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심주환은 체통을 지킬 새도 없이 전장에 뛰어들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모두 내 명령을 따르라! 포위절살대신!”사방으로 도망가던 사람들은 순간 정신 차리고 심주환의 곁으로 모였다.솨악... 챙!검은색 철사는 하나둘씩 날아왔다. 두 사람이 하나씩 조종한 철사는 커다란 망을 이루어 백희연을 포위했다.심주환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마스터의 포위대진에서 벗어나기는 불가능할 거다. 미천한 여인은 당장 투항하라!”이 말을 듣고 염무현은 피식 웃었다. 철사 몇 개 가지고 득의양양해 있는 꼴이 우스웠던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마냥 하찮기만 했다.물론 백희연도 마찬가지다.“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놈이구나.말을 마친 순간 그녀는 오른발을 들어 바닥을 힘껏 찼다.펑!하얀 기운은 폭발하듯 터지더니 사방을 향해 몰려갔다. 그 기운에 밀려 사람들은 우르르 뒤로 넘어졌다.털썩!퍽... 촤락!철사도 우수수 끊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버티고 있던 심주환은 뒤로 몇 걸음이나 밀려났다.그가 힘들게 중심을 잡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백희연이 발차기를 날려왔다.쾅... 퍼억!심주환은 그대로 세 개의 벽면을 무너뜨리고 나서야 간신히 멈췄다. 몸에는 성한 뼈가 없는 것 같았다.폐허 속에 쓰러진 그의 위에는 건물의 잔해가 쌓여 있었다. 얼굴에 먼지로 가득한 모습은 위엄이라고 보아낼 수 없었다.“풉!”그는 급기야 피를 토해냈고 눈빛 속에는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이 여자는 악마야!’“마... 마스터님. 저 여자는 대마스터입니다!”한 장로가 힘겹게 폐허 속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마스터와 대마스터는 한 글자만 차이가 났지만 그 실력 차이는 어마어마했다.서해와 같은 작은 도시를 넘어 허원 전체를 놓고 본다고 해도 대마스터는 아주 보기 어려웠다.심주환은 무림 연맹 본부에서 대마스터의 실력을 본 적 있다. 그렇기에 더욱 믿을 수 없었다. 이토록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대마스터라는 것을 말이다.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은 이런 여자가
잔뜩 겁먹은 사람들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당하던 심주환도 그 당당함을 잃었다.그가 이유도 묻지 않고 공격했던 것은 친구 맹승준 대신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감히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무림 연맹 허원 지부는 단 한 번도 이토록 비참해 본 적 없었다. 지부의 명예를 지킬 능력이 없는 자신이 심주환은 너무 한스러웠다.‘왜 이렇게 된 거야. 난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그는 세상에서 나약한 사람을 가장 싫어했다. 평소에는 늘 무술인의 위엄을 운운하며 지부장다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상대가 얼마나 강하든 끝까지 싸우는 것이 그의 이미지에 맞았다. 중도에 포기하는 것은 절대 불가했다.이것에 바로 허원 지부의 태도이고, 무림 연맹 일원으로서의 태도이다. 상대가 누구든 굽힐 수 없다.이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라면 전부 심주환에게 사정없이 혼났다. 심한 경우 사지를 부러뜨리는 등의 체벌도 서슴지 않았다.심주환은 이래야만 사람들이 정신 차리고,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더 용감하게 대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금의 허원 지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시간이 길어지자 아무도 허원 지부에 대들지 못했다. 그들이 틀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틀려도 옳다고 해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지금이 되어서야 심주환은 자신도 그다지 용감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용기는 약한 상대에게서 왔다.하도 오랫동안 강한 상대를 만나지 못해 잠시 착각할 뻔했다. 진짜로 강한 사람 앞에서는 아무리 그라고 해도 비굴한 유전자가 그대로 드러났다.누구는 무릎을 꿇은 지 너무 오래되어서 일어나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는 일어선 지 너무 오래되어서 다시 꿇지 못했다. 물론 오늘과 같은 상황은 예외이다.오늘에야 심주환은 평소 그렇게 혐오하던 사람과 자신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한 사람 앞에서는 누구든지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게 된다. 정당하지 않은 대우를 받으면서도 반항하고 싶은 마음 하나 없었다.이런 느낌은 아
