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본다고 했지, 살려준다고는 안 했는데?”염무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아지트 책임자가 누구인지 알아낸 마당에 굳이 시간 낭비하면서 네 헛소리를 들어줄 필요가 있을까? 분명 그 사람이 더 많이 알 텐데, 안 그래?”저격수는 억울한 듯 두 눈을 부릅뜬 채 숨졌다.원래 패를 너무 빨리 까도 안 되는 법이다.염무현은 공혜리에게 연락해 방금 일어난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준 다음 신신당부했다.“기사님 가족들도 보상해줘요. 뭐든 두 배로.”“네.”공혜리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꼭 조심해야 해요, 흑일파는 무법자들이 많아서 아주 위험하거든요.”“걱정 안 해도 돼요. 이제 서해시에 돌아가면 같이 식사 한 끼 해요.”염무현이 웃으면서 말했다.공혜리는 뜻밖의 횡재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네! 꼭이요.”지금 데이트 신청을 한 건가?그렇다면 결코 가볍게 대할 수는 없었다. 얼른 가서 어울릴 만한 옷이라도 골라야 하지 않겠는가?단김에 소뿔도 빼라고, 지금 당장 쇼핑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다.때마침 비서가 서류 더미를 안고 걸어와 입을 열려는 찰나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를 발견했다.“대표님, 어디 가세요? 서류를 당장 결재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공혜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일단 거기 둬.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세인시 외곽.눈에 띄지 않은 허름한 건물 지하에 바로 흑일파 아지트가 있었다.사실 존재한 지는 꽤 되었지만 워낙 은밀한 곳이라 경찰과 수비대조차 아무런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다.검은색 지프차 한 대가 입구에 멈춰서더니 한 사람이 내렸다.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그가 대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지프차는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남자는 뒤를 흘끔거리다가 미행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시름 놓고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정원은 텅 비어 있었고, 방에도 인기척을 찾아보기 힘들었다.곧이어 거실을 가로질러 뒤편의 주방에 도착했다. 벽에는 기름때가 가
이 정도 금액이라면 전 세계의 암살자를 들끓게 만들기 충분했다.대형 전광판 아래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수많은 사람이 해당 내용을 주시하고 있으며 아쉬운 듯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무려 200억짜리 임무인데 다른 사람한테 빼앗기다니!”“그나저나 흑곰과 늑대는 손도 참 빠르네, 어떻게 임무가 공개되자마자 다들 미처 확인하기도 전에 낚아챌 수 있지?”“이렇게 큰 액수가 걸린 임무는 대체 몇 년 만이죠? 이번에 놓치면 평생 후회할 텐데...”“저기 봐봐요! 저분은... 전갈인데? 여기 왜 왔죠?”사람들의 시선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덩치가 산 만한 남자는 얼굴이 말처럼 길쭉했고 주름이 자글자글했다.하지만 살기가 넘치는 눈빛은 마치 치타처럼 날카로웠다.다른 곳에는 사람들로 득실거렸지만 남자의 주변만큼은 반경 5m 이내에 아무도 없었다.전갈은 암살자 중에서도 간담이 서늘한 존재였다.악명이 자자한 그는 타깃뿐만 아니라 고용주까지 살해하여 돈을 더블로 받았다.심지어 임무를 빼앗기 위해 동업자마저 죽이는 것을 서슴지 않았고 오로지 돈밖에 모르는 극악무도한 사람이다.물론 상식대로라면 이런 인간 말종은 길거리에 떠도는 쥐새끼처럼 모두가 거리끼기에 십상이다.하지만 전갈은 그 누구보다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임무를 수행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보통 아름다운 섬에 머물러 값비싼 술을 음미하면서 예쁜 미인과 함께 휴가를 즐기거나 7성급 호텔에 묵으며 사치스러운 나날을 보낸다.이유는 단 하나, 바로 성격이 무자비할뿐더러 실력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그를 죽이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예전에 네 명이 작당모의하여 암살 작전을 펼쳤지만 되레 목숨을 잃고 가족마저 봉변당해 처참하게 생을 마감했다.전갈의 악랄한 행세에 다들 화는 나지만 차마 불만을 표출할 수 없었다.그런데 대놓고 모습을 보이니 의아하기 마련이다.“임무를 빨리 확보했다고 해서 반드시 완수할 수 있는 건 아니지.”전갈은 사람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피식 비웃었다.
