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모든 챕터: 챕터 21 - 챕터 30
526 챕터
제21화
온이샘은 혹시라도 운전 중에 그녀에게서 답장이 올까 봐 줄곧 차에서 기다렸다.그러다 보니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나갔다.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차우미에게서 답장이 오자 그는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나긋나긋하고 진지한 물음에 그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집으로 오라고?’누군가를 좋아하면 당연히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법이다.당연히 그도 조만간 그녀의 가족을 만나야 한다.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그녀의 가족을 만나야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는 잠시...... 어쩔 바를 몰랐다.온이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이런 고요함은 차우미에게 한 가지 문제를 깨닫게 했다. 이렇게 갑자기 친구를 집에 부르면 친구는 반드시 불편해할 것이라는 걸.누구나 다 여가현처럼 친구의 집을 자기 집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선배, 미안해. 내가 너무 갑작스러웠지? 마음에 두지 마.”“아니, 그게 아니라. 아침 식사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어. 그래, 내일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자.”온이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그제야 차우미는 한시름 놓았다.“그래, 그럼 일 봐. 내일 아침 거의 도착한다 싶으면 문자줘. 내가 내려갈게.”“그래, 알았어.”전화를 끊은 차우미는 내일 아침 시간을 대략 계산하더니 부모님께 온이샘이 내일 아침 식사하러 올 거라고 말씀 드렸다.그 말에 부모님은 너무 기뻐 내일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온이샘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었다.하지만 차우미는 온이샘이 좋아하는 음식을 알지 못했다. 하여 그녀는 다시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가리는 건 없는지.같은 시각, 차에 앉아 휴대폰을 들고 메시지를 확인하던 온이샘은 심장이 쿵쾅거렸다.그녀의 집으로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하지만 무엇을 사야 할지, 어떻게 사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는 단 한 번도 이런 상황을 직면한 적 없었기 때문이다.곰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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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차우미가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덧 7시가 훌쩍 넘었다.여가현이 가장 바쁜 시간이다.그녀는 자주 야근을 했으며 밤을 새우는 것이 다반사인데 모처럼 이 시간에 그녀에게 영상 통화를 보냈다.영상 통화를 받자마자 머리를 박고 컵라면을 먹고 있는 여가현의 모습이 보였다.차우미는 관심조로 말했다.“너 또 컵라면이야? 몸에 안 좋다니까. 너 밥 해먹을 시간 없으면 차라리 밀키트라도 사 둬. 데우면 먹을 수 있을 거 아니야.”여가현에게 돈은 생명이다.목숨과 돈 중에, 그녀는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돈을 선택할 것이다.여가현은 컵라면을 후루룩 먹으며 대꾸했다.“내 걱정은 하지 마! 지금 네가 제일 중요해. 너 어때? 선은 봤어? 두 번째 봄은 언제 오는 거야? 너 상준 씨랑 이혼한지 한 달 넘었지? 이젠 두 번째 봄이 슬슬 와야 해.”“나 있잖아, 반드시 그 사람보다 더 좋은 남자 만나서 아주 본때를 보여줄 거야! 소중함도 모르는 멍청한 자식!”차우미가 이혼하고 여가현은 늘 그녀에게 선을 보고 두 번째 사랑을 시작하라고 다그쳤고 매번 두 사람의 대화에는 이 화제가 떠나지 않을 정도이다.심지어 그녀에게 이혼서류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하고 두 번째 봄을 맞으면 다시 다른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라고 했다.차우미는 어이가 없었지만 이것 또한 그녀의 관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가현은 그녀가 실패한 결혼에서 헤어나오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여가현은 목소리가 아주 높다. 차우미는 혹시라도 부모님이 그들의 통화를 들을까 봐 이어폰을 귀에 끼고 말했다.“너 안 바빠? 이 시간에 어떻게 내 생각이 났대?”여가현에게는 화제를 돌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하! 내가 안 바쁠 리가 있겠어?”여가현은 책상에서 서류 뭉치를 들어 카메라 앞으로 가져다 댔다. 서류 뭉치를 본 차우미는 걱정되는 마음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너 또 밤 새우려고?”“당연하지! 난 부자가 될 거야!”