염무현은 언제나 숨김없는 사람이다. 그가 한 일이라면 숨길 필요도 없었다.“이유를 알고 싶으면 직접 찾아봐. 말하기도 귀찮고, 너희들에게는 내 설명을 들을 자격이 없으니까.”이제는 이런 말을 듣고서도 발끈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기나 했다.사건의 자초지종을 알아보지도 않고 집법팀을 보낸 건 그들이다. 그러니 염무현이 이렇게 말하는 것도 당연했다.이제는 심주환마저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이런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는 잘못을 뉘우쳤다. 그래서 최대한 자세를 낮췄다.물론 속으로 억울한 것은 있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길 수 없다면 견딜 수밖에...“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하나.”염무현의 차가운 눈빛에는 살기가 드리워졌다.“복수는 꿈도 꾸지 마. 특히 내 주변 사람한테.”주변 온도는 빠르게 내려갔다. 잠깐 사이에 냉장실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다음에는 오늘처럼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야. 입 아프게 말하지도 않아, 그냥 죽여버리고 말지.”염무현의 눈빛은 심주환에게 향했다.심주환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심장은 털썩 내려앉았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너무나도 무서운 눈빛이다. 지부장으로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다지만 그래도 감당할 수 없는 눈빛이었다.이 순간 그는 자신이 완전히 틀렸음을 깨달았다. 틀려도 단단히 틀렸다.염무현의 눈빛 하나로 그는 지옥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사신은 바로 곁에 서서 그의 목숨을 거둘 준비를 하고 있었다.등골이 오싹했던 심주환은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벌벌 떨었다.“오늘부터 내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다 무림 연맹에 책임을 물을 거야.”사람들은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억지이기 때문이다.부성민의 말로 추측하건대 염무현에게는 적이 아주 많았다. 그들은 얼마든지 염무현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까지 막는 건 불가능했다.더 이상 참지 못한 심주환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건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요.”염무현은 차가운 표정
어찌 됐든 그들은 무림 연맹 지부의 일원이다. 이런 서러움은 한 번도 당한 적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높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그들은 가만히 당하고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리 압도적인 상대 앞에서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그들의 뒤에는 아직 무림 연맹 본부가 있다.“주인님, 이제 어떡할까?”백희연은 씨익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내가 보기에 은혜 갚을 줄 모르는 이런 녀석들은 살려 둘 필요 없어. 살려둬봤자 쌀만 낭비한다니까?”상대가 너무 약한 탓에 그녀는 몸이 풀리기도 전에 그들을 제압해 버렸다. 기분이 풀리려면 아직 한참 모자랐다.“어쩔 수 없군. 전부 죽여버리자.”염무현이 말을 마친 순간 백희연은 살벌한 표정을 지었다. 살기는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며 빠르게 몰려왔다.눈앞의 사람들은 그녀에게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녀의 시선도 시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숨 막히는 위압감에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서 지려버렸다. 심주환과 장로들도 견디지 못하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견딜 수 없는 공포는 빠르게 퍼져갔다.‘정말 무서운 여자야!’그들은 염무현의 눈빛이 충분히 무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토록 아름다운 여자가 더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이건 사신이야... 아니, 그냥 악마야!’“급하게 굴 것 없어. 넌 아직도 내 성격을 몰라? 난 무력보다는 덕으로 사람을 설득하는 걸 좋아해.”염무현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심주환 등은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이 할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죽이기 전에 할 말을 다 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영원히 자기 잘못을 몰라.”염무현의 말을 듣고 백희연은 눈을 희번덕 뒤집었다.“주인님은 성격도 좋네. 나라면 진작 죽여버리고 말았어!”‘이게 성격이 좋은 거야...?’두 사람의 대화에 심주환은 등은 화가 나다 못해 눈물이 다 나올 것만 같았다.“사건의 자초지종을 알아보지도 않고 집법팀을 보내왔던데, 내가 손을 쓴 건 당연한 일이지?”염무현은 무덤덤한 말투로 물었다. 심주환
