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로 향하는 길 내내 서준혁과 송지음의 어색한 분위기는 지속되었다. 하지만 신유리도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둘의 분위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호텔에 도착한 신유리는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에 도착한 그녀는 불도 키지 않은 채 전화부터 걸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이연지, 그녀의 엄마였다.“누구세요?”이연지는 한창 바쁠 때여서 누군지 살필 틈도 없이 전화를 받았다.“저요.”창가에 기댄 채,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 밖에 풍경을 바라보며 신유리가 말했다.“어쩐 일이야, 이 시간에?”신유리의 전화를 받은 이연지가 놀라 물었다. 평범한 모녀간엔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었다.신유리는 몸을 돌려 까맣게 어둠이 내려앉은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별일은 없어요. 그냥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요.”전화 너머 잠시 침묵이 흘렀다.“그저 그렇지 뭐. 미미가 이번에 또 병원에 입원했거든.”그러자 이번엔 신유리가 말을 멈췄다.“넌 요즘 어떻게 지내?”“전 시한에 출장 왔어요.”“아, 출장. 그 있잖아….”잠시 머뭇거리던 이연지가 말을 이었다.“혹시 돈 좀 더 붙여줄 수 있니? 미미가….”“미미 아빠가 돈 달라고 연락 왔어요.”신유리가 이연지의 말을 끊으며 본론을 꺼냈다.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창가 쪽으로 다가가 커튼을 거뒀다.“전에 제가 줬던 돈, 설마 다 그쪽에 준 거예요?”이연지는 쓴웃음을 지었다.“어쩔 수 없었어.”신유리는 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통화를 끊었다. 그동안 힘들게 번 돈을 계속 보내왔던 이유는 미미 때문이었다. 비록 아버지는 달랐으나, 엄마는 같은 동생이었고 나이도 어렸으니까. 하지만 그게 모두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을 줄이야, 신유리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답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에 고민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러 갔다.한편, 서준혁과 송지음 사이엔 여전히 냉랭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송지음은 이 상황이 너무 억울했다. 서준혁이 주현과 문선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은 것
신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가 용기 내어 다시 입을 열려던 찰나, 차가 덜컹하고 크게 흔들렸다. 신유리의 몸이 옆으로 쏠리며, 자연스레 그의 품에 안긴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앞에 턱이 있었는데, 못 봐서 죄송해요. 어디 안 다치셨죠?”신유리가 부딪힌 머리를 감싼 채 신음을 하고 있을 때, 앞에 차를 몰던 기사가 걱정스레 말했다. 그녀는 얼른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 사이에 머리가 어디에 끼었는지 두피에 아픔이 느껴졌다.신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다시 몸을 낮추며 머리가 낀 단추를 찾아 서준혁의 가슴을 더듬었다.“휴가가 뭐라고, 차에서까지 이런 짓 하고 싶어?”서준혁이 비꼬며 말했다. 그의 시선이 단추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신유리의 손으로 갔다.그 말을 들은 신유리는 하던 것을 멈추고 얼른 해명했다.“머리카락이 단추에 끼었을 뿐이야.”신유리는 머리가 긴 데다가 곱슬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한 번 엉키거나 어디에 걸리면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녀는 한 손으로 되지 않자, 양손을 써 단추에 엉킨 머리카락을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제대로 풀리지 않자, 짜증에 점점 손에 힘이 들어갔다.“이러다가 내 셔츠까지 뜯어지겠다.”그 말과 함께 서준혁은 직접 엉킨 머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의 조심스러운 손길에 신유리는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엉켰던 것이 풀렸다. “고마워.”“그래서, 언제까지 내 품에 안겨 있을 생각이야?”서준혁이 살짝 입꼬리를 올린 채 미동도 없는 신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그제야 신유리는 자신이 아직 서준혁 품에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놀란 그녀는 빠르게 몸을 일으키며 태연한 척 말을 꺼냈다.“곧 도착하겠네.”그러자 옆에 있던 서준혁도 서서히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문선경의 집무실에 도착하자, 주현의 모습도 보였다. “이제야 좀 성의 있어 보이네요.”그녀는 오늘 송지음을 데리고 오지
