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영 씨,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디자인한 걸 보니, 영감을 받은 계기도 아주 기특별할 것 같은데, 공유해주실 수 있나요?”누군가 갑자기 묻자 서영은 미소를 지으며 우아하고 당당하게 얘기했다.“사실 이 작품은 제가 F국의 패션쇼에서 영감을 받은 겁니다. 그때 여성의 독립과 지성미를 주제로 다뤘거든요. 그래서 저는 대담하고 여성성을 나타낼 수 있는 컬러를 선택했어요. 그리고 재봉에도 신경 썼거든요, 소매와 넥라인을 보면...”서영의 설명이 끝나자 사람들은 모두 찬사의 눈길을 보냈다.“와, 한서영 씨가 디자인에 이렇게 조예가 남다를 줄 몰랐네요, 아이디어도 참 독특하고요. 어쩐지 작품이 훌륭하다 했네요. 혹시 앞으로 계약할 스튜디오는 결정해 두셨나요? 우리 스튜디오에 마침 한서영 씨 같은 훌륭한 인재가 필요하거든요.”“저희도 패션 사업을 하고 있거든요. 한서영 씨 같은 인재라면 졸업하고 나서 언제든 우리 회사에 오셔도 좋습니다.”사람들은 말하면서 서영에게 앞다투어 명함을 건넸다.서영은 싱긋 웃으며 명함을 받더니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고마워요.”사람들이 저를 이렇게 떠받들어 주니 서영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으쓱해서 도도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던 서영은 마침 하연과 눈이 마주쳤다.하연의 비아냥 섞인 눈을 본 순간 서영은 마음이 철렁 내려앉아 안절부절못하며 이내 눈을 피했다.“왜 그래? 기분 안 좋은 것 같은데?”하연의 이상함을 느낀 상혁이 관심 섞인 질문을 건넸다.“아니에요. 그냥 도둑질한 주제에 이렇게 당당할 수 있다는 게 참 놀라워서요.”상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서영의 작품을 보더니 공정한 관점으로 말했다.“이 작품 확실히 훌륭해. 사람들이 이렇게 칭찬하는 것도 이해되고. 한서영 씨도 소문처럼 무능한 건 아닌가 봐.”하연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저 작품 한서영이 그린 거 아니에요.”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안형준이 사람들의 눈빛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 옆에는 익숙한 얼
이수애는 말하면서 서영을 앞으로 밀었다.그러자 서영도 다급히 그 기회에 자기를 어필했다.“저 대학 졸업하면 교수님이 계신 대학원에 지원하려고 합니다. 교수님 밑에서 함께 디자인에 관해 공부하고 배우고 싶습니다.”안형준은 알았다는 듯 격려했다.“힘내요.”말을 마치고 떠나려는 안형준을 보자 이수애는 격동된 나머지 서영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서영아, 네가 뽑히는 건 문제없을 거야! 앞으로 꼭 노력해서 엄마 실망하게 하면 안 된다.”‘보아하니 안 교수님의 제자가 되는 건 이제 문제없겠어.’서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하연이 어두운 얼굴로 서영에게 다가왔다.그리고 서영이 무의식적으로 도망치려던 그때.“우리 예기해.”짤막한 한마디에 서영은 못이라도 박힌 듯 그대로 멈췄다.서영은 그 말을 무시하고 도망치려 했지만 발을 내딛기도 전에 하연이 그녀의 팔목을 낚아챘다.“왜? 찔려?”옆에 있던 이수애는 하연이 서영을 붙잡은 걸 보자 다급히 달려왔다.“최하연! 너 뭐 하는 거야? 당장 서영이 놓지 못해?”하연은 이수애를 무시하고 서영을 바라봤다.“마지막으로 기회 주는 거야. 얘기해.”주위 사람들은 두 사람의 모습에 모두 의아한 눈빛을 보내왔다.그걸 보자 서영은 깊은숨을 들이켜면서 한발 물러섰다.“엄마, 나 괜찮아. 우리 얘기하고 올게.”“그런데...”서영은 얼른 이수애를 안심시켰다.“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사람들 다 보는 데서 설마 나한테 무슨 짓이라고 하겠어?”그 말에 하연은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하지만 서영은 겉보기와 달리 불안한 가슴을 달래기 위해 옷깃을 꽉 그러쥐었다.홀을 나와 복도에 도착하자 하연은 발걸음을 멈췄다.“한서영, 방금 그 디자인 왜 너한테 있어?”그 말을 듣는 순간 서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올 게 왔구나.’‘하지만 원고도 내 손에 있는데 뭐 어쩔 건데? 이 디자인이 최하연 거라 해도 증명할 수는 없잖아.’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던 서영은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무슨 말 하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네.’