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그와 사이가 좋았을 때 야근하는 직원을 챙긴다고 직접 도시락을 싸서 직원들에게 돌린 적 있었다. 그래서 직원들이 기억하는 유영은 온화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하지만 최근 도는 소문이 그들의 생각을 바꾸었다.사무실로 들어간 강이한은 짜증스럽게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유영과 마주 앉았다.커피잔을 쾅 소리 나게 테이블로 내려놓은 남자가 차갑게 말했다.“홍문동으로 들어가. 거기가 당신 집이야.”“나 아주 편하게 지내고 있어.”“여자 둘이서 20평도 안 되는 좁은 오피스텔에서 비집고 사는 게 편하다고?”남자가 차갑게 물었다.유영도 온기 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랬다.소은지가 사는 오피스텔은 그의 기준에서 크지 않았다.거실 하나 방 두 개 딸린 작은 오피스텔이었다.물론 큰 집에서 오래 지낸 사람들이 보기에 좁은 건 맞았다.유영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래. 당신을 만나고 내 삶의 질이 풍족해진 건 사실이야. 먹는 거 입는 거 사는 곳, 모두 최상을 누렸지.”“하지만 좁은 욕실에서 간단히 샤워하고 옷방도 따로 없는 침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아침은 간단히 샌드위치로 때우는 이런 생활이지만 자유롭고 만족해.”“뭐라?”“인정해. 당신이 사는 세상에는 모든 게 완벽하고 안일했지. 하지만 한번이라도 나한테 물어본 적 있어? 지금 사는 삶에 만족하냐고?”강이한은 침묵했다.“당신이 사랑하는 바깥의 애인을 위해 나한테 시망막을 기증하라고 하면 내가 얼마나 아파할지는 생각해 봤어? 아니면 당신은 나를 그저 당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거야?”강이한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살아온 시간에 대해서 그녀가 자신의 입장을 얘기한 건 처음이었다.유영이 계속해서 말했다.“당신하고 결혼하고 세강의 며느리로 살아온 3년이 내 인생에서는 가장 비참한 경험이었어. 당신은 나한테 풍족한 물질적 삶을 줬지만 당신 옆에 있는 난 사람들의 냉대를 받아야 했고 수많은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어.”“난 당신이 기르는 강아
지금 뭘 들은 거지?너무 화가 나서 환각이 들린 게 틀림없었다.그는 유영의 삶을 풍족하게 해주면서 만족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아니었다고 말한다.“젠장! 정말 미쳤네!”잘 달래서 홍문동으로 데리고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모든 게 틀어져 버렸다.아무리 생각해도 한지음 일 때문에 그녀가 성질을 부리는 게 틀림없었다.예전처럼 생각할 시간만 주면 알아서 다가와줄 줄 알았다.이제 이렇게 된 이상 더는 망막 기증에 관한 얘기를 쉽게 꺼낼 수 없었다.건물을 나오자 조민정이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객을 만나러 가는 길, 잠시 고민하던 유영이 말했다.“지금 하고 있는 일도 그 인간이 방해를 놓지 않을까요?”청하시에서 강이한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유영이 가장 잘 알았다.로펌의 최고 에이스인 소은지마저 퇴사를 시킬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막강했다.지금도 그들의 싸움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이러다가 새로 생긴 사무실마저 영향을 받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조민정이 말했다.“회장님도 그 부분을 걱정하셔서 유영 씨에게 주는 의뢰는 전부 회장님과 친분이 두터운 분들로만 선별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럼 그분들도 저와 외삼촌의 관계에 대해 안다는 얘기예요?”“그건 아니고 회장님이 직접 전화하셔서 잘 부탁한다고 미리 말씀하셨을 거예요.”유영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하지만 다른 걱정이 떠올랐다.최근 그녀와 정국진의 스캔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 상황에서 그런 연락을 받고 의뢰인이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기업과 기업 사이에 얽힌 것도 많고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강이한의 귀까지 들어간다고 봐야 했다.그렇게 된다면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다.일을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커다란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기분이었다.고객 미팅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그들은 그녀에게 디자인을 의뢰하기로 했다.그런데 다음 날 만나기로 예정된 고객은 만만치 않았다.청하시에서 가장 큰 건물 중 하나가 세강타워라는 강이한의
