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전서안과 전서훈의 부모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서안을 지금까지 지옥에서 지내게 했다.서안의 병은 그 사건에서 받은 충격과 큰 영향이 있었다.그래서 전서훈은 빠르게 서안을 되돌려보내라고 명령했다.그러나 서안이 이런 명령에 따를 위인인가?김성재가 대답하기도 전에 전서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전화 넘기세요. 제가 직접 말할게요.”그러자 김성재와 운전기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는 둘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었고 다행히 전 대표가 직접 말을 꺼내겠다고 했다.“도련님, 전 대표님이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십니다.”김성재가 공손히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내 몸은 내가 알아서 지켜요. 이 일은 상관하지 말라고 전하세요.”서안은 고개도 들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차 안의 어두운 조명이 서안의 얼굴을 비추고 눈가는 불빛에 불그스레해졌다.“전서안!”전서훈은 그 말을 듣고 화를 내며 말했다.“당장 돌아가! 내 말 들어!”서안은 인상을 찌푸리며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그러나 입을 열기도 전에 차량이 크게 휘청였다.김성재 손에 쥐어있던 핸드폰은 뒷좌석으로 날아가 통화가 그만 종료되었다.서안 무릎 위의 노트북도 하마터면 날아갈 뻔했다.“도련님, 저희 포위된 것 같습니다.”기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총 다섯 대의 차량입니다.”“속도를 높여서 따돌리세요.”서안이 차갑게 명령하자 기사는 빠르게 속도를 높였고 검은색 메르세데스가 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했다.뒤를 바짝 쫓는 차 한 대, 좌우 양켠으로 두 대, 그리고 앞길을 막아서는 차량 두 대가 있었다.메르세데스는 앞뒤 재지 않고 앞쪽 두 대의 차량을 들이박았다.그와 동시에 서안과 김성재는 좌석 아래에서 총을 꺼내 들었다.왼쪽 차량에도 총을 소지한 사람이 공격하고 있었는데 서안은 빠르게 몸을 숨기고 창문을 내려 총알을 발사했다.그러자 창밖으로 공격하던 사람이 바로 차 안으로 몸을 숨겼다.김성재는 오른쪽 차량의 기사를 공격했는데 기사가 몸을 숨기자, 차량은 빠르
“너...”전서훈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전서안이 말을 잘랐다.“내가 직접 그 사람을 잡을 거예요. 그리고...”“피와 살을 분리할 겁니다.”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가장 섬뜩한 말을 하는 서안이었다.서훈은 잠시 침묵하더니 마침내 서안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다.“네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마음 놓고 실컷 해봐.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네.”서안은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짤막하게 대답했다.통화가 종료되고, 차량은 빠르게 호텔로 향했다.다른 한편, 호텔 연회장에서.서안과의 통화를 마친 강연이 고개를 들자, 방금까지 서있던 원정희와 도하경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강연은 어두워진 표정으로 손에 쥔 주스를 내려두고 둘을 찾으러 그곳으로 향했다.그곳에는 작은 문이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정문으로 나갔다면 방금 강연이 있었던 곳을 지나쳐야 했는데 그곳에 종적이 없다는 건 이 작은 문으로 나갔다는 것을 의미했다.‘각자 이익을 위해 만나는 장소인 이곳에서 두 사람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왜 작은 문으로 향했을까?’강연은 입술을 깨물며 고민했다. 이어 작은 문으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강연을 막아섰다.“예쁜이, 어디 가요?”잘생긴 외모는 아니었으나 날티가 나는 행색을 보아하니 배우보다는 투자자거나 촬영팀 사람 같아 보였다.어딘가 정신이 흐리멍덩해 보였는데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말을 붙이지 못하는 강연에게 대시를 하는 것 같았다.강연은 인상을 찌푸리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라도 난 듯 미소를 지었다.“저기 제 두 친구가 술에 취해서 여기로 들어간 것 같은데 혹시 저 대신 들어가서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아주 가볍고 부드러운 강연의 말투는 애교 같기도 했다.그 남자는 바로 어깨가 으쓱해졌고 간이고 쓸개고 모두 떼어줄 표정을 지었다.“당연하죠! 제가 바로 확인해 드릴게요!”술잔을 들고 몸을 휘청이는 모습에 강연은 행여나 넘어지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저를 부축하실 필요 없어요. 이 정도 일은 쉽게 할 수 있다고