신유리는 경직되었다. 그녀는 불편함을 애써 숨기며 고개를 들어 서준혁을 보았다.“내 친구야.”하지만 서준혁은 무심하게 되물었다.“그래?”분명히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신유리는 이신이 아무 이유 없이 모욕당하길 원하지 않았고 서준혁과 이런 문제에 대해 아옹다옹하고 싶지도 않았다.그녀는 성질을 죽이며 입을 열었다.“계약은 이미 완료 되었고 후속 자료는 이제 보낼게. 나 먼저 돌아가도 되지?”그녀를 차갑게 바라보는 서준혁은 마치 그녀를 꿰뚫어 보려는 듯했다.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고 이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무심하게 말했다.“안돼.”신유리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서준혁이 일부러 곤란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던 신유리는 정색하며 물었다.“아직 연차도 쓰지 못했는데 연차를 써도 되지?”서준혁은 냉정하게 말했다.“출장 도중 상사를 버려? 너의 프로 정신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정도네.”신유리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물었다.“지금 호텔로 돌아갈 거야?”서준혁은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들었다.“함께 갈 데가 있어.”신유리는 업무에 관한 일인 줄 알았지만, 서준혁은 그녀와 함께 골프장으로 왔다.그들을 마중 나온 온 캐디는 아주 정중하게 말했다.“우 선생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신유리가 눈살을 찌푸렸다.“우서진이 부른 거야?”우서진은 플레이보이였고 할일 없이 빈둥거리는 재벌 2세중 에서도 소문난 골칫덩어리였다. 그가 서준혁을 부른 것은 대부분 쓸데없는 일이었다.이런 자리에서 신유리는 그저 조롱의 대상일 뿐이었다.그녀는 주춤거렸다.“내가 함께하기엔 적절한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준혁이 되물었다.“뭐가?”“송지음을 불러 줄 수 있어.”그녀의 말이 끝나자, 서준혁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보다 노련하지 못해.”신유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노련하다’는 그렇게 좋은 뜻이 아니었다.하지만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 선후에야 그가 왜 그녀와 함께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있었다.거기에는 우서진 말고 낯선 얼굴들이
두 사람이 함께 골프를 치려면 서준혁이 뒤에서 그녀를 안아야 했다.신유리의 등이 서준혁의 따뜻한 가슴에 닿았다. 얇은 천을 통해 그의 심장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서준혁이 고개를 숙이자, 그의 따뜻한 입김이 그녀의 귀에 닿았고 너무 간지러웠다.“그 자세에 중독된 건 아니죠? 반나절이 지났는데도 왜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허경천의 우스갯소리에, 옆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골프채를 쥔 신유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골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서준혁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자세를 고쳐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전에 가르쳐 줬는데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야?”그러나 신유리는 더욱 경직되었다.방금 그의 목소리 톤은 그해에 그녀를 가르쳤을 때와 똑같다는 사실은 서준혁은 알지 못했다.신유리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녀는 더욱더 세게 골프채를 잡았고 공을 쳐 냈다.그리고 재빨리 그에게서 벗어나 옆으로 갔다. 애써 침착한 척하면서 말이다.“됐어.”서준혁은 아무 말 없었지만,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우서진이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유리 씨가 복수하는 거야. 알몸으로 돌아갈 준비 해야겠어.”신유리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공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지만, 공은 역시나 들어가지 않았다.이미 전의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온 서준혁은 우서진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했다.신유리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다.“미안.”그녀는 내기가 걸렸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이제 와서 사과하면 어쩌자는 거죠? 저는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잖아요.”