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모든 챕터: 챕터 61 - 챕터 70
530 챕터
제61화
그녀가 원했던 것은 평범하지만 화목한 가정이었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나상준과 끝까지 가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렇다고 미련이 남지도 않았다.그것은 그녀가 이 관계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차우미는 이혼한 뒤에도 맞는 사람을 만나면 시도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어제 그녀는 여가현의 말을 듣고 밤새 생각해 보았다. 만약 온이샘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천천히 교제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선택이었다.만약 둘이 마음이 맞아서 결혼까지 갈 수 있다면 그것도 인연인 것이다.“잘 생각했어! 역시 내 친구야. 냉철하고 현명해!”여가현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엄지손가락을 내흔들었다. 차우미의 말을 들어보니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나상준만 떠올리면 왠지 복수의 쾌감도 느껴졌다.두 사람은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의사 사무실.나준우는 맞은편에 앉은 남자에게 차우미의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설명을 다 들은 나상준이 물었다.“바쁜 사람 갑자기 불러서 미안해.”나준우는 청주 대학병원의 에이스로서 아무나 부른다고 안평까지 외래 진료를 보지는 않는다.나준우가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마침 은사님도 만나고 난 오히려 좋아. 걱정 마.”말은 그렇게 해도 차우미가 다 나을 때까지 그가 여기 있어주기를 바란다는 건 알고 있었다.“곤란하면 나한테 얘기해. 다른 의사 알아볼 테니까.”“그래, 알았어.”용건을 끝낸 나상준은 별다른 이야기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나준우도 그와 함께 사무실을 나서며 물었다.“상희는 좀 어때?”“괜찮아.”나상준은 높낮이 없는 무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나준우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는 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온이샘이 떠올랐다.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다 같이 산책하러 나갔던 날 예은이 핸드폰에서 들려온 목소리도 아마 온이샘이었을 것이다.‘형도 이샘 형을 봤을 텐데….’“문제 생기면 바로 나한테 연락해.”엘리베이터에 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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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온이샘은 차우미의 부모님을 호텔까지 모셔다드린 뒤, 마트로 가서 먹을 것을 구매했다.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비용은 온이샘이 부담했다. 온이샘에 대한 차동수 부부의 호감은 날로 더해져 갔다.먹을 것을 사 들고 부모님과 함께 병원으로 갔는데 병원 앞에서 강서흔과 마주쳤다.성격이 쾌활한 강서흔은 차동수 부부를 보자마자 자기소개를 하며 친근하게 대했다.그렇게 그들 일행이 입원 병동으로 향하는 길에 강서흔은 온이샘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여가현 병실에 있는 거 확실하지?”여기 오기 전부터 몇 번이고 확인했던 질문이었기에 온이샘은 귀찮은 얼굴로 대꾸했다.“내가 병원을 나설 때는 병실에 있었어. 지금은 잘 모르겠고.”말은 그렇게 해도 여가현이 차우미를 혼자 병실에 두고 나갔을 리는 없었다.강서흔도 그걸 알기에 옷매무시를 정리하며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오늘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여자 마음을 돌려버릴 거야!”온이샘은 황당한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여가현은 차우미와 잠시 수다를 떠는 사이 벌써 회사에서 세 통의 연락을 받았다.차우미는 핸드폰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친구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우미야.”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보니 온이샘이 손에 쇼핑백을 한가득 들고 하선주 부부와 함께 병실로 들어서고 있었다.“엄마.”침대에서 일어선 차우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병실에 들어서는 남자에게 닿았다.검은색 정장을 쫙 빼입고 머리를 뒤로 넘긴 강서흔이 멋드러짐을 자랑하며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차우미는 저도 모르게 여가현의 눈치를 살폈다.여가현도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가 강서흔을 발견하고 표정이 굳었다.차우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둘을 번갈아 보았다.온이샘은 테이블에 먹을 것을 세팅한 뒤, 차동수 부부에게 다가가서 짐을 들어주었다.일부러 점수 따려고 하는 행동이 아닌, 원래 매너가 몸에 배긴 행동에 차동수 부부는 흐뭇한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모든 준비를 마친 뒤, 그는 침대머리에서 반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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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낙천적이고 어린애 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강서흔은 여가흔과 사귈 때에도 말다툼이 끊이지 않았다.