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봄날: Chapter 41 - Chapte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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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화
날이 어두워지자 병실 안에는 밝은 불빛이 밝혀졌다.뭔가 생소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그는 긴다리를 움직여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갔다.평소처럼 절제되고 차분한 걸음걸이였다.마치 평소처럼 출장을 다녀온 것 같은 모습.차우미는 가까워지는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우수에 젖은 눈동자와 조화로운 이목구비, 그는 여전히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아마 그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저 잘생긴 얼굴 때문이었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나상준은 천천히 다가와서 의자에 앉았다.그리고 조용히 침대 위의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차우미는 당황했지만 그의 눈빛에서는 여전히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 여자애가 당신 조카일 줄은 몰랐어. 걔는 좀 어때? 괜찮아?”차우미가 상처를 소독하고 병원을 떠날 때에도 임상희는 여전히 응급 수술 중에 있었다.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실이었다.나상준은 자신을 친구 대하듯이 자연스럽게 대하는 여자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위기는 넘겼는데 아직 의식은 회복하지 못했어.”그 말에 차우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심각해?”NS일가는 방대한 가족이었다. 친척도 많고 방계도 많았지만 차우미는 그렇게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원래 떠들썩한 걸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 탓도 있지만 시어머니 문하은이 그녀를 별로 내키지 않아했기 때문에 평소에 어딜 가든 그녀를 데리고 다니지 않았던 이유가 컸다.문하은은 며느리를 거의 없는 사람 취급했다.자연스럽게 가장 가까운 친척 몇몇을 제외하고 다른 친척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이번에 다친 조카라는 사람도 그러했다.좋은 마음에 선의를 베풀었는데 상대가 공교롭게도 나상준의 조카일 줄은 몰랐다.“그렇게 심각하진 않아.”차우미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나상준이 물었다.”손은 좀 어때?”차우미는 움찔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걱정해서 물어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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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하얀 셔츠에 캐주얼한 정장 바지를 입고 하얀색 운동화를 신은 훤칠한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살짝 걷어 올린 옷소매 사이로 그의 건장한 팔뚝 근육이 보였다.그의 손에는 커다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저녁과 과일, 그리고 각종 일용품을 잔뜩 쇼핑하고 돌아온 온이샘이었다.그는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있었는데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온이샘은 쇼핑백 하나를 바닥에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강서흔의 전화였다.아마 이쪽 상황이 궁금해서 전화했을 것이다.마침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는 한 손에 짐을 들고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든 채, 엘리베이터를 나섰다.손에 든 짐에만 신경 쓰다 보니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자와 마주쳤다.“여보세요.”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남자를 힐끗 바라보았다.수화기 너머로 강서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미 씨는 어때? 깼어?”그는 시선을 거두고 담담히 대답했다.“깼어.”“괜찮은 거지?”온이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괜찮아. 많이 좋아졌어.”“괜찮다니 다행이네. 그래도 이번 사고로 둘이 조금 가까워졌으니 너한텐 좋은 건가?”장난 섞인 목소리에 온이샘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그게 왜 나한테 좋은 거야?”“넌 우미 씨 좋아하는데 우미 씨는 너한테 관심 없었잖아. 한번 만나려고 해도 이 핑계 저 핑계 생각해야 하는데 마침 다쳤으니까 병문안을 이유로 대놓고 병실 드나들 수 있잖아?”“이번 기회를 잘 잡아야 해. 이런 기회 흔치 않아. 하늘이 널 도와주고 있는 거라고!”온이샘은 못 말린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그럴 싸하긴 하네. 하지만 이런 기회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나아.”그는 차라리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쥐어짜더라도 그녀가 다치지 않는 게 좋았다.“순정남 납셨네. 야, 닭살 돋아. 이만 끊어. 사랑에 미친 놈!”말을 마친 강서흔은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온이샘은 못 말린다는 듯이 웃으며 핸드폰을 도로 넣었다.