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의 모든 챕터: 챕터 51 - 챕터 60
124 챕터
제51화 진실과 거짓 그 어딘가
송재이는 순간 구분이 잘되지 않았다. 설영준이 말한 ‘내 사람’은 그녀를 말하는 건지 아니면 그녀가 임신한 아이를 말하는 건지 말이다.재벌은 늘 그렇듯 아이를 중시했다.결혼 후든 전이든 아이만 남기는 경우가 태반이었다.송재이는 설영준의 품에 안겨 작은 소리로 울먹였다.정신을 차린 설영준이 송재이를 더 꼭 끌어안았다.지금 설영준의 마음은 부드럽기 그지없었고 말투도 온화함이 극을 달했다.“저번엔 내가 오해했어. 아무리 화난다 해도 그런 말은 하지 마. 나는 너 그런 말 하는 거 싫어.”설영준은 이렇게 말하며 그녀를 안은 채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어둠 속에서 엘리베이터 무전을 찾아 통화 버튼을 여러 번 눌렀다.수리하는 사람들이 오기 전에 송재이는 계속 설영준의 품속에 안겨 있었다.송재이는 울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나를 얕잡아 보면서 방탕하고 음란한 여자라고 생각했잖아.”“아니야.”“아니긴, 맞아...”“...”설영준은 말문이 막혔다.송재이의 울음에서 진실과 거짓은 얼마 정도 될까?심장이 벌렁대는 건 확실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송재이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지나간 화제를 다시 이어갔다.“지민건을 처리하는 건 나도 반대하지 않을게. 근데 은정이 아버지가 전에 지민건의 회사에 투자한 돈이 있거든? 지금 이런 상황에 그 돈이 수포가 되면 어떡하지?”말이 끝나기 바쁘게 엘리베이터 안은 숨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설영준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송재이는 분위기가 딱딱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송재이는 아무 말 없이 설영준이 대답하기를 기다렸다.결국 설영준이 이렇게 말했다.“친구 아버지 이름이 뭐라고?”“유중건.”“알았어.”설영준이 덤덤하게 말했다. 이 말을 뒤로 설영준은 더는 말이 없었다.송재이는 설영준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하여 입을 뻐끔거리며 뭔가 말하려는데 설영준이 말을 이어갔다.“유 대표님한테 프로젝트 하나 줄게. 지민건 회사에 얼마를 투자한 거야?”“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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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감히 설영준에게 얕은수를 써
숨을 헐떡이던 송재이가 고개를 들더니 설영준이 한 말을 곱씹어봤다.설영준은 송재이가 알아듣지 못했음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덧붙였다.“침대에서 뭐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힘들다고 앵앵거리잖아.”설영준은 이렇게 말하며 송재이의 손을 놓고는 성큼성큼 테이블로 향했다.송재이는 그제야 설영준이 잠자리에서 보여준 그녀의 표현을 못마땅해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쳇, 그래도 3년이라는 시간을 견딘 거 보면 영준 씨도 이런 타입 좋아한다는 거야.”송재이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설영준이 이를 듣고는 고개를 들더니 차갑게 웃었다.“맞아. 내가 원래 병약한 거 좋아해.”병약하다는 말에 송재이는 원래 발끈해야 맞았다.하지만 그 뒤로 따라오는 ‘좋아한다’는 말에 송재이는 마음이 간질거렸다.송재이는 입술을 앙다물더니 반박하려 했지만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설영준은 매번 그랬다.약 올리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 그녀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러니 매번 여러 감정이 뒤섞여 화가 나도 쏟아낼 수가 없었다.송재이는 아직 사무실 입구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혼자 씩씩대는 모습이 어딘가 풋풋하면서도 귀여웠다.설영준은 난감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는 송재이가 답답했다. 그런 송재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설영준이 끝내 입을 열었다.“아까 엘리베이터에서 설마 일부러 그런 거야?”“...”송재이가 초롱초롱한 눈을 크게 뜨고는 이렇게 물었다.“뭐가?”“저번에 내가 너 오해해서 미안해하고 있는 거 알고 있었잖아. 그리고 아까 같은 돌발 상황에서 약하게 나오면 어떤 요구든 내가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거 알고 그런 거 아니야?”안 그래도 설영준은 송재이에게 미안했고 보상해 주고 싶었기에 눈에 훤히 보여도 그냥 넘어갔다.평소에 설영준에게 좋게 좋게 말해도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송재이는 하필 그런 돌발 상황에서 말했다. 이에 설영준은 송재이가 얕은 수로 그를 이용하려 든다는 느낌이 들었다.감히 누가 천하의 설영준에게 얕은수를 쓸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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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옷 벗어
