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기 전엔 못 놔줘: Chapter 431 - Chapter 440
560 Chapters
제431화
다음 날 이른 아침, 집안의 도우미들이 소파에서 자고 있는 유남준을 처음 본 것은 그때였다.유남준은 소리를 듣고 곧바로 눈을 떴다.“민정아.”“도련님, 저예요, 사모님께서는 아직 안 깨셨어요.”도우미가 대답했다.유남준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알겠으니 이만 나가요. 요즘은 내가 부르기 전까지 안 와도 됩니다.”신림현에 살면서 도우미가 너무 많은 것을 싫어했던 유남준이었다.“네.”도우미는 조심스럽게 나가서 문을 닫았다.유남준은 깨어난 후 잠기가 달아나 박민정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박민정은 임신 후 매일 늦잠을 자고 늦게 일어나는 일이 잦아졌다.어제 윤소현과 함께 오후 물건 고르느라 동행한 탓에 오늘 일어나 보니 벌써 오전 열 시였다.씻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던 중 음식 냄새가 났다.박민정은 유남준이 보이지 않자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고, 부엌 불 앞에서 허둥지둥 바쁘게 움직이는 그가 보였다.유남준은 사업적으로 뛰어나고 피아노도 잘 치지만 딱 하나, 요리만 못했다.박민정은 그가 몇 번이나 손이 델 뻔한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다가갔다.“내가 할게요.”하지만 유남준의 큰 몸은 비킬 생각이 없었다.“걱정 마, 밖에서 사 온 건데 그냥 데우면 돼.”그는 박민정이 자신의 요리가 서툴러서 그런가보다 생각하며 설명했다.어쩐지 요리도 못하는 사람이 오늘은 웬일로 성공했다 싶었다.“그럼 손 데지 않게 조심해요.”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인지라 박민정은 그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사이드 테이블로 가서 기다렸다.그녀는 유남준의 바삐 움직이면서도 어딘가 어색한 뒷모습을 보며 전에 이지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유남준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음식을 차려주었다고 했다.심지어 그녀가 SNS에 올린 사진에서는 마치 요리사가 한 것 같은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하지만 최근 유남준과 함께 지내면서 그가 정말 요리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이지원이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다.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유남준은 이미 모든 음식을 식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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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화
진서연은 박민정에게 회사의 최근 경영 상황을 보고했다. “보스, 이 기세라면 머지않아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제 돌아오세요? 에리가 얼마 전에 저한테 찾아와서 만나 뵙고 다른 곡을 써달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에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이돌 가수에 혼혈이고, 특히 잘생긴 외모로 유명했다.진서연은 매번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이제 곧 새해인데 다음 해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박민정이 답하자 진서연은 조금 아쉬운 듯했다.“알았어요, 그럼 제가 말씀드릴게요.”“그래.”박민정은 진서연과 통화를 마친 후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사실 회사의 업무는 대부분 직원들이 처리하기 때문에 그녀는 대충 파악만 하면 된다.집이 너무 썰렁해서 TV를 켜고 몇 개의 채널을 돌리던 박민정의 시선이 갑자기 연예 뉴스에 고정됐다.한동안 보이지 않던 이지원이 카메라 앞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는 모습이 방송 화면에 잡혔다.“여기 계신 팬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저의 사생활 영상으로 인해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저에 대한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렸어요. 여러분의 이해를 바라는 대신 제가 더 많은 작품을 통해 저를 아끼는 여러분께 보답하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꼭 사람 제대로 보고 쓰레기 같은 남자는 믿지 마세요. 안 그러면 결국 당하는 건…”이지원의 마지막 말로 모든 잘못을 남자들에게 돌렸다.사람들은 그녀가 남의 가정을 파탄 낸 것도 잊은 채 그저 영상이 유출된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는 듯했다.온라인에서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수는 서서히 늘어났다.박민정은 묵묵히 지켜보면서 세상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연예계는 정말 어디까지 밑바닥인지 알 수 없었고 연예인이 무슨 짓을 해도 인터넷에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해받을 수 있었다.유남준이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을 때 박민정은 이미 TV를 끈 뒤였다.그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이지원에 대한 일이 생각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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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3화