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가던 그는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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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주혜민은 임상희의 병실을 지키며 나상준을 기다렸다.하지만 나간지 한참 지났는데도 그는 돌아오지 않자 병상에 있는 임상희를 돌아보았다.임상희는 아직 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시간을 확인한 그녀는 간병인에게 임상희를 부탁하고 병실을 나섰다.복도를 둘러보았지만 나상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휴게실 쪽에서 주진수가 누구랑 통화를 하고 있었다.주혜민은 주변을 둘러보고 그에게 다가갔다.“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나 대표님께 전달하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주진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차우미를 보러 간 나상준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같이 가려고 했는데 나상준이 위층에서 기다리라고 지시했기에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미 30분이 지났다.“상준 씨는요?”등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주진수가 고개를 돌렸다.“나 대표님은 아래층에 가셨습니다.”“아래층에는 왜요? 의사가 아래층에 있어요?”주혜민이 예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주진수는 주혜민의 신분을 잘 모르기에 자세한 사정을 말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나상준과 같이 달려온 것으로 봐서 평범한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임상희 씨는 지나가던 행인에게 구해졌어요. 그분이 상희 씨를 구하다가 다쳐서 지금 6층 외과 병동에 입원해 있거든요.”주혜민은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임상희의 부모님은 해외에서 바로 올 수 없었기에 나상준이 모든 일을 맡아서 해결했다.솔직히 그녀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지만 나상준의 사촌누나와 그녀는 해외에서 시간 내서 만날 정도로 사이가 꽤 좋은 편이었다.임상희와도 몇 번 봐서 서먹한 사이는 아니었다.마지막으로 본 게 두 달 전이었나?물론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중요한 건 나상준이었다.그녀는 그의 옆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오는 길에 들은 바로 임상희는 죽을 뻔한 상황에 처했다가 극적으로 구조되었다고 들었다.걱정되는 마음에 바로 병실로 달려왔기에 위기의 순간에 임상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을 깜빡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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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한편, 하선주와 차동수는 나상준이 병실을 나온 것을 확인한 뒤에야 병실로 돌아갔다.병실로 돌아가자 셋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이혼했다고 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딸은 딱히 슬퍼하거나 상심해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하지만 딸을 잘 아는 부모로서는 3년 간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겨우 마음을 정리했는데 나상준이 다시 나타났으니 많이 혼란스러울 것이다.차우미는 조심스러운 부모님의 태도에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았지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서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아빠, 엄마, 나 정말 괜찮아.”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에 그녀는 일단 부모님을 위로했다.하선주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아가, 답답하면 엄마한테 얘기해. 힘들면 울어도 돼. 엄마아빠 앞에서는 그래도 돼.”차우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엄마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아빠를 보자 차우미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나 정말 괜찮다는데도.”그녀는 이미 마음을 정리했지만 부모님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힘든 걸 마음에 담아두지만 말아. 우리가 걱정하고 속상할까 봐 말을 아끼는 거 알아. 하지만 우린 가족이잖아. 우리한텐 너밖에 없어. 이럴 때는 엄마아빠한테 기대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그래, 우미야. 참지 마.”하선주는 여전히 딸이 자신들을 배려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이러다가 마음에 병이라도 들까 봐 걱정되었다.차우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오늘 뭔가 얘기하지 않으면 부모님의 시름을 덜어드릴 수 없을 것 같았다.그녀는 목청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아빠, 엄마, 우리가 이혼한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야. 