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떠들썩해진 분위기 덕분에 하선주 부부도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전부 잊어버렸다.여가현은 오후에 볼일이 있다며 먼저 병실을 나갔다.그녀가 나가자 강서흔도 따라 나갔다.온이샘은 하선주 부부에게 호텔에 돌아가 쉬라며 병실을 자기가 지키겠다고 말했다.며칠 전이었어도 부부는 절대 동의하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흔쾌히 동의했다.차우미는 부모님의 바뀐 태도에도 전처럼 당황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여가현이 해준 말이 아니었다면 부모님이 온이샘을 마음에 들어 하신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이제는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우미야, 푹 쉬고 엄마랑 아빠는 내일 아침에 또 올게.”하선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 내 걱정은 말고 푹 쉬어.”부부는 온이샘이 있어 안심하고 쉬러 간다며 병실을 나갔다.온이샘은 부부를 배웅하고 돌아와서 침대머리에 앉았다.그는 시간을 확인한 뒤, 차우미를 위해 이불을 여며주며 부드럽게 말했다.“좀 자.”차우미는 오히려 온이샘이 걱정됐다.사고 직후부터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미안한 마음뿐이었다.“선배도 저기 간이침대에서 좀 자둬. 요 며칠 수고 많았어.”비록 그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지만 그를 대하는 차우미의 태도는 여전했다.온이샘은 미안해하는 그녀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너 먼저 자. 너 자면 나도 잘게.”차우미는 고집스러운 그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녀가 침대에 눕자 온이샘은 이불을 그녀의 목까지 덮어주었다.“몸을 따뜻하게 해야 감기 안 걸려. 손 다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이런 극진한 보살핌이 차우미는 고마우면서도 조금 부담이 됐다.“선배가 고생이 많네.”“고생은 무슨.”말을 마친 온이샘은 다시 의자로 돌아가서 그녀를 바라보았다.차우미의 맑은 눈동자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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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알았다니까.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엄마는 신경 꺼!”전화를 끊은 임상희는 짜증스럽게 핸드폰을 옆으로 던져버렸다.주혜민은 옆에서 그녀에게 과일을 챙겨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상희야, 엄마도 너 걱정해서 그러는 거야.”임상희는 주혜민이 건넨 귤을 입에 넣으며 시큰둥한 얼굴로 대꾸했다.“엄마가 날 걱정해? 그렇게 걱정했으면 벌써 날아왔겠지. 역시 나보다는 일이 중요한 거잖아!”임상희는 짜증이 잔뜩 난 상태였다.주혜민이 웃으며 말했다.“엄마 일이 그런 걸 어떡해. 상희가 좀 이해해 줘.”사실 문은혜는 귀국하는 티켓까지 구매했다가 비행기가 뜨기 직전에 임상희가 깨어났고 무사하다는 연락을 받고 항공편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지만 아직은 예민한 시기인 임상희에게 이 소식은 상처가 될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일밖에 모를 거면 결혼을 하지 말고 애를 낳지 말았어야지. 낳기만 하고 관심 한번 주지 않는 게 무슨 엄마야!”임상희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문은혜는 지리학자로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연구에 몰두했다. 임상희는 거의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다시피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예민하고 짜증이 많았다.초등학교에 금방 입학했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임상희의 성격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주혜민은 임상희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며 화제를 돌렸다.“됐어. 이 얘기는 그만하자. 참, 외삼촌이 너한테 별말 없었어?”“무슨 말?”임상희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물었다.주혜민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번에 널 구해준 사람 상준 씨 전부인이래.”“뭐라고?”임상희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반신반의했다.“외삼촌이 아무 얘기도 안 해줬나 보네.”“나도 몰랐는데 오늘 너 구해주신 분 직접 뵙고 인사드리러 갔다가 봤어.”“그 사람 손을 다쳤던데 그리 심각해 보이지는 않더라.”“네 엄마도 해외에서 오지 못하는 상황이고 난 엄마 대신 널 돌봐주기로 한 사람으로서 직접 만나 뵙고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갔었거든.”임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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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여가현은 저녁 시간에 한번 병실을 들렀다. 강서흔은 이번에 따라오지 않았는데 여가현의 표정을 보니 둘이 또 싸운 것 같았다.