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수건을 쥐고 있던 신유리의 손에 힘이 조금 실리더니 고개를 천천히 들어 서준혁을 쳐다보았다.서준혁도 신유리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는 침대에 앉아있고 신유리는 서있는 상태라 분위가는 더욱 이상해졌다.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고는 물수건을 침대 옆의 상에 놓고는 말을 꺼냈다.“내려가 볼게요.”“기억나십니까?”서준혁의 목소리와 공기 중에 퍼지는 은은한 술 냄새는 방안 분위기를 달궈주는 듯싶었고 서준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안색은 하얗게 질려있었다.그는 신유리를 바라보지도 않고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나중에 우리 아이 낳으면 이름을 서유희라고 하자고 했잖습니까.”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서준혁은 말을 할 때 신유리를 보지도 않았고 그 말을 들은 신유리는 굳더니 복잡한 눈빛을 하곤 서준혁을 보며 씁쓸히 아려오는 마음을 달랬다.전에 신유리는 확실히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이름은 서유희라고 하자고 약속했다. 서준혁의 서, 신유리의 유자도 있기에 알 맞춤이라고 생각하며 까르르 좋아하던 일이 엊그제 같았다.신유리는 주먹을 꽉 쥐고 한숨을 푹 쉬더니 단호한 눈빛으로 서준혁을 쳐다보며 말했다.“서준혁씨, 많이 취하셨어요.”“그런가 봅니다, 옛 생각이 막 떠오르는걸 보니.”그는 손을 들어 자신의 눈을 가리며 담담하게 대답했고 신유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물었다.“뭐 좋을 게 있다고 자꾸 생각해요?”방 밖으로 나올 때, 마침 해장국을 가져다주는 카운터 직원과 마주쳐버렸고 신유리는 더욱 더 짜증이 밀려왔다.방으로 도착한 신유리는 베란다에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서준혁은 오늘 누가 봐도 많이 취한 사람이었고 신유리도 신경을 덜 쓰겠다고 다짐했지만 서유희라는 이름 석 자를 듣자마자 마음에서 파도가 치듯 일렁거렸다.신유리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이 안에 새 생명이 무럭무럭 자라난다는 일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신기해하며 바라보고 있었다.베란다에서 돌아가자마자 이석민에게서 걸려온 전화로 인해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신유리와 주언이 몸을 돌려 올라가려고 할 때, 뒤에서는 신연인지 서준혁인지 모를 시선이 느껴졌다.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주언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저 방금 제대로 못했죠?”“뭘 제대로 하는데요?”신유리는 말을 하는 주언을 옆으로 힐끔 쳐다보며 되물었고 주언은 얼른 자신의 생각을 말해줬다.“임아중씨가 저보고 서준혁씨 앞에선 특히 더 조심해라고 해서요. 제가 방금 서준혁씨 앞에서 좀 더 친한 척 친밀한척 했어야 했는데...”임아중이 도대체 주언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는 신유리는 얼른 대답했다.“아중이 말... 너무 새겨듣지 마요.”“음, 네.”주언의 짧은 대답을 마지막으로 둘 사이는 어색하기 짝이 없어 엘리베이터 안은 조용했다.그의 방은 신유리보다 높은 곳에 있었기에 신유리는 자신의 방이 있는 층에 도착하고는 바로 내려버렸다.현재 그녀의 모든 신경은 주언이 아닌 신연에게로 쏠려있었고 아까 신연과의 눈 맞춤은 신유리로 하여금 이상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그 사람도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많은 생각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진 신유리는 소파에 앉아 한참을 진정하려 애썼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어딘가 불편했다.신기철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신유리가 15살 되는 해였다.그때 신유리는 갓 중학교를 졸업해 명문고에 붙은 상황이라 기쁜 마음에 몰래 신기철에게 전화를 걸었었다.하지만 신기철은 원래 기억속의 자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닌 억지로 힘듬을 억누르고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변했었고 전화를 건 신유리에게 무슨 일이 있냐 고만 물었다.자신이 알던 사람과는 180도 달라진 신기철의 모습에 신유리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지만 그래도 그에게 자신이 명문고에 입학한다는 사실을 알려줬고 그것을 들은 신기철은 잠시 당황하더니 얼른 축하의 말들을 건넸었다.그 후 신기철은 아무도 몰래 신유리의 계좌로 5만원을 입금해줬고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연락 이였다.오늘 뜻밖으로 신연을 마주한 신유리는 담담하게 굴었지만 사실 못내 가슴
