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은 핸드폰을 거두며 말했다. “너와 협업하는 날을 기대할게.”“나도 기대 돼.”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제를 전환했다. “이곳에서 힘든 일 있어?”“왜 그렇게 물어?”“얼굴에 훤히 보여서. 네가 시한에 있을 땐 이 정도로 수척해 보이진 않았거든.”이에 신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만졌다. “괜찮으면 나한테 털어놔도 돼.”그러나 신유리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신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하고 물었다. “저녁 같이 먹을래? 곡연도 있어.”“저녁에 병원에서 수액 맞아야 해서 너네끼리 놀다 와.”이신은 신유리를 자세히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사람들은 출장 간 김에 여행이라도 하는데 넌 오히려 벌받는 것 같다?”그는 처음으로 장난기 가득하게 신유리와 말했다. 이신이 워낙 본판이 잘생겨서 이렇게 웃으니 올라간 여우 눈에 부드러움이 보이면서 사람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하지만 이신의 웃음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평소로 돌아온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연락 주기 전에 연우진이 나보고 너 케어 잘하라고 신신 당부하더라. 네가 이렇게 성남으로 돌아가면 연우진이 내가 너 괴롭힌 줄 알아.”“넌 연우진과 사이 좋아?”“우진이가 얘기 안했어?” 이신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내 동생이야.”신유리는 연우진과 이신의 관계를 몰라 멍해있었다. 마침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그녀가 수액을 맞으러 가야 한다고 설정한 알람이었다. “그럼 고민해 보고 연락할게. 지금 병원 가야 해서 이만 일어날게.”“아, 맞다.”몇 걸음도 채 걷지 않은 신유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며 말했다. “테이블에 놓인 케이크는 손 대지 않았으니까 괜찮으면 네가 먹어. 그리고 다른 디저트도 먹고 싶으면 시켜.”이신은 어이가 없었다. “날 여자애 취급하는 거야?”신유리가 병원에 도착할 사람이 별로 없었고 그녀는 수액을 맞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아침에 본 간호사가 수액을 놔줬다. “아침에 본 그분이군요.”“네,
신유리는 송지음이 가엽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녀는 손에 묻은 핏자국을 닦고 고개를 들어 송지음 손에 있는 알콜솜을 보면서 말했다. “알레르기 있으면 쉬어.”그러자 송지음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유리 언니, 난 언니가 너무 걱정돼요.”“응 고마워, 지금은 괜찮아.”신유리는 송지음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송지음도 신유리의 거절을 눈치채 이빨을 꽉 물었다. “근데 언니가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있는데 언니 어머니가 와서 돌봐줘야 하지 않아요?”그리고 손에 있는 밴드를 가리키면서 이어서 말했다. “난 오빠가 같이 있어도 아픈데 언니 혼자 있으면 굉장히 불편할 거예요.”“친구 있어서 괜찮아.”이에 송지음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친구가 합정에 있다고요?”“응.” 짧게 대답한 신유리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송지음 앞에서 불쌍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친구가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게 웃겼다. 한숨을 쉬고 떠나려는데 송지음이 환하게 웃으면서 불러 세웠다. “유리 언니 그 친구 불러서 같이 밥 먹어요.”송지음은 친구가 있다는 말이 체면을 위해 지어낸 핑계라는 걸 알고 있어서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고의로 서준혁의 소매를 잡아 당기며 물었다. “오빠 같이 밥 먹자, 응?”서준혁은 셔츠를 팔꿈치까지 말아 올려 팔 근육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는 송지음의 약봉지를 들고 있었고 신유리를 보면서 무심하게 말했다. “그래.”“그럼 언니가 편한 시간에 볼까요?”신유리는 송지음이 마음대로 잡은 약속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거절하려는데 서준혁이 한마디 거들었다. “나도 어떤 친구인지 보고 싶네.”이에 신유리는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내뱉지 않고 다른 말을 내뱉었다. “걔 요즘 바빠.”“설마 밥 먹을 시간도 없어요?” 송지음은 신유리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고 표정을 하나라도 놓칠까 봐 빤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신유리가 웃음거리가 되길 바랐다.오전에 병원에서 서준혁과 같이 있는 신유리를 본 후 송지음은 그녀가 곱게 보이지 않았고 그녀
