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의 모든 챕터: 챕터 31 - 챕터 40
124 챕터
제31화 네 약혼자 아이를 임신했어
다음날, 지민건이 주현아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그 역시 많은 사람을 걸쳐 주현아의 연락처를 얻었다.주현아는 지민건에 대해 들은 바가 있다.최근 그의 회사가 줄곧 곤경에 처해있고 파산할 날이 머지않다고 했다.주현아는 이런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이제 막 전화를 끊으려 할 때 지민건의 목소리가 들렸다.“현아 씨는 제 정보에 관심을 가질 텐데요. 현아 씨 약혼자랑 관련된 일이에요.”주현아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지민건은 돈이 없어 주현아더러 고급스러운 클럽에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VIP룸을 예약하라고 했다.‘약혼자와 관련이 있다’라는 상대의 그 한 마디가 주현아는 호기심을 확 사로잡았다.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지민건의 요구를 승낙한 후 약속 장소로 떠났다.주현아는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 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끼고 나갔다.종업원의 안내를 받으며 문을 열고 지민건과 약속한 룸으로 들어간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갔다.“지민건 씨, 전화로 말한 제 약혼자와 관련된 일이란 게 대체 뭐죠?”지민건은 오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했던지라 옅은 미소를 지으며 크라프트 봉투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놨다.주현아는 애초에 설영준의 마음을 사로잡을 거란 자신이 없었다.그와 연관된 일이라면 유난히 예민해지고 조심스러울 따름이다.이제 막 크라프트 봉투를 열려던 찰나, 지민건이 다시 가져갔다.그는 마치 주현아를 놀리는 듯싶었다.바짝 긴장한 그녀를 보니 한꺼번에 통쾌하게 건네고 싶진 않았다.“이봐요!”“조건부터 말할게요. 200억 내놔요.”지민건은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했다.그는 지금 배상금 180억을 물어야 하고 나머지 20억은 자신에게 주는 정신적 손해배상금이다.주현아는 기가 막혀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지민건 씨, 이 안에 뭐 금이라도 들어있나요? 부르는 게 값인가요?!”지민건은 눈썹을 치켰다.“어떤 여자가 당신 약혼자의 애를 임신했어요. 이제 곧 낳을 예정이래요!”“네?”“아직 설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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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유산
송재이는 마치 긴 긴 꿈을 꾼 것만 같았다.설씨 일가.그날 설도영은 또 강제로 피아노를 배우게 되자 한창 위층에서 심술을 부리며 한사코 내려오지 않았다.오서희는 설도영을 찾으러 올라갔고 텅 빈 거실에 송재이 홀로 피아노 앞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따분하게 앉아있었고 창밖의 뜨거운 햇살이 집안에 스며들어 그녀의 몸을 비췄다. 순간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차올랐다.“실례지만 누구신지...”이때 문득 중저음의 감미로운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정하면서도 예의를 갖춘 말투였다.송재이는 어렴풋이 고개 들어 아래에서 위로 쭉 훑어보았더니 멀지 않은 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잘생긴 얼굴에 기품이 차 넘치고 눈가에는 여자를 매혹시킬 고고한 매력이 뿜어져 나왔다.그 순간, 그녀는 마치 무언가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그 뒤로 뭔가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당황해하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소개를 했다.“안녕하세요, 송재이입니다. 