펑...쿠릉...건물은 삽시에 무너졌다. 굉음이 지난 자리에는 먼지가 흩날렸다.사람들이 충격 속에서 정신 차리기도 전에 백희연이 다시 손을 썼다.화악!쿠릉!지면은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지진이라도 일어난 줄 알 것이다.그들은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약간 조용해졌다.먼지가 흩어지고 무림 연맹의 자랑으로 여기던 화려한 건물은 폐허가 되어버렸다. 이 모든 것이 백희연 혼자 이룬 것이다.“건물보다는 그래도 사람이 재미있는데. 건물은 피할 줄 모르잖아. 하나도 재미없어.”백희연은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 듯 입을 삐죽였다. 사람들은 창백한 안색으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심주환은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제는 옷까지 젖어 들어가는 것이 보일 지경이었다.이번 일에는 그의 책임이 막중했다. 앞으로 어떤 벌을 받게 될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무림 연맹의 체면을 대표하는 허원 지부가 이렇게 무너져 내렸으니 벌은 더 커지기만 할 것이다. 지부장의 자리도 오늘로써 끝이다.속으로 수치스러우면서도 그는 아무 말도 못 했다. 혹시라도 백희연의 주목을 받게 될까 봐서 말이다.염무현은 백희연의 작품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그는 먼저 잘했다는 듯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어서 말했다.“조금 전의 화제로 돌아가서 내 주변 사람은...”심주환은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입장을 밝혔다.“동의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전부 동의합니다! 최고의 고수를 보내 무현 님의 지인을 보호하겠습니다. 이상한 사람을 발견하면 즉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그들 눈앞의 두 사람은 악마와 다름없는 존재이다. 악마와 조건을 논해서야 되겠는가?심주환도 반항하지 못하면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대로 죽을 바에는 경호원 노릇을 하는 게 훨씬 나았다.오늘은 일단 살아남고 다른 일은 후에 다시 얘기해도 늦지 않았다. 본부에서 알게 된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고 그들 대신 나서
“그게 끝이에요?”심주환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폭발하면서 하려고 했던 말도 도로 삼켰다. 바라는 게 너무 많다는 말을 포함해서 말이다.이번만큼은 그도 참지 않고 반박할 생각이었다. 죽기 전의 마지막 발악인 셈이다. 그렇게라도 사람들에게 지부장이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염무현은 얼마든지 더 한 요구를 꺼낼 수 있었다. 사람이란 상대가 약해 보일수록 기고만장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상상과 많이 달랐다.허미영은 그에게도 낯선 이름이 아니다. 그녀는 한 때 무림 연맹의 여신으로 평가받았고, 아름다운 얼굴과 천부적인 재능으로 젊은 나이에 이름을 날렸다.그때 허미영을 좋아하는 사람은 무림 연맹 본부에서부터 해외까지 널렸다. 무림 연맹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이 수두룩했다.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녀만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우연히 만난 척하는 등 시답잖은 수를 썼다. 그녀가 그들을 얼마나 귀찮아했는지 모른다.심주환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그때 본부에서 일하던 그는 시간만 나면 허미영이 수련하는 모습을 엿봤다. 그녀와의 로맨틱한 만남을 상상하면서 말이다.그저 평범한 제자였던 그는 허미영에게 다가갈 기회가 없었다. 후에는 본부를 떠나게 되어서 더욱 기회가 없었다.이토록 많은 구애자를 두고 허미영은 얼마든지 괜찮은 사람 한 명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성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그녀는 스승과 선배 앞에서도 한결같이 차가운 모습이었다. 물론 그녀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허미영의 오빠 허현도는 무림 연맹의 현 맹주이다. 두 사람은 20살 정도 차이가 났는데, 허미영이 여신으로 평가받을 때 허현도는 이미 대리 맹주가 되었다.그는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정식 맹주가 되었고, 그렇게 맹주의 동생이 된 허미영은 세상에서 부러운 것이 없었다.‘이 자식 설마 우리 여신한테 관심이 있나? 그건... 또 아닌 것 같은데.’허미영은 나이가 적지 않았다. 심주환이 본부를 떠날 때 이미 20대였