차우미는 어떻게 된 건지 궁금했지만 여가현의 표정을 보고 더 묻지 않기로 했다.그렇게 시간은 어느덧 흘러 밤중이 되었다. 아홉 시가 거의 다 되어갈 때쯤, 그녀는 여가현을 쉬라고 돌려보냈다.여가현은 내일 청주로 돌아가기로 했다. 로펌에 밀린 업무가 하도 많아서 더 이상 휴가를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여가현은 밤에 병실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때마침 업무 전화가 걸려 와서 어쩔 수 없이 호텔로 돌아가게 되었다.온이샘도 시간을 확인하고 차동수와 함께 호텔에 쉬러 갔다.그렇게 시끌벅적하던 병실이 조용해지고 병실에는 차우미와 하선주만 남게 되었다.하선주는 그제야 꾹 참고 있었던 질문을 꺼냈다.“우미야, 너랑 상준이 어떻게 이혼하게 된 건지 엄마한테 좀 말해볼래?”엄마인 하선주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딸을 바라보았다.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에 차우미는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주혜민 씨와 상준 씨는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어. 둘이 진짜 사귀던 사이었는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나랑 결혼하고 바람을 피운 적은 없어. 이건 내가 장담할 수 있어. 그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니까.”3년을 그와 함께 살다 보니 나상준이라는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둘은 자주 만나서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가정을 배신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가정교육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NS일가도 절대 그런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다.하선주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차우미가 더 숨기는 일이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지만 딸의 아픈 곳을 자꾸 헤집는 것 같아 더 질문하기 꺼려졌다.더 이야기를 나눠봐야 딸만 힘들어질 것 같았다. 3년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고생을 했을 딸을 생각하면 하선주는 후회도 되고 마음이 아팠다.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이 결혼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차우미는 눈시울이 붉어진 하선주를 보고 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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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곧 꺼지겠네. 그냥 다녀와야겠다. 너 필요한 거 없어? 음료수라도 사다 줄까?”차우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괜찮으니까 빨리 다녀와.”“그래. 빨리 갔다가 빨리 올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간호사 호출해.”“알아. 걱정 말고 다녀와.”손을 다친 것 외에 다른 곳은 괜찮았기에 하선주는 안심하고 슈퍼마켓으로 향했다.병실 문이 닫히고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차우미는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요 며칠 사이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꿈을 꾸는 것 같았다.오늘 차에서 내리기 전, 자신의 손을 잡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차우미는 붕대를 칭칭 감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벌써 열 시간 이상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그녀는 피식 웃고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별다른 일 없으면 모레가 퇴원하는 날이었다. 아마 퇴원한 뒤로는 그쪽과 다시 접점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낮에 많이 자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았다.차우미는 일어나서 복도를 좀 걷기로 하고 침대를 내렸다.똑똑!경쾌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차우미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들어오세요.”문이 열리고 머리에 붕대를 감고 환자복을 입은 임상희가 안으로 들어왔다.그녀의 뒤로 주혜민도 따라서 안으로 들어왔다.차우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임상희는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생기는 충만해 보였다.“왜 사람이 아무도 없어?”임상희는 자기 집에 온 것처럼 스스럼없이 안을 둘러보았다.병실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소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차우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임상희를 보고 담담한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야?”임상희는 입에 막대사탕을 문 채,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숙모한테 들었는데 날 구해준 사람이 여기 입원해 있다고 해서 감사 인사라도 하려고 왔어.”