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나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오늘 반갑지 않은 사람들 얼굴을 보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절반이나 되는 지분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니 헛걸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머지 절반도 곧 가져올 거라고 자신하며 작게 웃었다.“설혜는 나랑 친자매나 다름없으니 고맙다는 인사는 생략할게.”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어르신은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원래도 몸이 편찮았는데 갑자기 모든 긴장이 풀리자 몸 이곳저곳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집사, 지분 양도 협의서 작성해서 가져와. 지금 당장 사인하게.”어르신은 헛기침을 하더니 엄숙한 목소리로 명령했다.어르신도 사실 자기가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는 걸 은연중 짐작했다. 때문에 떠날 때 떠나더라도 집안의 문제는 제대로 해결해놓은 뒤 가고 싶었다.“할머니, 이렇게 급할 필요 있어요?”하지만 그 결정에 도설혜가 조급했는지 입을 열었다.“내일 사인해도 되잖아요.”“맞아요, 어머니. 이렇게 급하게 처리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오늘 어머니의 생신이신데 지분 양도는 내일 해도 늦지 않아요.”서영옥도 다급히 나서서 어르신을 말렸다. 두 사람의 행동에 어르신이 뭐라 말하려고 하던 그때, 문 어구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얘기 중인데 이렇게 시끌벅적한가요?”그리고 곧바로 훤칠한 남자 하나가 안으로 들어섰다.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는 마치 제왕 같은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조각 같은 얼굴과 깊은 아이홀 그 밑에 난 매서운 눈매 그리고 높은 코…… 그야말로 하늘이 빚어낸 완벽한 예술품 같았다.그 남자를 보는 순간 도설혜의 눈빛은 반짝 빛나는 동시에 무척 놀라운 듯했다.‘현석 씨가 여길 오다니…….’오늘 할머니의 칠순 잔치라 예의상 전화로 초대했는데 이렇게 직접 행차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지난 4년간 도 씨 가문에서 열리는 각종 파티에 몇 번이고 초대했건만 매번 거절하던 그였기에 이번에도 솔직히 큰 희망은 품이 않았다.그런데 희망을 버리니 이렇게 나타나 주다니. 그 강현석이 와주다니!도설
도설혜는 황급히 부인하며 도예나를 째려봤다. 이 시각 그녀는 도예나가 빨리 눈치껏 빠져줬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하지만 도예나의 행동은 그녀를 실망하게 했다.도예나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이제 보니 도 씨 가문이 강 씨 가문과 인연이 있는 건 확실하네. 그런데 강현석이 도설혜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단 말이지.’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강현석이 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 집까지 찾아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뭐 아무렴 어때? 도 씨 가문 사람들은 체면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니 강현석 앞에서 제 얼굴에 먹칠하는 일은 하지 않겠지?’도예나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강 대표님, 저희 방금 도 씨 그룹 지분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강 대표님도 오셨으니 마침 증인이 되어주면 되겠네요.”강현석은 흥미로운 듯 도예나를 바라봤다.“흠, 무슨 증인이요?”“나나야!”그때 서영옥이 약이 바싹 올라 도예나의 말을 가로챘다.“집안일을 남한테 말하면 비웃음 당해.”하지만 어르신이 갑자기 끼어들었다.“자네도 이제 우리 식구나 다름없는데 알 건 알아야지.”‘우리 식구나 다름없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도예나는 이해하가 되지 않았다.그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도설혜가 멍하니 강현석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설마? 두 사람 약혼한 사이인가? 그래서 강 씨 그룹에서 얼마 전 도 씨 그룹을 도와줬던 거였어?’도예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눈을 내리깔더니 입을 열었다. “강 대표님이 도 씨 가문 사람이라면 이 증인은 할 수 없겠네요.”강현석이 도설혜의 약혼남이라면 당연히 도설혜의 편을 들게 뻔했다. 그러면 그녀도 입 아프게 그에게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하지만 강현석은 이 일에 흥미를 느꼈는지 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어르신,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저 강현석은 한 번도 도 씨 가문 사람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건 도설혜 씨가 가장 잘 알 건데요.”도설혜는