가능만 하다면 그들은 평생 염무현과 백희연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지부장님, 지금이라도 본부장님께 알려야 할까요?”한 장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지부 로비가 초토화되고 전원이 흠씬 두들겨 맞았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그나마 몰래 처리하면 최소한 망신은 덜 당하기 마련이다.하지만 이렇게 큰 사건을 어찌 비밀로 할 수 있겠는가?만약 나중에 본부장님의 귀에 흘러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사실을 은폐하고 보고하지 않았다는 죄명까지 뒤집어써야 할 판이었다.심주환은 식은땀을 닦아내더니 두 가지 상황을 비교해 본 다음 그래도 보고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일뿐더러 가장 중요한 점은 염무현이 허미영을 만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반면, 허미영은 본부에 머물러 있었다.심주환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누군가 깜짝 놀란 듯 비명을 질렀다.“세상에, 얼른 와서 이거 봐요!”한 제자가 폐허 옆에 서서 뜨악한 얼굴로 아래를 가리켰다.사람들은 네발로 기어 일어나 쩔뚝거리며 다가갔다.지부 로비의 폐허 정중앙에 거대한 손바닥 자국이 남아 있었는데 깊이가 무려 3m가 넘었다.“헉!”“미친, 정녕 인간이 남겨 놓은 흔적이 맞아요?”“제 기억에 아마도 예쁘장한 여자의 걸작이라고 알고 있는데...”“의심 안 해도 돼요. 그걸 목격한 사람이 어디 한 둘뿐입니까? 대체 어떻게 했죠? 설령 대마스터라고 할지언정 불가능하지 않아요?”다들 서로만 멀뚱멀뚱 쳐다보았고 숨을 들이켜거나 침을 삼키는 소리만 연달아 울려 퍼졌다.눈앞의 거대한 구덩이를 보자 심주환은 머리털이 쭈뼛 서면서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갔다.그나마 사생결단을 안 하길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진짜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렸다면 전멸당했을지도 모른다.어차피 적수는 난공불락이니까.설령 애를 쓰고 발악한들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괜히 목숨만 잃는 꼴이 되었다.심주환은 속으로 맹승준 이 개자식이 대체 어떤 사람을 건드렸는지 알고 있기나 한지 물었다.워낙 성격이 건방진 탓에 두 사제가 언젠간
염무현은 백희연과 함께 무림 연맹 지부를 나서 도로 건너편으로 걸어갔다.문에 SJ그룹 로고가 박힌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차량과 운전기사는 모두 공혜리가 보냈는데 원래 직접 클리넌을 운전해서 픽업하겠다고 했다가 염무현에게 거절당했다.별일도 아닌데 한 그룹사의 대표가 직접 출동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야말로 모기 보고 칼 빼는 격이었다.“무현 씨, 타시죠.”운전기사는 센스 있게 차 문을 먼저 열어주었다.염무현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이내 자리에 앉자마자 백희연이 바짝 다가가며 물었다.“허미영은 누구야? 여자 이름 같은데?”“네 일이 아닌 건 알려고 하지 마.”염무현은 질색하며 옆으로 떨어졌다.백희연이 그의 팔을 덥석 붙잡더니 상체를 기울여 가슴을 찰싹 붙이고 애원했다.“싫어, 알려달란 말이야.”그녀는 궁금한 티를 팍팍 냈다.무려 청교의 여왕이 이런 사사로운 일에 관심을 가질 줄이야!“숨기기 급급한 모습을 보아하니 혹시 몰래 만나는 애인이라도 되는 거야? 우예원이랑 다른 여자에게 들킬까 봐 겁 나서 그래?”이내 염무현의 팔을 좌우로 흔들며 말을 이어갔다.“알려줘. 내가 입 하나는 무거워서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평소에 점잖아 보이는 주인님도 애인이 있다니, 게다가 대놓고 찾아오라고...”딱!염무현이 백희연에게 딱밤을 날리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그게 무슨 헛소리야, 대체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잘 들어, 허미영은 내 둘째 사모님이야.”백희연은 이마를 부여잡은 채 아픈 줄도 모르고 말했다.“둘째...? 사모님?”염무현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우리 사부가 파놓은 함정이라고.”“진작 얘기하지, 괜히 엉뚱한 생각만 했잖아.”그제야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 그녀는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염무현은 두 눈을 부릅떴다.“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남의 일을 왜 알려고 하지? 본인이 오해하고 남 탓하기는!”백희연은 이마를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주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