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돌아온 민승현은 있는 힘껏 차를 걷어차더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분노를 표출했다.강민정은 그런 그의 모습에 감히 나서서 말리지 못하고 한참을 말없이 운전했다.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민승현이 했던 약속이 생각났는지 기대에 찬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오빠, 아까 이모한테 우리 사이 말하겠다고 했던 건…….”“아직 때가 아니야.”민승현은 화가 치밀어 머리에는 온통 권하윤을 어떻게 혼내줄지만 생각하고 있었기에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건성으로 대답했다.그 대답에 강민정은 속이 뒤틀렸지만 오히려 사려 깊은 표정을 지었다.“알겠어. 오빠랑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나 그런 거 신경 안 써.”하지만 민승현은 그녀의 고백에도 관심 없는 듯 “응”이라는 짤막한 대답만 할 뿐이었다.그의 건성건성 한 대답에 강민정은 권하윤이 더욱 미워났다. 그 재수 없는 년만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으면 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다행히 얼마 전 손에 넣은 그림을 생각하자 불안한 마음이 싹 가셨다. 그리고 할아버지 생신에 반드시 권하윤을 집에서 쫓아내겠다고 다짐했다.-강민정의 그런 생각을 모르고 있는 권하윤은 권희연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하고 있었다.“희연 언니, 늦은 시간에 옷 가져다 줘서 고마워.”권하윤이 말하는 건 그녀가 입고 있는 잠옷 치마였다.민승현을 속이기 위해 그녀는 집으로 오는 길에 권희연에게 미리 연락했고 그 덕이 이렇게 완벽한 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그때 권희연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네가 내 동생인데 네 부탁 들어주는 게 당연하지.”그 말에 권하윤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고처음으로 권씨 집안 넷째라는 신분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때 권희연이 갑자기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그런데 밤늦게 집에 안 가고 어디 갔었어?”“그게…….”권하윤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권희연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네가 곤란해하는 거 같으니까 안 물을게. 그런데
권하윤은 후자가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문태훈이 일부러 돈을 착취하기 위해 자신을 속였다고 말이다.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그녀는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었다.권하윤은 내내 걱정 가득한 마음으로 운전하다가 별원에 도착하기 바쁘게 이승우의 병실로 달려갔다.하지만 그녀가 도착한 병실에는 아무 사람도 없었다.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그녀는 겨우 오빠가 다른 병실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알았다.권하윤이 병실에 들어오자 이승우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환한 미소로 그녀를 반겼다.“윤이 왔어?”그는 권하윤에게 왜 이렇게 오랫동안 보러오지 않았는지 왜 이렇게 급히 찾아왔는지 묻지 않았다.그저 아주 오래전 화목하던 집에서 그녀를 맞이했듯이 여상스럽게 행동했다.오랜 치료 끝에 이승우 몸에 부착되었던 튜브들은 이제 거의 없어졌고 여전히 마른 편이었지만 예전의 잘생긴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게다가 그녀를 향해 미소 짓는 순간 마치 봄바람처럼 따뜻했다.“오빠.”권하윤은 그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며 손을 뻗으려다가 그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걱정됐는지 동작을 멈췄다.이승우는 그녀의 망설임을 눈치채고는 손을 활짝 펴고 미소 지었다.“오빠 지금 몸이 약해도 너 안아줄 힘은 있어.”2년 만에 느껴보는 이승우의 따뜻한 품이 그리웠는지 권하윤은 오랫동안 그의 품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이승우도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았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권하윤을 안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좋아했는데 커서도 그 습관은 버리지 못했다.그저 다 큰 남녀가 다정하게 포옹하고 있으면 안 되기에 가끔 권하윤에게 팔 혹은 다리를 내주어 베게 하고는 그녀가 얘기하는 학교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듣곤 했다.이승우는 한참이 지나서야 권하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말해 봐, 왜 이렇게 급하게 찾아왔어?”…….잠시 뒤, 이승우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러니까 문태훈을 만난 것도 모자라 그 자식이 너를 알아봤다고?”“지금은 괜찮아졌어. 일 모두 해결했거든. 그
