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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구승훈이 음침한 눈길로 말했다.

“강 부장 그럼 최대한 빨리 진행해. 새로운 부장의 임명을 지체하지 말고.”

강하리는 잠시 침묵했다.

“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기획안을 구승훈 앞에 내려놓았다.

“이건 신제품 기획안이에요. 대표님께서 더 보충할 거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구승훈은 더 말 없이 곧장 기획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는 업무에 대해서 늘 진지한 태도였다. 아니, 까다롭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강하리에게 나가 보란 말을 안 했기에 그녀는 제자리에 서서 그가 다 읽을 때까지 기다렸다.

기획안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았고 고작 열몇 페이지였다.

하지만 구승훈은 무려 한 시간 남짓 확인했다.

조목마다 빠짐없이 꼼꼼하게 확인하고 나서야 서명하고 강하리에게 돌려줬다.

강하리는 기획안을 손에 넣고 잠시 머뭇거렸다.

“또 용건 있어?”

구승훈이 무표정하게 그녀를 쳐다봤다.

강하리는 2초 동안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아니요, 없습니다.”

“그래, 나갈 때 문 잘 잠가.”

말을 마친 구승훈은 머리를 푹 숙이고 다른 업무를 처리했다.

강하리는 머뭇거리다가 몸을 돌려 그의 사무실을 나섰다.

방금 그녀는 하마터면 구승훈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말할 뻔했다.

아마도 진짜 강찬수 때문에 궁지에 몰린 듯싶다.

이 남자가 돈을 빌려줄 리 있을까?

강하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퇴근 후 그녀는 곧바로 그해 엄마의 소송을 도와준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고 그녀는 상대에게 상황을 쭉 설명했다.

“임 변호사님, 이런 상황은 공갈 협박죄에 해당하나요?”

임정원이 잠시 침묵한 후 대답했다.

“아직은 공갈 협박으로 고소할 수 없어요. 상대가 법률상에서 친아버지이고 하리 씨는 실질적인 부양 의무를 지니고 있어요. 만약 상대가 이걸 단지 부양비라고 고집한다면 하리 씨는 거의 승산이 없어요. 기껏해야 상대를 비판하고 교육하는 것뿐인데 나중에 다시 찾아와 보복할까 봐 걱정이네요.”

강하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하리 씨 어머님은 현재 소송무능력자라 하리 씨가 대신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이 매우 길어질 겁니다.”

강하리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찬수의 성격상 이혼도 채 하기 전에 엄마 목숨부터 앗아갈 듯싶다.

“도움 못 드려서 죄송해요.”

그녀가 웃으며 답했다.

“별말씀을요. 이미 충분히 많이 도와줬어요. 나중에 시간 되시면 밥 한턱 살게요.”

임정원은 확실히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

엄마 사건 말고도 전에 그녈 위해 계약서를 여러 번 심의해주기도 했다.

매번 빼곡히 쌓인 일정 속에서 겨우 시간을 빼내 그녀를 도와줬으니 인정을 갚을 때도 되었다.

“아니요, 제가 살게요.”

임정원의 웃음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마침 이번엔 제가 하리 씨 도움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요.”

임정원과 약속 시간을 정한 후 강하리는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다음 날 회사에 오자마자 간병인의 전화를 받았다.

“하리 씨 아버님이 병원에 오셨어요. 방금 의사를 찾아가서 동의서인지 뭔지 하는 걸 구하려고 했어요.”

강하리는 머리가 띵해지고 낯빛이 창백해졌다.

강찬수는 제격이었다.

오늘 밤 12시 전에 계좌에 돈이 입금되지 않으면 그는 반드시 엄마를 죽여버릴 것이다. 하지만 강하리는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한참 망설인 후 그녀는 서랍을 열고 사직서를 손에 꼭 쥐더니 끝내 방금 작성한 사직서를 파쇄기에 던졌다.

어찌 됐든 간에 그녀는 절대 엄마의 목숨을 걸고 내기할 순 없다.

강하리는 씁쓸한 마음을 꾹 참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당연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구승훈 같은 사람은 그녀가 몇 번이고 체면을 짓밟는 걸 허용하지 않을 테니까.

설령 굴복하고 싶어도 직접 찾아가서 사정해야 한다.

그녀는 숨을 깊게 몰아쉬곤 대표이사 사무실로 걸어갔다.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디.

그녀가 가볍게 노크하자 안에서 구승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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