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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석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형 어디 아픈가?

전에 건강 검진했을 때는 정상이었는데.

이현과 같은 침대를 쓰는 지유가 그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면 아마도...

석훈은 이현의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이현에게 인사하며 그가 입은 슬랙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현은 어딘가 이상한 석훈의 눈빛에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유 좀 봐달라고 했더니 나는 왜 그렇게 보는 거야?”

석훈은 시선을 거두고 어색하게 웃었다.

“별거 아니야. 아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형수님 만났는데 어디 나가던데? 기분도 별로 안 좋아 보이고.”

이현이 대답했다.

“그러다 돌아올 거야.”

“형 설마 형수님이랑 싸웠어?”

“여자가 심술부리는 건 정상이지.”

석훈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긴 어려워 소파에 앉는 걸 선택했다.

이현은 석훈이 앉는 걸 보고 이렇게 말했다.

“지유도 나갔으니 너도 가봐. 나는 너 필요 없어.”

“형, 나 지금 왔어. 벌써 쫓는 건 아니지 않아? 형제간의 우애를 얘기해 보는 것도 좋잖아.”

석훈은 고민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코를 만지며 웃었다.

“형수님이 화났다면 화난 이유가 있겠지. 부부 관계에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면 돼요. 그럼 사이도 자연스럽게 좋아지겠죠. 일단 자존심 내려놓고 병원에 가보는 게 어때요? 사이가 돈독해지면 형수님도 더는 형 얕잡아보지는 않겠죠.”

이를 들은 이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뭔가 이상한 석훈의 말에 이현은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봤다.

석훈은 이현의 눈빛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최대한 상처 주지 않으려고 돌려서 말했다.

“근데 그 원인만 있는 건 아니야. 부부 사이에 서로 배려도 해주고 그래야지. 근데 그쪽에 문제가 있는 거라면 좀 치료가 필요하지 않을까?”

“지유가 그래?”

이현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석훈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용기 내어 말했다.

“형수님이 형 몸 좀 잘 검사해 주라고 하던데?”

석훈이 약상자를 들고 다가오려 하자 이현이 바로 호통쳤다.

“꺼져!”

여씨 본가로 돌아온 지유는 짐을 챙겨 나가려 했다.

여진숙은 친구들과 화투를 치며 웃고 떠들었다. 그러면 빠질 수 없는게 아들과 며느리에 관한 화제였다.

하지만 여진숙은 지유를 꺼낼 때마다 싫은 티를 팍팍 냈고 다른 집 며느리와 비기기 일쑤였다. 다른 집 며느리는 집안도 좋고 인물도 훤하고 다 좋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유는 집안부터 내세울 게 없었다.

이런 말을 이미 귀에 딱지가 나도록 들은 지유라 이제 더는 상처받을 것도 없었다.

지유는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들의 화제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여진숙은 그런 지유를 힐끔 쳐다보더니 화투를 내려두고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얘, 너 거기 서.”

지유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세요?”

여진숙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잔소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너 점점 돈을 흥청망청 쓰더구나. 한 번에 현이 카드를 1억이나 긁어? 너 같은 애랑 결혼하면서 우리 집안이 얼마나 손해를 봤는데 생각 좀 하면서 살아. 어떤 집 며느리가 너처럼 돈을 써!”

상황을 모르는 지유는 이런 상황이 어이없었다.

“제가 언제 그렇게 많은 돈을 썼다고 그러세요?”

여씨 가문으로 시집오고 이현이 선물해 준 귀중품은 모두 상자에 넣어둔 채 꺼낸 적이 없었다.

지유는 한 번도 마음 편히 여씨 집안의 돈을 써보지 못했다.

다 그녀가 한푼 한푼 번 돈이었다

“모르는 척하기는, 봐봐.”

여진숙이 바락바락 성질을 내며 지유를 나무랐다.

“무슨 옷을 사는데 1억이나 썼어? 네가 그렇게 잘났어? 허구한 날 흥청망청할 줄만 알았지, 이 속도면 언젠간 우리 집 거덜 난다.”