“안다고 할 수는 없어. 그 여자 아버지 연주회 보러 자주 왔었거든. 대기실에서 아버지한테 꽃 선물하는 거 몇 번 본 적 있어.”권하윤은 눈살을 찌푸렸다.‘아버지의 연주회라면 나도 자주 갔었는데 그때 만나기라도 했나?’만약 민시영이 그녀가 이씨 집안 사람이란 걸 안다면…….별원에서 나온 뒤 권하윤은 수심에 차 있었다.문태훈이 한 말이 사실이라는 원인도 있었지만 민시영이 “낯이 익다”던 말이 자꾸 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캐물어도 이승우는 여전히 그때의 일을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보아하니 진실을 알려면 또 문태훈을 만날 수밖에 없겠군.’권하윤은 곧바로 문태훈을 만날 생각이었지만 별원을 나서는 순간 민시영의 연락받았다.민시영이 자기를 봤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 액정에 뜬 그의 이름을 보는 순간 권하윤은 저도모르게 경계심이 생겼다.전화가 몇 번 울리고 나서야 권하윤은 최대한 평온해 보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네, 시영 언니, 무슨 일이에요?”-반 시간 뒤 권하윤은 경성에 있는 한 고급 백화점에 도착했다.그녀가 도착하기 바쁘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민시영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여기예요, 여기.”하지만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인사에 화답하려고 손을 드는 순간 권하윤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민시영의 뒤에 지나치게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남자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서 있었기 때문이다.‘민도준?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어제 바로 민도준에게 원한을 샀던 터라 권하윤은 순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왔으면서 도망갈 수는 없는 터라 억지로 다가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시영 언니…….”그리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민도준의 의미심장한 눈빛과 마주치더니 마치 고장 난 인형처럼 한참을 삐걱대더니 어렵사리 한 마디를 토해냈다.“민 사장님도 오셨네요.”민도준은 고개를 숙이며 권하윤을 향해 씩 미소 지었다.“반갑네, 제수씨.”권하윤이 민도준의 눈빛에 어찌할 바를 몰라할
민시영이 뭔가 눈치챌까 봐 권하윤은 꼼짝도 못 한 채 서서 민도준이 이상한 짓을 하지 않기를 속으로 기도했다.그녀의 신경은 마치 활처럼 팽팽하게 당겨져 바람이 살짝 불어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에스컬레이터가 천천히 올라가 2층 바닥이 보이자 권하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바닥을 밟으려는 순간 등 위에서 갑자기 밀려오는 힘 때문에 몸을 비틀거렸다.민도준이 그녀를 앞질러 가더니 조금의 미안함도 없는 얼굴로 낮게 중얼거렸다.“동작이 너무 느려.”권하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민도준이 주물러댄 덕에 여전히 허리에서 느껴지는 아프고 간지러운 감각에 어느새 귓볼까지 빨개졌다.그걸 모르는 민시영은 그녀가 화가 난 줄 알고 되려 민도준에게 화를 냈다.“오빠는 어쩜 매너가 없어. 권하윤 씨 넘어질 뻔했잖아.”민도준은 그 말에 손을 펴며 진심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게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었다.그러던 그때 그는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여성 의류 매장을 보며 흥분한 눈빛을 하더니 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진지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제수씨, 나 제수씨한테 선물 한 번도 안 사준 거 같은데 저 매장 옷 괜찮아 보이네. 가서 입어 봐. 마음에 들면 내가 사줄게.”권하윤은 그의 말에 놀라 심장병이 걸릴 지경이었다. 