방 안은 또다시 정적이 흘렀고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김인우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말을 이어갔다.“형수, 갖고 싶은 건 말만 하면 내가 지금 가서 사줄게.”세상에 공짜가 없고, 하늘에서 떡이 그냥 떨어질 리가 없었다.박민정은 김인우가 분명 좋은 의도가 아니라고 느꼈다.“아니요, 나도 직접 살 돈이 있어요.”김인우는 조금 당황한 듯 말문이 막혔다.“남준아, 뭐 필요한 거 있어?”유남준은 대답 대신 되물었다.“할 말 있어?”김인우는 열정적인 자신과 다르게 시큰둥한 두 사람을 보며 화내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할 일 없으면 와서 같이 놀면 안 돼?”어제 고영란은 박민정에게 오늘도 약혼식장을 어떻게 꾸몄는지 확인하러 가자고 했고, 그녀는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뒤 자리를 떠났다.박민정이 나가자마자 유남준은 김인우에게 아니꼬운 얼굴로 말했다.“할 일 없으면 돌아가.”“남준아, 너 그러면 나 속상하다? 차 한 잔도 대접 안 해줘?”유남준은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고, 김인우는 거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김인우는 막 도착한 터라 금방 떠나고 싶지 않아 소파에 앉아 혼자 TV를 켰다.TV에서 뉴스가 재생되자 그는 울고 있는 이지원의 모습을 보았다.순간 장난기 가득하던 그의 표정이 금세 진지해졌다.“남준이가 저 여자 정신병원에 보내지 않았나, 대체 언제 나온 거야?”그는 더 이상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서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시간 줄 테니 오늘 내로 이지원 내 눈앞에 데려와.”두 시간도 되지 않아 이지원은 다시 진주 정신병원으로 돌아왔고, 검은 눈가리개가 벗겨지자 눈앞이 다시 또렷해졌다.이지원은 자신이 있는 곳이 낯익은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동공이 급격히 작아졌다.“난 미치지 않았어, 빨리 날 내보내 줘!”그녀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병실 문이 열리자 외부의 강렬한 빛이 들어왔고, 김인우가 구두를 신은 채 불빛을 등지고 그녀에게 걸어왔다.사실 박민정보다 이지원을 더 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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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4화
김인우가 나간 후, 방 안은 이지원의 비명 소리로 가득 찼다.그 사람들이 떠나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이지원은 상처로 뒤덮인 피 웅덩이 속에서 눈을 감은 채 쓰러졌다.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왜 좋은 건 다 박민정이 가져가는지, 왜 자기는 자신은 그녀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녀가 누리는 걸 누릴 수 없는 건지.심하게 다친 이지원은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상태로 바닥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김인우의 부하들은 이지원을 죽인 것이 아니라 일부러 힘들게 만든 것이다.그녀는 고통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얼마나 지났을까, 곧 기절하려는 순간 문이 다시 열렸다.이지원은 본능적으로 빌었다.“미안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남자가 반짝이는 가죽 구두를 신고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이지원은 감히 그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머리를 조아렸다.“인우 오빠,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내가 이렇게 빌게.”“이지원, 나야.” 마침내 눈앞에 있던 남자가 익숙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지원은 행동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남준 오빠, 오빠는...”차마 눈이 멀었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상대가 먼저 말했다.“전 유남준이 아니라 유남우입니다. 저번에 만난 적 있는데요.”그때 이지원은 그를 유남준이라고 생각했다.이지원 역시 눈앞의 남자가 유남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것을 방금 알아차렸다.“남준 오빠 쌍둥이 동생이에요?”“네.”“나한테 원하는 게 뭐죠?”유남우 역시 박민정을 돕기 위해 자신을 처리하러 온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우리 거래하는 건 어때요?” 유남우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이지원은 유남우의 온화한 태도 속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그를 두려워했다.“무슨 거래요?”김인우의 표적이 되어 이런 곳까지 오게 된 그녀는 지금 상황보다 더 나쁜 거래는 없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이 유남준을 떠나도록 도와주면 당신을 구해줄게요.” 유남우는 자신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밝혔다.이지원은 유남우가 왜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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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5화