오서희 사모님께서 오늘부터 피아노 과외를 해달라고 부탁하셔서요...”그때 그녀는 살짝 겁에 질린 채 소녀의 천진난만함과 솔직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고 두 눈동자는 한없이 맑고 깨끗했다.그게 바로 송재이와 설영준의 첫 만남이다.나중에 설영준이 몹쓸 짓과 몹쓸 말을 수없이 해왔지만 첫 만남이 그토록 아름다웠던지라 그녀의 마음이 찢어지고 눈물이 흘러내릴 지경이었다.그 첫 만남으로 그녀는 평생을 지체했다.22살 되던 그해, 송재이는 사랑의 시련을 맞닥뜨렸다....송재이는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어렴풋이 눈을 떠보니 어두컴컴한 작은 방 안에 있었다.그녀는 힘겹게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이곳은 병원 병실이었다.문 앞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두 사람이 나란히 들어왔는데 뜻밖에도 주현아와 지민건이었다!‘저 둘이 왜 동시에 여기로 온 걸까?’송재이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일어나 앉으려 했는데 그제야 손에 수액을 맞고 있는 걸 발견했다.대체 무슨 일이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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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침울하고 무거운 마음
한편 이번 일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지민건은 소원대로 주현아와 약속한 금액의 수표를 받았다.300억이라!그는 그중 일부로 배상금을 물고 나머지는 남겨서 프로젝트에 임했다.비즈니스 업계의 모든 이가 그의 인생이 끝장일 거라고 여길 때, 뜻밖에도 지민건은 재기에 성공했다.다만 또다시 사람들 앞에 나타난 지민건은 전보다 훨씬 겸손해졌다.또한 매번 설영준과 동시에 참석해야 할 장소는 갖가지 이유를 둘러대며 회피했다.지민건은 설영준을 매우 증오한다.그러니까 주현아와 손을 맞잡고 그딴 짓을 계획했다!이젠 설영준의 아이를 유산 시켜 속으론 쾌재를 불렀지만 다시 그를 마주하자니 상대의 강렬한 카리스마에 숨 막히듯 마음이 찔리고 저도 몰래 비겁하게 머리를 숙이게 된다.그는 이렇게 심적으로 시달리는 게 너무 힘들어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해 다녔다....송재이는 아무런 조짐도 없이 아이를 유산 당했다.그녀는 심지어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다. 그녀 배 속의 아이는 설영준의 아이였으니까.게다가 이건 사생아였다!일단 경찰들이 개입하면 아이 아빠에게 연락할 게 뻔하다.그럼 한때 그녀가 임신한 사실과 이 아이를 낳고 싶었던 사실까지 전부 폭로되는 게 아닌가?설영준이 과연 무슨 반응을 보일까?분노? 증오? 혹은 경주에서 그녀를 매장시켜 더는 이 바닥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닐까?송재이는 자세히 생각해봤지만 설영준은 기껏해야 그녀의 몸에 살짝 미련을 가질 뿐 단 한 번도 그녀와 결혼할 생각이 없고 아이를 낳는 건 더 말할 가치도 없었다.나중에 아이가 유산 당한 걸 알게 되면 아마 안도의 한숨을 내쉴지도 모른다.드디어 아무 걱정 없이 그와 조건이 비슷한 약혼녀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게 될 테니까.그땐 주현아를 칭찬하기도 바쁠 테지!송재이는 생각할수록 절망감에 휩싸였다.그녀는 이토록 침울하고 무거운 마음을 안고 일주일을 보냈다.단장은 원래 오랫동안 병가를 낸 그녀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하지만 일주일 후 다시 오케스트라에 나타난 그녀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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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관대할 수 없어