은행에서 온 1억을 긁었다는 문자였다. 그것도 여성복이었다. 이에 지유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유는 최근에 쇼핑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여성복을 사러 갈 일도 없었다.

게다가 지유는 사치스럽게 옷을 사는데 1억이나 쓸 사람이 아니었다.

지유는 여진숙을 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쓴 거 아니에요.”

여진숙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

“네가 긁은 게 아니면 또 누가 있어? 1억이나 되는 돈을 귀신이 긁었다는 거야 뭐야?”

“저는 신용카드를 긁은 적이 없어요.”

“아직도 변명이야? 우리 집 신용카드를 긁을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것도 여성복인데. 내가 몰래 신용카드를 핸드폰에 연결하지 않았더라면 네가 나 몰래 얼마나 돈을 흥청망청 썼는지 몰랐을 거야. 솔직히 말해. 더 있지? 도대체 우리 집 돈을 얼마나 쓴 거야? 쓴 만큼 전부 뱉어내!”

여진숙은 우연히 카드 내역을 찾아보다가 이렇게 많은 돈이 나간 걸 보고 바로 지유를 의심했다.

지유는 자신이 아무리 여씨 집안으로 시집왔다 해도 여진숙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집도 결국 집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유는 트러블을 일으키기 싫었기에 당연히 선을 넘는 일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를 의심하니 지유도 점점 인내심을 잃어갔다.

“가서 한번 조사해 보세요. 무슨 일만 터지면 일단 저부터 찾지 말고.”

“너 이게 무슨 태도야? 네가 쓴 돈이 아니면 누가 있어. 너처럼 돈 좋아하는 애가 애초에 이현이 돈 보고...”

“그 돈 제가 쓴 거예요.”

순간 밖에서 이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집에 도착한 이현은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에 무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지유와 여진숙의 시선이 일제히 이현에게로 향했다. 여진숙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이렇게 많이 쏘아붙였는데 지유가 쓴 돈이 아니라니, 여진숙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현아, 네가 썼을 리가 없지. 다 여성복이던데? 설마 지유 감싸려고 그러는 거야?”

하지만 이현이 이렇게 말했다

“승아한테 쓴 돈이에요.”

이에 여진숙은 다시 할 말을 잃었고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지유의 안색이 점점 안 좋아졌다. 의심의 눈초리로 이현을 바라봤다.

옷 한 벌에 1억이라니, 정말 승아에게 쓰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역시 이현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승아였다.

지유는 입꼬리를 올리며 코웃음을 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위층으로 향했다.

여진숙은 이현이 승아에게 이렇게 많은 돈을 썼다는 건 관계가 한 단계 더 발전했으니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지유와도 곧 이혼할 것이다. 이에 기분이 좋아진 여진숙은 이렇게 말했다.

“이현아, 승아한테 쓴 돈이라니 하나도 아깝지 않네. 그냥 생각나서 물어본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이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빌려준 거예요.”

여진숙이 넋을 잃었다.

“빌려준 거라고?”

이현이 그런 여진숙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경고했다.

“그러니 엄마도 중간에서 헛다리 짚지 마요.”

기분이 좋아진 여진숙은 이현의 말에 표정이 삭 바뀌었다. 원래는 몇 마디 반박하려 했지만 이현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아 보여 그냥 입을 닫았다. 여진숙도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지유는 위층에서 짐을 정리했다. 이현의 말을 들은 지유는 한시라도 빨리 이 집에서 나가고 싶었다.

지유는 본인이 알아서 빠져주는 게 앞으로 쫓겨나는 것보다 좋다고 생각했다. 제 발로 나가면 꼴이 그렇게 비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도 분수는 있었다. 그렇게 여씨 집안의 돈을 쓸까 봐 걱정하는데 이현이 준 값비싼 액세서리와 다른 선물은 하나도 챙기지 않고 옷가지들만 챙겼다.

그렇게 대충 캐리어 하나를 정리해 냈다.

마침 이현이 걸어들어오더니 분주하게 짐을 정리하는 지유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뭐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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