“걱정 마세요. 제 아이는 유씨 가문에 들이지 않을 테니. 가능하다면 유남준 씨를 설득해서 빨리 이혼하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박민정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고영란은 다시 한번 그녀의 말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걱정 마, 남준이가 기억을 되찾으면 내가 이혼하라고 설득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고영란은 박예찬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그녀는 하던 일도 멈추고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고영란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박민정 곁을 떠나자 윤소현은 다가와 짐짓 살가운 척 물었다.“괜찮아?”한편으로는 박민정의 입에서 미래의 시어머니에 대해 알고 싶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 사람들 앞에서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괜찮아요.”그런데 박민정이 딱 한 마디로 대답할 줄이야.윤소현은 굴하지 않고 물었다.“아줌마랑 친해지기 어렵지?”“잘 모르겠어요.” 박민정은 단호하게 말했다.윤소현은 그녀가 자신에게 그렇게 냉정할 줄은 몰랐기에 더 가식 떨지 않았다.“박민정, 난 곧 남우 씨와 결혼할 거고 앞으로 유씨 가문은 남우 씨 손에 들어올 텐데 조금 더 나를 존중해줘야 하지 않겠어?”박민정은 하던 일을 내려놓고 말했다.“전 정말 고 여사님에 대해서는 몰라요. 유남우 씨와 결혼할 사이면 궁금한 것도 그 분께 물어보면 될 것 같네요.”윤소현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유남우에게 물어본 적은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유남우는 겉으로는 상냥해도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그녀는 여전히 유남우가 왜 자신과 약혼을 하겠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박민정으로부터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한 윤소현은 유남우를 찾으러 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유남우를 보게 됐다.유남우의 훤칠한 키가 사람들속에서 눈에 띄었고, 그는 와인 잔을 손에 든 채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윤소현은 그의 시선을 따라가자 꽃꽂이를 하고 있는 박민정을 발견했다.순간 그녀의 마음속에는 나쁜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유남우의 시선이 멀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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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6화
유남준의 눈만 괜찮았으면 유성혁은 아무리 간이 배 밖으로 나와도 박민정에게 치근덕거리지 못했을 것이다.사실 박민정이 처음 유남준과 결혼했을 때 결혼식장에서 박민정에게 첫눈에 반했다.보기 드물게 너무 예쁜 여자였다.결혼을 하니까 오히려 다른 느낌이 있었다.“유 선생님, 자중하세요.”박민정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그녀가 부끄러워서 그런다고 생각했는지 유성혁은 물러서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지금의 유남준은 폐인이야. 당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몰래 내 여자가 된다면 내가 잘해줄게.”박민정은 정말 유씨 가문에 약혼식 준비 중에 사촌의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할 괴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녀는 더 이상 상대하기 싫어 그냥 자리를 떴다.그러나 유성혁은 굴하지 않고 그녀를 따라가 한 손으로 그녀를 끌어당기며 손을 대기 시작했다.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고 박민정은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아 팔을 뿌리쳤다.“저리 가요!”유성혁은 순간적으로 화를 냈다.“어디서 깨끗한 척이야? 내가 좋아해 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안 그러면 평생 유남준 그 폐인이랑 살아야 하잖아!”이 소동으로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다.그중에는 도우미도 있었고 먼 친척들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구경만 할 뿐 도와주지 않았다.이제 유씨 가문의 실세가 누구인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유성혁은 아들이 있는 유일한 세대였고 어르신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그에게 밉보이면 국물도 없이 쫓겨날 것이다.여자인 박민정은 당연히 유성혁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몇 번을 거듭한 끝에 결국 그에게 제압당했다.박민정은 이런 상황이 가장 두려웠다. 게다가 모두가 보는 앞이었지만 다들 구경만 할 뿐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유남우도 일이 있어서 부름을 받고 나갔고 유씨 가문으로 오는 거라 정민기를 데려올 수도 없었다.술을 마신 유성혁은 주변에 나서서 박민정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자 더욱 대담하게 굴었고 곧바로 박민정의 옷으로 손을 뻗었다.박민정의 옷이 찢어지려는 순간, 여러 사람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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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7화