“들어보니 그렇네요.”유영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사무실의 명성을 알릴 수 있는 큰 계약이니 만큼, 그녀는 신뢰를 보여줘야 했다.그녀는 속으로 예상 질문을 복기하며 어떻게 대화를 끌어나갈지 집중해서 생각했다.엘리베이터를 나선 유영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감탄하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강이한의 회사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을만큼 큰 회사라는 것이 느껴졌다.“긴장 풀어요.”“네.”유영은 여전히 살짝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을 본 비서실 직원이 공손히 인사했다.“일단은 손님 접대실로 가셔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대표님은 지금 회의 들어가셨습니다.”“네.”두 사람은 함께 직원을 따라 접대실로 갔다.비서가 차를 내왔다. 그러는 모습조차 평소에 훈련을 받은 사람처럼 동작 하나하나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었다.대기업 출근 경험이 없는 유영이었지만 강이한의 회사에서 직원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은 있었다.어제 만났던 고객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분위기와 품위가 느껴졌다.잠시 후, 접대실 문이 열리고 정장을 입은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안경을 착용하고 머리는 왁스를 발라 깔끔하게 넘긴 모습으로 서늘하면서도 차분한 매력을 풍기는 남자였다.“문 비서님, 안녕하세요. 저는 로열 글로벌의 조민정입니다.”“대표님께서는 사무실로 가셨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죠.”“네.”자리에서 일어선 유영은 문 비서라는 사람을 따라 안으로 이동했다.남자의 걸음걸이는 차분하고 흔들림 없었다.저런 사람을 부하 직원으로 부린다는 건 대표의 취향도 깐깐하고 신중하다는 것을 의미했다.조금 풀렸던 긴장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문 비서가 가볍게 노크하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목소리가 참 매력적인 사람인 것 같았다.이게 박 대표에게 느낀 유영의 첫인상이었다.조민정이 말했다.“들어가시죠.”말을 마친 그녀가 걸음을 옮기려는데 문 비서가 불러세웠다.“이유영 씨만 들어오라고 하셨습니다.”당황한
유영은 길게 심호흡하고 남자와 시선을 마주하며 정중하게 말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오로라 스튜디오의 이유영이라고 합니다. 예약하고 대표님을 만나러 왔습니다.”그녀가 신분을 밝히자 남자의 깐깐한 시성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유영이 바짝 긴장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대… 대표님?”“아는 얼굴이군요.”유영은 뜻을 알 수 없는 그의 표정을 빤히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시군요.”그녀는 바짝 긴장한 채로 서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앉으시죠.”“네, 그래요.”유영이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소파로 다가가서 앉았다.자리에서 일어선 남자가 느긋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한눈에 봐도 190은 넘을 것 같은 훤칠한 신장에 흔들림 없는 걸음걸이는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보게 됐다.소파로 다가온 남자는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았다.유영은 준비한 포트폴리오를 남자에게 건넸다.“이건 전에 제가 그렸던 디자인 초안인데 한번 보시겠어요?”“내려놔요.”존대는 하고 있지만 뭔가 명령 어투가 담긴 말투에 저도 모르게 긴장하게 됐다.유영은 조용히 서류를 내려놓았다.어떻게 대화를 풀어가야 할지 준비한 멘트는 떠오르지 않고 등 뒤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그에게서 풍기는 강한 카리스마에 압도당한 느낌이었다.그녀가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남자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눈동자에 유영이 흠칫했다.남자가 입을 열었다.“기한은 3일입니다.”“네?”“15일에 동교 신도시 개발 입찰이 있습니다. 오늘은 11일이니까 늦어도 14일 전에는 디자인을 끝내주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유영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기회를 주겠다는 건가?비록 일정이 빠듯했지만 이 남자에게서 디자인 업무를 따냈다는 것 자체가 좋아할만한 일이었다.그녀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3일이면 시간이 촉박했다. 