송재이는 다시 매일 오케스트라에 가서 리허설을 했다.이날 송재이는 금방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에서 옷을 갈아입다가 마침 위층에서 담배를 피우고 내려오는 연지수와 마주쳤다.연지수가 물었다.“이제 곧 수석 공모를 앞두고 있는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휴가를 내는 거죠? 너무 자신만만한 거예요 아니면 자포자기하는 거예요?”평소 같으면 송재이는 무조건 그녀와 말싸움을 벌일 테지만 요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유산의 아픔이 아직 마음에 남아있고 그리 쉽게 가셔지지 않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연지수도 저기압인 송재이를 눈치채더니 미간을 구겼다.“요즘 우리 오케스트라에서 투자를 유치하고 있던데 단장님이 이 일로 정신없이 보내고 있어요. 시간 내서 단장님 앞에서 잘 좀 표현해 봐요. 어쩌면 다음에 자본가들과의 식사 자리에 우리를 데리고 갈지도 모르잖아요. 만에 하나 횡재가 떨어져서 어느 부자의 눈에 들지도 모르잖아요...”“대체 무슨 만에 하나가 그렇게 많아요?”송재이는 지금 기분이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시큰둥하게 그녀에게 반박했다. 시선조차 안 준 채 그녀에게 쏘아붙였다.“부자의 눈에 들면 그다음은요? 몇백억 투자해서 수석 피아니스트로 만들어준대요? 오케스트라의 일인자가 된대요? 드라마 좀 그만 봐요!”전에는 항상 연지수가 이상야릇한 말투로 송재이에게 쏘아붙였지만 오늘은 처음 송재이가 이토록 공격적인 말투로 그녀에게 반박했다.연지수는 평상시에 말재주가 뛰어나더니 지금 이 순간, 말문이 턱 막히고 송재이가 수상하다는 걸 느꼈다.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송재이는 옷을 다 갈아입고 가방과 핸드폰을 챙겨서 자리를 떠났다.송재이는 문밖을 나서면서 카톡을 확인했다.민효연의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송 선생님, 오늘 과외하러 와주실 수 있나요? 연우가 선생님을 엄청 그리워해요.]송재이는 병원에 입원한 며칠 동안 오케스트라에 병가를 냈을 뿐만 아니라 민효연한테도 휴가를 냈다. 그때 민효연의 답장은 이랬다.[푹 쉬어요.]송재이는 민효연의 말 속에 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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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그녀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연우 아빠입니다.”도정원은 중저음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하며 그윽한 눈길로 송재이를 쳐다봤는데 은근 살펴보는 것 같기도 했다.한편 옆에 있던 민효연은 도정원이 자신을 ‘연우 아빠’라고 소개할 때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그녀는 대놓고 경멸하듯 코웃음을 쳤다!민효연은 머리를 갸웃거리고 애써 감정을 짓누르고 있었다.송재이는 그녀가 줄곧 제 팔을 꼬집는 걸 주의 깊게 살펴봤다.2층에서 은은한 인기척이 들려왔다.송재이가 머리를 들자 연우가 가정부와 함께 방에서 나왔다.도정원을 본 아이는 정신이 흐리멍덩해졌다.연우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결국 가정부가 움츠리고 앉아 아이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그제야 연우도 천천히 앞으로 다가왔다.계단을 반쯤 내려왔을 때 도정원이 늘씬한 다리로 성큼성큼 나아가 연우를 덥석 끌어안았다.연우는 그가 낯설지는 않지만 또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니다.아이는 새하얀 팔로 이 남자의 목을 엉성하게 안았다.송재이는 전에 몇 번 이리로 왔었지만 도정원은 오늘 처음 본다.민효연도 연우의 아빠가 어디 갔는지 말한 적이 없다.오늘 보니 도정원은 아빠로서 평소에 연우를 그다지 보살피고 신경 써주지 못한 듯싶었다.연우의 엄마는 세상을 떠났고 이 아이는 자폐증을 앓고 있다.외할머니인 민효연이 아무리 잘해줘도 연우의 부모를 대체할 순 없다.이렇게 되니 민효연이 도정원에게 시큰둥하고 원한이 맺혀있는 것도 가히 이해가 됐다!민효연은 결국 교양이 있는 사람이다.연우의 면을 봐서라도 부녀가 함께하는 걸 막지 않았다.연우 앞에서 그녀는 도정원에게 그리 차갑지도, 또 그리 살갑지도 않은 태도였다.도정원은 연우와 한참 친하게 지냈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아이가 처음엔 좀 무뚝뚝하더니 뒤로 가면서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었다.연우는 도정원의 넥타이에 새겨진 꽃무늬가 신기한지 작은 손으로 줄곧 잡고 있었다.넥타이가 다 구겨졌지만 도정원은 전혀 불쾌한 기색이 없었다.과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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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도정원