유남우가 말을 하려는데 유남준이 곧장 옆을 스쳐 지나갔다.그는 곧바로 방금 전까지 남아 있던 도우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성혁 도련님께서 술에 취해 큰 사모님을 추행했는데, 도련님이 강물에 던져버렸어요.”박민정을 추행했다고?유남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아무도 안 말렸어요?”도우미는 고개를 저으며 온화한 유남우를 향해 말했다.“아무도 감히 말리지 못하고 다들 겁에 질려 있었어요.”“소현이는요?”도우미는 머리를 긁적였다. “못 봤나 보네요.”유남우는 단번에 깨달았다. 못 봤을 리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애초에 윤소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약간의 혐오감까지 생겼다.두 사람이 계획하고 있던 약혼 파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도 못 본 척한다고?...박민정은 유남준을 따라 두 사람이 머물던 곳으로 돌아왔다.유남준은 아직 그녀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는 걸 알고 계속 그녀를 안아주었다.“앞으로는 그런 곳에 가지 말고 집에 있어.”박민정은 조금 진정이 됐는지 이렇게 답했다.“고마워요.”오늘 유남준이 오지 않았다면 유성혁은 어쩌면 더 심한 짓을 했을 것이다.유남준은 그녀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우린 부부라는 걸 기억해. 네 남편으로서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이 말을 들은 박민정은 지난번 유남준이 누군가를 시켜서 자신을 미행하고 촬영한 것을 용서하기로 했다.“그럼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줘요. 그렇게 빙빙 돌려서 비꼬듯 말하지 말고.”그녀가 자신을 용서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유남준은 곧바로 답했다.“알았어, 약속할게.”말을 마친 박민정은 유남준의 품에서 일어나 침실로 돌아가 휴식을 취할 준비를 했다.유남준도 덩달아 일어서며 그녀를 따라가려고 했다.“그래도 거실에서 자요.” 박민정이 말하자 유남준은 다소 무력한 표정으로 문 앞에 멈춰 섰다.한편 얼어붙은 강물에 유성혁은 옷이 벗겨진 채 덜덜 떨며 입술마저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너희들, 내가 다 기억할 거야! 딱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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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8화
은정숙은 박민정에게 요즘 몸이 많이 좋아졌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박민정은 이번엔 윤우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곳에 있던 간호사는 아이가 잠들었다고 말했다.박예찬에게 전화를 걸자 막 연결된 화면 너머 박민정은 화려하게 꾸며진 아이 방을 보았다.“예찬아?”박예찬은 꼬마 어른처럼 반듯한 정장을 입고 카메라 앞에 나타났다.“엄마, 미안해요. 아까 너무 바빴어요.”“지금 하랑 이모 집에 있어?” 박민정이 묻자 박예찬은 고개를 끄덕인 뒤 이렇게 덧붙였다.“정확히 말하면 하랑 이모 아빠가 저한테 집을 선물해 줬어요.”조석천은 예찬이를 유난히 좋아해서 하늘의 별이라도 따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이제는 아이와 체스를 두는 재미에 푹 빠진 터라 예찬이가 박민정과 통화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석천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예찬아, 누구랑 통화하는 거니? 얼른 와서 할아버지랑 체스 두자.”솔직히 요즘 너무 바빴다.조석천은 그와 체스를 두고 책을 보는 것도 모자라 다른 어르신, 사모님들이 모인 곳에 데려가서 자랑을 하곤 했다.박예찬은 컴퓨터를 닫고 거실로 갔다.조석천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턱을 치켜들고 이미 지고 있는 장기를 바라보았다.“예찬아, 너 할아버지한테 거짓말한 거 아니지? 듣기로 요즘 휴대폰으로 체스를 둘 수 있다고 들었는데, 휴대폰으로 나와 체스를 둔 거니?”박예찬과 벌써 열 판을 두었지만 그는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네 살도 안 된 어린아이에게 졌다는 것은 정말 창피한 일이었다.“할아버지, 그래도 납득이 안 되시면 다시 한번 해요. 제 몸을 수색하셔도 됩니다.”박예찬은 사실 할아버지에게 양보하고 싶었지만 할아버지가 워낙 예리해서 자신이 일부러 봐주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체스를 두는 기사는 그래도 어느 정도 경기 정신이 있어야 했다.조석천은 손자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기가 사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휴대폰 하나 들어갈 자리 없었고 체스를 빨리 두는 탓에 커닝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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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9화