인사를 건넨 부선생은 미소를 지으며 서준혁에게 말했다.“신유리씨가 방금 저한테 버닝스타도 이번 입찰에 참여한다고 알려주던데, 화인이랑 버닝스타가 또다시 만나 같이 일하게 되는 건가요?”“화인도 참여해요?”신유리가 물었다.“입찰회엔 설계사도 있고 투자자도 있습니다. 꽤나 큰 활동이라고 볼 수 있죠.”어젯밤 몰래 입찰회에 관한 기사들을 검색해본 신유리는 이런 활동이 기타활동과는 달리 국내 모든 자원들이 다 동원하기에 규모가 크고 평범한 회사들이 얻기에 매우 힘든 기회라는 것을 알았고 한번 열면 어마어마하게 성대한 모임이라는 것도 알았다.당연하게도 입찰회 현장에는 수많은 섹션들을 나누어놓기에 매 영역마다 다른 모양들도 준비되어 있었다.버닝스타가 눈독을 들인 것은 바로 성남시와 부산이 합동해서 여는 현장-성명월이라는 전시회였다.대범하고도 도전적인 주제사상과 현대 유행하는 원소들이 더해져 이 섹션은 모든 입찰회중에서 제일로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물건이었다. 신유리가 화인에 대한 이해로는 많고 많은 섹션들중 서준혁이 성명월을 고를 가능성이 제일 크다고 생각했다.아니나 다를까-부선생이 가만히 있다 입을 열었다.“사실 되게 우연입니다, 선택한 주제들이 비슷비슷해서 정말 떨어진다면 서로 맞춰가는 과정은 생력해도 되니까 좋잖습니까.”서준혁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얼른 말을 이어갔다.“저도 버닝스타와의 2차 협업, 기대가 많이 됩니다.”부선생이 자리를 떠난 후 신유리는 서준혁을 쳐다보며 아까 그가 했던 말에 대해 물었다.“화인에서 버닝스타랑 또 같이 하고 싶다고는 해요?”그도 그럴 것이 신유리는 방금 서준혁이 한 말을 도저히 믿지를 못했다.필경 미래의 일에 관해서 서준혁은 몇 번이나 버닝스타의 계획을 제쳐버렸으니까 말이다.“그럼 성남에 더 잘 어울릴 사무실이 있기나 합니까?”그의 대답에 반응을 한 신유리는 그제야 깨달았다. 서준혁이 버닝스타랑 같이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닌 싫어도 무조건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새로운 사무실과
장수영은 순간 흠칫하더니 막연한 눈빛으로 신유리를 보며 물었다.“신연씨... 아버지요?”“신연씨 가정사는 저희 대부분 다 몰라요. 지연이도 모를걸요? 근데 그 사람을 보아하니 집안도 그저 그런 것 같더라고요.”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고 신유리는 생각에 잠겼다.지연.이 이름을 듣자 신유리는 바로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밖으론 절대 티를 내지 않았다.장수영을 제외하고 연우진마저도 지연이라는 이름을 문득 말했었고 심지어는 그녀가 부산으로 온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더러 지연이라는 여자를 보러 가보라고도 말했었다.[지연이라는 사람은 신연... 여자친구인건가?]신유리의 미간을 점점 더 찌푸려졌고 엉킬 대로 엉켜버린 실마리들을 풀어헤치려고 애를 썼다.“신연씨한테 관심 있어요?”신유리의 표정을 본 장수영은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그러더니 조금 망설이다 말을 이어갔다.“신유리씨 성도 신, 신연씨도 신씨... 둘이 친척 아니에요? 헐?”신유리는 장수영의 오버 섞인 말에 담담히 대답했다.“너무 멀리 갔어요, 저희 둘 서로 모르는 사이에요.”그녀는 그저 한 가지 사실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장수영도 별로 큰 신경을 쓰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고 지내고 싶어요? 그럼 오늘밤 같이 놀러가요! 지연이도 오고 진송백씨도 온대요. 아마 신연씨도 올걸요?”신유리는 원래 망설이고 있었는데 장수영의 꼬드김에 넘어가 허락해버렸다.어떤 일은 빨리 알면 알수록 좋으니 질질 끌 필요는 없기 때문에.장수영이 말한 놀 거리는 부산에서 술집이 즐비한 골목에 있는 그중에서 제일 유명한 술집이었다.신유리가 그녀를 따라 들어간 순간 첫눈에 보이는 건 마른 몸에 진한 파란색 치마, 하얀 피부를 하고 서있는 인형 같은 여자였다.“지연아!”옆에 있던 장수영이 그 여자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신유리의 팔을 잡고 다가가며 소개를 시켜줬다.“이쪽은 내가 너한테 말했던 예쁜 그 언니, 포스 죽이지?”태지연은 신유리를 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는 인사를 건넸다
