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쪽에서 감정을 앞세워 그녀를 가해자로 몰고 간다면 그녀는 있는 사실을 토대로 반격할 것이다.“알겠어요. 제게 맡겨요.”조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정국진에게 자초지종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유영이 그들을 어떻게 상대할지 걱정스러웠는데 지금 보니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유영은 외부의 비난과 선동에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조민정은 조용히 핸드폰을 꺼냈다.‘폭력의 가해자, 세강의 안주인, 사과 거부. 권력자들의 갑질은 어디까지….’왜 진영숙이 유영을 본가로 불렀는지 기사를 보고 알 것 같았다.“정말 시끄럽게 떠들어대네.”유영이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제대로 반격하지 않으면 그들의 횡포는 점점 선을 넘을 것이다.유영은 주저하지 않고 정국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쯤 파리면 잠자는 시간일 테지만 그런 걸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수화기 너머로 자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래, 유영아.”“죄송해요. 주무시는데 깨웠죠?”유영이 미안한 어투로 말했다.비록 모든 걸 무시로 일관하기로 했지만 기사에 한번씩 오르락내리락할 때면 가슴이 옥죄어 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괜찮으니까 어서 말해봐.”급한 일이 아니면 이 시간에 전화할 일도 없다는 걸 알기에 정국진은 여전히 자상한 목소리로 달래주듯 말했다.유영은 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강이한이 악플러들과 합의해 줬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지음쪽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한지음 납치범들을 빨리 찾고 이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어요.”이 사건은 길게 끌수록 유영에게 불리했다.강이한이 이렇게 그녀를 공격하는 이유도 한지음이 두 다리와 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왜 이렇게 극단적인 방식으로 그녀를 몰아세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만큼 사랑에 눈이 멀었단 걸까?하지만 진짜 한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라면 절대 이런 이상한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래, 알았어. 내가 알아보마.”정국진이 말했다.그가 나서기로 한 이상 이 일은 별 차질 없이 마무리될
한지음이 강이한을 좋아한다는 건 뉴스를 통해 이미 확인된 사실이었다. 그랬다면 강이한을 위해서 희생하겠다는 거나 다름없었다.진영숙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왜 이런 기사가 나간 거야?”“이유영이 사과를 거부하고 있으니까.”강서희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진영숙은 다시 뒷목을 잡았다.그녀는 당장이라도 유영이 앞에 있었으면 머리카락이라도 쥐여뜯고 싶었다.“그런 악랄한 짓을 해놓고 망막을 기증해 줘도 모자랄 판에 사과를 거부해?”진영식이 다시 콧김을 내뿜으며 욕설을 뱉었다.대체 피해자가 용서해 준다는데 사과를 거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강서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계속 저렇게 나오면 한지음도 증거를 경찰에 넘기겠다고 했어.”“이런 망할 년!”진영숙이 발을 동동 굴렀다.이미 온갖 기사와 억측이 난무하는 상황에 세강의 이미지는 날로 추락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유영이 감옥에라도 간다면 세강에게도 큰 타격이 될 것이다.생각할수록 분했다.결국 진영숙은 다시 유영에게 전화를 걸었다.“본가로 와.”그녀는 다짜고짜 소리부터 질렀다.무슨 일이 있어도 유영이 사과하고 이 사건을 무마하고 싶은 마음이었다.시어머니라면 자다가도 벌벌 떨던 유영이 차갑게 대꾸했다.“바빠요.”“네가 바쁠 게 뭐가 있어? 너 우리 집에 시집온 뒤로 놀고 먹기만 했으면서 뭐가 그렇게 바빠? 어디서 거짓말이야?”하지만 전화는 끊어졌고 시끄러운 알림음만 들려올 뿐이었다.진영숙은 부잣집 사모님의 품위는 이미 포기했는지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바닥에 던져버렸다.“정말 날이 갈수록 건방져지는구나!”강서희는 씩씩거리는 진영숙을 더 부추겼다.“오빠도 문제야. 이혼하지 않을 거면 마누라 관리는 똑바로 했어야 할 거 아니야. 오빠가 데리고 가서 사과하면 다 끝날 일을 왜 여태 해결하지 못하고 질질 끄는 거야?”물론 강서희는 유영이 끝까지 사과는 하지 않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단지 이런 방식으로 유영과 강이한의 유대감을 끊어버리려는
