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Chapter 61 - Chapter 70
132 Chapters
제61화 날 어떻게 홀렸는지 너는 알 거 아니야
이런 남자와는 절대 억지를 부려서는 안 된다는 걸 주현아는 잘 알고 있었다.차분해진 주현아는 연약함으로 전술을 바꿨다가 안 되면 물고 늘어졌다.매일 설영준에게 전화했고 그가 받으면 울먹이기 일쑤였다.그러다 설영준은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지금도 화면에 주현아의 이름이 뜨자 미간을 찌푸리며 바로 차단해 버렸다.설영준이 민효연을 찾아간 것도 민효연이 주현아를 타일러줬으면 해서였다.주현아는 늘 민효연을 존중했기에 민효연의 말이라면 조금 들을 수도 있다.하지만 설영준은 주현아의 집착을 얕잡아봤다.좋게 헤어지면서 두 집안의 건강한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는 건 그의 바램에 불과했다.기회는 줬으니 잡을지 말지는 그들의 선택이다....설영준은 핸드폰을 옆에 던져두고는 좌석에 몸을 기댄 채 손에 든 담배를 천천히 태웠다.그렇게 한 시간이 또 지나갔다.송재이는 레슨을 마치고 연우와 민효연에게 인사하고 별장을 나섰다.얼마 걸어 나오지 않았는데 시야에 어딘가 익숙한 까만색 벤틀리가 들어왔다.그쪽으로 걸어가 보니 설영준이 안에서 자고 있었다.시계를 확인한 송재이는 설영준이 지금까지 가지 않고 기다린 것에 의아했다.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데 설영준이 눈을 떴다.매서운 눈빛에 송재이는 멈칫하더니 이렇게 물었다.“왜... 아직도 안 가고?”오늘 송재이가 입은 하늘색 원피스는 좀 짧은 편이었다.아까 연우와 피아노를 치고 있을 때부터 설영준은 밖으로 드러난 송재이의 하얗고 긴 다리를 힐끔힐끔 쳐다봤다.그러다 연우의 악보가 바닥에 떨어졌고 송재이는 다리를 오므리고 허리를 숙여 주었다.머리를 한쪽으로 젖히자 그녀의 긴 머리가 주르륵 쏟아져 내렸고 이에 송재이는 손으로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이 동작이 설영준을 세게 끌어당겼다.송재이는 모를 것이다. 허리를 숙여 물건을 줍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말이다.설영준이 가지 않은 건 그녀를 기다리기 위한 것도 있었다.저번에 송재이는 죽음으로 다시는 그와 잠자리에 들지 않겠다고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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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값싼 노리개
뜨거운 사랑을 나눈 후 설영준은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셔츠 단추를 잠그며 생각했다.그와 송재이는 정말 몰래 사랑을 나누는 사이 같았다.저번에는 사무실에서, 지금은 차 안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다.전에 만난 3년도 남들 모르게 몰래 만났었다. 단 한 번도 정상적인 관계인 적은 없었다.설영준은 진심으로 웃으며 이런 관계도 참 짜릿한 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남자는 이런 일에 늘 관대한 편이었다. 남들이 모른다고 생각할수록 더 짜릿했다.“방금... 뭐라고?”얼굴이 빨개진 송재이가 손을 이마에 얹더니 눈을 찌푸렸다. 머리와 옷은 이미 헝클어져 있었고 누가 봐도 한바탕 거사를 치른 뒤의 모습이었다.송재이의 이런 모습이 설영준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돌아와. 같이 자자.”무겁기만 했던 송재이의 마음이 한순간 하늘로 붕 뜨는 듯한 느낌이었다.송재이가 황급히 손등으로 눈을 가렸지만 설영준은 그녀가 웃고 있음을 알아챘다.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결국 그러지 않고 다시 운전석에 기대앉았다.차 안은 다시 정적이 흘렀다.송재이는 자신이 설영준의 노리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알고 있었다.돌아가면 뭐 해? 3년을 더 허비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다.순간 송재이는 마음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주씨 집안 아가씨와 약혼 취소하면 곧 송씨 집안, 고씨 집안, 조씨 집안 아가씨가 줄지어 올 텐데. 영준 씨가 평생을 함께할 사람은 그런 집안 여자예요. 나는 나이가 들어서 이제 놀아줄 힘이 없어요.”이제 겨우 25살이었지만 송재이는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것 같은 노련함이 느껴졌다.설영준은 다시 담배가 생각났다.전에 송재이가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던 게 떠올랐다. 아마도 임신해서였겠지.지금은 아이가 없으니 괜찮겠지?설영준은 담뱃갑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더니 입에 갖다 댔다.차 안은 금세 연기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창문을 열어둬서 그런지 그렇게 매캐하지는 않았다.“아파?”설영준이 갑자기 물었다.사랑을 나누기 전부터 갈라졌던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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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얼떨결에 희생양이 되다