하지만 3일 안에 멋진 디자인으로 이 회사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유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우리한테 3일 준다고 했어요. 14일 퇴근하기 전까지 설계도를 마무리하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의뢰를 우리한테만 준 것 같지는 않았어요.”“그건 당연하겠죠. 동교 신도시 프로젝트면 청하 시장이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라고요. 우리만 믿고 일을 추진할 이유는 없어요.”오늘 미팅을 오기 전에 조민정은 이미 강성건설에 대해 충분한 조사를 진행했고 대략 어떤 의뢰를 맡게 될지 예측한 바가 있었다.하지만 느닷없이 동교 프로젝트를 내어줄 줄은 몰랐다.“많이 바빠질 것 같네요.”“네. 그래서 일단은 현장을 한번 가보고 싶어요.”유영이 말했다.어쨌든 건설 현장을 가봐야 대략적인 방향이 잡힐 것 같았다.동교로 이동하는 중에 유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진영숙, 그녀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지만 얼마 못가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본가의 전화기로 걸려온 전화였다.“받아봐요.”조민정이 말했다.“계속 이런 식으로 전화가 걸려오면 고객들의 전화를 받을 수 없어요.”유영은 그제야 자신은 이미 전직 주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챘다.이제 그녀는 업무 상으로도 연락을 많이 주고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어제 두 명의 고객을 만나본 뒤로 그쪽에서 세부 사항을 조율해야 한다며 벌써 네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그녀는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진 여사님께서 어쩐 일이시죠?”“뭐라? 진 여사?”새로운 호칭에 당황한 건 진영숙이었다.“아직 이혼도 하기 전인데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싫다는 거야, 뭐야? 그 아비 뻘 되는 남자가 그렇게도 좋아?”유영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녀는 싸늘한 말투로 대꾸했다.“세강과는 상관없는 일이죠. 바라던 바 아닌가요? 뭐가 그렇게 불만이세요?”“이혼한다고 하더라도 내 아들이 널 버린 게 되어야 해. 넌 먼저 이혼을 말할 자격이 없어.”“어쨌든 제가 먼저 이혼을 얘기했고 여사님께서 그게 불만이시라면 당장 소송을 철회할게요. 아드님한테 다시 소송을 제기하라고 설득해 보시겠어요?
그쪽에서 감정을 앞세워 그녀를 가해자로 몰고 간다면 그녀는 있는 사실을 토대로 반격할 것이다.“알겠어요. 제게 맡겨요.”조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정국진에게 자초지종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유영이 그들을 어떻게 상대할지 걱정스러웠는데 지금 보니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유영은 외부의 비난과 선동에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조민정은 조용히 핸드폰을 꺼냈다.‘폭력의 가해자, 세강의 안주인, 사과 거부. 권력자들의 갑질은 어디까지….’왜 진영숙이 유영을 본가로 불렀는지 기사를 보고 알 것 같았다.“정말 시끄럽게 떠들어대네.”유영이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제대로 반격하지 않으면 그들의 횡포는 점점 선을 넘을 것이다.유영은 주저하지 않고 정국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쯤 파리면 잠자는 시간일 테지만 그런 걸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수화기 너머로 자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래, 유영아.”“죄송해요. 주무시는데 깨웠죠?”유영이 미안한 어투로 말했다.비록 모든 걸 무시로 일관하기로 했지만 기사에 한번씩 오르락내리락할 때면 가슴이 옥죄어 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괜찮으니까 어서 말해봐.”급한 일이 아니면 이 시간에 전화할 일도 없다는 걸 알기에 정국진은 여전히 자상한 목소리로 달래주듯 말했다.유영은 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강이한이 악플러들과 합의해 줬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지음쪽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한지음 납치범들을 빨리 찾고 이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어요.”이 사건은 길게 끌수록 유영에게 불리했다.강이한이 이렇게 그녀를 공격하는 이유도 한지음이 두 다리와 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왜 이렇게 극단적인 방식으로 그녀를 몰아세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만큼 사랑에 눈이 멀었단 걸까?하지만 진짜 한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라면 절대 이런 이상한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래, 알았어. 내가 알아보마.”정국진이 말했다.그가 나서기로 한 이상 이 일은 별 차질 없이 마무리될