여가현은 하루 빨리 많은 돈을 모아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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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선배 이게 다 뭐야?”한가득 꺼내는 선물 꾸러미를 보고 차우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침을 먹으라고 했을 뿐인데 온이샘은 이렇게 많은 선물을 가져왔다. 비록 차우미도 온이샘의 예의를 지키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건 너무 과하다.온이샘의 양손 가득 들린 선물은 아무리 봐도 단순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차우미와 눈이 마주친 온이샘은 그제야 자기의 목적성이 너무 강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다급히 말했다.“아저씨, 아주머니가 뭐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그냥 여러 가지 사봤어. 좋아하실지 모르겠다.”차우미는 온이샘처럼 고작 아침 식사 한 끼에 이렇게 예의를 차리는 사람은 처음 봤다. 뭐라고 하기도, 안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그녀는 하는 수 없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선배 왜 이렇게 많이 사 왔어.”“하하, 아니야. 무엇보다 나도 네 도움이 필요한데 미안해서 그러지.”차우미도 온이샘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더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그만 올라가자.”“그럴까.”두 사람은 위층으로 올라갔다.위층 베란다. 하선주와 차동수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특히 하선주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역시.”차동수도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그는 애써 웃음을 절제하며 말했다.“애들 올라오니까 빨리 준비하자고.”“그래.”차우미는 온이샘과 함께 집으로 들어왔고, 인기척에 차동수와 하선주는 주방에서 즉시 나왔다.온이샘은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고 차우미는 부모님에게 온이샘을 소개해 주었다. 이내 집안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가득 퍼졌다.“이샘 씨, 왜 이렇게 많이 사 들고 왔어? 미안하게.”“당연히 그래야죠.”“그건 아니지. 이샘 씨는 우리 우미 친구니까 내 집처럼 생각해도 좋아. 다음에는 이런 거 사 들고 오지 마.”“하하, 아니에요. 작은 성의예요. 두 분이 좋아하실지 모르겠어요.”“그럼, 좋아하고 말고. 젊은 사람들은 안목이 뛰어나서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지.”“......”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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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발신인이 강서흔이라는 것을 확인한 온이샘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나 잠시 전화 좀 받을게.”“그래, 앞에서 기다릴게.”차우미는 휴대폰을 들고 앞으로 걸어갔다. 휴대폰에는 온이샘이 찾는 식물이 있는데 그들은 지금 산간의 돌길을 걷고 있으며 양쪽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가득했다.그녀는 계속 찾아보았다.차우미가 멀어지자 온이샘은 그제야 전화를 받았다.“그래.”“어때? 미래의 장인 장모님 너 마음에 들어 하셨어?”진지한 듯한 말투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질투가 느껴졌다.온이샘은 강서흔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웃으며 말했다.“아마도?”“하하.”“하긴, 잘생긴 온이샘을 누가 마다하겠어. 특히 어르신들은 더 좋아하시겠지.”강서흔의 말은 정확한 말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온이샘은 늘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강서흔은 여가현 집에 갔다가 좌절을 겪고 한이 서려 있었다. 온이샘이 화제를 돌렸다.“벌써 일어난거야?”“흥!”“네가 새벽부터 깨워놓고 벌써라니.”“빨리 잡아. 이 형님이 네 결혼식을 고되게 기다린다! 아니지, 나 부케 받을래!”“부케 받고 여가현 그 나쁜 년이랑 결혼할 거야!”온이샘은 나지막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날이 오기를 기다릴게.”두 사람은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온이샘이 앞을 보니 차우미는 보이지 않았다.그는 멈칫하더니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그녀의 그림자를 찾았다. 그녀는 돌계단 옆에 쭈그리고 앉아 휴대폰과 눈앞의 식물을 번갈아 보았다.그녀는 어느새 포니테일을 묶었다.살랑살랑 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치며 그녀의 흘러내린 잔머리와 속눈썹을 가볍게 날렸다.온이샘은 저도 몰래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그는 가까이 다가가 몸을 숙이고 물었다.“왜 그러고 있어?”온이샘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청초한 눈매를 보았다. 그녀의 외모는 이 산의 수려함보다 더 매혹적이었다.