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바보 제훈은 애교로 무장한 강연에 속수무책이 되었다.“알겠어 알겠어. 그만 잡아당겨, 옷 구겨지겠어.”제훈은 여전히 무뚝뚝하게 말했지만, 올라간 입꼬리가 그의 마음을 솔직하게 알렸다.“알려줘요. 오빠.”강연이 고개를 살짝 쳐들고 눈꼬리를 예쁘게 접으며 물었다. 동그란 두 눈에는 별을 박아놓은 듯 반짝였다.“세상에서 제일 멋있고 대단한 우리 셋째 오빠! 제발 좀 알려줘요.”제훈은 드디어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제훈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여전히 정면을 주시했지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애교로 다 넘어가려고 하네.”“부모님은 본가에 잠시 계실 거라고 했어. 이번에 집을 비운 시간이 좀 길었고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잖아. 잠시 집에서 쉬면서 우리 일들을 처리하겠다고 하셨어.”“정말?”강연의 눈이 반짝거렸다.“그럼 엄마한테 안겨 잘 수 있다는 말이네?”강연이 뒷좌석에서 난리를 치는 동안 제훈은 백미러로 몰래 강연을 살피며 미소를 지었다.“아버지한테 넌 보물 1호인데, 오늘 저녁 어머니 뒤만 졸졸 따라다니다가는 아버지가 크게 실망할지도 몰라.”“흥흥, 그게 뭐요.”강연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난 엄마가 더 좋은걸.”“쯧.”제훈이 혀를 차며 말했다.“내 앞에서만 우쭐하지.”강연이 혀를 내밀고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당연하죠. 내가 바보도 아니고 다른 사람 앞에서 어떻게 이러겠어요.”제훈이 또 웃음을 터뜨렸다.“그럼 오빠는요? 휴가는 며칠인 거예요?”“나? 나는 길어.”제훈은 정면을 주시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이번에는 따로 처리해야 할 사적인 일이 있어서. 언제 모두 정리될지는 나도 모르겠어.”“그래요.”강연은 짤막하게 대답할 뿐 더 묻지 않았다.그런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익숙했다.“셋째 오빠 잠깐만!”강연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요?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내가 묵는 오피스텔로 가는 거 아니에요?”여긴 매니저 조혜영이 구해준
“강연아, 네가 어쩐 일이야?”송예은은 강연을 보고 조금 놀란 눈치였다.강연은 며칠 동안 강씨 가문과 전씨 가문에 일이 생겨 잠시 집을 비운다고 미리 조혜영에게 언질을 해두었다. 그래서 예은은 당분간 강연이 돌아오지 않는 줄만 알았다.오늘 강연을 만나자 조금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큼, 그게 본가에서 지내려고 짐 챙기러 왔어.”강연이 설명했다.“지금 나가려고?”“뭐 좀 사러 가려고 했는데 급한 건 아니야.”예은이 말을 이었다.“무슨 짐을 챙기려는 거야? 내가 도울까?”“그러면 고맙지.”강연이 입꼬리를 올렸고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오빠가 밥을 사주겠다는 사람이 바로 송예은인건가?’‘설마? 오빠랑 예은이는 겨우 한번 만난 사이인데 어떻게 알고?’강연은 생각에 잠긴 채로, 방으로 돌아와 예은과 짐을 정리했다.사실 챙길 게 별로 없었으므로 강연은 필요한 신분증이나 생필품을 대충 챙겼다.본가에 아주 큰 드레스룸이 따로 있었으므로 옷을 챙길 필요는 없었다.짐을 정리하고 예은은 강연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제훈의 차는 아주 눈에 띄었다. 강씨 가문의 제일 평범한 차라고 해도 고가 카이엔이었고 주차만 해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강연이 앞으로 걸어가자, 주변 사람들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강씨 가문 공주님을 데리러 온 거였어? 그럼, 뭐 이상한 것도 없지.’“제훈 오빠?”강연과 예은이 차창으로 다가갔고 짙은 선팅 탓에 안이 보이지 않아 차창을 똑똑 두드렸다.차창이 천천히 내려가고 제훈의 차갑지만, 청초한 외모가 드러났다.“모두 챙긴 거야?”덤덤하게 말했지만 목소리가 아주 듣기 좋았다.“네.”강연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예은이 도와줬거든요.”제훈의 시선이 자연스레 예은을 향했다.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해진 예은이었지만 제훈의 주시에 갑자기 긴장해졌다.마치 사냥감에 노려진 먹잇감이 된 기분이었다.예은은 애써 제 기분을 숨기며 속으로 역시 강씨 가문의 카리스마는 남다르구나, 라