때문에 당연히 그가 준다는 옷을 받을 리 없었고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괜찮아요, 오늘 할아버님 생신 선물 고른다고 하셨으니 저는…….”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민시영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에이, 오빠 너무 쪼잔하다. 한 벌밖에 안 사주려고 했어? 적어도 열댓 벌은 사줘야지. 내 것까지 대신 사주면 더 좋고.”웬일인지 오늘 유난히 대화가 잘 통하는 민도준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가서 골라.”그리고 권하윤이 거절할 새도 없이 민시영이 그녀를 밀며 안으로 들어갔다.“얼른 들어가요. 오늘 오빠 제대로 긁어먹자고요.”민시영이 잔뜩 흥이 난 모습을 보자 권하윤은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권하윤은 하마터면 화가 나서 까무러칠뻔했지만 큰 소리를 내지 못하는 터라 속으로 그 화를 가라앉힐 수밖에 없었다.‘이 사람이 뭐든 반드시 배로 갚는다는 거 왜 잊었지?’매번 민도준의 심기를 건드릴 때마다 배로 당하지 않을 때가 없다.때문에 권하윤은 이내 목소리를 낮추며 사과했다.“어제는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사과도 좀 성의를 보이면서 해야지.”“무슨 성의요?”민도준은 권하윤이 가슴을 막은 손을 빤히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뜻은 무엇보다도 명확했다.순순히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던 권하윤이 시간을 끄려고 머리를 굴릴 때 민도준이 갑자기 피팅룸의 벽을 “똑똑” 두드렸다.놀란 권하윤은 눈을 휘둥그레 똑 욕지거리를 목구멍으로 삼켰다.“왜 그래요?”아니나 다를까 민시영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다 갈아입었어요?”“아니요. 실수로 부딪쳤어요.”“어디 다친 거 아니죠?”“아니에요. 저…….”말을 반쯤 했을 때 민도준이 또 노크하려 하자 권하윤은 얼른 그의 손을 잡았다.거울에 비친 민도준은 그녀를 향해 악랄한 미소를 짓고 있었기에 권하윤은 할 수 없이 가슴을 막고 있던 손을 내렸다.고객이 옷의 디테일을 관할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인지 피팅룸의 불빛은 무척 밝았다.때문에 권하윤은 거울을 통해 자기 옷이 점점 흘러내리는 모습과 민도준의 손이 자기 몸에 닿는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 화면이 너무 수치스러워 권하윤은 눈을 감은 채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옆 칸에 있는 아무 일도 모르는 민시영이 하필이면 자꾸만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모두 골라요. 도준 오빠가 사준다고 할 때 사양할 필요 없어요.”“네.”권하윤은 짧은 한마디만 내뱉을 뿐 긴말을 하지 못했다.“사실 도준 오빠가 사람은 무서워 보여도 소문처럼 그렇게 무서운 사람은 아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하윤 씨도 알게 될 거예요.”권하윤은 입에 손가락을 문 채 말에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민도준은 그녀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하며 피팅룸에 걸려있는 옷중 민시영이 말했던 허리가 드러나는 옷을 집어 들었다.“이걸로 갈아입어 봐.”하지만 권하윤이 움직이지 않자 눈썹을 치켜세우며 낮게 협박했다.“아니면 이대로 나가고 싶어?”그러고는 자잘한 입맞춤이 권하윤의 어깨에 떨어졌다.“난 괜찮은데.”권하윤은 말문이 막혀 민도준을 째려보더니 그의 손에 있는 옷을 확 낚아채 몸에 걸쳤다.그 사이 민도준은 옆에 기대에 느긋하게 그녀를 쳐다보면서 때로는 손을 거들어 주기까지 했다.하지만 그녀를 희롱하려는 의도가 도와주려는 의도보다 훨씬 컸다.민시영의 말대로 그 옷은 권하윤의 몸매를 더욱 부각해 주어 잘 어울렸다.마침 허리 위쪽까지 오는 상의와 타이트한 치마 덕분에 새하얗고 가는 허리가 훤히 드러났다.그렇게 보일 듯 말 듯한 모습은 오히려 사람을 더욱 자극했다.민도준은 거침없이 그녀의 허리를 쳐다보며 헐렁한 상의 사이로 손을 넣어 손가락으로 그녀의 피부를 긁어대기까지 했다.“정말 가느네. 힘 주면 부러질 것처럼.”민도준의 장난기 섞인 손길에 권하윤은 욕지거리가 튀어나왔지만 꾹꾹 눌러 참으며 이를 악물고 억지 미소를 지었다.“다 봤어요? 실컷 봤으니 이제 방법 좀 생각하는 게 어때요? 제수씨랑 같이 피팅룸에 갇혀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게 좋지 않겠어요?”“응?”권하윤의 다급한 모습과 달리 민도준은 매우 여유로워 보였다.“이런 일은 하윤 씨가 나보다 경험이 더 많을 텐데.”말하는 도중 허리에 둘러 있던 손에 힘이 더욱 가해졌다.“어제 내 동생 달랠 때 잘하더구먼. 나까지 속아 넘어가게 했으니 공아름은 더 말할 것도 없겠네. 안 그래? 제수씨.”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한 말투에 권하윤은 민도준이 아직도 자신이 한 일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어쩔 수 없이 참을성 있게 먼저 그를 달래려 했지만 여전히 화가 나 있는 상태라 권하윤의 말에도 불평이 담겨 있었다.