도예나는 적절한 속도로 도 씨 그룹 지분 50퍼센트에 관한 일을 모두 얘기하고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강 대표님이 보시기에 제가 어머니의 유산인 지분을 돌려받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세요?”“아니요.”강현석은 덤덤하게 세 글자를 내뱉었다.그 말에 도설혜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현석 씨는 역시나 내 편이었어!’강현석의 이 말 한마디면 그녀는 지분 양도를 거절할 수 있었다. 아무리 할머니가 뭐라 하든 말이다.하지만 도예나의 낯빛은 반대로 어두워졌다.역시나 믿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면서 반박하려고 하던 그때 강현석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도예나 씨, 제가 만약 당신이라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모든 지분을 가져왔을 겁니다. 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왜 남에게 반이나 나눠줘야 하죠?”남자의 말이 끝나자 도예나는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불합리하다는 게 이 뜻이었어? 그러면 내가 오해했잖아?’“현석 씨…….”하지만 그때 도설혜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자기 편을 들 거라고 굳게 믿고 있던 사람의 싸늘한 대답에 도설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어떻게…….”그녀는 입을 뻐금 거리며 몇 번이고 말을 하려 했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내가 강 씨 가문을 위해 아들을 둘씩이나 낳아줬는데 어떻게 도예나 저년 앞에서 날 망신 줄 수가 있어?’강현석의 대답은 그녀의 기분을 하늘까지 솟게 했다가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하하!”그때 서영옥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분위기를 풀려고 애썼다.“강 서방, 자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우리 설혜와 예나가 얼마나 의좋은 자매라네. 그래서 예나가 반을 설혜한테 준 거고. 그러니 이건 두 자매 사이의 일이니 둘이서 해결하라고 하고 우리는 밥이나 먹자고. 몇 입 대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서 들게…….”여기서 계속 지분 얘기를 한다면 설혜 손에 있는 절반의 지분도 내놓아야 할 판국이었다.하지만 당황한 두 사람과는 다르게 어르신이 강현석에 대한 인상은 오히려 더 좋아졌다. “집사, 지분
어르신은 더 이상 앉아 있기 힘에 겨웠는지 집사의 손을 잡으며 일어섰다.그 모습을 본 도예나는 곧바로 함께 일어나 어르신의 손을 잡았다.“할머니, 제가 방까지 부축해 드릴게요.”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녀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갔다.하지만 밖은 여전히 떠들썩했다.강현석이 처음 방문한 터라 식구들 모두 강현석과 도설혜의 혼인이 기정사실이라고 믿고 있었다.“요즘 영화가 상영됐다던데, 오후에 설혜와 함께 영화나 가보는 게 어떤가?”서영옥은 눈웃음을 치며 강현석에게 제안했다.“영화 한편 보고 나서 쇼핑도 좀 하고 시간 때맞춰 예쁜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 얼마나 좋아.”어머니의 부추김에 도설혜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현석 씨 오후에 바빠요. 영화 볼 시간이 어디 있다고 그래요.”“아무리 바빠도 여자친구와 데이트는 해야지.”둘째 숙모도 흥분해서 끼어들었다.“두 사람 벌써 연애한지도 4년이 되어가는데 결혼해야 하지 않겠어? 내가 말 많다고 귀찮아하지 말게. 설혜도 이제 혼기가 찼는데 더 미루다가 나이 들면 어떡하려고. 두 사람 결혼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하지만 한창 떠들던 그때 차가운 시선이 그녀를 스쳤다. 그 시선에 놀란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그 반응을 보고 나서야 강현석이 입꼬리를 올리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우선 저 여자친구 없고, 도설혜 씨와 결혼할 마음도 없어요. 그리고 도설혜 씨가 늙던 노처녀가 되던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그는 도설혜와 선을 그었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도설혜는 지금껏 강현석이 자기와 결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대놓고 말한 적은 없었다.게다가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무안하게 한 적도 없었다.그녀는 강 씨 가문 두 도련님의 어머니가 되면서 한순간 신분상승했고 그 명목으로 도 씨 가문에서 온갖 유세를 부리고 다녔는데 강현석의 말 한마디에 화려한 껍데기가 순간 벗겨진 기분이었다.분하고 쪽팔려 몸이