강연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안위를 모른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세윤에게 긴급 메시지를 보낸 강연은 계속해서 그곳의 상황을 지켜보았다.행여나 그 어떤 일이 벌어진다면 바로 큰소리로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정원과의 거리가 꽤 있었으므로 강연은 자신 역시 충분히 도망쳐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연예계 큰손들이 모인 이곳에서 누가 감히 만천하에 드러날 나쁜 짓을 하지 못할 거야.’강연의 예상대로 술에 취한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경호원 한 사람이 남자를 부축해 연회장으로 되돌려 보내고 있었다.강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치맛자락을 들고 난간을 손쉽게 뛰어넘었다.그리고 큼지막한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경호원은 술취한 남자를 부축해 점점 강연이 몸을 숨긴 곳으로 걸어왔다.“그 여자가... 나더러 친구를 찾아달라고...”“엄청 예쁘던데... 천사 같았어.”경호원의 낮은 중저음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그 여자를 데리고 오세요. 그러면 저희 대표님이 선물로 그 여자애를 드릴게요.”“헤헤헤, 좋아.”술취한 남자는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데리고 와서 자는 거야.”몸을 숨기고 있던 강연은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남자를 돌려보낸 이유는 자신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그렇다면 강연은 되돌아가는 것도, 이곳에 계속 머무는 것도 모두 너무 위험해졌다. 세윤이 빨리 자신을 찾아내기만을 기도할 뿐이었다.강연은 자신의 충동적인 행동에 후회가 되었다. 고작 옅은 수로 이곳까지 들어왔는데 심지어 저기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도 없었다.강연이 어두운 곳에 몸을 숨긴 채로 정자를 훔쳐보는데 원정희와 도하경 외에 또 한 사람이 있는 게 보였다.실루엣을 보아하니 남자인 것 같았다.강연은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다가 결국 큰마음을 먹었다.‘여기까지 온 이상 대체 누가 우리를 왜 노리는지 알아야겠어.’강연은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화면을 계속 확대했다.흐릿하던 실루엣이 점점 선명해졌다.정자 안에는 확실히 세 사람이 서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름을 부른다고 바로 나올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혹시 떠보는 것일 수도 있으니 강연은 잠자코 그 자리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강연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알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길 공간은 넉넉했다.그리고 그 사이 구조 시간을 벌 수도 있었다.전서안은 거의 와가고 있고 세윤은 무슨 상황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었다.강연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설사 두 사람이 제때 자신을 구하러 오지 못한다고 해도, 자신의 신분과 두뇌로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저 사람은 내가 강씨 가문 막내 아가씨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할 거야. 아무리 대단한 혈통의 사람이라고 해도 그럴 수는 없어.’그리고 방금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저 사람은 내가 아닌 전서안을 노리고 온 거야.’며칠 전 세윤과 수아를 통해 전씨 가문에 큰 사고가 일어나 둘째 아들이 가문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리고 눈앞의 사람이 그 둘째 아들이 아니라더라도 전씨 가문과 필시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옆선이 서안과 거의 80% 일치했다.“아가씨의 위치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직접 나오지 않으신다면 저희가 내려갈 수밖에 없어요.”경호원이 말했다.강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세를 유지해 거의 나무와 혼연일체를 했다.이런 말로 강연을 떠볼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린 경호원은 정자 근처의 경호원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그러자 경호원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간을 넘어선 경호원들은 구역을 나누어 수색했다.강연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호흡이 가빠지고 땀으로 드레스를 적셨다.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도 강연은 침착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을 진정시켰다.정원은 큰 편이 아니었고 강연이 몸을 숨긴 곳은 정자와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으며, 전문 교육을 받은 경호원들이 강연의 은신처를 찾아내는 건 시간문제였다.분노에 차