“아니요!”서유리의 눈빛에 송재이는 자기도 모르게 부인했다.하지만 머릿속엔 어젯밤 설영준과 차에서 있었던 일로 가득했다.송재이는 가끔 자기 자신이 정신 분열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설영준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의 유혹에 넘어갔다.설영준을 죽이고 싶었지만 설영준의 몸 아래서 죽고 싶었다.모순되면서도 자꾸만 빠져드는 것 같은 느낌에 송재이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어제 집으로 돌아간 송재이는 진이 빠져 바로 샤워하고 잠에 들었다.그러다 아침에 출근하러 올 때 약국을 들렀는데 아직 약을 먹지 않은 게 떠올랐다.약국에서 이런 약을 산 건 처음이었다. 아침이라 꽤 쑥스럽기도 했다.약사는 나이가 많지 않은 젊은이였다. 송재이가 약을 가지는데 뭔가 상대가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하여 약을 가지자마자 바로 도망쳤다.송재이는 이런 약을 먹으면 몸이 상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약을 먹으면서 설영준을 속으로 몇만 번은 욕했던 것 같다....점심.서유리가 송재이에게 아래에 있는 식당에서 밥 먹자고 했지만 송재이는 아직 연습실에 있었기에 서유리더러 먼저 가서 자리를 잡으라고 했다.10분 뒤 식당으로 내려가려는데 복도에서 연지수를 마주쳤다.연지수는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고 아우라는 여전히 매우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얼굴이 변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전처럼 당당하지 않았고 눈시울도 빨간 게 어젯밤 많이 운 것 같았다.송재이는 연지수와 할 말이 없었기에 그녀를 지나쳐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지만 연지수가 송재이를 막아섰다.송재이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몸을 한쪽으로 비틀어 다른 쪽으로 지나가려 했다.하지만 연지수는 송재이를 보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송재이를 보는 눈빛도 차갑기 그지없었다.“뭐 하자는 거야?”송재이는 제대로 뚜껑이 열렸다. 누가 봐도 연지수는 지금 단지를 걸고 있었다.“앞으로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연지수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그러더니 송재이를 지나쳤다.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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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결혼은 꼭 취소해야겠어
연지수는 보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었다.그도 그럴 것이 연지수는 이미 서도재에 대한 조사를 끝낸 뒤였다. 서도재도 대표님 레벨의 인물이긴 했지만 바람둥이였다.외국에 있을 때 가리지 않고 만났다는 소문이 있으니 무슨 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아까 단장님한테 불려 가기까지 했다.단장님의 말은 이번 구설수로 그녀를 완전히 묻어버리겠다는 뜻으로 들렸다.저번에 송재이가 겪었던 상황과 똑같았다.이렇게 벌을 받는 걸까?결국 돌고 돌아 연지수에게도 이런 일이 닥쳤다.어떻게 수석의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긴 싫었다.잠깐 고민하던 연지수가 그래도 통화를 수락했다.“대표님...”연지수가 억울한 듯 울먹이며 말했다.“지수 씨, 왜 그래요? 울지 마요. 나 마음 아파요...”연지수는 지금 믿을만한 백을 찾고 싶었지만 그게 설영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설씨 집안과 주씨 집안이 약혼을 취소했다는 소식은 3일간 경주시의 검색어 순위에 올라 있었다.오서희와 설동훈은 이를 보고 설영준에게 연거푸 전화를 걸었다.설동훈은 그나마 차분한 편이었다.“갑자기 약혼은 왜 취소하는 거야?”“성격 차이 때문에요. 조금 더 봐야 할 것 같아요.”사무실에 앉은 설영준이 한 손으로 전화를 받으며 다른 손으로 키보드를 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느긋해 보였다.“결정한 거야? 현아 많이 속상해할 텐데. 주 회장 말로는 종일 방에 있으면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대.”“좋아질 거예요.”“잘 안 맞는 거야,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긴 거야?”설동훈이 떠보듯 물었다.“그 연지수라는 아가씨…”설영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아빠, 너무 멀리 갔어요.”전혀 망설임 없는 설영준의 말에 설동훈도 더는 묻지 않았다.하지만 말투는 사뭇 진지해졌다.“주씨 집안에서 어쩔 수 없이 동의하긴 했지만 알게 모르게 너한테 딴지 거는 건 어쩔 수 없어. 주 회장도 젊은 시절에 소문이 그렇게 좋은 건 아니었어. 보이는 건 어떻게 잘 막아낸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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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설영준, 혹시 사춘기야?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설도영이 미간을 찌푸렸다.설도영도 오서희의 잔소리를 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효도를 생각해 눈을 질끈 감고 받았다.설도영이 오서희와 통화를 하고 있을 때 설영준은 다시 컴퓨터 화면에 집중했다. 그는 영어로 메일에 답장했다.설도겸은 영어를 꽤 잘하는 편이었기에 한국어처럼 막힘없이ㅇ 사용할 수 있었다.전송 버튼을 클릭한 설영준은 몸을 뒤로 기대더니 날짜를 힐끔 쳐다봤다.며칠만 더 지나면 1월 19일이다.1월 19일.설영준이 눈을 지그시 감고 턱을 만지작거리며 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너무 골똘히 생각한 나머지 설도영이 여러 번 불렀는데도 듣지 못했다.