도예나가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려고 할 때, 조수석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강현석이 차에 올라탔다.마치 자기 차라는 듯 풀어진 모습으로 의자에 앉으며 제멋대로 구는 남자의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강 대표님,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제 차가 고장 나서요. 바래다줘요. 어려운 일 아니잖아요.”의자에 기대 담담하게 말하는 강현석을 보자 도예나는 핸들에서 손을 뗐다.“도 씨 가문 사람 중에서 강 대표님을 바래다주고 싶어 하는 사람 많을 텐데요. 제가 도설혜한테 전화하도 해드려요?”“저랑 단둘이 있는 게 그렇게 두려워요?”순간 강현석은 갑자기 허리를 굽히며 다가왔다. 그 덕에 잘 생긴 얼굴은 도예나의 얼굴과 더욱 가까워졌고 두 사람의 호흡은 서로 섞이며 야릇한 분위기를 형성했다.요동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도예나는 담담한 척 고개를 돌리며 다시 핸들을 잡았다.“지난번 파티에서 강 대표님이 제 딸을 구해줬으니 이번엔 제가 보답하죠.”시동을 건 차는 이내 길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 시각 강현석의 눈은 오롯이 운전하는 도예나를 향해 있었다. 습관적으로 왼쪽으로 몸을 트는 여자를 보며 속으로 해외 생활을 한 게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순간 여자의 지난 4년이 궁금했지만 항상 그를 경계하는 여자가 그가 묻는 물음에 대답할 리가 없었다.이에 강현석은 의자에 기대앉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제가 도예나 씨를 따라온 건 콜라보 제의를 하기 위해서였어요.”“어디 한번 들어나 보죠. 어떤 콜라보 말씀이시죠?”“강 씨 그룹이 여러 가지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건 예나 씨도 아마 알고 있겠죠? 요 몇 년간 자동차 사업도 시도해 보고 있거든요. 자율주행 자동차에 넣을 스마트 칩을 찾고 있는데 국내에는 그걸 개발하는 회사가 적어서요. 아이디어 구상은 벌써 2년 전에 마쳤지만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해서 그러는데 예나 씨는 어때요? 흥미 있어요?”남자의 담담한 말에 도예나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혹시 제 뒷조사했어요?”그녀가 자율주행 자동차의 칩을
성남의 비즈니스계에 대해 조사한 도예나는 강 씨 그룹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었다. 그런 강 씨 그룹과 협력관계를 형성하면 암으로 돈방석에 앉을 일만 남았다고도 할 수 있다.하지만 쉽게 손을 잡지 못하는 원인은 아직도 그녀의 마음속에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강현석이 왜 자기를 선택핬을지. 하버드 교수가 추천했다고 선택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하버드에 프로그래밍 천재가 얼마나 많은데, 그녀가 아무리 우수하다고 한들 기껏해야 세 번째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자기를 선택했다는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는 틈에 차는 강현석의 별장에 도착했다.산 중턱에 위치한 별장은 3층으로 되어 있었지만 너무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았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풀장과 저원을 합치면 족히 삼천 평이 넘었다.이거야말로 진정한 호화 저택이었다.“강 대표님, 말씀하신 콜라보 건은 제가 생각해 보고 사흘 뒤에 답변드릴게요.”"그럼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도예나의 예의 있는 인사말에 강현석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별장을 향해 걸어갔다.하지만 도예나가 떠나려고 하던 그때, 마침 조수석에 놓인 검은색 남성 지갑이 눈에 들어왔다.그녀 차에 앉았던 남자라고는 강현석밖에 없었기에 생각하지 않아도 지갑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강 대표님, 지갑 떨어트렸어요!”도예나는 지갑을 손에 든 채 차에서 내려 높은 목소리로 남자를 불러 세웠다.그 목소리는 2층에서 책을 읽고 있던 강세윤의 귀를 파고들었다. 익숙하고 청아한 목소리에 강세윤은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테라스로 달려나갔다.아니나 다를까 별장 문 앞에 베이지 색 정장을 입은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입가에 미소를 띤 채 햇빛 아래에 서 있는 여자는 반짝반짝 빛나는 것만 같았다.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강세윤의 우울하던 마음은 구름이 걷히듯 맑아졌다.한 친의 망설임도 없이 아래층으로 달려가는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양 집사가 헐레벌떡 뒤를 쫓았다.“작은 도련님, 뛰지 마세요