김성재와 통화를 한 지 벌써 20분이 지났으나 전서안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이에 강연은 더 마음이 불안했지만, 얌전히 경호원들의 지시에 따라 정원 끝에 있는 정자로 걸었다.얼마 뒤, 서안과 거의 비슷한 얼굴을 한 남자 앞에 다다랐다.가까이에서 보아도 서안과 80% 일치한 얼굴이라 강연은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서른 살은 넘은 것 같은데 이질적으로 젊어 보였다.서안과 똑같은 이목구비를 가졌으나 이목구비에서 살기가 느껴졌다.일부러 지어낸 미소에도 넘치는 살기는 가려지지 않았다.척 보아도 위선자 같았다.그리고 남자의 뒤로 서있는 사람은 말할 필요 없이 익숙한 두 분이었다.두 사람의 눈에서 원망과 불만이 보였는데 원정희의 불만이 도하경보다 더 깊어 보였다.다만 강연은 두 사람을 철저히 무시했다.두 사람이 남자의 졸병이 되어 움직인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강연은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당... 당신은 누구예요? 나한테 원하는 게 뭐에요?”“강씨 가문 막내 아가씨, 긴장하실 필요 없으세요.”남자는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선의를 표하려 했다.“내 신분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뭐 짐작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이 없어요. 저는 전씨 가문의 자제였어요. 전씨 가문과 강씨 가문과의 거래가 아주 빈번했었죠.”“오늘 강씨 가문 도련님과 아가씨가 이 연회에 참석하신다는 소리를 듣고 이렇게 찾아왔어요. 두 가문의 좋은 관계를 도모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죠.”아주 친절한 말투였지만 강연은 허위적이라는 기분이 들었다.강씨 가문과 거래하고 싶어 한다면 세훈이나 제훈을 찾아갈 것이지, 굳이 가문 일을 하지 않는 세윤과 자신을 찾아왔을 리가 없었다.세윤의 신분은 전에 노출이 되었지만, 강연의 신분은 지금껏 노출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강씨 가문 사람들도 강연이 연예계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그런데 우호적인 관계를 도모하고 싶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 모든 걸 그렇게 잘 알 수 있
강연은 여전히 부끄러워하는 척 연기를 하며 말했다.“감... 감사합니다.”이에 전정해는 더 짙은 눈동자로 강연을 바라보았다.자신에 대한 경계를 풀도록 전정해는 일부러 강연과 대화를 나누고 칭찬을 해주었고, 강연이 미소를 드러내자 바로 본론으로 돌아왔다.“내 조카와 연애한다고 들었어요. 혹시 그 아이의 병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강연의 입꼬리가 조금 굳었다. 역시 예상대로 전서안을 노리고 온 게 틀림없었다.“음, 혹시 조금 감정적으로 불안해하는 걸 말씀하시는 거예요?”강연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그건 알고 있어요. 저는 괜찮지만 제 가족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해 저희가 노력하는 중이에요.”“감정적으로 불안해한다고요?”전정해는 무슨 우스운 얘기라도 들은 듯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한참 웃음을 터뜨린 전정해는 그제야 불안해하는 강연과 시선을 마주했다.“그래서 아직 진상은 모르고 있나 보군요.”“진상이요?”강연은 심장이 철렁했다. 드디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손에 땀이 쥐어졌다.“무슨 사건을 의미하시는 건지?”“서안이가 얘기를 하지 않았나 보군요.”전정해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말투에서 깊은 원한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그 애가 제 친모를 죽음으로 몰아붙였어요.”이 말은 마른하늘에 벼락처럼 강연에게 쏟아졌다.“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그 해 전씨 가문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에 서안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전정해는 가문에서 쫓겨났으며 서안은 병에 시달렸다고 했다.그런데 그 사건이 사실은 서안이 어머니를 몰아붙였다고 하니, 강연은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그러나 바로 1초 안으로 이성을 되찾았고 경악을 숨긴 채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그럴 리가 없어!’‘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서안 오빠는 겉으로 보기에는 차가워 보여도 속으로는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이야!’‘가끔 해결 방식이 조금 극단적일 수는 있어도, 그건 모두 먼저 시비를 걸어온 나쁜 사람에게만 해당하였던 거였어!’‘자기 가족을 얼마나