조하랑은 조석천과 김훈이 단 몇 마디로 자신의 인생 대사를 결정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이제 거절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미리 말하는데 예찬이는 그 사람 아들이 아니에요. 그때 가서 쫓아내도 날 원망하지 마세요.”“쓸데없는 소리. 내일 예쁜 옷이나 사 입고 이만 가 봐. 나랑 예찬이 체스 두는 거 방해하지 말고.”조석천은 딸은 내다 버려도 그만이지만 똑똑한 손자를 제대로 키우고 싶었다.조하랑은 얼굴이 잿빛이 된 채 자리를 떠났다. 박민정이 이 사실을 모를까 봐 박민정에게 따로 전화를 걸어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유성혁의 사건으로 박민정은 더는 일을 도우러 가지 않았고 고영란도 뭐라 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집안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이었으니까.유성혁은 여전히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대외적으로는 실수로 강에 빠진 것이라고 말했다.박민정은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유남준에게 물었다.“이제 김인우 씨 기억나요?”유남준은 계속해서 거짓말을 했다.“잘 기억이 안 나.”“기억나면 나는 거고, 안 나면 안 나는 거지 기억이 잘 안 난다는 건 무슨 말이죠?” 박민정은 진지하게 말했다. “제가 보기엔 김인우 씨는 좋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온 마음을 다하는 조하랑이 감정 기복이 심하고 배은망덕한 김인우를 만나면 손해 볼 게 분명했다.“응, 내 생각도 그래.”유남준은 곧바로 거들었다.멀리 김씨 저택에 있던 김인우가 재채기를 했다.그래도 김인우의 친구인 유남준이 자신의 말에 동조할 줄 몰랐던 박민정이 계속해서 말했다.“그럼 하랑이를 괴롭히면 어떡해요?”유남준은 고민도 하지 않고 말했다.“걱정하지 마, 그럴 일은 없을 거야.”조하랑은 박민정의 친구인데 김인우가 괴롭히게 놔둘 그가 아니었다.“왜 그럴 일이 없어요? 그 사람 잘 알아요? 아까는 기억 안 난다면서요?”말문이 막힌 유남준이 곧바로 둘러댔다.“느낌이 그래.”늘 실질적인 능력으로 일을 처리하던 유씨 가문의 책임자가 이제는 직감에 의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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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0화
유명진은 박민정처럼 참한 여자가 자기 집안으로 시집온 게 안타까웠다.하지만 집안일에 끼어들기 싫어하는 그였기에 유남준과 고영란은 집안의 모든 일을 책임지고 있었다.“이제부터 남준이랑 둘이 잘 지내.”말재주가 없었던 유명진은 진심을 담아 말했고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유명진이 간 뒤 박민정의 친엄마 한수민과 남동생 박민호가 미리 도착했다.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두 번째 남편 윤석후의 팔짱을 낀 한수민은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아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오늘 딸이 약혼한다는 말을 전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약혼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한수민은 다른 사람들의 축하 속에도 이렇게 조롱했다. “유씨 가문과 결혼하는 건 우리에겐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은데 민정이가 감당할지 모르겠네요. 감당하지 못하면 이혼하겠죠?”그런데 그 말이 예언이 되어 그들이 정말 이혼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다.유남준은 어디로 갔는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박민정은 조하랑과 박예찬이 오기를 기다렸다.조하랑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는데, 이상하게도 예찬이는 오지 않았다.“하랑아, 예찬이는 어디 있어?”박민정은 조금 걱정이 되었고 조하랑은 등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아빠가 자랑하려고 데려갔으니까 잠깐은 못 올 것 같아.”남들에게 예찬이를 자랑할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아버지를 너무 잘 아는 조하랑이었다.“참, 너희 집 그분은?” 조하랑이 주위를 둘러봤지만 유남준은 보이지 않았다.사실 오늘 이 자리에 그녀는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유씨 가문 같은 막강한 재벌가 앞에서 조씨 가문은 고래 앞의 새우였다.하지만 이제 곧 김인우와 약혼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 덕을 보게 된 것이다.“조하랑 씨 맞죠? 우리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조하랑과 인맥을 쌓으려는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했고 조하랑은 그들을 상대하면서 다소 미안한 듯 박민정을 돌아보았다.박민정이 괜찮다며 가라고 해서야 조하랑은 그 귀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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