“세윤이 용감한 남자애 맞지? 그러니까 앞으로 울면 안 돼.”도예나는 강세윤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여자 애인 수아도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크게 울어본 적 없는데 남자애인 강세윤이자꾸만 울음을 터뜨리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했다.“알았어요. 저 다시는 울지 않을게요. 그저 너무 오랜만에 이모를 보는 거라서 보고 싶어서 그랬어요…….”코를 훌쩍거리며 말하던 강세윤의 귀는 어느새 빨갛게 달아올랐다.그 모습을 보자 강현석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예가 언제 이렇게 닭살 돋는 말을 할 줄 알았지? 게다가 이 여자가 대체 무슨 매력이 있다고 얘가 이렇게 순한 어린 양이 됐어?’도예나는 아이의 귀여운 행동을 그저 웃어넘겼다.솔직히 강세윤에 대한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강 씨 가문 아이라는 것만으로도 너무 잘해주면 이상한 오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거리를 유지하는 수밖에.그녀는 강세윤을 땅에 내려주면서 입을 열었다.“이모 바빠서 이만 갈게. 안녕.”“싫어요!”반응할 새도 없이 강세윤이 다시 도예나의 다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금방 왔으면서 왜 벌써 가려고 그래요. 나 이모 더 보고 싶단 말이에요.”앳된 목소리에 흐느낌이 섞여있었다.“…….”‘이렇게 오글거리는 대사는 대체 어디서 배웠대?’옆에서 지켜보던 강현석은 또 말을 잃고 말았다.그때 도예나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난처한 듯 입을 열었다.“세윤아, 이모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해…….”“흑흑, 나 너무 불쌍해…….”안간힘을 쓰며 참고 있던 눈물이 끝내 강세윤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아빠는 맨날 나 방에 가두고 공부만 시키고,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점심때가 됐는데 아직까지 굶어서 배고프고 서러운데…… 예나 이모는 나 보자마자 가려고 하고. 왜 다 이렇게 나 싫어하는데?”이윽고 도예나의 다리를 두른 팔을 풀더니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닭똥 같은 눈물은 뚝뚝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예나의 마음은 왠지 모르
하지만 기대 가득한 강세윤과는 달리 강현석은 도예나를 믿지 않는 눈치였다.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재벌 집 아가씨가 음식을 한다니 믿기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게다가 아무리 요리를 배웠다고 한들 강 씨 가문에서 거금을 들이고 모셔온 셰프보다 잘할 리가 만무했다.두 부자가 각기 저만의 생각에 빠져있었지만 도예나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고 양 집사의 안내 하에 주방으로 향했다.주방에는 이미 각종 신선한 재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호텔 레스토랑을 방불케 했다.도예나는 준비된 재료를 훑어보더니 야채와 면을 꺼내들었다. 그녀가 생각한 메뉴는 다름 아닌 잔치 국수였다.하지만 그때.“작은 도련님은 면요리를 싫어하세요…….” 양 집사가 다가와 나지막하게 귀띔했다. 즉 다른 요리로 바꾸라는 뜻이었다.하지만 도예나는 그저 싱긋 웃었다.“오랫동안 굶었으니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는 게 좋아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녀는 요리에 전념했다.양 집사는 그 모습을 옆에서 말없이 지켜봤다.모든 것에 관심 없는 작은 도련님이 특별하게 대하는 것도 신기한데 대표님까지 여자를 집에 들였다는 건 절대로 밉보여서는 안 될 상대라는 뜻이었으니 말이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잔치 국수가 완성됐다.도예나는 면을 그릇에 곱게 담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하지만 예상외로 너무 간단한 요리에 강현석의 눈썹이 저도 몰래 찡그러졌다.물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지만 간단한 요리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여자의 태도가 아니꼬웠다.매번 산해진미가 차려진 밥상을 보고도 투정을 부리던 강세윤이 상을 엎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그런데 웬걸? 강세윤이 활짝 웃으며 손뼉 치는 게 아니겠는가?“와, 예나 이모 짱! 이렇게 빨리 만들었어요? 냄새도 엄청 좋아요! 저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음식은 처음 봐요! 저 먹어도 왜요?”강세윤의 반응에 도예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뜨거우니 천천히 먹어.”그리고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강세윤은 젓가락을 집어 들고 면을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