송재이는 그 여자를 ‘약혼녀’라고 불렀지만 설영준은 반박하지 않았다.지민건을 화력이 주현아에게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생각에 송재이는 너무 서운했다.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왜 아직도 그 여자와 결혼하려는 거지?특별히 편애하는 게 아니라면...송재이는 갈수록 설영준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솔직히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아까 유중건의 일로 이미 그를 한번 이용했고 이를 들키기까지 했다. 역시 설영준은 너무 총명했고 그를 속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그러니 송재이는 더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분위기가 딱딱해졌다.송재이의 기분은 얼굴에 그대로 쓰여 있었다.얼마나 골똘히 생각했는지 설영준이 그녀 앞으로 다가서는 것도 몰랐다.송재이가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리고 있는데 시야에 광이 나는 까만 구두가 들어왔다.송재이가 멈칫하는데 설영준은 이미 송재이의 턱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큰 키와 특유의 아우라가 압도적이었다.송재이는 설영준의 몸에서 나는 옅은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든 채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려 했다.하지만 설영준이 한발 빨리 앞으로 걸어오더니 두 팔로 송재이의 허리를 휘감았다.설영준은 자기도 모르게 송재이의 반듯한 아랫배를 힐끔 쳐다봤다.그 배 속에 설영준의 아이가 있었지만 끝내 잃어버리고 말았다.이런 느낌에 설영준은 마음이 복잡해졌다.“영준 씨...”“저번에 사무실에서 무슨 일 있었던지 기억나?”설영준이 낮은 소리로 귀띔하며 진지하게 말했다.“나는 사업하는 사람이야. 원하는 걸 들어줬으니 너도 보답은 해야지 않겠어?”송재이는 멈칫하더니 그제야 설영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저번에 사무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정말 너무 수치스러웠다.마음속으로는 틀렸다는 걸 아는데 몸은 그 느낌을 즐기고 있었다. 송재이는 그 광경을 떠올리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심사하듯 그녀를 바라보는 설영준의 눈빛에도 송재이는 전혀 두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굳건하고 매서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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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수석보다 더 예뻐요
달 말, 콘서트 당일.설영준 외에도 경주시의 정계, 비즈니스계의 거물들이 도착했다.송재이가 백스테이지에서 준비하는데 서유리가 귓속말로 속삭였다.“아까 몰래 백스테이지를 한번 봤는데, 이야, 정말 대단하던데요? 설 대표님 지금 갑자기 혜성처럼 내려온 서진 그룹 전무랑 얘기 나누고 있더라고요?”“그 사람은 누군데요?”송재이는 이런 소식에 빠삭하지 못한 편이었다.“서진 그룹 후계자잖아요. 투자회사 중에서도 유명한 재벌 2세.”서유리는 뭔가 생각난 듯 미간을 찌푸렸다.“근데 바람둥이라는 소문이 있어요. 외국에서 엄청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다녔다고 하던데.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꼭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린대요.”“재이 씨처럼 예쁘게 생긴 여자는 조심해야 해요. 저런 사람한테 찍히지 않게.”서유리가 조심스럽게 귀띔했다.송재이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별로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무대에 오르기전 송재이는 화장실로 향했다.백스테이지 대기실엔 다 화장실이 있었다.문 앞까지 갔는데 연지수가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큰 소리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수석이 된 후로 연지수는 데시벨이 전보다 훨씬 높아졌고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송재이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드레스 자락을 들고 바깥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복도를 건너는데 까만 슈트를 입은 키 큰 남자와 스쳐 지나갔다.그 남자는 고개를 돌려 송재이를 한참 동안 뚫어져라 쳐다봤다.송재이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남자는 고개를 다시 돌렸고 성큼성큼 관중석으로 향했다.그러더니 옆에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쉬고 있는 서도재에게 이렇게 말했다.“전무님, 아까 어떤 여자와 마주쳤는데 곧 무대에 오를 사람인 것 같았어요. 근데 오케스트라 수석인 지수 씨보다 훨씬 예쁘게 생겼더라고요...”“난 지수만 있으면 돼.”서도재는 눈도 뜨지 않은 채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오케스트라 화보에서 수석 피아니스트인 연지수는 센터에 서 있었다. 그 얼굴은 그렇게 서도재의 머릿속에 각인한 듯 떠나지 않았다.서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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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매정하기 그지없는 사람
