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난 네가 이곳에 올 줄 알았단다.”전정해는 강연을 보며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온몸의 상처가 당겨진 건지 더 기괴해진 얼굴의 전정해가 고통에 몸부림쳤다.소름 돋는 움직임 소리가 텅 빈 지하실에 울렸다.강연은 차갑게 전정해를 바라보다 물었다.“다 웃었어요?”“그럴 리가! 난 끝까지 웃을 거야!”전정해는 음습한 눈빛으로 강연을 주시했다.“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 아파 날 찾아온 거지? 그런데 어쩌나? 그 아이의 목숨은 나한테 달렸고 내가 죽으라고 하면 바로 죽어버릴 수도 있지. 그러니 나한테 비는 게 좋을 거야. 기분 좋아지면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죽여버릴지도 모르지.”그 말을 듣고 있는 강연은 옷소매 속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강연은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 지금 전정해는 감금되었고 자신을 절대 다치게 할 수 없었다.길게 숨을 들이켠 강연이 코웃음 쳤다.“지금 배후의 사람을 너무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게 아닌가요? 아직도 칩을 뺄 방법이 있다는 걸 모르나 보군요.”“그럴 리가? 날 속일 생각 마!”“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나요? 제 어머니도 칩의 조종을 받았으나 얼마 뒤 칩을 빼내는 데 성공했고 지금도 아주 건강하게 아버지랑 여행을 다니고 계세요.”강연이 무표정으로 말하다가 전정해를 동정한다는 말투로 말했다.“내가 여기까지 찾아와 당신한테 구걸한다고 생각했나 보네요. 정말 딱하기도 해라. 난 진실을 말해주러 온 것뿐인데.”“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거짓말인 게 분명해!”전정해가 기괴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야 꼬마야, 네 연기가 완벽하다고 생각해? 어떻게 칩을 빼낼 수 있겠어, 말도 안 되지. 제 어미를 저주하다니 전서안 그 녀석한테 참 지독하게 빠졌나 보구나. 날 풀어준다면 그 사랑에 감동한 내가 너희를 응원해 줄게. 어때?”“우리는 당신의 응원 따위 필요 없어요. 아직도 내 말을 믿지 못한다니 정말 불쌍한 사람이군요.”강연이 차갑게 조소했다.“불쌍한 사람. 하지만 절대 용서나
강연은 바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서안이 혀를 깨물 수 있다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마음속으로 후회가 밀려왔다. 자기 행동에 서안이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제야 무서워졌다.빠르게 수건을 건네받은 서훈이 강제로 서안의 입을 벌렸다. 벌써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서안아, 수건을 물어!”서훈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서안은 여전히 발버둥만 칠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서안 오빠! 서안 오빠!”강연이 급한 마음에 서안의 두 뺨을 내리쳐 정신을 차리도록 했다.“서안 오빠 말 들어요. 무서워하지 말고 수건을 물어요! 금방 지나갈 거예요.”강연의 말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이성을 잃은 상황에서도 서안이 조금 입을 벌리는 게 보였다.서훈이 빠르게 수건을 입안으로 넣었다.강연이 안도하며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제훈은 이 광경에 마음이 복잡했다.조종당한 사람에게는 조금의 이성이라도 존재할 수 없었다.‘그러니 당시의 어머니가 칼을 들고 세윤의 침대 앞에 서 있었겠지.’하지만 현재 서안은 강연의 말을 듣고 있었다.서안이 송이를 향한 마음이 얼마나 큰지 감히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제훈은 몰래 방을 나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아버지,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해요.”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아들의 전화를 받은 강현석이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이에 도예나도 그쪽으로 주의를 돌렸다.“무슨 일이에요?”예나가 조심스레 물었다.“제훈이 도움을 요청하고 있어.”현석이 낮은 소리로 예나의 물음에 답했다.예나는 더 깜짝 놀랐다.어릴 때부터 진중하고 성숙했던 제훈은 단 한 번도 부모님에게 도움을 구한 적이 없었다.그런데 제훈이 스스로 전화를 걸어오다니.태양이 서쪽에서 뜬 건가?현석이 스피커로 전환했다.제훈의 말을 듣던 두 사람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통화 종료 후 예나가 현석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말했다.“여보, 우리 한국으로 돌아가요. 이 일은 우리가 나서야 할 것 같아요.”현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예나를 품에 안