“한서영, 기회 줄게. 네가 직접 저 작품 전시회에서 내려달라고 해. 안 그러면 후회하게 할 테니까.”서영은 하연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하연에게 원고도 없고 그렇다 할 증거도 없으니 쫄릴 것도 없었기에 오히려 당당하게 대답했다.“마음대로 하던가.”이 말을 끝으로 등을 곧게 펴고 도도하게 돌아선 서영은 문을 연 순간, 태현과 딱 맞닥뜨렸다.“태현 오빠! 여긴 어쩐 일이에요?”태현은 서영의 말을 무시한 채 멀리 떨어져 있는 하연에게 눈길을 주더니 무심코 물었다.“너 하연 씨랑 언제부터 이렇게 친했어?”서영은 우습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태현 오빠, 그게 무슨 소리예요. 친하긴요. 최하연은 최씨 가문 아가씨인데, 저 같은 사람이 쳐다나 볼 수 있겠어요?”분명 겸손한 내용이었지만 들을수록 괴상야릇했다.“아하.”태현은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서영도 곧바로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태현을 지나쳤다.서영이 떠나자 태현은 고개를 숙여 제 핸드폰을 바라봤다. 액정에는 약 5분 정도 녹음된 녹음 파일이 있었다.태현은 어두운 눈빛으로 저장 버튼을 눌러 녹음 파일을 저장하고는 먼저 하연에게 인사했다.“하연 씨, 오랜만이네요.”태현은 오늘 여느 때처럼 하연을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하연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약간 치켜 올리며 물었다.“안 교수님과는 무슨 사이예요?”태현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싱긋 미소 지었다.“성이 똑같다는 건 깊은 관계를 뜻하지 않겠어요? 왜요? 하연 씨도 우리 영감탱이 제자로 들어오게요? 하연 씨 이력이면 충분히 더 좋은 기회가 많을 텐데요.”하연은 이내 태현의 뜻을 알아차렸다.하지만 안형준과 안태현이 부자 사이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렇군요.”“참, 하연 씨.”태현은 다시 하연을 불러 세웠다. 물론 지난날 자기가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 걸 인정하지만, 진심이 장황한 말보다 더 효과가 있다는 것쯤은 태현도 알고
상혁의 말에 하연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아니에요, 제 건 제가 직접 돌려받을게요.”하연은 사람들 속에 서 있는 서영을 빤히 바라봤다.이 시각, 서영은 환한 표정으로 업계 거물 인사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심지어 멀찍이 서 있는 하연을 보더니 도발하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더 빳빳이 쳐들었다.“한서영 씨, 안 교수님이 잠시 오라고 하십니다.”그때, 직원 한 명이 서영한테 걸어와 깍듯하게 말했다.“그래요, 바로 갈게요.”서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곧장 직원을 따라 전시장을 떠났다.그 시각, 친구들과 서영의 작품에 대해 논의하고 있던 안형준은 서영을 보자 얼른 소개했다.“내 친구 주 대표가 서영 양의 디자인에 관심이 생겨 디자인 컨셉과 계기에 대해 얘기 나누고 싶다더군.”“네, 안 교수님.”서영은 이내 옆에 있는 주태식을 바라보며 술술 설명하기 시작했다.“이 작품 주요하게 현시대 여성들의 독립을 컨셉으로 잡았고, 독립적인 여성을 표현하는 옷을 디자인하기 위해 이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완성했고요.”서영의 설명을 듣고 있던 주태식은 감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디자인 컨셉이 아주 독특하고 새롭네요. 작품도 사람의 이목을 끌고. 하지만...”주태식은 하던 말을 잠깐 멈췄다.그 모습에 서영이 다급하게 물었다.“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주태식은 깊은 고민을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디자인은 별문제가 없지만 디자인 컨셉이 작품과는 조금 맞지 않는 것 같아서요. 제 이해가 틀렸는지는 모르겠지만.”그 말에 서영은 당황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주 대표님, 무슨 의도로 그런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지금 그 말씀은 제가 작품을 베끼기라도 했다는 겁니까?”주태식은 안형준의 체면을 봐서 고개를 젓더니 끝내 뜻을 굽혔다.“미안해요.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하지만 서영은 여전히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저를 의심한 사람 주 대표님이 처음은 아니에요.”이윽고 서영은 주위를