그러나 신유리가 잘못 생각했다.이신은 업무능력이 강하고 고객과 미팅할 때 주도적으로 미팅을 이끌며 반짝하는 아이디어가 많았다.이번 고객은 문화 예술 쪽을 책임지고 있는 유 주임인데 그는 긍정의 눈빛으로 이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사장 실력이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뜬 소문이 아니었구먼.”이신은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놓인 자료를 신유리 앞으로 밀면서 낮게 당부했다. “순서대로 정리하면 돼.”자료는 모두 최근 몇 년간 존재한 금융업계 큰손들과 그들이 맡은 케이스였다. 그중 한 명은 신유리가 비즈니스 때문에 서준혁과 같이 갔다가 만나 뵌 적이 있었다.“네 기획서는 시간을 따라 추진되는데 이 사람들의 경력을 타임라인으로 정리하는 거야? 설마 내가 뭐 하던 사람인지 잊지 않았지?”셀렉한 자료들은 모두 유명한 큰손들과 그들의 케이스였다. 신유리도 금융업계에서 오랫동안 몸담고 있어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빠르고 깔끔하게 자료를 정리하고 이신에게 건네주었다. 이때 이신은 유 주임과 자신의 설계 이념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신유리가 건네주는 자료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감정을 추스르고 금세 유 주임과 커뮤니케이션을 이어나갔다. 유 주임은 타임라인에 따라 정리가 잘 된 자료를 보면서 또 한 번 이신에게 감동받았다. “이 사장은 성의를 담아 이번 미팅에 응해줬군. 역시 파트너를 잘 찾았어.”그러자 이신도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임님께서 만족하시면 그걸로 된 거죠.”미팅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열한시쯤에 마무리 되었다. 유 주임은 환하게 웃으며 같이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지만 이신은 거절했다. “저희는 돌아가서 방안을 수정해야 해서 식사는 다음에 하시죠.”미팅 장소에서 나가자 송걸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곡연이 혼자 병원에 있어서 병문안 갈게요.”그러자 작업실의 다른 사람들도 같이 가겠다고 보챘다.“나도 가도 돼?”신유리도 같이 가겠다고 동참하자 이신은 혀를 차며 아예 다 같이 병원으로 가자고 제안했다.마침 신유리가 수액을 맞은 병원이었
서준혁은 신유리를 보면서 느긋하게 말했다. “뭐 필요한데?”그러자 서준혁은 앞에 놓인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친구 만나서 밥 먹을 시간이 있는 걸 보니 일은 대충 마무리됐나 봐?”이때 옆에 있던 이신이 신유리 대신 말을 받았다. “서 대표님 회사는 직원한테 대체로 관심이 많으시나봐요. 직원 밥 먹는 것도 다 물어보고.”이신은 태연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서준혁이 쓸데없는 일까지 상관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신 성격이 좋아서 그에게서 이런 말을 처음 들은 신유리는 놀랐다.이에 질세라 서준혁이 대꾸했다. “당신도 비슷하네요.” 방 안의 분위기는 다운되었지만 웨이터가 분위기를 깨면서 말했다. “실례합니다. 저희 레스토랑의 메인 요리가 괜찮은데 한번 드셔보시겠어요?”신유리는 메뉴판을 웨이터한테 넘기면서 웨이터의 안배에 따랐다. 웨이터가 메뉴판을 가지고 떠나자 송지음이 신유리를 불렀다.송지음은 손을 얼굴에 받치면서 궁금하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유리 언니, 언니랑 언니 친구는 합정에서 알게 됐어요?”이렇게 물었지만 송지음은 확신에 차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비치는 기쁨이 그렇게 말해주었다.오히려 신유리가 되물었다. “합정에서 만난 게 문제 있어?”“아니요. 그냥 유리 언니가 사교성이 정말 좋다고요. 난 내향적인 편이라서 그런지 오빠 없이는 밖에 잘나가지도 못해요.”한마디로 송지음은 신유리가 사생활이 난잡하다고 에둘러서 말하고 있었다. ‘사생활이 난잡한 게 아니면 합정에 있는 짧은 시간에 어떻게 새로운 이성 친구를 만날 수 있겠어.’이에 신유리는 테이블에 놓인 에이드를 마시면서 차분히 반격했다. “비서실에 있은지도 꽤 됐는데 아직도 사교성이 없는 건 반성해야지.”이렇게 반격할 줄 몰랐던 송지음은 가감 없이 불쾌함을 드러내고 신유리와 서준혁을 번갈아 보면서 억울하게 말했다. “더 노력할게요, 유리 언니.”송지음 때문에 기분이 나빠진 신유리는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말로만 노력하겠다고 하지 마. 비서실에 이쁘고 능력 있는 인턴들 많으니