공연이 끝나고 송재이는 얼른 백스테이지로 왔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마자 바깥에서 소동이 들렸다.문을 열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연지수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중에 보디가드도 보였다. 조금 전까지 아무 일도 없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시끄러워졌다.송재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서 가서 보려는데 트렌치코트를 입은 중년 여자가 연지수의 팔목을 낚아챘다.연지수가 당황하며 고개를 돌리자 그 중년 여자가 바로 귀싸대기를 날렸다.“빌어먹을 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순간 그저 옆에서 싸움을 말리던 보디가드들이 잽싸게 앞으로 나서서 중년 여자를 제압했다.연지수는 얼얼한 볼을 감싸고는 신고하겠다고 이리저리 고아댔다.송재이는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직원을 불러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했다.직원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지켜보며 신비로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말도 마요. 다 연지수 씨가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전에 설영준 씨와 춤을 추는 사진이 인터넷에 퍼졌잖아요. 그러면서 계속 스캔들이 났었거든요. 근데 설 대표님은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면 알면서 세컨드 노릇을 한 거라는 소린데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가정주부들이 듣고 화가 난 거죠…”주부들은 원래도 이런 일에 잘 반응하는 타입이었기에 순간 도덕의 화신이 되어 뜻이 맞는 다른 주부들과 함께 ‘세컨드를 타도하자’는 명목하에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었다.송재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하려는데 멀지 않은 곳에 선 설영준이 보였다.설영준은 연지수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맞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 표정 없이 자기와 관계없다는 듯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보디가드와 경찰들이 그 주부들을 연행해 갔다.연지수는 지금 꼴이 매우 처참했다.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머리가 다 뜯겼고 옷도 다 찢겼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오늘은 원래 연지수에게 최고의 날이어야 했다.연지수는 얼떨결에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가 설영준을 발견했다. 순간 연지수는 쥐구멍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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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토사구팽
원래는 원만하게 끝낼 수 있었던 공연이 연지수가 백스테이지에서 일으킨 소동 때문에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하지만 이 오점은 ‘연지수’만의 오점이었다.오케스트라의 다른 사람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그래서 그런지 회식 분위기도 매우 좋았다.이번 공연은 연지수가 수석으로서 펼치는 첫 번째 공연이었다.아무리 아까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해도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 빠질 연지수가 아니었다.연지수도 설영준이 갈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룸으로 와서 술을 두 잔 마시더니 다시 매혹적이고 어여쁜 연지수로 돌아갔다.연지수는 설영준의 옆에 앉아 술잔을 들며 교태를 부렸다.“영준 씨 마음은 마치 6월의 날씨처럼 예측 불가에요. 오늘 내가 그 미친 아줌마들한테 그렇게 당하고 있는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옆에 가만히 서 있었잖아요. 나 정말 너무 서운했어요.”말투가 오버스러웠지만 모두 진심이었다.연지수가 고개를 들어 설영준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어두운 조명에 설영준의 예쁘고 깊은 눈동자가 보였다.눈빛은 덤덤해 보였지만 그 뒤로 격렬한 파도를 숨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쉽게 보아낼 수 없는 설영준의 매력이 연지수를 자꾸만 빠지게 했다. 밤에 잠을 설칠 만큼 연지수는 설영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연지수는 설영준이 끓어넘치는 그 남성 호르몬으로 자기를 정복하기를 바랐다.하지만 연지수와 단둘이 있다 해도 설영준은 아무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연지수는 아직 타이밍이 무르익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계속 이렇게 썸을 타면 언젠간 불타오를 날이 올 거라고 말이다.아무리 도도해봤자 결국 넘어오게 되어 있다고 여겼다.하지만 지금은 전혀 확신이 서지 않았다.연지수는 여자의 촉이 발동했다.설영준은 그녀를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그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사꾼일 뿐이다. 천천히 그녀를 옭아매면서 어떻게 그녀를 이용해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 머리를 굴리고 있다.전에 했던 행동도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릴 수 있는 도구로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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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질투할 자격도 없어