“이게 내가 디자인한 게 아니라면 증거를 내놔! 증거도 내놓지 못하면서 사람 비방하지 말고.”서영은 하연이 증거를 내놓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때문에 오히려 더 당당한 태도로 몰아붙였다. 그때 하연이 솔직하게 말했다.“확실히 실질적인 증거는 내놓을 수 없어.”“뭐야! 증거도 내놓지 못할 거면서 표절했다고 남을 모함한 거야?”“그러니까. 이건 그냥 모함이잖아.”“대단하신 최씨 가문 아가씨가 이런 사람일 줄이야.”“그건 너희들이 몰라서 그래. 한서영이 예전에 최하연 시누이였잖아. 한서영한테 쌓인 게 많아 복수한 걸지도 모르지.”“헐, 진짜 무서운 사람이네.”서영은 여론이 제 쪽으로 기울자 배짱이 더 두둑해졌다.‘대중들 눈이 얼마나 밝은데. 최하연 내가 오늘 너 웃으면서 왔다가 울면서 돌아가게 해줄게.’“하, 증거가 없으면 나한테 사과해. 그러면 너 용서해 줄 테니까.”하연은 입가에 경멸 섞인 미소를 지었다.“사과? 너한테 그럴 자격은 있고?”그 말을 들은 서영은 한순간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최하연, 이건 네가 자초한 거야. 날 탓하지 마.”“내가 직접적인 증거는 내놓지 못하는 건 맞아. 이 작품의 원고도 없고. 네가 원고마저 훔쳐 갔으니까.”그 말에 서영은 낯빛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하연에게 삿대질했다.“헛소리 지껄이지 마!”“헛소리인지 아닌지는 사실이 증명해 주겠지.”하연의 확신에 찬 말투에 사람들의 마음은 갈팡질팡했다.“설마 한서영이 정말 최하연 디자인 훔친 건 아닐까?”“그건 모르는 일이지.”“그런데 한서영이 저렇게 당당한 걸 봐서는 아닐 것 같은데.”하지만 사람들이 당당하다고 생각한 서영은 이미 당황하기 시작했다.“최하연, 헛소리 지껄이지 마. 내가 언제 네 디자인 훔쳤다고 그래?”“네가 디자인한 거라면 왜 디자인 컨셉도 제대로 설명 못 해? 이건 너무 이상하지 않아?”“누가 그래? 내가 설명하지 못했다고? 아까 분명 말했는데!”그때 옆에 있던 주태식이 고개를 저으며 끼어들었다.“제가 볼 때, 이 작품의 컨
그때, 얼굴이 흙빛이 되어버린 서영이 인정하지 못한다는 듯 끼어들었다.“최하연,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증거 있어? 말만 하지 말고 증거를 내놔! 증거도 없으면서 사람 모함하지 말고!”서영은 찔리는 구석이 있었지만 여전히 당당한 태도로 밀어붙이며 주변에서 의지할 사람을 찾았다.그러다 사람들 속에 있는 서준을 발견하고는 지푸라기라도 발견한 것처럼 서준한테 달려갔다.“오빠! 오빠 전처가 글쎄 나를 모함하는 거 있지! 분명 지난 일에 앙심을 품고 나한테 복수하려는 걸 거야. 사람들 앞에서 내 앞길 망치려고.”서준은 서영에게 끌려 하연의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하연의 표정은 무덤덤하기만 했다.그 순간 서준은 왠지 모르게 하연이 분명 앞에 서 있지만 저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런 상황에서 서영이 정말 디자인을 훔친 것이 밝혀지면 앞으로 영영 디자이너로서 이 바닥에 발을 붙이지 못할 거다. 그러면 그동안 열심히 공부한 것도 모두 물 건너갈 거고, 앞길도 한순간에 망치게 된다.서영의 오빠로서 서준은 사실이 무엇이든 하연이 서영을 망치게 둘 수 없었다.“최하연, 소란 그만 피워. 아직도 모자라?”하연은 일순 잘못 들은 줄 알고 멍해 있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하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전달되지 않았다.“소란? 한 대표님 눈에 제가 소란 피우는 거로 보이나 보죠? 아니면 표절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건가?”그 말을 듣는 순간 서준의 표정은 차가워졌다.“서영이 디자인 표절했다는 건 뭔가 오해가 있을 거야.”역시 예상했던 대로 서준은 서영을 감쌌다. ‘역시 가족이라는 건가?’“한 대표님, 이 세상에 오해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저...”“최하연! 너 꼭 서영의 앞날을 망쳐야겠어?”“그렇다면 어떡할 건데? 내가 부처님도 아니고 왜 계속 내가 봐줘야 하지?”서준은 이런 상황에서 하연과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아 이내 어조를 누그러뜨렸다.“이 일은 그냥 넘어가자. 응?”하연은 이 상황이 웃음만 나왔다.‘진짜 웃기네.’
