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한의 뒤를 따르던 조형욱도 그 모습을 보고 숨이 턱 막혀왔다.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옷에 묻었던 커피가 그녀의 하얀 원피스에 그대로 뚝뚝 떨어졌다.유영이 버럭 짜증을 냈다.“강이한, 당신 미쳤어?”“흡….”여자가 더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남자는 그대로 달려들어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부드러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강압적인 키스였다.그의 돌발행동에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유영은 입술에서 피비린내가 확 느껴졌다.그녀는 필사적으로 밀어냈지만 남자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강이한은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 속삭였다.“유영아, 그만 고집을 피워. 응?”매번 그녀가 화를 낼 때면 시간을 두었다가 다가와서 좋은 말로 달래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그리고 그녀 역시 이런 방식을 좋아했다.매번 그가 이렇게 목소리를 깔고 다정하게 말해줄 때면 그녀는 서운한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었다.그의 가족들의 냉대와 무시에도 강이한만 자신을 사랑해 주면 모든 걸 참아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유영은 날이 잔뜩 선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말해. 또 뭐 때문에 온 거야?”화해?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여론이 이끄는 대로 한지음의 말만 믿고 그녀를 몰아세웠는데 화해가 가능할 리 없었다.어차피 지금 그가 원하는 건 그녀의 타협이었다.“일단 나가자.”강이한이 그녀의 손을 잡고 커피숍을 나갔다.유영은 손길을 뿌리치려 했지만 남자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기에 어쩌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의 차에 타고 있었다.그들을 태운 차는 청하 병원으로 와서 멈췄다.유영의 마음도 차갑게 식었다.아직도 포기를 못한 건가?“강이한, 대체 날 뭐로 생각한 거야?”그렇게 싫다고 했는데 또 억지로 여기까지 끌고 온다고?예전에는 그녀가 싫다고 한 일을 이렇게까지 강요한 적 없었다.유영은 미친 사람을 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일단 나랑 들어가자.”강이한도 싸우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
그런데 유영이 그 난리를 쳐대는데도 강이한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오히려 강서희가 인내심을 잃어버렸다.한지음이 말했다.“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너랑 네 엄마 쪽에서 압력을 넣는 것만으로 부족한 것 같은데?”“그게 무슨 뜻이야?”“그냥 그렇다고.”한지음이 시큰둥하게 대꾸했다.그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던 강서희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한지음, 네 위치를 잘 기억했으면 해. 이번 일 끝나면 넌 해외로 떠나는 거야. 주기로 한 돈은 섭섭지 않게 챙겨줄 거야. 하지만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아.”협박의 의미가 다분한 말이었다.한지음의 얼굴색이 싸늘하게 굳었다.그녀는 바로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화제를 돌렸다.“유영을 제거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거야?”“그건 네 알 바 아니고. 나한테도 다 생각이 있어.”말을 마친 강서희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핸드폰을 내려놓은 한지음의 얼굴이 싸늘하게 빛났다.네가 그렇게 잘났어?세강의 양녀 주제에 어차피 유영과 그녀가 다 사라져도 강서희와 강이한 사이는 불가능했다.진영숙이 유영과 한지음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듯이, 콧대 높은 재벌 집안은 양녀와 아들의 결합을 두고두고 반대할 것이다.“내가 돈이나 받자고 이 난리를 부리는 줄 알아? 잘난 척하긴!”한지음은 생각할수록 강서희가 가소롭고 괘씸했다.그녀는 욕실 가운을 내팽개친 뒤, 젖은 머리를 뒤로 넘겼다.의사가 말한 것처럼 심각한 상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청순하고 요물 같은 얼굴이 거울에 비춰지고 있었다.한편, 엘리베이터를 나온 유영은 남자의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남자는 막무가내로 그녀를 잡고 안으로 끌었다.유영이 말했다.“이렇게 억지로 끌고 오면 내가 사과할 줄 알았어? 꿈 깨!”“일단 한지음 상태를 보고 다시 얘기해!”강이한은 그녀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대신, 말을 바꿨다.한지음이 병원에 실려온 뒤로 유영은 한 번도 그녀의 상태를 제대로 본 적 없었다.그래서 그는 그녀가 상대의 지금 상황을 보