“형!”설영준이 정신을 차려보니 설도영이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그는 아무 표정 없이 핸드폰을 건네받더니 한쪽에 던져두었다.설도영이 전화로 오서희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오히려 설도영이 그를 여러번 힐끔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형, 현아 누나랑 약혼도 취소했으니 엄마가 다른 선자리 알아봐 주겠대요. 언제 시간 되는지 묻던데…”“언제든 시간 안 된다고 해.”설영준은 덤덤한 말투였지만 듣는 사람은 소름이 돋았다.설도영은 그저 오서희의 말을 그대로 전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설영준의 반응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비록 15살밖에 안 되는 나이었지만 나이에 비해 똘똘했다. 설도영은 진작에 인터넷에서 그 여자와 춤을 추는 설영준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여자의 생김새는 예뻤지만 그 대신 우아하지 못했다.송재이와 헤어지고 나서 기분이 아무리 꿀꿀하다 해도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떨어질 일은 없는데 말이다.설영준의 기분이 꿀꿀하다는 것도 설도영의 일방적인 추측일 뿐이었다.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여도 설도영은 설영준의 핸드폰에서 송재이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남자가 시도 때도 없이 한 여자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건 무엇을 설명할까?바로 사춘기라는 것이다.…지금 경주시에서 제일 ‘핫’한 사람은 연지수였다.송재이는 위에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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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옛 사진
진주로 가서 하는 공연은 보름 전에 이미 결정한 사안이었다.이번에 가면 아마 진주에 3일에서 5일은 있어야 한다.곧 송재이의 생일도 다가온다.송재이는 혹시나 그때 돌아오지 못하면 엄마와 함께 따듯한 국수 한 사발도 먹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다. 하여 생일을 미리 축하하기로 했다.올해는 엄마가 돌아가신 첫해였다.매년 엄마와 같이 생일을 보내겠다는 약속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공원묘지로 향하는 날은 하늘이 씻은 듯이 파랬고 햇빛과 바람이 좋은 날이었다.송재이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오늘 집에서 나올 때 평소에 신던 하이힐을 신고 나온 게 실책이었다. 절반까지 갔는데 발이 아픈 것이었다.그때 머리 위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얼떨결에 고개를 들어보니 뒤에 선 남자가 보였다.송재이가 멈칫하더니 이렇게 불렀다.“도정원 씨?”도정원은 슈트를 차려입고 있었지만 표정이 어딘가 조급해 보였다.송재이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도정원 씨,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매달 도정원은 공원묘지에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보러 왔다.하지만 방금 받은 전화에서 아버지가 차 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수술하고 있다고 했다.이렇게 급작스럽게 일이 터질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도정원은 얼른 돌아가려 했다. 그러다 중간에 송재이와 마주친 것이다.“혹시 송 선생님도 가족 보러 왔어요?”도정원이 물었다.송재이가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한 손에 국화와 백합 꽃다발을 들고 다른 손에는 보온이 되는 도시락을 들고 있었다.“엄마 보러 왔어요.”도정원에게 급한 일이 있어 보이니 송재이도 그를 잡고 더 얘기를 나눌 엄두를 내지 못했다.간단하게 몇 마디 주고받고는 각자 갈 길로 떠났다. 도정원은 밖으로, 송재이는 묘지를 향해 걸어갔다.한참을 더 걷고 나서야 도정원의 걸음이 서서히 멈췄다.도정원이 고개를 돌려 송재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마음속에 담아뒀던 의문이 송재이를 마주칠 때마다 점점 커지기만 했다.이게 과연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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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감성과 이성 사이