강씨 가문 셋째 도련님이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지 놀랍기도 했지만, 송예은은 제훈이 대체 자신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지 궁금했다.차 문이 열리고 몸에 알맞게 맞춘 슈트를 입은 제훈이 걸어 나왔다. 긴 보폭으로 걸어오는 그의 기럭지에 보는 사람은 마음이 떨렸다.햇빛에 비친 제훈의 외모는 또 어떠한가. 뒤에 후광이 비쳐 들고 한시도 시선을 뗄 수 없었다.예은은 연예계에서 몇 년 동안 일하며 꽤 인지도가 있는 배우로 성장했고 그동안 잘생긴 배우들을 수없이 만났었다.기질, 외모, 기럭지, 서안을 제외하고 제훈과 비교할 수 있는 상대는 존재하지 않았다.예은은 어느새 입이 벌어졌다.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제훈의 그림자가 예은의 앞으로 성큼 다가왔고, 얼굴은 차갑지만, 예상과는 달리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송이가 자주 송예은 씨를 언급했었습니다. 예은 씨가 가장 친한 친구이고 자주 송이를 도왔다고 들었는데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밥 한 끼 같이 하시죠. 제가 감사의 마음으로 밥을 사겠습니다.”“네?”예은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예쁜 눈망울에 의문이 가득했다.“아... 그게... 좋아요.”‘셋째 도련님은 쌀쌀맞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 아니던가?’‘왜 갑자기... 이렇게 친절한 거지?’예은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제훈의 뒤로 남겨진 강연은 경악에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네.’‘그렇게 차갑고 무뚝뚝하던 셋째 오빠가 먼저 대시하는 걸 다 보다니.’‘해가 서쪽에서 뜬 건가?’‘밥이라도 잘못 먹은 거야?’강연은 세윤과 제훈이 평생 솔로로 살 것이라고 내기를 했었다.그런데 강철 솔로에게 꽃이 피는 봄이 찾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강연은 소름이 돋은 팔을 내리쓸며 뒷좌석에 앉았고, 옆에 앉은 예은과 앞쪽의 제훈을 번갈아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었다.“예은 씨는 강연과 어떻게 만난 거예요?”제훈이 먼저 대화를 주도했다.강연은 바로 허리를 세우고 조용히 팝콘 먹을 준비를 했다.‘오빠가 먼저 예
“송예은! 너 오해한 거야!”강연이 예은의 손을 잡고 입을 삐죽였다.“셋째 오빠는 절대 악의로 말한 게 아니야. 넌 내 친구인데 오빠가 왜 널 조사하겠어? 그냥... 우리 과거에 대해 궁금해서 물어본 걸 거야.”그 말을 들은 예은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고 고개를 돌려 제훈을 바라보았다.“셋째 도련님, 정말 강연이 과거가 궁금해서 그러신 거예요?”예은의 질문에도 제훈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다.백미러를 통해 겨우 화를 참고 있는 예은을 확인한 제훈이 조금 날카로운 시선으로 말했다.“평소 경계심이 많은 편인가요?”제훈의 물음에 예은은 조금 당황한 듯싶었다.“뭐라고요?”“저는 동생과 동생 친구한테 관심을 가지면 안 되나요? 저는 뭐 동생을 다른 사람과 만나게 하지 못하고 주변 인물에 악의를 가져야만 하나요?”“...”‘나는 드라마에서는 다 그러니까 혹시나 해서 그런 거지.’제훈은 시선을 거두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송예은 씨 혹시 피해망상이라도 있는 거예요? 왜 이렇게 경계하는 겁니까? 말도 안 되는 드라마 너무 많이 보신 거 아니예요?”“...”예은은 독설을 퍼붓는 제훈을 흘깃 노려보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제훈은 백미러를 통해 귀끝이 조금 붉어진 예은을 발견했다. 그리고 몰래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화기애애하던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든 제훈을 보며 강연은 속으로 생각했다.‘제훈 오빠처럼 완벽한 사람도 여자 앞에서 바른 소리만 해대는 무드 없는 남자였어.’그리고 다른 한편 걱정이 되기도 했다.‘예은이 제훈 오빠에 대한 인상이 나빠지면 어떡하지?’겨우 이성에 눈을 뜬 제훈이 이대로 포기할까 강연은 마음을 졸였다.“예은아.”강연이 예은의 옆으로 붙으며 손을 잡았다.“우리 오빠가 한 말 신경 쓰지 마. 무드가 없는 남자라 좀 직설적인 편이야.”강연의 말에 예은은 자신이 오해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사과를 하기에는 조금 내키지 않았다.그래서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이에 강연은 분위기를 띄워보려 계속해서 쫑알거렸다.“우리