그냥 그런 생활이 내가 바라던 삶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야.”“그 사람은 항상 바쁘고 출장 나가 있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길었어. 나도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우리가 정작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어.”“처음에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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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똑똑!노크 소리가 울리자 정신을 차린 차동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내가 갈게.”하선주도 급하게 표정을 수습했다.차우미는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생필품 사온다고 나갔던 온이샘이 돌아온 것이다.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노크 소리였다.문이 열리고 온이샘이 웃는 얼굴로 안으로 들어왔다.“다녀왔어요, 아저씨.”차동수도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래. 어서 들어와.”온이샘은 물건을 들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커다란 쇼핑백을 본 차동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뭘 이렇게 많이 샀어?”하선주도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뭘 샀길래 이렇게 많아?”온이샘이 웃으며 말했다.“많지 않아요. 두 분 저녁에 병실을 지켜야 하는데 생필품 좀 샀어요.”마음은 남아서 병실을 지켜주고 싶지만 차우미가 불편해할 것 같아서 참았다.“아이고. 섬세하기도 해라.”하선주는 쇼핑백에 담긴 수건과 치약, 칫솔들을 꺼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그의 정성이 엿보였다.이렇게 자상하고 섬세한 남자는 흔치 않았다.“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온이샘은 짐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먹을 음식을 꺼냈다.“오는 길에 식당에 들려서 먹을 것 좀 챙겨왔어요. 별거 없지만 오늘은 대충 끼니를 때워야 할 것 같네요. 내일 안평 병원으로 옮기면 좀 나을 거예요.”차동수 부부는 흐뭇한 표정으로 시선을 교환했다.그들은 온이샘의 자상함이 마음에 들었다.가만히 듣고 있던 차우미가 입을 열었다.“선배, 부모님도 오셨으니까 선배는 어서 돌아가서 쉬어. 내일 학교도 나가야 하잖아. 난 걱정하지 않아도 돼.”“병원 옮기는 일도 아빠랑 엄마가 있으니 충분해.”온이샘은 멈칫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담담한 그녀의 얼굴에서 평소에는 잘 볼 수 없었던 진지함이 보였다.“날 구하다가 손까지 다쳤는데 내가 어떻게 안심하고 출근할 수 있겠어? 내가 그렇게 야박한 사람으로 보여?”그도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차우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온이샘의 성격을 알기에 지금 돌아가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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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13층 VIP 병동.임상희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의사는 일련의 검사를 진행했다.나상준은 병실 밖에서 소식을 기다렸다.주혜민은 그의 곁을 지켰다.정신을 차린 임상희는 오기석을 죽여버리겠다며 난리를 피웠다.어려서부터 사랑만 받고 자란 임상희는 만만치 않은 성격을 갖고 있었다.그런데 남자한테 배신을 당했으니 당연히 가만히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주혜민은 그런 그녀를 위로했다.“걱정 마. 널 다치게 한 사람에게 삼촌이 변호사를 보냈어. 그쪽도 발뺌하지 못할 거야.”“변호사가 무슨 소용이야? 그 인간 죽여 버리라니까!”“그냥 감옥에 보내는 걸로는 부족해. 그런 인간은 사회의 악이야. 없애버려야 한다고!”임상희는 아픈 것도 잊고 침상에 누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나상준은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임상희가 주혜민을 밀치며 주혜민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나상준은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했다.주혜민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그를 돌아보았다.“죽여? 네가 뭔데 사람을 마음대로 죽인대?”주혜민에게서 손을 뗀 그가 차갑게 말했다.거대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한 마디에 임상희가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한참 아무 말도 못하고 씩씩거렸다.친척들 중에 그녀가 가장 어려워하는 상대가 나상준이었다.“내가 이렇게 된 거 다 그 자식 때문이란 말이야! 대가를 받게 하는 건 당연하잖아?”임상희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그 인간이 날 배신하고 내 친구랑 붙어먹었어. 그것들 키스하고 호텔까지 갔다고! 생각만 하면 역겨워. 절대 용서 못해!”임상희의 두 눈이 증오로 번뜩였다.잠자코 듣고 있던 주혜민이 인상을 찌푸렸다.“그래서 그런 인간 때문에 자해를 한다고?”나상준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주혜민은 저도 모르게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나상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임상희를 내려다보았다.