그는 사람들에게 권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줄 생각이었다.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파헤쳐서 이득을 취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 따위는 없었다.“이미 주요 언론사에 언질을 주었습니다.”그의 일 처리 스타일을 알기에 조형욱은 뉴스를 보자마자 바로 언론사에 연락했다.핸드폰 진동음이 울리고 확인해 보니 본가의 전화번호였다.강이한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각 회사에 연락해서 이유영에게 일감을 주지 말라고 해. 어기는 회사는 우리와 척을 지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그녀가 이런 식으로 그에게서 멀어지려 한다면 그에게도 방법이 있었다.일을 해서 스스로 생활비를 벌겠다고?그렇다면 그 희망을 꺾어버릴 생각이었다.조형욱이 당황한 표정으로 상사를 바라보았다.사모님을 업계에서 매장시킬 의도란 말인가? 벌써부터 그들이 싸우는 장면이 떠올랐다.강이한이 보기에 유영은 확실히 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평소에도 자주 싸우기는 했지만 시간을 두고 냉각기를 거치면 오히려 다가와서 화해의 손길을 내민 쪽은 항상 유영이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여론에서 떠드는 그와 한지음의 관계를 그대로 믿어서인지 여자는 점점 더 도를 넘고 있었다.그는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자신을 떠나면 독립할 기회도 없다는 현실을 그녀에게 깨우쳐주고 싶었다.해외에서 그녀와 바람을 피운 그 남자를 해결하는 건 나중에 천천히 해도 될 일이고 그가 원하는 건 유영의 복귀였다.본가에서 끈질기게 전화를 걸어왔기에 강이한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인데요?”불쾌감이 잔뜩 드러나는 말투였다.진영숙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짜고짜 소리부터 질렀다.“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유영이 고년 때문에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어!”강이한이 말이 없자 진영숙은 계속해서 떠들어댔다.“당장 유영이 시켜서 한지음한테 사과하라고 해. 자신이 한 짓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과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이게 다 네가 걔를 너무 오냐오냐 해서 그래!”“대체 얼마나 오
계약 해지를 통보하더라도 디자인 도면을 보고 불만족한 상황에 해지해야 맞다. 하지만 아직 디자인 초안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해지를 통보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전화를 받은 담당자가 말했다.“죄송해요, 이유영 씨. 계약 당시에는 유영 씨가 세강의 사모님인 줄 모르고 계약했어요. 그렇게 높으신 분인 줄 알았으면 저희도 안 썼죠.”“일단 그쪽 입장은 잘 알겠습니다.”상대 측에서 그렇게까지 말을 했다는 건 강이한 쪽에서 뭔가 움직임이 있었다는 뜻이었다.처음부터 그녀가 일하는 것을 반대하더니 이제는 그녀와 함께 일하려는 회사까지 찾아가서 훼방을 놓았다.전화를 끊고 유영이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자 조민정이 그녀를 위로했다.“괜찮아요. 우리한테는 의뢰가 넘쳐나니까요.”자신감 넘치는 말에 유영은 그나마 위로를 받았다.강이한이 적극적으로 간섭하려고 나선다면 앞으로 고난이 예상될 텐데도 조민정은 오히려 그녀를 위로했다.그렇기 때문에 강성건설과의 계약은 무조건 따내야 했다. 그나마 강성건설은 세강과 세력이 비등비등하기에 그쪽의 협박이 먹히지 않을 것이다.규모가 작은 회사라면 강이한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지만 오늘 만난 박 대표란 사람은 그런 장난에 휘둘릴 사람 같지 않았다.“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요?”유영이 말이 없자 조민정이 물었다.“박 대표님은 누구 눈치 보면서 일하는 사람은 아니겠죠?”그녀는 우려했던 고민을 털어놓았다.조민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혹시 몰랐어요?”“뭐를요?”“박 대표님과 세강은 원래부터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그러니 이번 의뢰는 우리 실력만 보고 판단할 거예요.”예전에 강이한과 박 대표가 사이가 별로 안 좋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건 다행이네요.”상황이 확실해지자 유영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렇다면 남은 건 더 열심히 해서 전에 배운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라도 박 대표의 마음에 드는 설계 도면을 내놓는 일만 남았다.강성과 거래를 트게 된다면 다른 건
