상관이야! 읏….”갑작스러운 키스에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익숙한 느낌이었다.예전에는 참 좋아했었는데 이 입술로 다른 여자를 애무했다고 생각하니 구역질이 올라왔다.하지만 남자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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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그들은 절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이렇게 부드럽게 달래주는 것도 결국은 한지음에게 시망막을 기증하게 하기 위한 연기일 뿐이었다.저울은 이미 한지음에게로 기울어져 있었다.그렇게 비난했던 여자를 부드러운 말로 달랠 만큼 중요했던 거겠지.물론 그런 거라면 유영은 사양이었다.식탁은 유영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풍성하게 차려졌다.“왜 안 먹어?”강이한이 물었다.그의 눈에서 선명한 짜증이 보였다.“독을 풀었을지 어떻게 알고 먹어?”유영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들이받았다.지난 생이 떠올랐다. 그때도 그와 함께 저녁을 먹고 다신 눈을 떴을 때 수술실에 누워 있었다.그러니 어찌 편한 마음으로 그와 밥을 먹을 수 있을까?강이한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그는 자신이 인내심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유영의 매몰찬 행위가 점점 더 그를 극한으로 몰아갔다.유영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내가 왜 이런다고 생각해?”저쪽에서 온갖 술수를 부려가며 공격해 오는데 가만히 당하고만 있으란 말인가!남자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마사지하며 뭐라고 하려던 순간, 문밖에서 진영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난 네가 다음 달에나 돌아올 줄 알았어.”“할머니 생신이신데 당연히 와야죠.”“아이고 착해라.”평소의 진영숙답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였다.예전에도 한번 경험해 본 적 있었는데 다른 여자의 목소리는 그녀가 못 들어본 목소리였다.하지만 강이한은 상대를 아는 눈치였다.그는 조심스럽게 유영의 눈치를 살피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밖에서 그 여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제가 여기 오는 건 좀 경우에 어긋나지 않아요?”유영은 진영숙이 어떤 인물을 데려왔는지 그 인물의 인성을 알 것 같기도 했다.다 왔으면서 경우에 어긋난다니! 정말 전형적인 여우들이 쓰는 멘트 아닌가?그녀는 비꼬는 듯한 눈빛으로 강이한을 바라보았다.진영숙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걔 요즘 나가서 살아. 걱정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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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진영숙은 아들에게 막말을 퍼붓는 유영을 보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유영은 싸늘한 표정을 하고 진영숙에게 말했다.“당신들 같은 사람들을 가족으로 맞은 건 내 인생 최대의 실수였어!”진영숙이 뒷목을 잡았다.최근 들어 유영 때문에 혈압 터져서 병원으로 실려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녀는 떨리는 손을 들어 유영을 손가락질하며 강이한에게 말했다.“쟤 좀 봐. 너 마누라 관리를 어떻게 하면 애가 나한테까지 이러니? 쟤 때문에 엄마 죽는 꼴 보고 싶어?”강이한은 머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전에도 엄마와 유영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유영은 한 번도 그의 앞에서 적대감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그래서 요즘 돌아가는 집안 꼴이 불쾌하기 그지없었다.“아줌마, 진정하세요.”유정원이 우아한 자태로 앞으로 나서며 분노에 치를 떠는 진영숙을 다독였다.그녀는 큰 키에 단아한 외모를 가진 미인이었는데 목소리마저 나긋나긋한 것이 전형적인 재벌가 규수의 모습이었다.유영은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여자와 강이한을 번갈아보고는 말없이 문밖으로 걸어갔다.강이한이 따라와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당신 먼저 올라가 있어!”“대체 저런 애를 왜 계속 집에다 두겠다는 거야? 당장 꺼지라고 해!”“그만하세요!”강이한은 유영의 손을 꽉 잡은 채, 진영숙을 돌아보며 소리쳤다.그는 그대로 유영의 손을 잡고 다가가서 전화기를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네, 대표님.”“와서 큰 사모님을 본가로 모셔다드려.”.“이한이 너… 지금 이 어미를 내쫓는 거야? 대체 쟤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거니!”아들이 과도하게 유영을 싸고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자신과 싸움이 난 상황에서조차 유영의 편을 들 줄은 몰랐다.잠시 후, 조형욱이 저택에 도착했다.그는 유경원을 본 순간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략 알 것 같았다.결국 진영숙은 씩씩거리며 차에 탔다. 어떻게든 유경원을 아들과 엮으려던 계획은 시도도 못해보고 막을 내렸다.유영이 떡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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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담배를 피우는 그녀의 모습은 지독히 유혹적이었다.키가 작아서 카리스마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만의 치명적인 매력이 강조되었다.그가 아는 유영은 단아하고 품위 있고 사려심 깊은… 술과 담배와는 거리가 먼 여자였다.그런데 집게손가락으로 담배를 들고 눈을 가늘게 뜬 그 모습은 마치 오랜 고독을 삼키며 살아온 쓸쓸한 여인처럼 비춰졌다.“당신은 좋아서 피우잖아.”“이유영!”“그 여자 누구야?”유영이 웃으며 물었다. 딱히 그 여자가 신경 쓰여서 물어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그런 태도에 강이한은 가슴이 아팠다.“딱 보니까 좋은 집안에서 곱게 자란 아가씨던데 당신이랑 어울리네. 진 여사님 안목은 항상 탁월하지.”“그만해!”남자가 으르렁거리듯 경고했다.준수했던 얼굴이 분노로 험하게 일그러졌다.반면 유영은 덤덤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그 여자한테 망막을 내놓는 대가로 세강의 안주인 자리를 준다고 하면 그 여자는 어떻게 나올까?”남자가 마른침을 삼키더니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지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당신은 줄곧 그런 식으로 나를 대했잖아. 난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마음대로 짓밟아도 좋다고 생각한 거 아니야?”비난이 아닌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말투였다.강이한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지난 번에 싸운 뒤로 그는 다시는 그녀의 앞에서 망막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그녀가 먼저 그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강이한이 변명하듯 말했다.“일시적으로 빌려주는 거고 내가 다시 돌려놓겠다고 했잖아.”하!광명을 한지음에게 빌려주라고?일시적인 거라고?이 남자는 참 쉽게도 잔인한 말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유영은 채 타지도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잠시 남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없이 뒤돌아서 밖으로 향했다.“어딜 가겠다는 거야?”뒤돌아선 유영이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일시적인 거라고. 참 웃기는 말이야. 안 그래?”“그럼 그 여자한테 가서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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