그 소리는 정자 근처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전... 전서안!”도하경은 전서안을 보자마자 고양이를 마주친 쥐처럼 아연실색하더니 황급히 강연의 손을 놓았다.속박에서 벗어난 강연은 바로 서안을 바라보았고 눈물이 저절로 시야를 가렸다.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서안을 발견한 순간부터 마음이 복잡해지고 눈물이 쏟아졌다.서안이 무사히 온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과 제 타이밍에 도착해 또 자신을 구해준 것에 마음이 벅찼다. 서안 과거의 작은 조각을 통해 그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뎌왔는지 느껴져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난 것도 있었다.대체 기쁜 마음인지, 아니면 속상한 마음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기분에 마음만 시려왔다.“울지 마.”서안은 어느새 강연 앞까지 다가와 아픈 얼굴로 강연을 품에 넣고 다정하게 강연의 이마에 키스했다.“미안해! 동생아, 내가 늦었지?”그리고 한발 늦게 도착한 세윤이 이를 발견하고는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세윤은 바로 도하경의 복부를 걷어차 쓰러뜨리고 욕을 퍼부었다.“네까짓 게 뭔데 감히 내 동생을 잡아?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주변 경호원은 세윤을 막아서지 않았고, 하경이 피를 토하든 머리가 얻어터지든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한참 화풀이하던 세윤이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고, 원정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원정희는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세윤은 이런 원정희를 무시하고 전정해를 바라보았다.“아니 전씨 가문 둘째 아드님인 전정해 아니십니까?”세윤은 눈을 가늘게 뜨며 경고를 날렸다.“오늘 이 일에 있어 강씨 가문에 제대로 해명해야 할 겁니다.”‘우리 송이만 억울하게 할 수는 없어!’위협적인 세윤의 시선에 전정해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아무 쓸모도 없는 바람둥이인 줄 알았던 세윤이 이런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모든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대가를 받아내려는 기세였다.뒤로 숨겼던 전정해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세윤과 강연 남매가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어디에 떠벌리지도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
전정해는 의아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네?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세윤 씨, 일단 진정하시고 제가 무슨 상황인지 먼저 알아볼게요.”그리고 고개를 돌려 경호원에게 물었다.“세윤 도련님께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있나?”경호원은 공손하게 대답했다.“모르겠습니다.”전정해는 세윤에게로 고개를 다시 돌리더니 호의적인 얼굴로 입을 열었다.“세윤 씨...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당신!”세윤이 얼굴을 굳히고 앞으로 다가가려는데 누군가 세윤을 잡았다.고개를 돌리자 어둡고 음습한 눈길과 마주쳤고, 그 눈길은 사람을 불태울 정도로 강렬했다.“강연을 부탁드립니다.”전서안이 이 말하며 강연을 세윤의 품 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곧장 앞으로 걸어가 전정해의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강연은 잔뜩 초조한 얼굴이었다.세윤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서안을 바라만 볼 뿐 말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강연의 어깨를 잡고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움직였다,작은 정자 안에서 생김새가 거의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두 사람이 대치 상태에 놓였다.“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팔자가 지독하게 꼬인 내 조카 아닌가?”전정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전히 가식적인 미소와 간사하고 교활함이 보이는 표정이었다.“그 몇 대 차로는 네 목숨을 앗아가지 못한 모양이네. 어떻게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찾아왔어?”서안은 대답하지 않고 주먹을 날렸다.둘의 원한은 한 번의 주먹다짐으로 해결을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정확히 말한다면 둘 중 한 명은 죽어야 끝나는 전쟁이었다.서안의 주먹은 빠르고 강해 정확하게 맞았다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었으나, 전정해는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몸을 비켰다.“오랜만이야. 넌 여전히 정신이 온전치 않고.”전정해는 몸을 피하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서안은 대답 대신 계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연이어 바람을 가로지르는 주먹에 전정해는 피할 구멍이 없었다. 하지만 전정해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피하는 순간, 서안은 정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