작은 사무실이지만 직원들 간의 소통도 좋았고 업무 분장도 확실해서 일하기가 훨씬 수월했다.한창 일에 몰두하고 있는데 유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까부터 계속 울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강이한이나 진영숙의 전화는 전부 끊어버렸다.그런데 이번에는 박 대표의 비서인 문 비서의 연락이었다.“네, 문 비서님.”“동교 신도시 주변 개발 기획안 혹시 필요해요?”“네, 주시면 좋죠.”유영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건축 디자이너에게는 주변 상황도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주변에 뭐가 서는지, 지리적 우세가 어떤 게 있는지 알면 그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그리기도 쉬워진다.“저 지금 아래층에 있어요.”“네? 제가 바로 내려갈게요.”전화를 끊은 뒤, 유영은 외투도 챙기지 않고 아래층으로 뛰었다.건물 앞에 한정판 롤스로이스 차량이 세워져 있었다. 임원까지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걸 보면 강성건설이 얼마나 강대한지 알 수 있었다.유영이 다가가자 문 비서가 차창을 내리더니 서류 봉투를 그녀에게 건넸다.“이건 이미 심사가 통과한 기획안입니다.”“감사합니다.”유영은 공손하게 받아서 보물처럼 서류를 품에 안았다.일반인은 가질 수 없는 고급 정보였기에 그만큼 이 프로젝트에 목숨을 건 유영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다.이런 고급 정보를 가지고도 만족스러운 디자인을 내놓지 못한다면 그건 그녀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고 깔끔히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조심히 가세요. 나중에 시간 되실 때 제가 밥 한끼 사드릴게요.”솔직히 지금 심정이라면 당장 커피라도 대접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유영에게는 시간이 촉박했다.차가 출발 시동을 걸자 차창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박 대표님이?’한편, 건물 밖으로 나오던 강이한은 박연준의 차량과 가까이 서 있는 유영을 보자 순식간에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그는 성큼성큼 그쪽으로 다가갔다.뒤돌아서던 유영은 마주 오는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히고 사과했다.“죄송합니다.”강이한이 그녀의 팔목을 붙잡았다.고개를 든
잡힌 손목이 아파왔지만 유영은 더 이상 발버둥치지 않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거기에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뭐야?”남자의 동공이 확 수축되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알잖아. 난 절대 이혼에 동의하지 않을 거란 거.”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그 뜻인즉, 알면 순순히 항복하고 집으로 돌아오라는 뜻이었다.전에는 강이한이 조금만 강압적으로 나오면 유영은 한발 양보했는데 지금은 전과 달랐다.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말했다.“다른 여자 눈 뜨게 해준다고 나한테 망막을 내놓으라는 남자한테 내가 왜 돌아가야 하지?”강이한은 숨이 막혔다.그와 한지음의 관계는 지금 시한폭탄과도 같았다.그가 유영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마다 그 관계가 발목을 잡았다.그는 고집스러운 눈빛을 한 여자를 실망스럽게 바라보며 그녀에 대한 여론의 평판을 떠올렸다.예전에는 그녀에게 기울었던 우호 여론도 현재는 한지음에게로 기울고 있었다.“그거 알아? 전 청하시가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이러다가 당신 이 도시에서 살아남지 못할 거야.”그의 보호막이 사라진다면 그녀의 처지는 더욱 가시밭길이 될 것이 분명했다.심지어 소은지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었다.유영이 말했다.“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청하시에 미련이 남은 건 없으니까.”그녀가 청하시에 자리를 잡고 살았던 이유는 강이한 때문이었다.지금 이 도시에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도 이혼 문제를 깨끗하게 정리하기 위해서였다.만약 그들이 정말로 갈라서게 될 날이 온다면 이 도시는 그녀에게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어딜 가든 이곳보다는 나을 테니까.물론 한지음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전에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좋아하는 남자를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그녀의 용기는 가상하지만 다른 사람을 짓밟으면서까지 올라가려 하는 건 괘씸했다.강이한이 얘기했던 것처럼 여론은 지금 폭풍의 소용돌이였다.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온 소은지는 문앞에 수북이 쌓여 있는 택배를 보고 유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지음도 그 말을 듣고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예쁨을 추구하지 않는 여자는 없다.