차우미는 그제야 온이샘이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선배, 이것 좀 봐봐. 이거 아니야?”그녀는 발아래의 푸른 식물을 가리키며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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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똑...... 똑......물방울이 나상준의 머리카락을 타고 바닥에 떨어져 맑은 소리를 냈다.물줄기는 그의 몸을 따라 매끄러운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다시 하수구로 흘러가더니 가느다란 물 흐름소리가 들려왔다.모든 것이 이토록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나상준은 아무런 기척도 없는 샤워기를 한참 바라보더니 가운을 입고 욕실을 나섰다.예전 같으면 이 시간에 바깥의 등불은 모두 밝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침실도 마찬가지다.나상준은 어두운 바깥을 보며 휴대폰을 들어 허영우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정전이야.”허영우는 멈칫하더니 모처럼 멍해졌다.정전?대체 무슨 말씀일까?허영우가 곰곰이 생각하는 사이, 나상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집안 전기요금은 누가 냈었지?”이 말에 허영우는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차우미와 나상준이 이혼하던 그날, 그녀는 허영우에게 메일 한 통을 보냈다. 차우미는 집안의 주의 사항과 해야 할 일, 그리고 세부 사항들을 꼼꼼히 메일로 작성해 보냈다.허영우는 메일을 확인했고 또 알고 있었지만 너무 바쁜 탓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메일 속의 여러 사항은 그녀가 이미 다 처리해 두었으니 허영우는 그저 기억만 하면 된다.그러다 보니 잊고 있었다.허영우가 다급히 말했다.“사모님이 냈었어요. 전에 사모님이 메일로 알려주셨는데, 제가 깜빡했어요.”“죄송합니다, 대표님. 지금 바로 처리할게요.”“그래.”통화가 종료되었다.나상준은 휴대폰을 던져두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날은 아직 완전히 어두워진 것은 아니다. 집안의 모든 것이 아직 마지막 빛에 비추어져 아주 희미하게 보였다.나상준은 바에 있는 냉장고를 열었다.그는 목이 말라서 물을 좀 마시려고 했다.하지만 열어보니 냉장고는 텅 비어있었다.그는 멍하니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냉장고를 바라보다가 한참 뒤 부엌으로 향했다.부엌에도 냉장고가 있었다. 차우미가 이 집에 있을 때, 그 냉장고는 항상 꽉 차 있었다.하지만 열어보니 역시나 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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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산의 기후는 일정치 않았다. 특히나 진달래 산은 더 그러하다. 차우미와 온이샘이 절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보슬비는 산과 나뭇잎에 떨어져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두 사람은 방을 예약한 뒤 간단히 씻고 절밥을 먹으러 갔다.이 계절은 진달래가 만개할 때라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진달래를 감상했다.하지만 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절밥을 먹는 사람도 아주 적었다.서서히 밀려오는 어둠과 함께 빗소리가 자욱하여 절 안은 더욱 적막해졌다.차우미와 온이샘은 그저 가끔 나지막한 목소리로 두 마디씩 나눌 뿐, 되도록 조용하게 식사를 마쳤다.하지만 두 사람이 식사를 끝내고 일어서려 할 때, 갑자기 쨍그랑 소리와 함께 그릇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고 남은 음식도 덩달아 바닥에 전부 엎질러졌다.차우미는 멈칫하더니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한 젊은 여자가 벌떡 일어나 맞은편에 앉은 남자에게 삿대질하며 소리를 질러댔다.“오기석,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까지 같이 온 게 억울해? 내가 똑똑히 말하는데, 억울해도 참아!”여자는 의자를 발로 걷어차고 뒤돌아섰다. 남자는 거기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더니 사람들의 시선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차우미는 시선을 거두고 휴지를 꺼내 온이샘에게 넘겨주었다.온이샘도 그 장면을 보았지만 차우미를 따라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가지런히 접힌 휴지를 바라보며 온이샘은 저도 몰래 미소를 지으며 건네받았다.“고마워.”두 사람은 곧 식당을 나섰다.밖은 아까보다 더 어두워졌고 절당 안의 등불만이 환히 빛나며 산을 밝게 비추었다.비는 여전히 세게 오지 않았다. 아까처럼 가늘고 촘촘하게 산에 뿌려져 흰 안개를 만들었다.“공기 좋다.”두 사람은 걸어 나와 절을 둘러보았다.도시의 소란스러움과 고층 건물을 벗어난 이곳은 고요함으로 사람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차우미는 절의 건물과 조각을 열심히 관찰했다.온이샘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했다.