큰 화분 옆에 서있는 신연은 이제 고작 20대 초반인지라 아무리 도도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앳돼보였다.복도의 따뜻한 조명이 그에게 비춰지자 신유리와 똑 닮은 그의 눈은 더욱 반짝였다.신유리는 앞으로 한 발자국 성큼 다가가 신연을 보며 담담하게 입을 뗐다.“신연.”한자 한자 똑똑히 들리게 말을 하는 신유리는 신연의 성씨를 더욱 강조하며 말했고 그것을 들은 신연은 아무런 기복이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은 그때 호텔에서 본 눈빛이랑 전혀 차이가 없었다.사람들로 붐비는 복도와 밖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도 불구하고 신연과 신유리 두 사람은 마치 그들만의 세상에 갇힌 듯 고요했고 정적만 흘렀다.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얼굴에서 익숙한 누군가의 그림자가 비춰졌다.신연은 한참 있다 고개를 들어 차가운 눈빛으로 신유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신기철 씨한테서 얘기 자주 들었습니다.”“그래요?”신유리는 그의 말에 흠칫하더니 물었고 신연은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그 사람이 신유리 씨를 많이 사랑하던데요.”신유리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떨려오는 가슴을 진정시킨 채 신연에게 묻고 싶었던 물음을 물어보았다.“처음부터 절 알아보셨나요?”그녀의 물음에 신연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얘기해줬다.“사진 본 적 있습니다.”담담한 그의 말투에서 신유리는 그가 자신을 조금 얕본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지만 신연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 신분을 확인하려는 목적만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신연의 몸에는 섣불리 다가가기도 힘든 거리감이 느껴졌고 신유리는 신연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물었다.“여기서 절 기다리고 계신 게 이런 말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닐 텐데요?”정곡을 찔린 신연은 뜨끔하더니 옆에 있는 화분을 길고 큰 손으로 만지더니 별안간 잎을 하나 뜯어서 버려버리고는 대답했다.“아니요, 그냥 뭐 좀 보고 싶어서 그랬습니다.”“뭘 보고 싶은 건데요?”신
신유리는 숨소리가 잔뜩 섞여 있는 이신의 마지막 말을 알아듣지 못해 다시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베란다 창문 너머로 아래에서 바비큐 파티 중인 허경천, 곡연을 포함한 친구들을 보고 있던 이신은 잠시 뜸을 들이다 답했다.“부산 날씨가 요즘 많이 추워졌잖아. 몸 잘 챙기라고.”신유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려 하자 이신이 또 다른 질문을 해왔다.“화인 그룹과 버닝스타가 협업을 한 번 해볼까 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지금까지의 데이터로만 봤을 땐 홍연 입찰에는 화인 그룹과 버닝스타가 협업이 승산 있지.”“인력, 물력뿐만 아니라 시간도 절약할 거고, 성남 입찰에도 화인만큼 완벽한 회사는 없을 거야.”신유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이신은 그 말이 끝나서야 입을 열었다.“너도 홍연 입찰에 도전할 거야?”누구한테 지고는 못 사는 타고난 승부욕 덕에 도전적인 일이라면 누구보다 앞장서는 신유리기에 이신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당연하지.”본인은 모르겠지만 신유리의 칼 같은 대답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고 또 반드시 이겨내리라는 굳은 다짐이 담겨있었다.그 자신감이 보기 좋았던 이신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고.”신유리의 짤막한 대답을 마지막으로 둘의 대화도 끝이 났다. 신유리는 생각난 김에 노트북을 꺼내 바뀐 규칙을 다시 살펴보고는 제가 준비했던 파일과 하나하나 대조해보았다.전화를 끊은 이신이 고개를 돌리자 임아중이 팔짱을 낀 채 문에 기대 서 있었다.“전화는 다 했어? 아주 애절한 서브 남주네.”이신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임아중을 보며 물었다.“네가 여긴 왜 왔어?”“이현이 내일 퇴원하는데 너보고 데리러 오래서, 그 말 전해주러 왔다가 통화내용을 들어버렸네.”임아중은 혀를 차더니 이신을 위아래를 훑어보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런 태도로는 너 평생 결혼 못 해. 몸 잘 챙기라고? 남자가 여자 마음을 얻으려면 그런 말만 할 게 아니라 아예 비행기 타고 부산 가서 코트라도 걸쳐줘야 한다고
