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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9화

아주 좋지 않았다.

누구나 아플 때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는 TV에 비친 그녀의 보습을 바라봤다.

차우미는 나상준을 상사를 대하는 것처럼 대하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다른 곳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기에 아무 잡심도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남녀 간의 정과 사랑은 그녀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긴장해 하지도 않았으며 나상준을 좋아하는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일할 때처럼 진지하고 냉정한 모습이었다.

차우미가 나상준을 정상적인 남자로 대하고 있지 않았기에 나상준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의 손놀림은 부드럽고 섬세했지만 자상하지는 않았으며 조심스럽고 신중했다.

자신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손가락에 닿았음에도 그는 그녀에게서 어떠한 온도도 느낄 수 없었다.

그녀는 차가웠다. 김온 옆에 있을 때처럼 따뜻하지 않았다.

이 순간, 무언가가 그의 심장에 쿵 하고 떨어졌다.

가만히 앉아 있던 그의 눈빛에 어두움이 일렁이면서 방 안의 분위기가 바뀌었지만 차우미는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정신은 온통 나상준의 머리카락에 있었다.

차우미는 나상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가 아파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머리에 있는 물기를 닦아낸 뒤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려줬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가락이 그의 머리카락 사이를 누볐다. 굵고 단단한 머리카락이 그녀의 손등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수많은 풀 사이를 지나가는 것처럼 차가웠지만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이 순간, 차우미는 마음이 약해졌다.

그녀는 더 이상 눈썹을 찌푸리지 않았고 마음속에 있던 긴장감도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그녀의 표정이 부드러워졌고 편안해 졌다.

나상준은 차우미가 자신의 머리를 만지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뒀다. 그의 눈에 있던 어두움이 무서우리만치 더욱 짙어졌다.

수건이 아닌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부드럽고 섬세하게 그의 머리카락 사이를 누비자 답답하던 그의 마음이 순간 굳어졌다가 이내 풀렸다.

모든 먹구름이 걷히고 파도가 잔잔하게 밀려왔다. 모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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