송재이는 저녁이 다 될 때까지 엄마의 묘소 앞에 앉아 있었다.해가 뉘엿뉘엿 지자 머리 위로 노을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바람이 불자 주위의 나뭇잎들이 바람을 따라 율동하며 사락사락 소리를 냈다.지금 이 순간 그녀의 마음은 조용하고 편안했다. 세상에 그녀와 엄마, 둘만 남은 듯한 느낌이었다....진주로 가기 전날, 유은정은 송재이에게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유중건이 지민건의 회사에 투자한 돈을 아직 회수하지는 못했지만 송재이 덕분에 유중건은 설영준이라는 인맥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유중건은 설영준과 일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오늘 이 밥은 아빠가 사주는 거야. 꼭 맛있는 거 사주라고 하셨어.”유은정은 감격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송재이에게 말했다.유중건의 회사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설한 그룹과도 거래를 트게 되었기 때문이다.유은정의 약혼자도 요즘 다시 그녀를 살갑게 대했다. 선물도 주고 영화도 보자고 하는 것이 연애 초반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하지만 유은정의 마음은 예전 같지 않았다.이번 ‘시험’이 없었다면 약혼자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을 수도 있다.유은정은 약혼자와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재이야, 난 가끔 네가 쿨한 게 부러워. 시작도 쿨하고 끝도 쿨하잖아.”밥을 먹는데 유은정이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송재이가 고개를 들자 유은정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너랑 설 대표님 말이야. 내가 너랑 알고 지낸 지가 벌써 몇 년인데, 너는 한 사람을 좋아하면 끝까지 그 사람이잖아. 그렇게 깊은 감정인데도 너는 단칼에 잘라냈으니까.”젓가락을 쥐고 있는 송재이의 손이 멈칫했다.송재이는 유은정의 부러움을 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정말 쿨한 게 맞을까?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며칠 전에도 설영준과 차에서 뜨겁게 사랑을 나누었다. 당하는 입장이긴 했지만 전혀 쾌감을 얻지 못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송재이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러더니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이렇게 말했다.“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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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미움을 받는 게 더 낫다
설영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넋을 잃은 송재이를 바라봤다.너무 급하게 걸다 보니 숨이 차오른 송재이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지금 여자의 성숙함과 소녀의 억울함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모습이었다.설영준은 심장이 간질거렸다. 그가 제일 역겨워하는 느낌이었다.그는 아무 표정 없이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이렇게 물었다.“왜? 못 알아보겠어?”송재이는 설영준이 진주로 내려온 걸 모르고 있었다.진주처럼 작은 도시에 설한 그룹이 확장할 업무가 있을까?“나는...”송재이가 말끝을 맺기도 전에 설영준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이렇게 말했다.“이렇게 마주쳤으니 가자. 나랑 밥 먹어.”발버둥 치던 송재이가 아까 스쳐 지나갔던 사람을 생각하고는 다시 마음이 불안해졌다.설영준 옆에 있으면 그래도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송재이도 배고프긴 했다.설영준은 송재이를 차에 태우고 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웨이터가 설영준에게 메뉴를 건넸다.“캐비어, 성게, 스테이크, 전복죽, 이렇게 주세요.”메뉴를 정하고 설영준은 메뉴판을 웨이터에게 넘겨주었다.맞은편에 앉은 송재이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설영준은 늘 그랬듯 송재이의 의견은 묻지 않고 혼자 결정했다. 3년 동안 만나면서 외식한 적이 별로 없긴 했지만 가끔 나갈 때도 메뉴는 설영준이 결정했고 송재이는 그 메뉴에 따랐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는 참 비굴했던 것 같았다.이런 생각에 송재이는 몸을 뒤로 살짝 뺐다.송재이는 모르고 있어도 설영준의 눈빛은 지금 송재이의 얼굴에 꽂혀 있었다.“그날 그러고 약은 먹었어?”설영준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잠깐 넋을 잃었던 송재이가 이내 반응하고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먹었어!”송재이는 똑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도 설영준이 이 질문을 한 목적을 곱씹어봤다. 설마 다시 애라도 가질까 봐 그러는 건가?설영준은 두 사람의 관계를 그저 살을 섞는 사이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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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기어오르는 게 싫어