그녀는 이 남자와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다.강이한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하필 이런 중요한 순간에 이혼 얘기를 또 꺼낼 줄은 몰랐다.유영은 그에게 도발적인 시선을 보냈다.이미 그에 대한 기대나 마음은 접은지 오래지만 남자의 선택이 궁금해졌다.“사과할게. 당신이 이혼만 해준다면.”이혼과 사과,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뜻이었다.강이한은 한참이나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미친 사람처럼 실소를 터뜨렸다.유영이 물었다.“웃겨?”“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정말 어떤 짓도 할 수 있다는 거구나. 내가 그렇게 싫어?”“당신과 한지음이 붙어먹은 순간부터 이런 날이 올 걸 예상했어야지. 대체 왜 이렇게 나한테 집착하는 거야?”집착?그녀에게는 이게 단순히 집착으로 보였던 걸까?보내기 싫은 그의 마음을 그녀는 집착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니!강이한은 숨을 가다듬고 유영을 노려보다가 차갑게 말했다.“사과해.”유영의 마음도 차갑게 식어갔다.이미 그에게 실망한지 오래지만 이런 모습을 직접 마주하자 여전히 지옥에 던져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그래.”한참이 지난 뒤에야 유영은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그녀는 그대로 뒤돌아서 한지음의 병실을 향해 다가갔다.강이한도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한 마음을 삼켰다.전에는 그렇게 사과하래도 끝까지 안 한다며 버티다가 요구를 들어준다니까 저리도 쉽게 걸음을 내딛는 그녀가 야속했다.병실 문이 열리고 유영이 들어갔다.그녀는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는 한지음을 보자 걸음을 멈추고 강이한이 있는 쪽을 살폈다.그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에게로 향해 있었다.유영은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한지음의 눈동자와 마주했다.반짝이는 눈동자는 전혀 시력을 잃은 사람의 것 같지 않았다.유영은 숨이 꽉 막혔다.유영을 본 한지음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새벽 시간이라 긴장을 풀고 있었는데 유영이 연락도 없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그녀의 두 눈에 증오가 용솟음치더니 유영이 보는 앞에서 붕대를 가져다가 두 눈을 가
전에도 한지음을 의심하긴 했지만 진실을 마주한 순간 온몸이 오싹하고 떨려왔다.추측과 직접 진실을 마주한 느낌은 달랐다.그녀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강이한은 그녀가 미동도 없자 싸늘하게 식은 눈초리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이유영!”이를 갈며 깊은 분노를 드러낸 목소리에 유영이 말했다.“강이한, 당신은 눈이 멀었구나.”그랬다.지난 생에도 남자가 눈이 멀어 진실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같은 상황을 겪고 있으니 더 진절머리가 났다.반면 강이한은 그녀가 반응이 없자 한지음을 안은 채, 밖으로 달려갔다.“잠깐만.”유영이 나가는 남자의 앞을 가로막았다.그의 품에 안긴 채, 그의 옷섶을 꽉 움켜쥔 한지음의 모습에 유영은 치가 떨렸다.강이한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유영은 웃고 있었다. 비웃음이 가득 담긴 눈빛에 그 역시 흠칫하며 착잡한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사모님 오셨어요? 대표님, 빨리 사모님한테 가봐요. 저는 괜찮아요.”한지음은 그의 옷섶을 꽉 그러쥔 채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모습을 보고 있는 유영은 구역질이 치밀었다.“약 좀 가지고 올게.”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강이한의 시선은 유영을 향해 있었다.한지음이 고집스럽게 말했다.“저 정말 괜찮아요.”고개를 돌린 그녀의 입가에 비릿하게 지어진 그 미소를 유영은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승자의 미소였다.유영은 손을 뻗어 두 눈을 가리고 있는 붕대를 벗겨내려 했지만 강이한은 뒤돌아서 그 손길을 떨쳐냈다.“대체 왜 이러는 거야!”남자가 분노한 고함을 질렀다.회귀한 뒤로 모든 걸 냉철하게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유영마저 한지음의 이런 기행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다.거대한 충격에 그녀는 이성을 잃었고 강이한을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저 여자 연기하는 거야! 두 눈이 멀쩡하다고!”분노와 절규가 섞인 목소리였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이 모든 게 전부 다 가짜라는 생각만 꽉 들어차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그랬으면서 지난 생에는 왜