방금 전 그녀에게 말을 걸던 여자가 다가오며 서준혁에게 윙크를 날렸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서 대표님 폼이 아주 훌륭하신데요?”그녀는 아예 서준혁에게 찰싹 붙을 기세였다.여자들은 눈치가 빨랐고 허경천이 서준혁을 대하는 모습에서 서준혁이 간단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아냈다.하지만 여자가 달라붙기도 전에 신유리가 손을 뻗어 막았다.“저기 누군가가 찾으시는데요?”여자가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신유리는 너무 많이 마셨다. 정신이 몽롱했다. 서준혁의 옷을 잡고 있는 손이 위태롭게 떨리고 있다.서준혁의 시선이 옷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 머물렀다.하지만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잘 마시던데?”신유리의 볼이 빨개졌고 동공이 살짝 풀렸다. 평소의 침착하고 조용한 자태를 완전히 잃었다.그녀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런 자리를 제일 싫어하지 않았어?”서준혁에게는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평소 담배는 물론 필요한 술자리여도 술은 입에 대지 않았다.오랫동안 그와 함께하면서 그가 즐기는 것을 빠삭하게 알게 되었다.서준혁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는 옷을 잡고 있는 그녀에 불평하지 않았다. “이제 열일하는 거야?”신유리는 목이 아팠다.그네에 기댄 그녀는 손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송지음도 시한에 있잖아.”서준혁이 의문스럽게 물었다.“그래서?”고개를 떨군 신유리는 하려는 말의 문맥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입을 떼려는데 한 남자가 그들을 불렀다.“서 대표님, 허 대표님이 별장에서 기다리세요.”신유리의 말이 잘렸고 그녀는 서준혁을 바라보았다.그는 가볍게 끄덕이고 고개를 돌려 신유리를 보았다.신유리는 여전히 너무 어지러웠다. 다행히 직원에게 숙취해소제를 부탁했기에 가까스로 정신줄을 잡고 있는 것이다.그녀도 서준혁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네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별장으로 향했다.별장 주위는 미관을 위해 해당화들이 있어서 조명이 어두웠다.야맹이었던 그녀였고 오늘 술을 마셔서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질 것 같았다.그녀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디뎠고 이 어둠에 익숙해지려 노력했다.하지만 서준혁이 갑자기 멈춰 섰다.신유리는 그의 등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서준혁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똑바로 걷지도 못해?”신유리는 코를 감싸며 일 보 후퇴했다.“갑자기 설 줄 몰랐잖아.”그는 키가 컸고 둘 사이가 워낙 가깝기도 했다.잘 보이지 않아 위압감이 더욱 크
큰 판이었다.신유리는 네 자리수를 잃었다. 서준혁이 돈을 내놓을 때 감히 눈을 깜빡이지도 못했다.오늘 운이 없었던 그녀는 그 후로도 연이어 패했다.우서진이 카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죠?”계속 패하고 있으니, 그녀도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할 줄 모른다고 했잖아요.”허경천은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었다. 그는 오늘 밤의 제일 수혜자였다. 너무 기분이 좋아 보였다.그는 우서진에 말했다.“패해도 서 대표가 대신 감당하는데 서진 씨가 왜 흥분하는 거예요?”맞는 말이긴 했지만 조금 이상했다. 괜히 묘한 사이로 엮고 있는 것 같았다.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서준혁이 다가와 앉았다.“시작해.”카드가 새로 정렬되었다.허경천이 물었다.“드디어 직접 납셨네요.”서준혁이 말했다.“이런 게임에 능하지 못해요.”시선을 내려 카드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향기가 그녀를 덮쳤다.주변의 공기에는 여러 가지 향으로 뒤섞여 있었지만, 그녀는 단번에 서준혁의 체취를 분별할 수 있었다.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려는데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카드를 내렸고 그제서야 정신을 다시 가다듬었다.카드 때문에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었고 그의 손이 아무렇지 않게 신유리에 닿고 있었다.멍한 그녀의 모습에 서준혁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으름장을 놓았다.“또 지면 월급에서 차감이야.”신유리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녀는 더 이상 주의력이 분산되지 않았다.서준혁이 카드에 능한 것인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오고 나서 신유리는 패한 적 없었다.비록 많이 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거의 비기는 수준이었다.도리어 우서진이 제일 많이 잃었고 심지어 얼굴이 심하게 어두워졌다.눈치 빠른 허경천은 그만하자며 카드를 밀어버렸다.서준혁과 신유리는 차를 몰았어서 우서진은 그들과 함께 호텔로 돌아갔다.신유리는 음주했고 서준혁은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기에 서준혁이 운전대를 잡았다.막 술을 깨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속