눈가 피부에 뾰루지가 난 것을 보고만 있어도 짜증이 치미는데 잔소리 때문에 더 화가 났다.“대체 둘은 언제 이혼한대?”그녀와 강서희의 역할 분담은 매우 명확했다. 한지음은 병원에서 장님 행세를 하며 강이한의 죄책감을 자극하고 강서희는 여론과 감성팔이를 이용해서 유영을 끌어내리는 것이었다.원래 예상대로라면 강이한이 유영에게 실망하고 이혼이 일사천리로 진행해야 맞았다.하지만 지금 흘러가는 방향은 그들의 예상을 초월했다.밖에서 유영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그들 사이에도 심각한 감정의 곬이 생겨버렸지만 여전히 이혼한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계속 장님행세하고 싶지 않으면 유영 그 여자의 눈을 멀게 만들어. 그러면 힘들게 붕대 감고 있지 않아도 되잖아.”유영에게서 망막을 빼앗으라는 말이 나오자 그제야 한지음의 표정이 훨씬 편안해졌다.“알았어.”강이한은 이미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었으니 조금만 더 감정을 자극하면 될 것이다.모든 것이 순조롭다면.병원에만 있다 보니 소독약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와서 하루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강서희는 확신에 찬 한지음의 두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런데 넌 왜 그렇게 이유영을 미워하는 거야? 오빠랑 결혼한 뒤로 그 여자는 거의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아서 둘이 접점이 아예 없었을 텐데?”물론 강서희도 유영을 싫어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대 유영은 강이한의 아내로서 흠잡을 곳 하나 없었고 평소에 적을 만드는 성격도 아니었다.그런 사람이 어쩌다가 한지음의 미움을 받게 되었는지 궁금했다.질문을 듣자마자 한지음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녀는 증오로 번뜩이는 눈을 하고 대답했다.“그냥 미워. 피를 말려 죽이고 싶을 정도로.”그렇게 말하는 한지음의 표정은 보기 흉할 정도로 오싹하고 섬뜩했다.하지만 왜 그렇게 증오하게 되었는지,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한지음에게 있어 강서희는 괜찮은 거래 대상이었을 뿐
그러고 보면 강이한은 스캔들이 나기 전까지는 꽤 모범적인 남편이었던 것 같았다. 저녁에 중요한 미팅이 있지 않은 이상은 꼬박꼬박 집에 돌아왔고 술자리가 있다고 해도 밤 열한 시를 넘기지 않았다.그래서 유영도 그의 시간에 맞추다 보니 항상 열한 시 전에는 잠을 잤던 것 같았다.그러다가 갑자기 밤을 새우니 몸이 적응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삐걱거렸다.휴식실로 들어온 유영은 담요를 몸에 두르고 의자에 허리를 기댔다. 그녀의 옆으로 다가온 조민정이 넌지시 말했다.“소은지 씨네 집에서 빨리 나오는 게 좋겠어요.”“알아요.”조민정이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이미 소은지에게 신세를 많이 지고 있었고 그녀의 생활에도 엄중한 피해를 끼치게 되었다. 3개월 전에 바로 소은지네로 가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는데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저쪽에서 끈질기게 공격해올 줄은 몰랐다.강이한에게서 전화가 왔다.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남자의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직도 집에 안 들어갔어?”“돌아간다고 한 적도 없잖아.”“소은지가 언제까지 당신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아? 혼자서 그 많은 여론과 악플러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당장 집으로 들어가!”남자가 협박 조로 말했다.아마 소은지네 집으로 택배가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하는 얘기 같았다.유영은 피곤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3개월 전에 내가 경찰에 신고해서 그 사람들을 다 잡아넣었더니 그들과 합의를 보고 풀어준 사람이 당신이야. 지금 나랑 그런 얘기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아? 또 모든 게 내 탓이라고 우길 거야?”“이유영!”“시끄러워. 소리 그만 질러.”유영도 같이 짜증을 냈다.강이한이 그들을 풀어준 생각만 하면 치가 떨리고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정말 걱정해서 전화했을까?그건 아닐 것이다.“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닌 거 알잖아.”남자가 구슬리듯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얌전히 집으로 돌아가. 조 비서 그쪽으로 보낼게.”“나 지금 회사에서 야근 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