말을 마친 임상희는 차우미의 가까이로 다가가서 또박또박 말했다.“구해줘서 고마워.”말을 마친 소녀는 무해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거만하게 턱을 치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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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물 없어? 목 말라.”차우미가 말했다.“저기 있어.”말을 마친 그녀는 침대머리로 생수를 가지러 다가갔다.임상희가 말했다.“손이 다쳐서 불편하지? 내가 할 테니까 거기 있어.”주혜민이 다가왔다.“내가 따라줄게.”“괜찮아. 손을 다친 것도 아닌데 뭘.”임상희는 침대머리에 놓인 포트를 잡고 종이컵에 물을 따랐다.“아 뜨거!”그 순간 물펍이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졌다.차우미가 놀라서 다가가는데 임상희가 갑자기 몸을 돌리며 옆에 있던 주혜민을 밀쳤다.차우미는 쓰러지는 주혜민을 잡아주려고 손을 뻗다가 그대로 같이 쓰러져 버렸다.쾅!“악! 숙모, 괜찮아?”차우미는 주혜민의 몸 위로 쓰러지며 다친 손이 바닥에 부딪혔다.극심한 통증에 이마에 식은땀이 났다.하지만 밑에 깔린 주혜민이 걱정돼서 억지로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그리고 그 순간, 다가온 임상희가 그녀를 확 밀쳤다.힘이 워낙 셌기에 차우미는 그대로 침대머리에 머리를 부딪히며 쓰러졌다.“악! 피! 숙모, 피 나!”차우미는 소리를 듣고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임상희가 앞을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이때,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들자 어느새 안으로 달려온 남자가 주혜민을 품에 안았다.“외삼촌, 빨리 숙모 데리고 응급실로 가!”나상준은 굳은 표정으로 품 안의 여자의 상태를 살피고는 밖으로 나갔다.그는 바닥에 쓰러진 차우미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마치, 주혜민을 제외하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처음부터 그의 마음에는 그녀의 자리가 없었던 것처럼.차우미는 멍하니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발걸음 소리가 멀어지고 병실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홀로 남겨진 차우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엄마가 곧 돌아올 텐데 이런 모습을 보면 또 속상해하실 것이다.그녀는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었다.하지만 손을 움직일 때마다 뼈를 가르는 고통이 전해지고 조금 전 침대 모서리에 부딪힌 허리에서도 묵직한 통증이 전해졌다.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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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온이샘이 걸음을 멈추었다.“왜? 뭐 더 필요해?”그는 고개를 돌리고 긴장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이런 모습은 그를 두렵게 했다.차우미는 미안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일단 바닥에 유리조각부터 좀 처리해 줄래?”온이샘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지금은 네 치료가 더 시급해.”차우미가 웃으며 말했다.“일단 저거부터 좀 치우고 의사 부르자. 엄마가 곧 오실 텐데 저거 보면 걱정하실 거야.”그제야 온이샘은 하선주가 병실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그는 고통에 눈시울까지 붉어진 그녀를 보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그래.”결국 그는 바닥에 떨어진 유리조각을 모두 정리하고 물기를 다 닦은 뒤에야 의사를 부르러 밖으로 나갔다.의사가 병실로 오자 차우미는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의사가 겉옷을 들어올리자 등에 퍼렇게 멍자국이 나 있는 것이 보였다. 온이샘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의사가 어떻게 다쳤는지 묻자 차우미는 부주의로 넘어졌다고 답했다.그녀는 임상희나 주혜민에 대해서는 일절 얘기하지 않았다.어차피 둘은 목적을 달성했으니 그녀도 더 이상 이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차우미는 조금 양보해도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일단은 엑스레이 한번 찍어봐야 할 것 같네요.”의사가 온이샘에게 말했다.온이샘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제가 데리고 갈게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휠체어를 가져오는 게 좋겠어요. 골절은 아닌 것 같고 당분간 걷는 건 자제하는 게 좋겠네요.”“알겠습니다. 지금 가지러 갈게요.”의사는 휠체어 대여하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잠시 후, 온이샘이 휠체어를 끌고 병실로 돌아왔다.그는 차우미를 부축해서 휠체어에 태웠다. 차우미는 바깥을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엄마 곧 오실 시간인데.”나간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지금쯤이면 돌아올 시간이었다. 차우미는 오히려 엄마가 무슨 일로 늦어진 건지 걱정이 되었다.온이샘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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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엑스레이 검사결과를 확인한 의사가 나상준에게 말했다.