천생연분이 따로 없는 선남선녀.이는 천태경이 염무현과 백희연에 대한 첫인상이었다.남자는 멋지고 카리스마가 넘치며 여자는 절세미인에 요염하기까지 했다.이곳은 살인자의 천국으로 온갖 악당이 모여 있기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미남과 미인은 유난히 튀는 존재였다.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염무현이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어디서 봤는지 당최 기억이 나지 않았고,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은 단지 이 바닥 종사자의 특유한 분위기 때문이라고 여겼다.즉 염무현도 킬러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천태경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염무현을 보는 순간 같은 느낌이 들었다.아무도 그가 바로 현상금 200억의 목표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물론 단체로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 전광판에 공개된 사진 때문에 착각한 탓이 컸다.사진은 5년 전 염무현이 입사할 때 찍은 것으로 대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어 얼굴에 앳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게다가 그때만 해도 일반인에 불과하지 않은가?4년 동안의 옥살이와 의술, 무술 등 각종 능력을 마스터한 덕분에 염무현에게도 거대한 변화가 생겼다.한낱 인간에서 무려 전 세계를 뒤흔든 염라대왕으로 변신했다.즉 환골탈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남은 둘째치고 심지어 본인도 예전 사진을 보면 놀리기 매한가지였다.게다가 옆에 백희연 같은 미인이 있으니 다들 그녀에게 정신이 팔려 염무현이 암살 대상이라는 생각은 더더욱 못했다.목표물로서 도망치기 급급할 텐데, 바보가 아닌 이상 어찌 제 발로 킬러들이 득실거리는 소굴에 나타나겠는가?죽고 싶어 환장하지 않은 이상 말이다.물론 흑일파의 실수로 몇 년 전의 사진을 올린 게 아니라 이것밖에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염무현이 감옥에 들어간 이후로 그의 개인 정보는 1급 기밀로 분류되었다.용국을 통틀어 접근할 권한이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설령 흑일파가 막강한 정보망을 갖췄다고 할지언정 염무혐의 신상을 입수하기 어려웠다.“보스, 아래 사람이 점점 많아지네요. 심
반면, 사람들은 단지 늑대와 흑곰이 운이 좋아서 큰 건을 따낸 줄 알았지 이미 정해진 일이라는 건 꿈에도 몰랐다.임무가 실패해야만 그들에게 인수할 기회가 주어졌다.이때, 부하가 고개를 저었다.“아직요.”천태경이 눈살을 찌푸렸고,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아마도 임무에 실패한 듯싶었다.설령 늑대와 흑곰이 죽는다고 한들 아쉬울 건 없었다.킬러가 되기로 한 이상 죽음은 곧 운명이며, 단지 시간문제였다.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파트너를 다시 찾는 것에 불과했다.다만 120억이라는 ‘수입’이 수포가 되어 가슴이 너무 아팠다.임무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순간 콩고물조차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무려 200억짜리 임무는 그가 총책임자로서 있었던 몇 년 동안에도 처음 접해 보았다.“저 사람들은 신인이에요?”염무현과 백희연을 발견한 부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분명 모르는 사람인데 남자는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에요. 왠지 모르게 낯이 익네요.”아래층.사람들이 백희연을 향해 연신 휘파람을 불었고, 대부분 음흉한 눈빛과 음란한 표정으로 훑어보기 바빴다.심지어 저속한 말을 서슴지 않은 사내도 있었다.“어이, 아가씨. 얼굴도 예쁜데 굳이 이렇게 험한 일을 할 필요가 있나? 내가 먹여 살려 줄 테니까 오빠한테 오지 않을래? 매일매일 호의호식하는 건 물론 기가 막힌 테크닉으로 환상적인 경험만 느끼게 해줄게, 어때? 못 믿겠어? 옆에 있는 화장실에 따라오면 증명해 줄 수도 있어. 하하하!”전갈보다 더 못생긴 남자는 턱까지 길쭉했고, 누런 이는 썩어서 시커멓게 변해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그러나 백희연은 화를 내는 대신 손가락을 까닥하며 매혹적인 눈빛으로 말했다.“덤벼, 만약 내 손가락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당신 요구를 만족시켜줄 테니까.”“그래? 약속 지켜!”못생긴 남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곧바로 기운을 뿜어냈다.볼품없는 외모와 달리 그는 반보 마스터 경지에 이른 고수였다.이런!눈앞의 미인은 상대방의 실력이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바닥에는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다들 충격을 금치 못했다.