전정해가 혼수상태에 빠져야만 서안도 당분간 편안해질 수 있었다.“전정해를 따라 잠에 들게 하면 안 돼요.”제훈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서안이 맨정신으로 멀쩡하게 전정해를 만나게 해야 해요.”전정해에게 칩은 사실 거짓이라는 걸 믿게 해야만 심리적 방어선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배후를 파헤칠 수 있었다.그렇지 않으면 서안은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뎌야 할지 모른다.그 말에 서훈과 강연 모두 침묵했다.침대에 몸이 묶이기 전부터 서안은 이미 많이 피폐해졌다. 그런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전정해의 앞에 나타날 수 있겠는가?이건 불가능했다.“천천히 해요. 일단은 두고 보도록 하죠.”서훈은 마음 아파하며 말했다.“서안은 두 날 동안 너무 힘들어했어요. 그런데 서안을 또 몰아세울 수는 없어요.”그리고 몰아세운다고 가능한 일도 아니었다.조종을 받는 사람은 이성을 유지하기도 어려웠는데 연기를 하는 건 더 불가능했다.“서안의 컴퓨터는 어디 있나요?”제훈이 물었다.“단서를 찾았다고 했는데 아직 전 대표에게 말하지 못했다고 했어요.”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서훈이 말했다.“무슨 자료인지 알 것 같아요. 서안이 저한테 보냈었는데 설명하기도 전에 쓰러져버렸거든요. 하지만 자료에 걸린 비밀번호를 아직 풀지 못한 상태입니다. 유명한 해커에게 의뢰했지만, 아직 풀지 못했어요.”“내가 해볼게요.”제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난 할 수 있어요.”서훈은 그제야 제훈의 직업을 떠올리고 눈을 반짝였다.“그래요! 왜 이 사실을 잊어버렸지! 기다리세요. 바로 가져다드릴게요.”“나랑 같이 가요.”제훈이 강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송이야... 넌 여기에서 서안의 옆을 지켜. 방금까지 많은 고생을 했으니 잠시 쉴 수 있게 해.”오빠의 응원과 이해의 눈빛을 읽은 강연의 눈가가 촉촉해졌다.“제훈 오빠 고마워요.”제훈이 고개를 끄덕이고 별말 없이 서훈과 방을 나섰다.방을 나선 서훈이 바로 제훈을 향해 비꼬듯 말했다.“인간 세상의 고통을 전혀 이해 못
“세상에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다니...”잔뜩 당황한 강연을 보며 전서훈이 다급하게 물었다.“그게 누군데요? 대체 누가 또 강연 씨와 서안의 교제를 반대하나요? 저한테 말만 하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전 대표님, 그건 좀 힘들 것 같아요.”강연의 어깨가 축 처졌다.“그분은 제 아버지이거든요.”“아버지요?”이전 세대 비즈니스 전설 강현석?서훈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장모님과 장인어른의 허락은 서안이 회복한 후에 차차 고민해 봐야 했다.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서훈이 얌전히 꼬리를 내렸다.얼마 뒤 제훈은 서안의 자료를 거의 대부분 얻어내는 데에 성공했다.위치는 아메리카의 어느 소도시였다.높은 이익을 얻기 위해 사람을 해치는 칩 전문 연구팀이 있는 것 같았다.도예나의 사건으로 큰 타격을 입었지만,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고, 간신히 연명한 연구팀은 또 다른 재앙을 만들어갔다.전정해가 대체 어떻게 이 노선을 타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거액을 주고 칩을 산 건 틀림없었다.약품 제조사, 거래처 등 모든 사슬에 연결된 인원은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다.가장 큰 문제라면 전정해가 대체 어떻게 배후의 사람을 알게 되었느냐였다.그게 아니라면 누군가 전정해를 지시해 이러한 방법으로 전씨 가문을 상대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이 배후는 몸을 아주 꼭꼭 숨겨 단 하나의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서훈은 이 사람이 전씨 가문과 잘 알고 있는 사이라는 직감이 들었다.모든 준비를 마쳤으나 마지막 남은 의문만 해결되지 않았다.전씨 가문과 강씨 가문이 힘을 합쳐 진행하자 모든 게 수월했다. 정신을 차린 서안이 이 계획을 듣고 입을 열었다.“그럼 전정해를 계속 자극해야겠네요. 제가 자극해 볼게요.”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두가 알아들었다.전정해의 앞에서 조종을 받지 않는 모습으로 그를 자극하는 일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로써 전정해의 마지막 방어선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그 말에 서훈은 바로 반대표를 던졌다.“안돼! 절대 안 돼!”서훈은 방안을 왔