제훈이 정말 화를 내는 게 아닌 걸 알아차린 강연은 안심하며 가슴을 두드렸고 송예은과 눈을 마주하며 웃음을 터뜨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재잘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제훈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곧 세 사람은 레스토랑에 도착했다.제훈은 키를 발렛한테 넘기고 뒷좌석 문을 열어 젠틀하게 두 소녀를 부축했다.예은은 조금 당황했으나 예의 바르게 말했다.“감사합니다.”“별걸 다.”제훈은 덤덤하게 말 한마디를 보탰다.“앞으로 날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요.”제훈은 말하며 방금 차에서 내린 예은을 단단한 두 팔로 가뒀다.키가 꽤 큰 제훈은 상대에게 압박감을 가져다줬다.제훈의 차가운 시선이 한 사람만을 향한다면 그 상대는 바로 소름이 돋을 것이다.그리고 이건 예은도 마찬가지였다.예은은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았고 어느새 두 볼도 점점 붉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지 않아도 제훈이 무슨 표정인지 예측이 갔다.차가운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은 얼굴, 예은은 감히 고개를 들어 제훈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안... 안 그럴게요.”그리고 예은은 마치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강연을 향했고 제훈에게서 떨어졌다.뒤에 남은 제훈은 낮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자신감이 붙은 얼굴로 둘을 지그시 바라보았다.레스토랑에서 강연은 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주문했다.제훈은 예은의 앞에 놓인 접시를 보며 물었다.“디저트 좋아하나 봐요?”딸기 케이크를 막 입에 넣은 예은은 조금 당황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렸을 때 집이 가난했는데 먹을 게 없어 설탕을 푼 물을 먹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커서도 단 음식이 좋더라고요.”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마친 예은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디저트를 입에 넣었다.그 모습에 조금의 열등감이나 불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제훈은 이런 예은을 눈에 담으며 더 깊은 생각에 빠졌다.예은의 가정사를 조사해 본 적이 있었다. 가정사가 아주 복잡해 어렸을 때부터 많은 고생을 한 것 같았다. 어른이 되고 강제로 연예계에 진
하지만 송예은은 늘 준비를 하고 있었다.혈혈단신인 예은은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제훈은 예은이 열정이 넘치고 명석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과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예은은 선과 악을 정확히 가르고 원한 앞에서는 한치의 용서도 없었다.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은 아무리 피가 섞인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절대 자신의 피를 뽑아먹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또한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은 아무리 낯선 사람이라고 해도 은혜를 갚으려 했다.외모는 화려하고 차가운 점이 있었지만, 강연과 같은 친한 친구들 앞에서는 가시가 돋친 가면을 벗어던지고 가장 연약한 면을 스스럼없이 보였다.늘 차갑고 당당해 보이던 예은이 친구들과 함께일 때에는 수다쟁이가 되어 스캔들에 대해 말하고 핫한 연예인을 좋아하고 응원했다는 것을 그녀의 팬들은 알지 못했다.예은의 연기는 일상에서도 이어졌다.제훈은 이런 예은이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고 보기만 해도 설렜다.어쩌면 처음 눈을 마주친 순간부터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예감했다.제훈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자기 디저트도 예은의 앞으로 당겼다.“좋아하면 마음껏 먹어요. 얼마든지 먹어도 돼요.”몸이 살짝 굳은 예은이 살며시 고개를 들어 제훈을 쳐다보았다.덤덤한 얼굴의 제훈이 말을 이었다.“여기 레스토랑 디저트는 조금 밋밋하네요. 다음에 강씨 저택에 놀러 오시면 대접할게요. 입맛에 맞을 거예요.”예은은 하마터면 손에 쥔 포크를 떨어뜨릴 뻔했다.‘제훈 오빠가... 날 집에 초대를?’연예계 생활을 오래 하면서 예은은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는 순한 양이 아니었다. 그 말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설마 강씨 가문 셋째 도련님이 나랑 자고 싶은 거야?”생각만 하려다가 예은은 얼떨결에 그 말을 입 밖으로 뱉았다.“자고 싶다”라는 말을 들을 강연은 바로 입안의 주스를 뿜어내고 연신 기침을 해댔다.제훈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캑캑!”옆에 앉은 강연이 요란스레 기침하고 주변의 직원들은 몰래 조마조마해했다.그리