“진달래 산 공기는 정말 좋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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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그렇다. 휴대폰 화면에 뜬 발신자는 다름 아닌 나상준이다.주변은 고요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심지어 가느다란 빗소리마저 사라져 버린 듯했다.차우미는 휴대폰 화면에 표시된 발신자를 보고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다.기억 속의 나상준은 한 번도 그녀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다.무슨 일이 있으면 허영우가 그녀를 알리면 알렸지 나상준이 직접 알린 적은 없었다.마치 그녀가 그에게 전화를 거의 하지 않는 것처럼.그런데 지금 나상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차우미에게 있어 이런 일은 마치 하늘에 핀 꽃을 보는 것처럼 몽환적이라 믿어지지 않았다.휴대폰은 아직도 윙윙거리며 손바닥에서 진동하고 있다.그 진동은 그녀에게 이것은 진실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그녀는 손끝을 움직여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그녀의 가랑비를 머금은 것 같은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마치 비 오는 그날 밤, 이혼을 제기하던 그때처럼 말이다.바 앞에 서서 컵을 들고 물을 마시던 나상준은 그녀의 잔잔한 목소리에 동작을 멈추었다.“물 안 나와.”찬물이 나상준의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흘러 내려갔고, 나상준은 개운함을 느꼈다.그럴 줄 알았다. 나상준은 급한 일이 있기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그는 워낙 쓸데없는 말을 하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중요한 말만 했었다.휴대폰 저편에서 들려오는 무거운 목소리에 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수도 요금 안 낸 거 아니야?”“몰라.”나상준은 정말 모른다.나상준은 매일 회사 일로 바쁘다 보니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집안일은 하나도 몰랐다.그녀는 의미 없는 질문을 했다.“샤워하다가 단수된 거야?”그녀는 아마도 이런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응.”“기다려 봐. 내가 낼게.”말을 끝낸 차우미는 휴대폰 앱으로 수도 요금 10만 원을 냈다.별장에서는 수도 요금보다 전기 요금이 더 많이 들었다. 아무래도 면적이 크다 보니 전기가 많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별장에서 나오기 전, 그녀는 이미 모든 걸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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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던 손가락은 그대로 멈췄다.“선배.”차우미는 온이샘에게 다가갔다.온이샘은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통화 끝났어?”“응.”온이샘은 스님을 향해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그럼 먼저 일 보십시오.”스님은 저녁 수업이 있어 지금 당장은 시간이 없다고 했다.스님도 합작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돌아 떠났다.차우미는 멀어져가는 스님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확실히 스님이 우리보다 이 진달래 산에 대해서 더 잘 아실 거야.”그 스님은 대략 예순, 일흔의 나이로 이 산에서 오래 산 것이 분명해 보였다.온이샘이 스님에게 진달래 산의 상황을 여쭈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맞아. 나중에 스님을 찾아뵈어야겠어.”차우미는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계속 앞으로 걸었다.날이 아까보다 더 어두워지니 절의 등불은 더욱 밝아졌다.다만 밤이 깊으니 안개가 짙어졌고, 등불이 안개 속을 가득 메워 주변이 몽환적으로 물들었다.두 사람은 한가롭게 걸었다. 이 고요한 밤, 그들의 발소리는 평화롭게 들려왔다.그런데 갑자기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차우미는 외투를 걸치지 않았고, 쌀쌀한 바람은 산의 서늘한 기운과 한데 섞여 그녀는 저도 몰래 추위에 몸을 떨었다.그 모습에 온이샘은 즉시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었다.차우미는 멈칫하더니 이내 사양했다.“괜찮아, 선배.”“나한테 뭘 사양해. 너 이러다 감기 들면 내가 어떻게 너희 부모님께 설명하겠어?오늘 아침에 분명 두 분에게 약속드렸단 말이야.”온이샘은 옷을 움켜쥐고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하지만 우연히 손끝이 그녀의 어깨에 닿았고, 그는 저도 몰래 손을 움츠렸다.다만 아주 미세한 이 터치로 그는 그녀의 피부와 체온을 느꼈고,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차우미는 이런 과분한 친절을 받아들일 수 없어 거절하려고 했다.하지만 온이샘의 말을 들은 그녀는 자기가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했다.온이샘은 확실히 좋은 사람이다.