송재이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티슈를 건네받으며 애써 담담한 척 눈물을 닦았다.“고마워.”그녀는 왜 울었는지 해명하지 않았고 심지어 방금 운 사람이 자신이 아닌 척했다.곧장 돌아앉더니 또다시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렸다.설영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려던 말을 멈췄다.이때 주방에서 갑자기 컵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민효연이 안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며 화를 냈다!도정원이 뒤따라오며 말했다.“사장님...”민효연은 고개도 안 돌린 채 2층으로 올라갔다.그녀는 반쯤 올라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 돌려 도정원에게 말했다.“연우 못 데려가. 그건 꿈도 꾸지 마.”그녀는 거의 이를 악물고 이 말을 내뱉었다.송재이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도정원이 연우를 데려가려 한다고?’그 시각 도정원의 눈빛이 한없이 짙어졌다.그는 1층 계단에 서서 머리를 살짝 들고 대답했다.“저 연우 아빠예요. 연우는 제 딸이라고요.”“딸?”민효연이 눈썹을 치키고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을 더 주었다.도정원이 온 뒤로 민효연은 자꾸만 쉽게 화내고 흥분한다.그녀는 고개 돌려 가정부를 쳐다봤다.가정부는 옆에 서서 식겁한 채 몸을 벌벌 떨었다.민효연이 눈치를 주자 가정부는 황급히 앞으로 나아가 연우를 안고 2층에 올라갔다.결국 아래층에는 어른들만 몇 명 남게 됐다.민효연은 자꾸만 흘러내리는 숄을 움켜잡고 계단을 내려왔다.그녀는 비록 여자이지만 나이와 연륜을 무시할 순 없다.민효연은 강렬한 포스를 내뿜으며 도정원을 빤히 쳐다봤다.“너도 부모의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아나 보네? 네 아이만 네 아이야? 그럼 내 아이는?”민효연은 언성을 높이지도 않고 아주 담담하게 하지만 질문 조로 정색하며 쏘아붙였다.송재이는 그녀가 말하는 ‘아이’가 주현아는 아닐 거라고 추측했다.주현아는 민효연의 둘째 딸이다.전에 설도영에게 들었는데 주씨 일가에 원래 큰딸이 한 명 더 있다고 한다.애초에 설영준과 혼약을 맺기도 했었다.다만 나중에 어떻게 된 영문인지 혼약이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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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관계가 여기서 그치지 않아
민효연의 별장은 교외에 있다.문밖을 나선 송재이는 한참 걷고 나서야 겨우 택시를 잡았다.늦가을의 밤은 늘 그렇듯 조금 쌀쌀했다.바람이 일자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주변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날을 세어보니 올해 구정은 2월이었다.이젠 고작 3개월밖에 안 남았다.이전 같으면 송재이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올해 그녀는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렸고 첫 아이까지 유산했으니 인생의 변화무쌍함과 처량함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고작 25살 어린 나이인데...동년배의 유은정은 갓 데뷔한 신인 아이돌의 사진과 영상을 보낸다거나, 신상 립스틱 색상을 의논하고 있는데 송재이는 정작 이런 것들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하지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절대 이렇지 않았다.송재이는 하이힐을 신고 평탄한 돌담길을 걸었다.그녀는 길을 걸을 때 바닥을 내려다보는 습관이 있어 고개를 반쯤 숙였다.