제훈의 목소리에 모든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서훈이 가장 먼저 몸을 일으켜 물었다.“무슨 방법인데요?”강연도 다급한 모습이었다. 감정 변화가 드물던 서안 역시 간절한 눈치를 보냈다.“큰 형에게 전화가 왔어요.”제훈이 입을 열었다.“부모님이 그동안 칩에 대해 연구하고 계셨대요.”“그리고 그 연구는 초보적인 결과를 얻었고, 서안의 몸에 심어진 칩을 꺼낼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고 하셨대요.”그 말에 서훈의 얼굴이 감정에 북받쳐 빨갛게 물들었다.“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요? 다시 한번 말해보세요. 서안의 몸에 심어진 칩을 꺼낼 수 있을 것 같다고요?”“제훈 오빠 사실이에요?”강연도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두 사람에 비하면 서안은 덤덤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을 보면 촉촉이 젖어있는 게 보였다.침착한 서안이 두 사람을 위로하며 말했다.“셋째 도련님께서는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확신은 말고 시도를 해보는 게 좋겠어요.”그 말에 서훈과 강연은 조금 실망한 기색이었다.제훈은 이런 서안을 대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고개를 끄덕인 제훈이 말을 이었다.“서안의 말이 맞아요. 시도를 해볼 수는 있지만 너무 큰 기대를 품지 않는 게 좋아요. 뭐든지 차근차근히 해야 실패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너무 큰 기대를 품었다가 실패하면 또 좌절할 수도 있잖아요.”서훈도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전씨 가문의 가주다운 냉철함을 보였다.“이 프로젝트는 강현석 대표님과 사모님이 직접 연구했다는 말씀이죠? 하지만 아직 임상 실험을 해 본 적은 없고요. 서안이 첫 번째 상대라면 리스크가 있지는 않을까요?”“뭐든지 확실한 건 없어요. 아무도 이 실험이 완벽하다고 확신을 내릴 수는 없어요.”제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제 형의 말을 따르면 2년 전 성공 확률이 60%를 넘겼다고 했어요. 부모님이 귀국하시면 더 자세한 내용에 대해 알 수 있을 겁니다.”“네, 그러면 일단 저희 쪽에서도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두 분이 돌아오시면 제가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고
“송이야 울지마. 아빠가 뭐든지 해결해 줄게. 우리 공주님은 고민 없이 행복하기만 해.”강현석은 강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마음 아파했다.강연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데 이만 뚝 그치자, 송이야.”도예나가 다정하게 강연을 토닥였다.“우리 송이 얼룩 고양이가 되어버렸네.”강연은 그제야 주위의 많은 시선을 느꼈다.얼굴을 붉힌 강연이 예나의 품에서 나오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옆으로는 말끔하게 정돈을 마친 서안이 다가와 예의 바르게 말했다.“안녕하세요. 강 대표님, 그리고 사모님!”부드럽던 강현석의 시선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무게가 실린 목소리로 강현석이 물었다.“자네가 전서안인가?”서안은 강현석과 마주한 채로 올곧게 대답했다.“네, 그렇습니다. 강 대표님.”“저번에 우리 송이를 사건에 휘말리게 해 언어 장애까지 걸리게 한 건 사실인가?”강현석의 목소리는 무덤덤했지만, 무언의 압도감에 보는 이까지 마음 졸이게 했다.너무 날카롭게 핵심을 찌른 강현석에 서안도 피할 공간이 없었다.서안이 “네”, 혹은 “아니요”라고 답을 한다고 해도 정답이 없었다.현장 사람들이 서안을 보며 마음을 졸였다.안택은 서안을 향해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둘은 피차 같은 사정의 사람들이었다.강현석은 안택과의 첫 만남에 이렇게 물었다.“내 딸이 먼저 프러포즈했다더군?”그 말에 안택은 다리의 힘이 풀렸었다.안택이 화를 잠시 피할 수 있었던 건 서안 쪽 상황이 급박했기 때문이었고 당분간 장인어른의 주의력을 돌릴 수 있었다.이번에는 화살이 서안을 향했다.강현석의 위엄 넘치는 얼굴을 마주한 서안은 고개를 들어 덤덤하게 말했다.“네.”그 대답에 강현석의 얼굴이 확연하게 굳어졌다.“내 딸아이에게 이렇게 큰 위험을 가져다주고도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인가?”“가정사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감히 내 딸을 아프게 하다니, 자네와 자네 가문은 대체 무슨 정신인가?”강현석의 호통에 주변은 조용해졌다.하지만 모두 강현석의