그는 늘 차우미에게 신경 썼고, 그녀가 아플까 봐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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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방에 돌아온 차우미는 깨끗이 씻고 잠자리에 누웠다. 시간은 이제 9시를 가리켰다.늦지 않은 시간이지만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났고, 등산을 한 탓인지 잠이 몰려왔다.그녀는 눈을 감고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보았다. 그리고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가겠다고?”“오기석, 내가 똑똑히 말하는 데 절대 안 돼!”“......”“하하, 좋아. 이리 와. 나 때려 봐!”“......”“퍽!”“......”“오기석, 너 가만히 안 둬!”“......”차우미는 멀리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지만 오랜만에 등산을 한 탓에 온몸이 쿡쿡 쑤셔 일어나지 않았다.이따금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몸싸움하는 소리도 들렸지만 점차 그 소리는 사라졌다.모든 것이 조용해졌고 그녀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연기가 풍겨왔다.숨을 쉴 수 없었다.차우미는 무의식적으로 기침을 하며 눈을 떴다.방 안에는 언제 연기가 피어올랐는지, 그 연기는 방 안 가득 자욱이 퍼져있었다.차우미는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고, 그 냄새는 그녀의 후각을 자극했다.정신을 차린 차우미는 입과 코를 막고 사방을 둘러보았다.방안에 불은 나지 않았지만......차우미는 벽 사이로 스며 나오는 연기를 보고 재빨리 옷을 걸치더니 문을 열고 나가 옆방으로 들어갔다.옆방은 이미 문이 활짝 열렸고, 그녀는 방 안의 상황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녀의 방과 연결된 벽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저녁에 식당에서 밥을 먹고 그릇을 떨어뜨린 젊은 여자가 바닥에 누워있었는데 그녀의 이마는 피로 물들었다.차우미는 깜짝 놀라 안색이 확 변했지만 워낙 차분한 성격이라 우선 주위를 둘러보며 큰소리로 도움을 청했다.“누구 없어요? 여기 불 났어요, 사람이 다쳤어요!”그녀는 사람을 부르며 안으로 들어가 여자의 앞에 쪼그리고 앉더니 여자의 코에 손을 가져다 대고 숨결을 살펴보았다. 숨이 붙어있다.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갑작스러운 화재와, 여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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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그 상황을 발견한 차우미는 망설임 없이 달려가 엎어지려는 병풍을 옆으로 밀어냈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병풍이 넘어졌다.온이샘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외쳤다.“차우미!”“선배 빨리 나가!”그녀는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고통도 잊은 채 온이샘을 잡고 밖으로 당겼다.시끄러운 소리에 다른 방에서 쉬던 사람들도 잠에서 깨어 분분히 밖으로 나와 상황을 확인하더니 황급히 달려갔다.어떤 사람은 신고 전화를 걸었고 어떤 사람은 손을 거들었으며 또 어떤 사람은 불을 끄려고 시도했다.소방차 경찰차 그리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모두 한마음으로 움직였다.차우미와 온이샘은 사고 현장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목격자였고 차우미는 병풍을 밀다가 다쳤기에 여자를 따라 구급차에 올라 병원으로 향했다. 물론 온이샘도 함께 구급차에 올랐다.병원에 도착하자 여자는 바로 응급실로 옮겨졌고 차우미도 손의 상처를 치료하러 갔다.하지만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경험있는 구급대원이 그녀의 상처를 간단히 처리해 주었기에 병원에 도착한 후 의사는 그녀의 화상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다행히 화상이 심하지 않고 제때 처리도 잘했기에 흉터는 남지 않을 것 같네요. 아직 나이가 젊으니 흉터를 남기지 않는 게 좋죠.”차우미의 안색은 고통으로 인해 미세하게 창백해졌다. 급한 상황에서 그녀는 아픈 줄도 몰랐고 나중에야 통증이 전해졌다.특히 이 순간, 그녀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의사의 말을 들은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다행이네요.”그 상황에서 그녀는 생각할 틈이 없었다. 심지어 생각도 안 하고 그녀는 그런 행동을 했다.후회는 없었다.흉터가 남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온이샘은 차우미 옆에서 거즈로 꽁꽁 싸맨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안색은 그녀보다 더 창백했다.‘나 때문에 다쳤어. 내가 지켜주지 못했어.’두 사람은 주의 사항을 들은 뒤에 진료실에서 나갔다.온이샘은 차우미에게 말했다.“일단 앉아서 좀 쉬어. 내가 가서 약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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