침묵이 감도는 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이처럼 거침없는 여자라니? 어떻게 대뜸 살인부터 저지를 수 있지?비록 통쾌한 건 사실이지만 사람을 죽임으로써 얼마나 큰 문제를 일으켰는지 정녕 모른단 말인가?아지트에서 시비가 붙는 건 흑일파의 금기 사항이다.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심하지 않으면 제명당해 평생 임무를 배정받지 못하거나 아지트에 출입조차 못 한다.하지만 심각한 상황에서는 목숨까지 잃을지 모른다.시비가 붙은 것만으로도 이토록 엄중한 데 하물며 살인은 더 말할 게 없었다.모르고 저지른 일이기에 용서할 수 있다고?이번이 처음이라 룰이 생소한 탓이라고?웃기고 있네!이따위 변명은 통하지 않았고, 설령 진실만 얘기한다고 한들 엄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어떻게 보면 차라리 남자와 한 번 자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치욕스러울지언정 적어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으니까.나이도 어리고 예쁘기까지 한데 참으로 안타까웠다.단지 천태경이 측은지심에 미녀의 목숨만큼은 살려주길 바랄 뿐이다.“대단한 배짱이군. 감히 내 구역에서 공공연히 사람을 죽여? 흑일파의 룰 따위 안중에도 없나 봐?”천태경이 나타나기도 전에 호통 소리가 먼저 울려 퍼졌다.“당장 체포해서 즉시 죽여버려! 본때를 제대로 보여줘야겠어.”이런!사람들의 마음이 순식간에 무거워졌고, 마지막 희망의 불씨마저 꺼졌다.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든 미인이 벌써 생을 마감하다니.역시나 아직 너무 어리석었다. 고작 룰을 모른다는 이유로 소중한 목숨까지 바치게 생겼다.“룰은 개뿔.”백희연이 피식 비웃었다.“사람을 죽이려고 찾아왔는데 흑일파 따위 안중에 있겠어?”이렇게 건방질 수가! 어찌 감히 이런 말을 내뱉는단 말이지?살인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천태경에게 대들기까지 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나?천태경이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건방진 년! 그나마 죄를 순순히 인정하면 목숨만큼은 살려주려고 했는데, 제 주제도 모르고 설치니 더는
“아니, 다들 눈이 멀었나?”백희연이 손을 들어 전광판을 가리켰다.“한 명이면 몰라도 어떻게 전부 장님뿐인지...”천태경의 안색이 대뜸 어두워졌다.“무슨 뜻이지?”“염무현 말이야, 200억이 눈앞에 버젓이 있는데 아무도 못 알아보다니.”백희연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천태경의 얼굴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게 너였어?!”어쩐지 낯이 익더라니.“늑대와 흑곰이 임무에 실패했나 보네.”천태경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염무현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그래, 심지어 대실패였지.”다른 사람도 서서히 정신을 차렸고, 표정이 착잡하기 그지없었다.멀리서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바로 200억이라는 현상금을 손에 넣기 위해서이지 않은가?그런데 결과는 목표물에게 아지트를 들키는 꼴이 되었다. 게다가 바로 앞에 있는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다니! 이보다 더 황당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여기를 찾아내? 대단한 능력이군.”천태경은 오히려 감을 잡은 듯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만약 내 추측이 맞는다면 아마도 누가 현상금을 걸었는지 알아내려고 하는 거겠지.”그가 보기에 염무현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었다.물론 평소라면 이 정도로 자신만만하지 않았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수백 명의 정상급 킬러가 한 자리에 모였는지라 돌아가면서 한 번씩 공격해도 두 명쯤을 손쉽게 죽일 수 있다.게다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피에 굶주린 녀석들이라 알아서 공격할 것이다.200억이 눈앞에 있는데 과연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존재할까?염무현이 천태경을 힐긋 바라보았다.“이미 알고 있으니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겠군. 고용주의 이름을 얘기한다면 목숨만큼은 살려줄게.”천태경은 우스갯소리라도 들은 듯 배를 끌어안고 폭소를 터뜨렸다.“하하하, 목숨은 살려준다고?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너 따위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자리인 줄 알아? 어이가 없군! 호랑이 소굴에 들어온 결과는 오로지 하나, 즉 죽음뿐이야. 그동안 참 궁금했거든, 분명 일반인인데 어떻게 목숨이 200억이나 되는지.