“송이야.”도예나가 빠르게 강연을 잡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바보 같긴. 네 아버지가 정말 서안을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강연은 불안했지만 앞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다만 강현석과 서안을 주시하며 충돌이 생긴다면 바로 달려들 준비를 했다.어릴 땐 제 아버지밖에 모르던 딸이 자꾸 편심을 하자 강현석은 속상해지고 안색이 어두워졌다.서안은 강현석의 카리스마에 식은땀을 흘렸지만, 결코 굽혀 들지 않았다.고개를 빳빳이 쳐든 서안의 얼굴에는 진정성과 확고함이 담겼다.“강 대표님, 다시 강연이 다치는 일 없게 하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아무도 강연을 다치게 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저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예전의 일은 모두 제 탓이 맞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만약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제 목숨을 걸고 벌을 받겠습니다.”서안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덤덤한 말투지만 무형의 힘이 담겨 마음을 움직였다.강현석의 얼굴을 여전히 어두웠고 서안을 향해 무덤덤하게 말했다.“내 딸은 내가 알아서 지키겠네. 앞으로 내 딸아이를 걱정할 필요 없어. 자네는 그럴 자격도 없고.”그 말에도 서안은 화를 내기는커녕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말했다.“언젠간 안심하고 저한테 맡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강현석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웃음이 나왔다.“젊은 사람이 큰소리치지 말고 자네 일부터 잘 해결하시게.”강현석의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훈이 앞으로 나와 가로막았다.“안녕하세요, 강 대표님. 저는 전씨 가문의 가주이자 서안의 형인 전서훈이라고 합니다.”서훈이 미소를 지은 채로 말을 이었다.“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강 대표님과의 관계가 좋았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사모님과 함께 전씨 가문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강 대표님만 괜찮다면 저희는 강 대표님을 삼촌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전씨 가문의 가주가 겸손하고 낮은 태도로 말을 올렸다.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더구나 상
강현석의 차가운 얼굴에는 감정 변화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도예나를 잡은 손에는 힘이 바짝 들어갔고 도예나는 작게 신음을 냈다.도예나는 강현석이 그 끔찍한 과거, 악몽 같은 순간을 떠올리며 후회하고 마음 아파하는 중이라는 걸 이해했다.다행히 모두 그 악몽에서 깨어나 이미 과거가 되었다.“전정해를 직접 만나보고 싶습니다.”도예나가 말했다.도예나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에는 의아한 기색이 역력했고 꺼리는 눈치였다.인상을 찌푸린 강현석이 바로 반대했다.“안돼.”도예나가 강현석을 바라보더니 부드럽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괜찮을 거예요. 더 이상 지나간 과거에 공포를 느끼지 않아요. 전정해를 만나려는 건 그 더러운 배후를 알아내 철저히 부시기 위해서예요.”두 사람은 한참이나 시선을 마주하고 침묵했다. 그러다가 타협한 강현석이 이렇게 말했다.“그럼 나랑 같이 가.”이번에는 도예나도 반대하지 않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강연은 서안을 바라보며 근심 걱정을 드러냈다.“엄마, 서안 오빠가 지금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전정해가 정신을 잃어 조종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전정해가 일어나면 서안 오빠는...”강연은 이를 악물었고 뒷말은 생략했다.그 말을 들은 서훈도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창백해진 안색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방금까지 서안이 고통받던 모습을 쭉 지켜봐 왔었다. 점점 미쳐가는 전정해가 이번에는 또 서안에게 어떤 지령을 내릴지 몰랐다.그들의 걱정스러운 얼굴에도 서안은 덤덤해 보였다.강연을 달래듯 눈을 깜빡인 서안이 도예나와 강현석을 향해 말했다.“두 분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방으로 돌아가 있을 테니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서안이 말한 방은 바로 자신의 손발을 묶어두는 그 밀실을 뜻했다.강연은 바로 마음이 아파 눈시울을 붉혔다.“잠깐만.”강현석이 떠나려 돌아선 서안을 불렀다.“일단 방으로 돌아가지 말고 우리랑 같이 가게.”그 말에 모든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들어 그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