유영은 고개를 돌리고 강이한과 그의 품에 안긴 한지음을 바라보았다. 한지음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품에 깊숙이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강이한도 당황했는지 자신의 손과 유영을 번갈아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유영이 실망한 목소리로 물었다.“이게 대체 몇 번째야?”남자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은 점점 막나가는구나.”“하!”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내를 막대하던 그의 아버지가 떠올랐다.강씨 가문에서 여자의 지위란 가장 하찮은 것이었다.남자 앞에서 여자는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전에는 강이한은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둘의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강이한도 가장 권위적인 위치에서 모든 걸 그녀의 탓으로 돌렸다.”강이한, 당신 정말 역겨워.”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병원을 나섰다.이게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남자가 한지음 때문에 그녀에게 손찌검한 횟수.실망?아마 이 관계에서 가장 큰 실망감을 느낀 사람은 유영 본인이었다.“거기 서!”강이한이 뒤에서 그녀를 부르며 쫓아가려고 할 때, 한지음이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유영은 무슨 정신으로 병원을 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찬 밤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얇은 옷깃을 파고들었다.뼛속까지 시린 이 느낌보다 마음이 더 추웠다.추위는 그에게 느낀 배신감과 실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은지야.”언제 전화를 걸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핸드폰은 소은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유영은 흐느끼는 목소리로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수화기 너머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어디야?”“나 지금 병원.”“다쳤어?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지금 갈게!”말을 마친 소은지는 어디 병원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전화가 끊어진 순간 유영은 고개를 들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그녀는 억지로 참았다.하늘도 그녀의 조우에 슬픔을 느낀 건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병
소은지는 빗속에 아내를 홀로 버려두고 외간여자를 만나러 간 강이한을 용서할 수 없었다.유영이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은지야….”“이거 놔. 내가 그 여자 찢어버릴 거야.”“그럴 필요 없어.”“유영아, 넌 왜 이렇게 나약해빠졌어?”‘내가 나약하다고? 그래. 전생에는 그랬었지….’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단지 그들과 똑 같은 사람이 되기는 싫었다.“의사 좀 만나서 검진을 받아야겠어.”“너 다쳤어?”“응.”유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소은지는 또 한번 분노에 치를 떨었다.하지만 유영은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강이한은 한지음을 병실에 안치한 뒤, 유영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핸드폰은 이미 꺼진 상태였다.밖으로 나와보니 소은지가 온몸이 홀딱 젖은 유영을 부축해서 차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그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아팠다.하지만 병실에서 보였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자 눈빛은 다시 차가워졌다.소은지는 유영을 데리고 다른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았다.아까는 밖이라서 제대로 안 보였는데 유영의 얼굴에는 시뻘건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그 망할 년 때문에 널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유영은 눈을 감았다.지금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이게 몇 번째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데려다줄게.”처치가 끝나자 소은지가 말했다.유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무슨 일인데?”“강이한을 패배하게 만들 거야.”유영의 두 눈에는 증오가 가득했다.소은지는 그런 친구를 바라보며 섬뜩함을 느꼈다.친구가 이렇게까지 격렬한 감정을 내보인 건 흔치 않았다.얼마나 미웠으면 저런 표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고 있을까?병원을 나온 유영은 커피숍까지 데려다준다는 소은지의 제안을 거절했다.시간도 늦었고 소은지도 휴식이 필요할 터.평소였다면 절대 이 시간에 전화를 하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다.어쩌면 그 순간에 그녀도 기댈 곳이 필요했을 수도 있었다.커피숍으로 돌아오자 조민정과 팀원들