한지음이 강이한을 좋아한다는 건 뉴스를 통해 이미 확인된 사실이었다. 그랬다면 강이한을 위해서 희생하겠다는 거나 다름없었다.진영숙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왜 이런 기사가 나간 거야?”“이유영이 사과를 거부하고 있으니까.”강서희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진영숙은 다시 뒷목을 잡았다.그녀는 당장이라도 유영이 앞에 있었으면 머리카락이라도 쥐여뜯고 싶었다.“그런 악랄한 짓을 해놓고 망막을 기증해 줘도 모자랄 판에 사과를 거부해?”진영식이 다시 콧김을 내뿜으며 욕설을 뱉었다.대체 피해자가 용서해 준다는데 사과를 거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강서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계속 저렇게 나오면 한지음도 증거를 경찰에 넘기겠다고 했어.”“이런 망할 년!”진영숙이 발을 동동 굴렀다.이미 온갖 기사와 억측이 난무하는 상황에 세강의 이미지는 날로 추락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유영이 감옥에라도 간다면 세강에게도 큰 타격이 될 것이다.생각할수록 분했다.결국 진영숙은 다시 유영에게 전화를 걸었다.“본가로 와.”그녀는 다짜고짜 소리부터 질렀다.무슨 일이 있어도 유영이 사과하고 이 사건을 무마하고 싶은 마음이었다.시어머니라면 자다가도 벌벌 떨던 유영이 차갑게 대꾸했다.“바빠요.”“네가 바쁠 게 뭐가 있어? 너 우리 집에 시집온 뒤로 놀고 먹기만 했으면서 뭐가 그렇게 바빠? 어디서 거짓말이야?”하지만 전화는 끊어졌고 시끄러운 알림음만 들려올 뿐이었다.진영숙은 부잣집 사모님의 품위는 이미 포기했는지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바닥에 던져버렸다.“정말 날이 갈수록 건방져지는구나!”강서희는 씩씩거리는 진영숙을 더 부추겼다.“오빠도 문제야. 이혼하지 않을 거면 마누라 관리는 똑바로 했어야 할 거 아니야. 오빠가 데리고 가서 사과하면 다 끝날 일을 왜 여태 해결하지 못하고 질질 끄는 거야?”물론 강서희는 유영이 끝까지 사과는 하지 않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단지 이런 방식으로 유영과 강이한의 유대감을 끊어버리려는
그는 사람들에게 권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줄 생각이었다.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파헤쳐서 이득을 취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 따위는 없었다.“이미 주요 언론사에 언질을 주었습니다.”그의 일 처리 스타일을 알기에 조형욱은 뉴스를 보자마자 바로 언론사에 연락했다.핸드폰 진동음이 울리고 확인해 보니 본가의 전화번호였다.강이한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각 회사에 연락해서 이유영에게 일감을 주지 말라고 해. 어기는 회사는 우리와 척을 지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그녀가 이런 식으로 그에게서 멀어지려 한다면 그에게도 방법이 있었다.일을 해서 스스로 생활비를 벌겠다고?그렇다면 그 희망을 꺾어버릴 생각이었다.조형욱이 당황한 표정으로 상사를 바라보았다.사모님을 업계에서 매장시킬 의도란 말인가? 벌써부터 그들이 싸우는 장면이 떠올랐다.강이한이 보기에 유영은 확실히 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평소에도 자주 싸우기는 했지만 시간을 두고 냉각기를 거치면 오히려 다가와서 화해의 손길을 내민 쪽은 항상 유영이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여론에서 떠드는 그와 한지음의 관계를 그대로 믿어서인지 여자는 점점 더 도를 넘고 있었다.그는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자신을 떠나면 독립할 기회도 없다는 현실을 그녀에게 깨우쳐주고 싶었다.해외에서 그녀와 바람을 피운 그 남자를 해결하는 건 나중에 천천히 해도 될 일이고 그가 원하는 건 유영의 복귀였다.본가에서 끈질기게 전화를 걸어왔기에 강이한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인데요?”불쾌감이 잔뜩 드러나는 말투였다.진영숙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짜고짜 소리부터 질렀다.“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유영이 고년 때문에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어!”강이한이 말이 없자 진영숙은 계속해서 떠들어댔다.“당장 유영이 시켜서 한지음한테 사과하라고 해. 자신이 한 짓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과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이게 다 네가 걔를 너무 오냐오냐 해서 그래!”“대체 얼마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