아마 술에 취한 탓인지 신유리는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그녀는 악몽에 시달렸고 벗어나려고 뒤척였지만 깰 수 없었다.그녀가 마침내 무거운 눈꺼풀을 들었을 때 날은 이미 밝았다.이불을 껴안고 한참을 앉아 있다가 옆에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이미 10시가 훌쩍 넘었다.여기 시한은 이제 아무 일도 없었다. 몸을 일으킨 신유리는 샤워하러 갔다.어제저녁 방에 돌아와 그대로 뻗었다. 아직 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모든 준비를 마치고 샤워실에 나오니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은 휴대폰이 울렸다. 그것은 왕 대리의 전화였다.“언제 오세요?”신유리가 멈칫했다.“무슨 일이세요?”“아직 정리해야 할 서류가 남았고 대표님은 이미 떠나셨고 나더러 비서님께 연락하라고 했어요.”신유리는 어리둥절했다.서준혁이 벌써 돌아갔다고?통화를 마친 신유리는 서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응답이 없었다.신유리는 회사로 향했다.일을 처리한 뒤 신유리가 왕대리에게 물었다.“대표님은 언제 가신 거죠?”왕 대리는 턱을 만지더니 대답했다.“아침에 제가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을 때 이미 공항이라고 했어요.”그가 다시 물었다.“대표님이 아무 말씀 없었어요?”신유리는 시선을 떨구었다.어제저녁 그와 함께 있었지만, 그는 오늘 떠난다는 말하지 않았다.회사를 나온 그녀는 휴대폰을 보았다. 그녀가 서준혁에게 보낸 문자는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그녀는 어플을 켜 비행기표를 예매했다.모든 준비를 마치고 공항으로 출발할 때는 이미 오후였다. 보안 검사를 마치니 이신의 전화가 걸려 왔다. 신유리는 그제야 자신이 떠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그녀는 난감해하며 전화를 받았다.“오늘 전시가 있는데 시간 되면 함께 가서 보지 않을래?”트렁크를 잡은 신유리는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급한 일이 생겨서 지금 공항이야.”이신이 멈칫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가 방해한 건 아니지?”신유리는 그에게 너무 미안했다.“성남에 오면 내가 밥 살게.”연우진이 이신도
이연지는 신유리의 말에 몸이 굳어지며 미미의 옷자락을 쥐어뜯었다.신유리는 그녀를 보고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물었다.“미미한테도 손을 대요?”이연지의 상처를 제외하고, 그녀는 미미의 목에도 눈에 띄지 않는 멍이 있는 것을 보았다. 다만 옷깃에 반쯤 가려졌을 뿐이었다.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던 이연지는 미미의 겁에 질린 눈빛을 보고 눈시울을 붉히더니 옷소매로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자주 안 그래. 그날은 술 마셔서 그런거야.”신유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그 사람이 돈을 달래요? 아니면 돈을 가져다주는 건가요?”이연지는 힘겹게 눈을 감은 뒤 잠시 후에야 목을 추켜들고 말했다.“미미 아직 어리잖니.” 신유리는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이연지의 꼿꼿했던 등과 함께 자존심이 무너져 내렸고 테이블 위에 놓인 손도 바들바들 떨려왔다. 크나큰 고통을 참는 듯했다.그녀의 감정을 눈치챈 미미가 울음을 터뜨렸고, 이연지는 눈물을 닦으며 미미를 달랬다.미미가 울음을 겨우 그치고 나서야 그녀는 신유리를 바라보았다.신유리를 한 번 쳐다보고는 바로 다시 얼굴을 돌렸다.그녀의 표정을 살피던 신유리는 어느정도 답을 확신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려는데 마침 이연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이연지의 핸드폰은 짝퉁으로 보였고, 액정에도 심각할 정도로 금이 가있었다. 이연지가 전화를 받자마자, 남자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배고파 죽겠는데 어디 간거야? 설마 또 그 기생충같은 년 데리고 돈 쓰러 간건 아니지?” 핸드폰이 짝퉁이라 그런지, 그의 목소리가 커서인지 그가 뱉는 모든 말은 한 글자도 빠짐없이 신유리에게 들렸다.이연지도 뻘쭘한 듯 휴대전화를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주국병, 미미는 당신 딸이야!”그러나 남자는 그녀의 말을 듣고 더욱 분노했다.“난 그런 기생충 같은 딸 둔 적 없어! 오후에 출근해야 되니까 당장 들어와서 밥이나 차려!”이연지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또 도박하러 가는 거야? 미미 다음 주에 주사 맞아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