그러나 이어지는 남자의 덤덤한 목소리.“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큰일이야, 더 바닥을 파고들고 싶어졌어.’‘이 대낮에 환청이라니.’강연이 깜짝 놀라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제훈을 가리켰다.“셋째 오빠...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예은이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리 이게 꿈속이라고 해도 그렇지 강씨 가문 사람, 심지어 그 유명한 강씨 가문 셋째 도련님이 왜 나를 좋아하겠어?’‘배경도 없고 신분도 없는 2군 배우를 왜?’제훈이 손가락을 까딱하면, 아니 눈빛만 보내도 연예계 잘 나가는 여자 연예인들이 알아서 줄을 설 것이다.‘내가 정말 미친 거야? 왜 이런 환청이?’“어떻게 그냥 이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요?”강연은 원망스러운 마음에 소리를 조금 높였다.“고백이라는 건 시간과 공을 들여 천천히 해야 하는 거라고요. 이렇게 성급하게 했다가 도망가면 어쩌려고요!”“...”‘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강연아!’“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안택처럼 십수 년을 옆에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거야? 아니면 전서안처럼 네 앞에 설 자신도 없어 몰래 오랫동안 지켜보기만 해야 해?”제훈은 강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다 겁쟁이들이야.”“...”“아니! 왜 멀쩡한 사람들을 디스하고 그래요?”제훈이 예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바로 말할 거예요.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줄 생각도 하지 못하게.”강연은 입을 떡 벌렸다.‘세상에, 우리 셋째 오빠 맞아?’‘20년 동안 사랑에 눈먼 장님 같더니 눈을 뜨자마자 이렇게 화끈할 수 있는 거야? 지금 완전 드라마 속 대표님 같잖아? 아니 조금 더 느끼한가?’강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예은을 살폈다. 그러나 예은은 살짝 시선을 내리깔았고 귀 끝이 빨갛게 물들었다.‘설마, 예은이가 벌써?’식사를 마치고 제훈은 예은을 오피스텔로 바래다주고 강연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예은이 차에서 내릴 때 제훈도 차에서 내렸고 강연은 홀로 차에 남
제훈은 손을 들어 예은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옅게 지은 미소와 반짝이는 검은색 눈동자, 등 뒤로 비치는 햇빛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올라가요. 또 연락할게요.”예은이 고개를 끄덕이고 뚝딱거리며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예은은 층수를 누르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안에 한참을 갇혀있다가 엘리베이터가 올라가지 않자 그제야 알아차렸다.거울에 비친 붉은 얼굴을 보며 예은은 크게 심호흡하고 손을 들어 얼굴을 비볐다.‘이게 무슨 일이래. 정말 사람 마음 심란하게.’머릿속에 울리는 또 연락하겠다는 제훈의 목소리에 예은의 얼굴이 더 뜨거워졌다.그러나 예은은 제훈에게 연락처를 주지 않았고 본인도 제훈의 연락처가 없었으므로 어떻게 연락할지 의문이 생겼다.그리고 이 생각에 예은은 저도 모르게 자기 머리를 치며 후회했다.예은이 심란해서 하는 한편 차 안에서는.차로 돌아온 제훈의 옷깃을 강연이 냉큼 잡아당겼다.“빨리 바른대로 말해요! 언제부터 우리 예은이를 마음에 뒀던 거에요?”강연의 표정이 조금 날카로웠는데 마치 발톱을 드러낸 새끼 사자의 흉포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깊은 눈동자에는 흥분과 설렘이 드러났다.제훈이 몸을 느슨하게 풀며 입꼬리를 올렸다.“맞춰봐.”강연은 급해 발만 동동 굴렀고 어쩔 줄 모르는 새끼 사자처럼 으르렁거렸다.“그럼, 오늘 나를 데리러 온건 다 계획대로 움직인 거죠?”“계획이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니야.”제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예은을 알게 된 지 얼마되지도 않았으니까.”“설마? 혹시 설마?”강연이 깜짝 놀란 얼굴로 말을 이었다.“설마 처음 만난 이후로 그다음 번에는 고백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제훈이 몸을 돌려 강연의 이마에 땅콩을 먹였다.“정답.”강연이 제 이마를 감싸며 앓는 소리를 냈고 눈가에 눈물이 촉촉하게 배어났다.“우리 불쌍한 예은이 저 무시무시한 악마한테 노려지다니. 너무 불쌍해 엉엉.”제훈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고민도 없이 또 이마에 땅콩을 먹였다.강연이 “와-”하는 소리와 함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