가끔 바람이 불면 얼굴 양옆의 머리가 가볍게 흩날린다.그러면 그녀는 자연스럽게 귀 뒤로 흘려넘긴다.사실 송재이 본인은 자신의 이 동작이 매우 여성스럽다는 걸 전혀 모른다.그녀와 가까운 거리를 사이에 두고 차 한 대가 줄곧 천천히 그녀를 따라왔다.도정원은 조수석에 앉아 한 손을 차창에 걸치고 있었다.그도 똑같이 송재이를 한참 응시했다.그러다 결국 머리를 돌려 설영준을 바라봤다.“송 선생님이랑 알고 지낸 지 얼마나 되셨어요?”설영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3년이요.”“두 분 무슨 사이에요?”“연우 가르치기 전에 제 남동생 피아노 선생님이었어요.”“그리고요?”도정원이 눈썹을 들썩거리며 보기 드문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설영준과 송재이의 관계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걸 바로 알아챈 듯싶다.설영준은 그를 힐긋 쳐다봤다.도정원은 양손을 들어 항복하는 자세를 하며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그는 곧바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송재이 씨를 처음 봤을 때부터 살짝 눈에 익었어요...”“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이런 방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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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싫증
송재이는 탐구하는 듯한 설영준의 눈빛을 바로 느꼈다.잠시 후에야 그가 천천히 질문했다.“잘 지냈으면 좋겠어 못 지냈으면 좋겠어?”“뭐? 아니 난 그게 아니라...”그녀는 묻자마자 바로 후회돼서 이 화제를 대충 얼버무려 끝내려고 했다.설영준은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그는 다시 시동을 걸고 핸들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나랑 현아 당연히 잘 지내지. 안 그러면 약혼 준비할 필요도 없잖아...”송재이의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설영준은 계속 말을 이었다.“그러는 넌? 나랑 끝내고 지민건 외에 또 다른 남자랑 데이트는 해봤어? 어떤 사람을 원하는 건데? 말해봐 봐.”설영준의 이 물음에 송재이는 진짜 진지하게 고민해봤다.사실 그녀의 요구도 그리 높은 건 아니다. 상대가 진솔하고 그녀와 경제력이 비슷하다면 앞으로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어 서로 도와주고 모든 일을 함께 상의하며 살아갈 수 있다.다만 이런 요구들을 입밖에 내뱉지 않았다. 얼마 전 그녀는 아이를 한 명 유산했으니까.다른 남자와 잔 거랑,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건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지금 송재이가 고려해야 할 것은 나중에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의 과거를 말해줄 필요가 있느냐 없느냐이다.그녀가 솔직하게 고백했을 때 과연 이런 과거를 받아들이는 남자가 존재하긴 할까? 한때 딴 남자의 아이를 가졌던 여자를 여자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송재이는 문득 짜증이 밀려왔다!설영준을 만난 이후로 달콤했던 추억과 아픈 추억 모두 그의 의지대로 끌려가는 것 같았다.이별한 후에도 설영준은 아무렇지 않았으나 그녀는 몸과 마음이 다 너덜너덜해지고 나중에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문제가 돼버렸다.“지금은 내가 누군가를 고를 처지가 아니야. 상대가 날 싫어하는지부터 봐야 해!”송재이가 홧김에 말을 내뱉었다.그녀는 이젠 설영준에게 원망도 있고 증오도 있으며 내가 갖지 못한 이 사람을 누군가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아쉬움과 미련도 남아있다!“왜 널 싫어하는데?”차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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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밀당?!