날이 밝고 작업을 끝낸 순간, 모두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보다 후련한 기색이 대부분이었다.일부는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그대로 뻗어버렸다.“정말 이대로 괜찮을까요?”조민정이 확신 없는 말투로 물었다.물론 이 거래가 실패한다고 다른 일을 못 받아올 건 아니지만 며칠을 밤새워 내놓은 설계도안이 퇴짜를 맞으면 꽤 뼈아픈 실패가 될 것이다.유영은 확신에 찬 어조로 고개를 끄덕였다.“통과할 거예요.”“그래요.”조민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트북을 닫고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며칠 밤을 새우다 보니 이제 카페인에 대한 면역이 생겨버려서 커피를 마셔도 피곤한 건 마찬가지였다.유영은 그 길로 강성건설을 찾아갔다.안내데스크 직원은 그녀의 부은 뺨을 보고 걱정스러운 어투로 물었다.“괜찮으세요?”유영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사실 비를 맞아서 그런지 온몸에서 열감이 느껴지고 머리가 어지러웠다.여직원이 시간을 확인하고는 그녀에게 말했다.“아직 좀 이른 시간인데 나가서 뭐라도 드시고 오시지 그러세요.”유영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통과를 해야 밥이 목안으로 넘어갈 것 같았다.여직원이 그녀에게 감기약 하나를 건넸다.“열이 좀 있는 것 같은데 약부터 드세요..”“감사해요.”유영은 이름도 모르는 직원의 친절에 저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을 다시 유심히 살폈다. 생판 모르는 남도 이렇게나 친절을 베푸는데 그녀와 강이한은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걸까?그 순간, 남자와 이혼해야겠다는 생각은 더 확실해졌다. 어젯밤만 떠올리면 머리에 피가 솟구쳤다.전에도 이럴 거라 대충 예상은 했었지만 한지음의 장님 행세가 연기였다는 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순간 받은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박연준이 회사에 도착했을 때, 유영은 로비 소파에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안내데스크 직원이 그를 발견하고 공손히 인사했다.“대표님, 나오셨어요?”“어떻게 된 거지?”남자가 싸늘한 눈빛으로 유영을 바라보며 물었다.박연준은 철두철미하고 강박증이 심한
‘기분이 안 좋을 때 더 까다로워질 텐데….’유영은 이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서류를 펼쳤다.“요청하신 대로 수정한 방안입니다. 한번 확인해 보세요.”박연준은 서류를 펼치고 대충 훑어보았다.그 모습을 보고 있는 유영은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켰다.뭔가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남자에게서 풍기는 강렬한 카리스마 때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퇴짜를 맞으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유영은 혼란스러웠다.“감기 걸렸어요?”갑작스러운 질문에 유영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네?”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잠시 당황한 그녀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찬바람을 맞았더니 그런 것 같네요.”남자는 말없이 다시 시선을 서류로 돌리고 한 장씩 뒤로 넘겼다.오기 전까지 자신만만했던 유영이었지만 점점 어두워지는 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불길한 예감부터 들었다.박연준에게 퇴짜를 맞게 된다면 아마 입찰 때 심사도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이대로 진행하죠. 잘했어요.”유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이대로 통과한 건가?“토… 통과인가요?”“또 수정하고 싶어요?”“아… 아니요!”더 이상의 수정은 사양하고 있었다.이미 며칠 사이에 십 년은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남자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아까까지 표정이 어둡던 남자가 웃고 있으니 유영은 더 불안했다.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큰 키 때문에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가요.”“어디를요?”어딜 같이 간다는 거지?“병원에 가요.”남자가 먼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유영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같이 일을 했지만 아직 남자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그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그가 강성건설 대표라는 것과 성이 박씨라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그런데 이름도 모르는 거래 업체 대표가 그녀를 병원에 데려다준다고?“상태가 많이 심각해 보이네요. 주사라도 맞지 않으면 오후에 있을 최종 심사에 참여하지 못할 것 같은데 이런 기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