뼛속까지 시린 한기가 발끝부터 머리까지 퍼졌다.킬러로 일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죽이면서 나름대로 배짱도 용기도 있다고 자부했다.나중에 관리직에 오른 다음 생과 사는 너무나도 익숙했고, 수중에 셀 수 없이 많은 목숨을 쥐고 있었다.따라서 일찍이 죽음 따위 전혀 두렵지 않다고 여겼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것도 크나큰 착각 말이다.이 세상에 과연 죽음을 직면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 있을까?무기력한 느낌은 절망에 빠지기 충분했다.그제야 암살 대상이 눈앞에서 무릎을 꿇고 애원할 때 어떤 느낌인지 체감하게 되었다.사실 그때만 해도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을 무시했었다.죽으면 죽었지, 뭐가 그리 대수라고! 남자답게 묵묵히 받아들이면 되는 거 아닌가?하지만 정작 자기 차례가 오자 훨씬 더 비굴하게 행동했다.특히 백희연의 잔인한 공격과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형성된 피바다를 보고 더욱 기겁했다.백 명이 넘는 정상급 킬러들이 마치 도마 위의 생선처럼 죽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꼴이라니!심지어 업계에서 저승사자로 불리는 전갈마저 그녀의 공격 한 방에 몸통과 목이 분리되는 참담한 비극을 맞이했다.전갈의 머리는 마침 천태경의 발 옆에 굴러 떨어졌다.죽어서도 두 눈을 부릅뜬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순간 천태경은 절망에 빠졌다.“그래! 다 얘기할 테니까 제발 살려만 줘.”그리고 다른 건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고래고래 외치기 바빴다.“목숨만 살려준다면 뭐든지 얘기할게.”“말해!”염무현이 싸늘한 말투로 말하자 천태경이 서둘러 대답했다.“난 단지 일개 아지트의 책임자라서 고용주는 본부에서만 알고 있어. 개인 정보 보호는 흑일파의 원칙이야.”염무현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할 말이 그것밖에 없다면 그냥 죽어.”“잠시만! 다른 내용도 있어.”천태경은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비록 고용주를 만난 적이 없지만 상대방의 대변인과 접촉했었어. 왜냐하면 현상금이 무려 200억이 되는
살아남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차라리 안 보면 다행이지, 보고 나니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대체 이 불길한 남녀는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이렇게 끔찍할 수가!어쩐지 김씨 가문에서 200억이라는 거액을 제시하더라니, 엄청나게 큰 액수인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오히려 적은 편에 속했다.200억은커녕 2,000억도 부족할 판이었다.설령 돈을 벌었다고 한들 전제는 목숨이 붙어 있어야 누리지 않겠는가?곧이어 전화가 연결되자 천태경이 조심스레 말했다.“저예요, 용국 허원 지역 아지트 책임자 천태경...”스피커 모드로 설정한 휴대폰에서 잔뜩 흥분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렇게 빨리 좋은 소식을 전하러 연락한 거야? 200억짜리 임무를 완수했나 본데 아주 잘했어! 그야말로 인재가 따로 없군. 이번에 큰 공을 세웠으니 승진 발령만 기다리면 돼. 유능한 직원에 대해 본부는 항상 확실하게 보상해 주는 편이거든.”천태경은 무슨 대답을 할지 몰라 울기 직전이었다.“난 염무현이라고 해! 허원 지역의 아지트는 이미 쑥대밭이 되었어.”염무현이 대뜸 끼어들었다.“이건 단지 가벼운 경고에 불과할 뿐 앞으로 다시는 날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다음번에 봉변당할 곳은 본부가 될 테니까.”휴대폰 너머로 정적이 이어졌다.이는 누가 봐도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였다.왜냐하면 천태경이 임무를 배정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무조건 완수할 수 있다고 장담했기 때문이다.이제 임무에 실패했을뿐더러 아지트마저 잃게 되었다.그중에서도 제일 실망스러운 건 천태경 본인이다.상대방에게 굴복하고 본부까지 연락하다니?나약한 배신자 같으니라고,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상대방이 대답하기도 전에 염무현은 위성 전화를 손으로 부숴버렸다.방금 자신이 한 말은 본부도 똑똑히 들었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천태경은 본부의 분노를 고스란히 느꼈지만 목숨을 건질 수 있다면 상관이 없었다.정 안 되면 앞으로 이름을 숨기고 위험천만한 나날을 멀리하면 그만이었다.어차피 지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