“그건….”임상희는 말도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그 모습을 본 주혜민은 다가가서 임상희의 어깨를 안아주며 말했다.“울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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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발신자를 확인하니 차우미였다.익숙한 이름이 눈에 보이자 나상준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통화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전화하기 전, 차우미는 나상준이 다녀가면서 했던 얘기를 숨김없이 하선주에게 털어놓았다.그리고 도움을 받는 게 불편하다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하선주도 그녀의 생각에 동의했다. 이혼한 사이인데 자꾸 엮이는 건 좋지 않았다.비록 어쩌다가 차우미가 나상준의 조카를 구하긴 했지만 이 일로 그 집에 보상을 바라지는 않았다.그래서 하선주는 차우미의 전화로 나상준에게 전화를 걸고 딸의 귓가에 핸드폰을 가져갔다.차우미는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차우미는 잠시 숨을 고르고 그에게 물었다.“지금 바빠?”예전에도 먼저 전화를 걸면 항상 했던 질문이었다.나상준은 창 밖을 바라보며 담담히 대답했다.“아니, 안 바빠.”“그래. 내일 병원 옮기는데 필요한 절차는 우리가 마무리하기로 했어. 더 이상 날 위해 뭘 해줄 필요 없어. 이 말 하려고 전화했어.”“당신 마음은 알겠지만 정말 우연이었고 다른 사람이었더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바쁜 사람인 걸 알기에 차우미는 길게 말하지 않고 용건만 간략해서 전달했다.그리고 말을 마친 그녀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잠시 침묵이 흘렀다.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간호사와 의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아직 병원을 떠나지는 않은 것 같았다.차우미는 말없이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차우미, 뭐가 두려워서 그러는 거야?”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가 물었다.차우미는 그 질문에 당황했다.뭘 두려워하냐니?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그게 아니라….”그녀는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예전에는 한 번도 이런 식의 질문을 한 적 이 없었다. 병실에 왔을 때도 자신의 생각만 전달했을 뿐, 그녀의 의견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차우미는 남자가 뭔가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왜?다시 만났을 때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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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전화를 끊은 뒤, 나상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그는 싸늘한 눈을 하고 어둠이 내려앉은 창 밖을 바라보았다.“상준 씨.”주혜민이 그에게 다가왔다.나상준이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가자. 뭐라도 좀 먹고 오자. 상희는 이제 괜찮아졌어.”나상준이 말했다.“돌아와서 할 일도 많을 텐데 비행기 티켓 예약해 줄 테니까 청주로 돌아가.”주혜민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말을 마친 그는 뒤돌아서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주혜민은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하고 싶었던 말을 속에 삼켰다.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주먹을 꽉 틀어쥐고 다시 입가에 미소를 띄운 그녀는 병실로 들어가려는 그의 등을 보며 말했다.“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난 은혜 언니 부탁을 받고 여기서 상희를 돌봐주기로 했어. 내가 있는 게 불편하면 은혜 언니한테 얘기해.”나상준은 그 말을 듣고도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주혜민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싸늘한 표정으로 바뀌었다.차우미.이혼한 사람들끼리 아직도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니!조금 전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다 듣고 있던 그녀였다.한편, 차동수와 함께 호텔로 온 온이샘은 뜨거운 물을 끓여 커피를 타고 아까 사온 과일을 씻어 접시에 담았다.모든 일을 마친 뒤에야 그는 차동수에게 말했다.“아저씨,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저 불러요.”차동수는 그런 온이샘의 마음이 고마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 이제 필요한 거 없어. 자네는 최선을 다했어.”“아니에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저한테는 사양하지 말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할게요.”차동수는 그런 온이샘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고마워.”온이샘이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안심이네요.”“자네도 힘들었을 텐데 어서 들어가서 쉬어.”“아저씨도 편히 쉬세요.”온이샘은 차동수와 연락처를 교환한 뒤에야 밖으로 나갔다.