“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 전화를 끊었다고 진작 말해줬으면 저도 그렇게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도준 씨는 왜 아직도 안 돌아와?”다른 사람이라면 공아름은 기다리기는커녕 자신보다 늦게 도착했다는 것만으로도 아마 화를 냈을 거다.그런 그녀가 신분을 내려놓고 낮은 자세를 취하게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민도준밖에 없다.친구의 푸념에 민시영은 시계를 힐끗 보더니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러게 말이야. 너무 오래 안 돌아오네.”그녀는 이내 쇼핑 가이드를 힐끗거리며 물었다.“혹시 아까 본 남성분 언제 갔는지 알아요? 혹시 언제 돌아온다고 말은 안 했나요?”“네?”쇼핑 가이드는 피팅룸을 힐끗 쳐다보더니 딱딱하게 입을 열었다.“죄송합니다. 방금 창고에서 정리하느라 못 봤어요.”“저 사람한테 뭐 하러 물어봐.”공아름이 귀찮은 듯 끼어들었다.“민도준 씨가 한낱 쇼핑 가이드한테 그런 걸 말해주겠어?”남자의 이름을 듣는 순간 쇼핑 가이드는 순간 멍해졌다. 그리고 끝내 어디서 그 이름을 들었던지 생각해낸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함부로 지껄이지 않은 과거의 자신을 칭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전화해 볼게.”기다리다 못한 민시영은 끝내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민도준의 번호를 누르려던 순간 그의 문자를 받았다.“오빠가 안 돌아온대. 위층 레스토랑에서 기다리겠다고 쇼핑 끝나면 찾아오라는데?”“그럼 기다릴 거 뭐 있어. 얼른 가자.”공아름은 민시영의 말을 듣는 순간 바로 일어섰다.“그런데 권하윤 씨가 아직 안 나왔잖아. 조금만 더 기다리자.”“기다리긴 뭘 기다려? 그 여자도 손발이 달렸으니 알아서 오겠지.”권희연 때문에 권하윤에 대해서도 좋은 인상이 없었던 공아름은 민도준을 보고 싶은 마음에 민시영을 끌고 밖으로 향했다.갑자기 끌려가게 된 민시영은 다급하게 안쪽에 대고 소리쳤다.“하윤 씨, 우리 맨 위층에서 기다릴게요. 다 갈아입으면 찾아와요.”“네.”권하윤은 대충 대답하고는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자 문을 비스듬히 열고 살금살금 밖을 살폈다.민도준은 팔짱을 낀 채 옆에 기대어 서서
민도준에게 바로 속마음을 들켜버린 권하윤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공아름이 전에 권희연을 어떻게 대하는지 봤었던 기억이 순간 되살아났다. 사랑에 빠진 여자가 얼마나 민감한데 만약 그녀가 이상함이라도 눈치채는 순간 자기 최후가 비참할 거란 공포감이 휩쓸려 왔다.게다가 전에 자주 아버지의 연주회를 들으러 왔었던 민시영도 언제 그녀를 알아볼지 모를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기에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더군다나 비위를 맞추기 어려운 민도준까지 있으니 권하윤은 혼자 호랑이 굴에 들어간 토끼나 다름없었다.때문에 민도준이 안으로 들어가면 몰래 도망치려 했는데 그 계획까지 민도준에게 발각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권하윤은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무슨 그런 말을, 도망치다니요. 제가 어떻게 도망치겠어요.”민도준은 그녀의 말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그래, 안 그럴 것 같았어. 하윤 씨가 도망쳤다가 내가 화가 나서 아무 말이나 하면…… 그렇잖아. 그런 일은 하윤 씨도 안 하겠지.”노골적인 위협에 권하윤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그럼요. 그러니 먼저 들어가요. 저 곧 따라 들어갈 테니.”“응.”민도준은 만족한 듯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권하윤의 어깨를 잡은 채 그녀의 귓가에 소곤댔다.“자기야, 이따 봐.”“네.”억지 미소를 지으며 민도준을 떠나보낸 권하윤은 그가 시선에서 사라지는 순간 웃음이 사라졌다.‘상황 정말 개 같네!’-펜트하우스에 위치한 레스토랑은 야외에 있었고 자리마다 가림막이 놓여 있었다.이미 해가 저물어 네온사인이 밝아진 야경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민도준은 갑자기 나타난 공아름을 보고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민시영을 힐끗 스쳐봤다.“이 수법 이젠 질릴 때도 되지 않았나?”민시영은 일부러 모르쇠로 잡아뗐다.“무슨 소리야? 아까 아래층에서 만나서 내가 데려온 건데.”“하.”민도준은 피식 웃더니 담배 한 갑을 꺼내 입에 물더니 그제야 공아름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래요?”공아름은 민도준이 시선을 보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