설영준은 그녀가 차에서 내린 후에야 고개를 돌렸다.그는 송재이의 뒷모습이 가로등 불빛 속에서 멀리 사라질 때까지 빤히 쳐다봤다.다 버리라고 한다. 그녀가 물건을 전부 버리라고 한다!역시 전에는 설영준이 그녀를 만만하게 본 듯싶다. 이 여자는 정말 미련 따위 없는 쿨한 여자였다!하지만 방금 송재이가 눈물을 흘렸는데?이토록 치밀한 여자가 또 있을까? 아마 둘도 없겠지!...이번 만남으로 설영준은 왠지 자꾸 송재이가 어딘가 달라진 것 같았다.딱히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느낌이었다.민효연 옆에서 연우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때 갑자기 뜬금없이 눈물을 흘릴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설영준은 여자가 우는 걸 싫어한다.특히 송재이가 우는 걸 싫어한다.그러니까 송재이는 방금 그의 앞에서 밀당을 한 걸까? 일부러 흘리는 거였네!‘좋아, 아주 완벽해!’설영준은 코웃음 치고 담배를 꺼내 불을 지폈다.송재이가 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줄곧 참았었다.이젠 혼자 남았으니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빨았다.차 안에 불을 켜지 않아 조금 어두웠다.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그의 얼굴을 스치며 어둑어둑하게 지나갔다.이때 휴대폰이 울렸다.설영준은 고개 숙여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봤다.몇 초 동안 침묵한 후 그는 문득 입꼬리가 올라갔다....송재이는 항상 오케스트라의 수석이 되고 싶었지만 명액은 단 하나였다.휴식할 때 유은정과 함께 밥 먹으면서도 이 얘기를 했었다.유은정이 그녀를 응원했다.“걱정 마! 내가 볼 땐 연지수 실력이 너보단 약해. 비록 나도 음악을 잘 모르지만 수석 자리는 반드시 네가 차지할 거야!”송재이는 알고 있다. 유은정은 지금 친구로서 그녀를 다독여주고 있었다.아무 조건 없이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실질적인 도움이 없어도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법이다.밥을 먹던 와중에 유은정은 문예슬에게 걸려온 긴급 전화를 받았다.한편 유은정은 잠시 듣더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통화를 마친 그녀는 송재이를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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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임신과 유산
단장은 카톡으로 이렇게 말했다.[이번 공모 명액이 하나뿐이고 네가 이 자리에 아주 적합하다는 걸 알아. 다만 지금 어떤 분이 우리 오케스트라에 400억의 광고 비용을 투자하고 1년 동안 후원도 해주겠대. 조건은 단 하나, 한 사람을 지목해서 수석 자리에 올리겠대. 네가 썩 내키지 않는 거 알아. 장담할게, 다음엔 꼭 너를 수석 자리에 올릴 거야, 무조건!]400억이란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여 수석 자리에 올리려는 사람은 단연코 그녀가 아니었다.단장도 마음이 찔렸던지 감히 직접 말하진 못하고 카톡을 보내왔다. 다음번엔 꼭 송재이에게 기회를 준다면서 화난 마음을 달래주었다.‘웃기지도 않네!’송재이는 웃으며 머리를 들었다. 이때 마침 연지수가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단장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다.송재이를 본 그녀는 요염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거만을 떨었다. 두 눈에는 송재이를 향한 도발이 가득 차 있었다.주변 사람들은 두 여자를 몰래 살펴봤다.송재이와 연지수의 경쟁은 이미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다만 오늘 결과가 나오자 사람들은 여전히 놀랍고 의외일 따름이었다.단장은 송재이에게 단독으로 카톡을 보냈다.하지만 누군가가 연지수를 후원해준다는 소식은 오케스트라에서 널리 퍼졌다.다들 연지수가 어느 사장님의 마음을 꿰찼는지 의논이 분분했다.뒷배가 아주 막강해 보였다.송재이는 줄곧 참으며 아무 말이 없었다.점심시간, 그녀가 아래층 식당에서 올라올 때 마침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연지수와 마주쳤다.“이번엔 아쉽게 됐네요. 하지만 저도 결국 실력으로 따낸 거니 재이 씨는 다음 기회를 기다려봐요!”송재이는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고 옆을 스쳐 지나갔다.연지수는 지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송재이의 어두운 표정을 보니 온몸이 짜릿했다!게다가 가장 중요한 건 그녀를 위해 광고를 투자하고 후원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직 단장과 연지수 본인만 알고 있다는 점이다.연지수는 오케스트라에서 송재이를 이겼을 뿐만 아니라 남자 방면으로도 완벽하게 이겨버렸다!...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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