“정말 아무 문제 없는 건가요?”“그 여자가 외숙모를 밀쳐서 바닥에 쓰러졌어요. 그때 저도 자리에 있었는데 너무 놀랐다고요. 뇌진탕은 아니겠죠? 머리는 엑스레이를 찍어봤나요?”의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상희가 끼어들어 종알종알 떠들었다. 의사는 줄곧 말이 없는 나상준의 표정을 힐끗 살피고는 말했다.“다 찍어봤어요. 뇌진탕 증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아, 검사를 다 해봤어요? 저는 안 해본 줄 알고.”“외삼촌, 이렇게 하자. 며칠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렇게 심하게 넘어졌는데 나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곤란해지잖아. 외삼촌 생각은 어때?”임상희가 눈을 반짝이며 나상준에게 말했다.그는 주혜민을 안고 의사를 찾은 뒤로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당황하거나 걱정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줄곧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하고 있었다.임상희의 질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나상준에게 쏠렸다.나상준은 주혜민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그는 시선을 돌려 의사를 바라보았다.의사가 말했다.“저도 며칠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그럼 입원해.”임상희는 주혜민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주혜민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3년 동안 마음에 존재했던 가시 같은 존재를 드디어 뿌리뽑았다는 성취감에 가슴이 벅찼다.‘상준 씨는 나를 신경 쓰고 있었어. 아니, 날 잊은 적 없었던 거야.’주혜민의 입원 절차는 빠르게 처리되었다. 절차가 마무리되자 나상준은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병실에 남은 임상희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문을 닫고 침대로 다가갔다.“어때? 이제 만족해?”임상희가 팔짱을 낀 채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주혜민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나상준의 눈빛이었다. 마치 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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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온이샘은 차우미를 끌고 일련의 검사를 진행했다. 잠시 후 겸사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자세히 살피고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골절이나 다른 문제는 없는 것 같아요. 며칠 휴식을 취하면 괜찮아질 거예요. 다 나을 때까지는 최대한 움직임을 줄이고 누워서 쉬는 게 좋겠어요.”골절이 아니라는 말에 온이샘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그는 휠체어를 끌고 병실로 돌아왔다. 차우미가 아파할까 봐 그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차우미는 휠체어에 앉아 이 상황을 부모님에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다.상황을 설명하기 조금 난감했다.온이샘은 유난히 조용해진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난감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그녀를 보자 그는 안쓰러운 마음에 입을 열었다.“가현 씨한테 전화해서 간호를 부탁하고 아저씨랑 아줌마는 집에 돌려보내는 게 어때?”차우미는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온이샘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아줌마가 너 넘어져서 다친 거 알면 또 자책하실 거 아니야. 연세도 있으신데 자꾸 놀라게 하는 건 좋지 않아.”그녀는 배려심 넘치고 부모님에게 극진한 딸이었다. 겉보기에는 강하고 겁도 없어 보이지만 가족에게만은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생각을 읽힌 차우미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가현이한테 말할 수는 없어. 걔가 사실을 알게 되면 아빠랑 엄마보다 더 날뛸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저도 모르게 피식 미소를 지었다.그녀의 미소에 온이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그럼 어쩔 수 없지. 간병인 부르자.”차우미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간병인은 이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다.“난 왜 그 생각을 못했지?”그녀는 드디어 안심하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온이샘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좀 똑똑하긴 하지. 너도 간병인 부르는 방안이 제일 괜찮지?”차우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거 괜찮네. 고마워, 선배.”예전의 예의 바른 미소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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