송재이가 앞에서 걸고 설영준이 그 뒤를 따랐다.오늘은 송재이의 생일이었지만 설영준은 모를 것이다. 설영준은 송재이와 관련된 일을 기억한 적이 없었다.하지만 설영준은 1월 19일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다. 그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을 뿐이다.그는 송재이가 허황한 꿈을 꾸는 게 싫었고 이걸로 기어오르는 것도 싫었다.설영준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다른 사람을 가지고 놀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은 안 된다. 다른 사람이 그의 생각을 꿰뚫고 이를 약점으로 삼아 그의 머리 위로 기어오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설영준은 다른 사람에게 그런 기회를 줄 사람이 아니었다.저번에 경주에서 쇼핑한 것 외에 처음으로 다른 도시에서 이렇게 길거리를 거닐었다.첫 만남부터 두 사람의 일상은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예전에 그는 침대 빼고는 그녀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다고 생각했다.설영준은 걸음을 재촉해 송재이와 나란히 걸었다.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보드를 탄 남자애가 질주해 오고 있었다. 설영준은 자기도 모르게 송재이를 옆으로 잡아당겼다.“조심해!”설영준의 말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송재이는 그런 설영준을 올려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자애가 지나가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진주 거리를 산책했다.설씨 집안과 주씨 집안의 약혼 취소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았기에 설영준 옆에 나타나는 여자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가 쉬웠다.송재이는 설영준과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행인이 그들을 향해 핸드폰을 들었다.이를 본 송재이가 얼른 설영준의 손을 뿌리치고 그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설영준은 핸드폰을 든 행인을 힐끔 쳐다봤다. 이에 그 행인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더니 핸드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으며 어색하게 웃었다.설영준은 걸음을 옮겨 그 행인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 행인이 놀라서 뒤걸음질 쳤다.지금까지 쭉 높은 자리에 있었던 설영준은 아우라가 장난이 아니었고 서 있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설영준은 일반인과는 비교도 안 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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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송재이를 가질 거야!
지민건은 온몸으로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었다.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몸 사리기 마련인지라 저도 모르게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색을 드러낸다.마치 지금의 지민건처럼 악의에 찬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다.이내 등 뒤에 문을 닫으면서 말했다.“여태껏 너만 따라다녔어.”함께 밥을 먹는 설영준과 송재이, 그리고 식사 후에는 다정하게 손을 잡고 산책로를 걸어가는 모습도 똑똑히 지켜보았다.그를 서서히 이 지경까지 몰아세운 범인이 다름 아닌 두 사람이었다.지민건은 설령 죽더라도 희생양은 데리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설영준을 차마 건드릴 수는 없으니 자연스럽게 송재이가 타깃이 되었다.“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나가!”송재이는 비록 속으로 두려웠지만, 그래도 지민건 앞에서 겁먹은 티를 내고 싶지 않아 애써 센 척했다.하지만 지민건은 성큼성큼 다가가 송재이를 바닥에서 일으키더니 침대 위로 던지고 바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송재이의 이마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이내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고,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렀다.베개 밑에 마침 휴대폰이 있었는지라 그녀는 허우적거리는 와중에 급하게 키패드를 터치했다.급한 상황에서 따질 게 뭐 있겠는가? 비록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했다.반면 지민건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송재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벼랑 끝에 몰린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남자의 손은 마치 뱀처럼 그녀의 허벅지를 타고 올라갔다.송재이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위기일발의 순간, 때마침 밖에서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서유리가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렸다.“문 열어! 열라고, 얼른!”이때, 설영준이 휴대폰을 손에 들고 복도를 따라 멀지 않은 곳에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그는 오는 길에 이미 호텔 프런트와 현지 경찰서에 연락을 취했다.프런트 직원들은 설영준 대표님의 전화라는 소리를 듣자 감히 지체할 엄두도 못 내고 긴장한 탓에 자칫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송재이는 설영준과 같은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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