설영준은 송재이에게로 걸어갔다.쫑파티.참석한 사람들 모두 살짝 취기가 올라온 상태였다.어두운 불빛 아래 사람들의 표정이 어딘가 가식적이면서도 아리송했다.송재이는 이런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아니면 연지수가 설영준의 가슴에 엎드려 있는 장면을 두 눈으로 봐서 그런 것 같았다.두 사람의 눈빛과 스킨십이 송재이를 자극했다.송재이는 멘탈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속히 말해서 쿠크다스였다. 이런 상황에는 도망가는 것이 송재이와 제일 잘 어울렸다.송재이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그렇게 밖으로 나가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있는 자리에서도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다른 여자를 바라보는데 그녀가 없는 자리라면…그녀와 설영준은 도대체 무슨 사이일까? 설영준에게 그녀는 어떤 존재일까? 송재이는 질투할 자격도 없었다.너무 울고 싶었다.그때 누군가 송재이의 손목을 낚아챘고 그 힘에 못 이겨 송재이는 뒤로 끌려갔다.송재이는 고개를 들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앞에 서 있는 설영준을 바라봤다. 정말 미우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마음이 가는 남자였다.“설영준 씨.”송재이는 이를 악물고 이렇게 말했다.“이거 놔.”아까 술을 조금 마셔서 그런지 설영준은 약간 어지러웠다.고개를 들고 그렁그렁해서 씩씩대는 송재이의 모습에 설영준은 정말 당장이라도 그녀를 잡아먹고 싶은 생각이었다.“오늘은 나랑 가자.”설영준이 이렇게 다독이며 송재이의 귓가에 속삭였다.송재이가 실눈을 뜨고는 생각했다.손에 칼이 들려 있었다면 정말 찔렀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설영준 씨, 자꾸 이렇게 힘으로 제압하려 들면 나 그냥 어디 가서 확 죽어버리는 수가 있어요.”이 말을 하는 송재이는 정말 고대에 순결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여자 같았다.그저 하룻밤 같이 지내면서 정상적인 남녀라면 다하는 일을 할 뿐인데 죽을 필요까지 있을까?여자가 밀당하는지 아닌지 정도는 설영준도 알아챌 수 있었다.순간 설영준은 송재이 앞에서 얍삽한 변태가 된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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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한계치에 도전하다
지금 연지수의 명성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현아도 연지수보다는 송재이를 더 신경 썼다.며칠 전 송재이가 설영준의 회사에 다녀간 걸 주현아는 알고 있었다.엘리베이터에 갇혔다가 문이 열렸을 때 두 사람은 꼭 안고 있었다고 했다.이를 마침 지나가던 사원이 목격했고 탕비실로 돌아와 거기에 있는 동료에게 들려줬다.그 동료가 마침 주현아의 옛 동창이었다. 그는 채팅방에서 주현아의 카톡을 추가해 이 일을 말해줬다.본뜻은 주현아에게 약혼자의 여자관계를 유의하라고 알려주기 위해서였지만 주현아는 카톡을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빨개졌다.그런 돌발 상황에서는 본능적으로 스킨십을 할 수밖에 없다고 셀프 위로를 했다.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불안해지는 주현아였다.설영준의 아이를 가진 사람은 지금까지 송재이가 유일했다. 송재이가 다른 여자와는 조금 다르다는 의미로 보였다.이런저런 잡생각에 사로잡혀 있는데 손에 들었던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이름을 본 순간 온몸의 피가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영준 씨]드디어 설영준이 먼저 주현아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주현아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이튿날 저녁.설영준은 주현아의 어머니 민효연의 별장에 나타났다.곧이어 도착한 송재이가 설영준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도우미가 두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었다.민효연은 송재이를 웃으며 맞이했다.“선생님, 오셨어요? 일단 앉아요. 연우는 오늘 아빠랑 놀러 나갔다가 금방 돌아와서 샤워 중이에요.”민효연은 연우의 아버지 도정원을 얘기할 때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생각이 정리되었거나 아니면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일 수도 있다. 그중 도대체 어떤 이유인지는 송재이도 알 수 없었다.설영준은 거실 창가에 앉아 민효연과 장기를 두고 있었다.“어디에 두어야 할지 봐줄래요?”고개도 들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던 남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재이는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설영준이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몰라 막연한 눈빛으로 주위를 빙 둘러봤다.설영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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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의도적인 보호