사람들이 하연을 닦달하자 서영은 으쓱한 듯 팔짱을 끼며 하연을 바라봤다.“사람들 말이 맞아. 최하연, 증거를 내놓지 않으면 나 신고할 거야.”서영은 핸드폰을 꺼내 흔들더니 전화할 것처럼 굴었다.서준이 옆에서 막으려 했지만 그게 서영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그때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태현이 제 호주머니 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미리 녹음했던 걸 들려주려는 듯 하연을 바라봤다.하지만 하연은 시종일관 침착한 태도로 마치 모든 게 손안에 있다는 듯 말했다.“한서영, 내가 정말 증거를 내놓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어떡하지? 난 항상 사전에 뭐든 준비해 놓는 습관이 있거든. 특히 내 작품에는 더더욱.”그 말을 듣는 순간 서영의 표정은 그대로 굳어버렸다.“뭐라고?”하연은 서영의 말을 무시한 채 사람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증거라면 있습니다. 바로 저 작품 속에.”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무슨 뜻이지? 그림은 특별한 거 없어 보이던데?”“그러니까. 그만 뜸 들이고 증거나 내놓으시죠?”“최하연 씨, 설마 그림에 워터마크라도 남겼단 말입니까?”하연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네. 만약 한서영 씨가 제 작품을 대충 모방했다면 선명하지 않았을 테지만, 선 하나 빼놓지 않고 똑같이 복제했거든요. 그래서 아주 선명합니다.”말을 마친 하연은 앞으로 걸어가 그림을 손에 쥐더니 그걸 거꾸로 돌려놓은 채로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여기 소매 부분 좀 보세요. 제가 디자인할 때 이곳에 표시를 남겨두는 습관이 있거든요. 여기 단추가 있는 부분에 CHY이라는 이니셜 보이시죠?”하연이 그렇게 말하고 난 뒤 다시 보자 확실히 CHY라는 이니셜이 눈에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물론 색상이 아주 연했지만 확실히 새겨져 있었다.그 순간, 진실이 뭔지 말하지 않아도 모두 판가름 났다.“헐, 진짜네! 어쩜 이니셜까지 똑같이 표절할 수 있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아무리 베껴도 그렇지 어쩜 이니셜까지 베껴? 정말 이것도 인재라면 인재야.”“아까 그렇게 억울
“안 교수님, 아닙니다.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제가 한순간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앞으로 절대 이런 일 없을 겁니다.”서영은 울며불며 애원했다.하지만 안형준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한서영 씨, 내 제자로 대학원에 지원할 생각이라면 미리 포기하세요. 실력이 된다 해도 인간 됨됨이가 안 되는 사람은 절대 합격시켜 주지 않을 테니까.”‘어떡해, 이제 끝이야!’안형준에게 대놓고 거절을 받은 순간 서영에게는 이제 막다른 길만 놓였다. 이 바닥이 넓은 것도 아닌데, 앞으로 디자인 업계에 남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한참 동안 멍해 있던 이수애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달려 나와 사정했다.“안 교수님, 서영이 순간 머리가 어떻게 됐나 봐요.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반드시 노력하는 모습 보여드릴 겁니다.”그때 주태식이 끼어들었다.“됨됨이도 안 된 사람은 아무리 성적이 좋아봤자 소용없어요. 다른 전공 알아봐요.”“안 돼요! 안 교수님,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잖아요. 서영은 아직 어린데, 이대로 인생 망칠 순 없어요!”이수애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애원했다.그걸 구경하고 있던 주위 사람들은 이수현 모녀에게 손가락질했고, 안형준은 아예 두 사람을 무시한 채 하연에게 걸어갔다.“하연 양이 디자이너 브랜드숍을 운영한다는 얘기는 진작 들었어요. B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그렇게 인기라던데. 오늘 보니 역시나 헛소문이 아니네요. 디자인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앞으로 함께 손잡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교수는 하연의 침착하고 태연한 모습이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태식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안 교수님!”심지어 이수애가 뭐라 말하려 했지만 안형준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이에 이수애는 화가 난 듯 발을 굴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곧이어 주위 사람들도 안형준과 함께 흩어졌지만 오늘 있은 일은 날개라도 달린 듯 B시의 디자인 업계에 소문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