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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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이번에 우연히 조금 겹쳤어. 상대 여자애가 그쪽 친척일 줄 누가 알았겠어? 우미랑 이혼하고 연락도 안 하던 사이인데 이렇게 되었지 몰라. 자네도 청주 사람이니 NS일가에 대해 잘 알겠지. 우미 전남편이 NS 오너 일가 사람이거든. 그쪽에서 우미가 이번 일로 다쳤다는 얘기를 듣고 극구 치료를 책임지겠다고 해서 말이야. 그래서 병원 옮기는 일은 자네가 나서줄 필요 없다고. 그 말하려고 전화했어.”“이번 일만 마무리되면 그쪽이랑 더 이상 연락할 일 없으니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처음에는 차우미가 잘 이야기하기로 했는데 하선주는 오히려 자신이 이야기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차우미 대신 전화하게 된 것이었다.하선주는 온이샘 같은 남자라면 차우미를 잘 보살펴 줄 거라고 믿었다.그래서 해야 할 말은 정확히 전달하고 싶었다.온이샘이 웃으며 말했다.”아줌마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야 안심이죠.”“그래, 그럼 그렇게 알고 끊겠네.”그렇게 통화가 끝났다.온이샘은 착잡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신경이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이 자신을 지지해 주고 있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그녀의 부모님은 NS일가에 미련이 없고 그를 무척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이제 우미 마음만 돌리면 되겠네.’온이샘은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에 탔다.차우미는 침대에 앉아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손을 쓸 수 없으니 무료하고 갑갑했다.나상준이 오늘 했던 말이 자꾸만 떠올라 혼란스러웠다.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이혼 전에 비해 사람이 많이 변한 것 같았다.예전에는 항상 멀게만 느껴졌는데 오늘 만난 그의 모습은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참 이상한 기분이었다.문이 열리고 하선주가 그녀의 핸드폰을 들고 들어왔다.“봐, 우미 저기 있어.”그러더니 카메라를 차우미에게 비췄다.여가현의 목소리도 들려왔다.차우미가 당황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병원에 입원한 일을 여가현에게 알린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고 연락이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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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말투를 보아 하니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너 온이샘이랑 같이 산에 갔으면서 어떻게 나한테는 한마디도 안 해줄 수 있어? 강서흔 그 자식이 연락 오지 않았더라면 너 다친 것도 몰랐을 거잖아.”서운함이 가득 담긴 말투에 차우미가 웃으며 말했다.“별로 큰일도 아닌데 뭐 하러 일일이 연락해?”“이게 어떻게 별일이 아니야? 굳이 이혼한 네가 있는 안평으로 가서 도움을 핑계로 같이 산까지 올라갔는데 이걸 정말 우연이라고 생각해?”차우미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그녀가 말이 없자 여가현이 계속해서 말했다.“넌 이런 면에 너무 둔감해. 온이샘이 너한테 마음 있는 거 정말 몰랐어?”차우미는 그 말의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말했다.“나는 아닌 것 같아.”그녀는 한 번도 그런 쪽으로 온이샘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여가현이 말을 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봤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은 것 같았다.온이샘은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 좋은 학벌에 가정 환경, 인품, 어느 것 하나 나무랄데 없는 사람이었다.나상준에 비해도 많이 뒤처지지 않았다.만약 그녀가 결혼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 여가현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믿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녀는 이미 이혼을 한번 한 사람인데 온이샘이 자신에게 그런 마음을 품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뛰어난 남자 주변에는 여자들이 넘쳐나기 마련이다.여가현은 그녀의 대답을 듣고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우미야, 넌 네가 얼마나 예쁘고 매력 있는지 정말 모르는 것 같아. 그렇다면 이 언니가 가르쳐주지.”“넌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고 부모님들도 모두 순박하고 좋은 분들이야. 그리고 신체 건강하시고 정당한 직업도 갖고 계시지.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자산도 많이 축적했을 거야. 내 말이 틀려?”“물론 온이샘처럼 타고난 재벌가들이랑은 못 비기지만 평범한 가정은 넘어섰다는 말이야. 그리고 넌 예뻐. 학벌도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디 가서 내놓기 부끄러울 정도는 아니잖아?”“게다가 넌 성격도 좋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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