신유리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강지영은 더 묻고 싶었지만 갑자기 신유리에게 볼 일이 있다고 찾아오는 오혁 때문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유 선생님이 오후에 유리 씨랑 저랑 같이 연구실 한번 가보래요. 이신 대표님이 부탁한 데이터도 있는데 신유리 씨가 챙겨놓으면 돼요.”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강지영을 향해서도 짤막하게 둘러댄 뒤 다시 일하러 갔다.이신에게는 이미 확고하게 홍연 입찰에 도전하겠다고 말했기에 정말 열심히 해볼 생각이었다.그렇게 일을 시작하니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봉회가 끝나버렸다. 그리고 오혁이 신유리를 찾아올 때에야 짐을 다 챙길 수 있었다.그 모습에 오혁이 감탄하며 말했다.“역시 같이 일하는 이유가 있네요. 이신 대표님과 많이 닮았어요, 일하는 거.”“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유 선생님께 더 많이 물어봐야죠.”겸손한 그 대답에 오혁은 밝게 웃어 보였다.“그 정도는 유 선생님도 이해하실 거예요.”신유리는 오혁과 함께 회의실을 나섰는데 어쩐지 걸으면 걸을수록 누군가 저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신유리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신유리의 이상한 행동에 같이 걷던 오혁이 의아한 듯 물었다.“왜 그래요?”“아니에요. 그냥 누가 자꾸 저를 보는 것 같아서요.”“그래요?”오혁도 신유리를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신유리는 그 찝찝한 느낌을 지우려 애쓰며 말했다.“아니에요, 제가 좀 예민했나 봐요.”신유리는 오혁과 유 선생님에게로 향하고 있었는데 유 선생님 앞에 세운 차에 기대어 있는 이석민이 보였다.“서 대표님이 지금 바쁘셔서 우선 저더러 연구실까지 모셔다드리라고 하셨어요. 좀 있다 뵈러 오신다고 하셨어요.”이석민이 유 선생님을 향해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던 유 선생님이 차에 탔고 오혁도 조수석의 문을 열며 신유리에게 말했다.“유리 씨, 앞에 타요.”신유리는 유 선생님 앞에서 대놓고 거절하기가 민망하여 옅은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조수석에 탔다.가는 도중에 신유리는 이석민과 오혁의 대화로
실험실은 전체 층을 개조하여 만든 것이며 거의 30여 평 되는데 핸드폰 두 개의 플래시만으로 테이블 주변밖에 비출 수 없었다. 사면팔방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있다. 신유리의 호흡이 좀 가빠지더니 서준혁이 건네준 옷을 꽉 움켜잡은 채 진정하려고 노력했다. 문밖에서 오혁이 소리를 지르고 나서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는 걸 보니 자물쇠를 여는 사람을 찾아간 것 같다. 그녀는 쉬어가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고마워.”신유리는 고개를 들지 않고 속눈썹만 치켜올렸다. 서준혁은 옆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대답했다. 두 핸드폰의 빛이 겹쳐지자 신유리는 눈앞의 환경을 똑똑히 볼 수 있었지만 감히 다른 곳을 더 쳐다볼 엄두가 없었다. 주위가 너무 어두운 나머지 오히려 이곳의 빛이 좀 더 튀어 보였다.신유리로 하여금 늘 마음이 불안했다.탁-입구에서 갑자기 미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필이면 신유리와 서준혁 모두 말을 하지 않고 있었고 게다가 신유리의 정신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어서 순간적으로 그 소리를 포착했다. 신유리의 손바닥에 땀이 났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서준혁을 바라보았고 서준혁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나서 눈길을 돌려 입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소리는 두세 번 이어 울리고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신유리는 거의 숨소리로 서준혁에게 물었다. “오혁이 돌아온 거야?”서준혁의 새까만 눈동자에 엄숙함이 스쳐 지나갔다. “가볼게.”몸을 돌려 가려는데 갑자기 신유리가 소매를 잡아당기자 그는 걸음을 멈추고 앉아 있는 신유리를 바라보았다. 신유리의 야맹증과 달리 서준혁의 시력은 줄곧 좋았기에 그는 신유리의 핏기가 별로 없는 얼굴과 긴장 어린 눈빛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는 목젖을 아래위로 굴리더니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말투가 누그러지며 그녀를 달래주었다. “금방 올게.”신유리는 서준혁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그녀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천천히 일어섰다. “나도 함께 갈래.”그녀는 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