이연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신유리를 봤다. “진짜?”신유리는 이연지를 끌어올리려고 했으나 이연지 힘이 너무 세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마 후 이연지가 일어나면서 신유리의 손을 다급하게 잡았다. “유리야, 엄마가 미안해. 그래도 미미는 내가 키웠잖아....”신유리는 이연지의 말을 듣는 와중에도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그러자 이연지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의사 선생님이 미미는 신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는데 한 달에 400-500만 원이 드는데 내가 어떻게 감당하겠어.”이 말을 들은 신유리는 이연지의 손을 뿌리쳤다. “의사선생님 찾아볼게요.”“네가 가도 똑같은 말만 할 거야.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니!”신유리는 이연지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병동에서 나가자 이신이 쫓아왔다. “신유리.”그녀는 지금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미안, 못 볼 꼴 보여줬네.”오히려 이신이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아는 친구가 혈액과에 있는데 소개해 줄게.”“고마워.”“연우진이 너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하더라. 그리고 너도 날 도와줬잖아.”이신은 신유리가 오전에 자료를 정리해 준 일을 말하고 있었다. 신유리는 안색이 좋지 않았고 웃을 힘도 없었다. “내가 없어도 너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어.”이신과 신유리는 말하면서 진료실에 도착했다. 주치의는 미미의 병이 선천적인 병이라 현재 상황에서는 신약을 먹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했다.신유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치의가 덧붙여서 말했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영양성분도 보충해 줘야 해요. 미미는 빈혈과 저혈압이 있고 철도 많이 부족해요.”신유리와 이신이 병동으로 돌아왔을 때 송지음과 이연지만 있었다. 이연지는 신유리를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말이 맞지?”병상에 누운 미미를 바라보는 신유리의 귓가에 의사 선생님 말이 맴돌았다. “왜 미미가 영양실조에요?”이연지는 멈칫하다가 해명했다.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미미가 영양실조라니. 말도
병원 복도에는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고 신유리는 잠시 진정을 취하여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다.그녀는 서준혁과 더는 말 섞지 않고 곧바로 화장실을 향했다.다행히 화장실에 사람이 많지 않아 그녀는 세면대 옆에 서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그녀의 눈가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있고 화장도 범벅이 되어 초췌해 보였다.신유리는 파우치를 꺼내 화장을 고친 뒤 손바닥을 세면대에 지탱하고는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갑자기 외할아버지의 전화를 걸려 왔다.얘기를 나누다가 신유리는 잠시 머리가 하얘지더니 마침내 자신이 아직 외할아버지에게 상황을 보고드리지 않았다는 점이 생각났다.그녀는 눈을 내리보며 심호흡을 한고는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외할아버지의 노쇠한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 찼다."유리야, 어떻게 됐어? "신유리는 목은 멘 듯이 소리를 내지 못했다.외할아버지는 손녀의 기분을 알아차린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물었다."유리야, 무슨 일이 생긴 거니? "신유리는 정신을 차린 후 세면대에 받쳐진 손을 천천히 거두어 가능한 침착한 어조로 대답했다."아니요, 걱정하지 마세요. 미미가 큰 문제 있는 건 아니고 빈혈이래요.""빈혈? 빈혈이라고?”신유리는 계속 설명드렸다."약물 때문일 수도 있다네요? "말하고 나서 바로 추가 설명드렸다."외할아버지 얼른 주무세요, 제가 의사 선생님께 가서 더 알아볼 테니 큰 문제는 없을거에요.”외할아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미미 건강도 중요하지만, 네 자신도 잘 챙겨."외할아버지와의 통화가 끝나자, 신유리는 화장실에 좀 더 있다가 나갔다.밖으로 나갈 때 뜻밖에도 서준혁이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미간을 찡긋하면서 휴대전화를 내리보고 있었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그는 휴대전화를 거두고는 신유리를 쳐다보면서 조롱하듯이 입꼬리가 올라갔다."억울함을 당하더라도 착한 척하겠다? 너 참 위대하네! "신유리는 손끝이 멈칫하더니 대답했다."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어떻게 처리할 건데? "