송재이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민효연이 설영준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입꼬리를 살짝 당겼다.설영준이 송재이에게 ‘설명’을 끝내자 맞은편에 앉은 민효연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현아한테는 내가 잘 말해둘게. 하지만 너도 잘 알고 있지? 너랑 관련된 일이면 현아도 고집이 만만치 않다는 거...”“녹음은 아까 이미 들려드렸어요. 저도 일 크게 만들 생각 없어요. 그냥 이 결혼을 무르고 싶을 뿐이에요.”설영준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마치 수다를 떠는 것처럼 가벼운 말투로 말했지만 사실 하는 말마다 가시가 돋쳐 있었다.“최대한 두 집안의 화기를 깨지 않는 상황에서 잘 얘기해 볼게. 좋게 끝내야지 않겠어?”민효연이 이렇게 덧붙였다.“현명하십니다.”“아쉽게도 현아와 우리 그이도 현명할지는 모르겠네.”민효연이 난감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영준이도 너도 나랑 약속해. 현아가 무슨 짓을 했든, 앞으로 무슨 짓을 하든 용서해 줘.”“대표님 벌써 미래를 대비하시는 거예요?”설영준이 눈살을 찌푸렸다.민효연의 웃음이 점점 난감해졌다. 그러더니 별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엄마니까 딸 앞길은 생각해야지.”설영준이 차갑게 웃으며 장기판에 마지막 장기를 두었다.“노력할게요.”설영준이 이렇게 대답했다....약혼 취소.좋게 끝낸다.용서해달라.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너무 놀라워 송재이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입을 뻐끔거렸지만 딱히 끼어들 입장은 아니었다.이때 이층에 있던 도우미가 연우의 손을 잡고 내려왔다.인기척을 들은 송재이가 고개를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설영준은 손에 장기 말을 든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울려서야 설영준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송재이와 연우가 피아노 앞에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요새 연지수라는 아가씨와 스캔들이 많던데 이 시점에 우리 현아와 약혼을 취소하면 경주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거야.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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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그녀와 결혼하지 않는다 해서 너랑 결혼하는 건 아니야
설영준은 아무 미련 없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별장에서 나온 설영준은 바로 출발하지 않았고 넥타이를 잡아당기더니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느긋하게 피우기 시작했다.아까 별장에 있을 때부터 주머니에 넣은 핸드폰이 진동하고 있었지만 민효연과 장기를 두느라 꺼내보지 않았다.지금은 시간이 나니 꺼내서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현아가 걸어온 부재중 전화였다.설영준이 약혼을 취소하자고 말한 후부터 주현아는 설영준을 귀찮게 했다.그날.설영준은 주현아와 밖에서 만나기 싫어 곧장 대학시절 주정명이 주현아에게 사준 별장으로 향했다.비워놓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줌마가 정기적으로 청소를 해주었기에 먼지는 별로 없었다.설영준은 바로 목적을 얘기했다. 주현아의 체면을 생각해 그녀가 송재이의 아이를 해친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주현아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흘렸다. 그 모습이 실로 가여워 보였다.한참 후 주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설영준의 옆에 쪼그리고 앉더니 눈물범벅인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영준 씨, 나 영준 씨 사랑해. 헤어지고 싶지 않아.”“주현아, 넌 용서할 수 없는 짓을 저질렀어.”설영준은 다리를 꼰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멋있었다. 거기다 슈트까지 입고 있어 어딘가 차가우면서도 냉정해 보였다.점잖은 외모였지만 남성적인 매력이 다분했고 여자로 하여금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게 만들었다.주현아는 그런 설영준을 놓치는 게 너무 아쉬웠다.그녀는 울먹이며 허둥지둥 설영준의 손을 잡고 이렇게 빌었다.“영준 씨, 나 9살 때부터 영준 씨 좋아했어. 이번에는 내가 잘못한 거 알아. 나한테도 기회를 줘.”송재이의 아이를 건드려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말이다.건드린다 해도 쥐도 새도 모르게 해야 했는데 결국 그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지금 경주 사람들은 내가 연지수랑 바람 나서 약혼 취소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 그러니 여론도 자연스럽게 네 편일 거고. 너랑 주씨 집안에 손해될 건 없어.”“내가 죽어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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