신유리는 저녁까지 방에 처박혀 있다가 집을 나섰다. 하지만 입맛이 없어서 대충 먹고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이연지 쪽에서는 더 이상 그녀를 찾지 않았고, 신유리도 그쪽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샤워하고 휴대전화를 보니,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정재준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정재준은 신유리에게 언제 성남으로 돌아왔느냐고 묻었다.이에 신유리는 답장했다.[무슨 일 있어요?][이번 주말 내 생일인데 놀러 와요.]정재준의 답장은 거의 1 초안에 날려왔다.사실 신유리는 정재준과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본 것도 화인 그룹에서 회의했을 때였다.마침 그녀는 기분이 언짢아 거절하려던 참에 메시지가 또다시 떴다.[다른 뜻은 없고 그냥 다 친구니까 같이 모이면서 놀려고요. 그리고 연우진이 그러던데 유리 씨 요즘 예술품 전시에 관심이 많다면서요? 마침 우리 집에 괜찮은 그림 몇 폭이 있어요. 유리 씨가 와서 봐줬으면 해서요.]이렇게까지 말하니 더 이상 거절하기에 송구스러워 신유리는 승낙했다.그날 밤, 신유리는 전혀 잠이 오지 않아 억지로 잠에 취해도 머리가 툭툭 하며 아파 났다.다음 날 아침, 신유리는 제시간에 이신에게 전화를 걸자, 이신은 멈칫하더니 물었다."왜?"신유리는 이마를 문지르면서 말했다."오늘 자료도 다 정리해야잖아, 주소가 어디야? 내가 직접 가져다줄게. "이신은 좀 의외였다. 그는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하루 좀 더 쉬어. "신유리는 그가 어제의 일 때문에 자신을 헤아려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아니야, 약속한 거잖아, 내 본부는 잘 지켜야지."이신도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그녀에게 주소 위치를 보냈다.신유리가 막 도착했을 때 겨우 9시였다.허경천은 손에 큰 가방과 아침 음식을 들면서 마침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신유리를 보더니 그는 인사를 건넸다.신유리는 눈살을 약간 찌푸리더니."아직 아침 안 먹었어요?”"어젯밤 밤새 대안을 생각하다가 이제야 일어났어요. ""이신
신유리는 말하다가 조금 씁쓸했다.서준혁은 잠시 침묵하다가 무심코 되물었다."왜? 엄마 대신 돈 빌리게?"말투마다 풍자의 의미가 담겼으나 다행히 이연지에게 돈을 안 빌려준 것 같아 시름이 놓였다.그녀는 고개를 떨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돈, 빌려주지 마!"서준혁은 약간 멈칫하다가 이내 코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그 위대한 효심은 어디 갔어? "신유리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무튼, 엄마한테 돈 빌려주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실 신유리는 더 이상 이연지에게 다시 전화하고 싶지 않았다.지금의 그녀는 이연지의 소리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하여 서준혁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서준혁은 분명히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가볍게 흥얼거리는 듯한 태도에 아무런 뜻도 읽을 수가 없었다.신유리가 막 전화를 끊으려 할 때 서준혁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잊었어? 좀 있으면 주국병이 나올 때 됐는데? "신유리는 눈살을 찌푸렸다.요 며칠간 일들이 한꺼번에 꼬인 바람에 주국병의 일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다.만약 주국병이 나온다면… 그날 병원 입구에서 주국병이 주먹다짐을 하던 무뢰한 모습이 떠올리며 신유리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그들이 알아서 신고할 거야. ""너의 엄마가 경찰에 신고할 것 같아? "이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신유리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이연지가 주국병을 그렇게 아끼는데, 경찰에 신고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처음엔 신유리는 미미를 낳았으니 다시 엄마로 된 이연지가 어느 정도 주국병을 단속시킬 줄 알았다.하지만 어제서야 그녀는 자신이 줄곧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서준혁은 아직 일이 남아 있는 듯 말끝을 흐리며 냉담하게 말했다."끊을게. "휴대전화를 들던 신유리는 제 자리에 서있더니 미간은 천천히 찡그러졌다.서준혁은 전화를 끊자마자 강희성의 카톡이 날려왔다.[다 준비됐어.]서준혁은 한 번 훑어보고는 채팅방을 나갔고 이에 송지음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송지음의 채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