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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늦가을 저녁,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여 저녁거리에 황홀함을 더해주었다.

조씨 집 아파트로 돌아간 조은서는 문을 열자마자 거실에서 울리는 유선우의 말소리를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부드럽고 듣기 좋았다.

“예전 유학할 때 배수관이 막히거나 하면 혼자 수리하고 그랬거든요.”

“옷이 더러워진 건 내일 아침에 가서 갈아입으면 돼요. 어머니 신경 쓰지 마세요.”

...

‘유선우가 여기까지 왜 왔지?’

조은서는 현관문을 닫고 천천히 슬리퍼로 갈아신었고 그 소리를 들은 심정희는 나와서 그녀에게 낮은 목소리로 귀띔했다.

“온 지 한 시간 정도 됐어. 근데 마침 배수관이 막혀서 손 좀 봐달라고 했어. 너 데리러 온 것 같은데 맞지?”

심정희는 사실 속으로 꽤 놀랐다.

곱게 자란 유선우가 이런 궂은일까지 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시 남자란 다 똑같은 물건인가 보다.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할 인간들이다.

조은서는 외투를 벗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그냥 여기서 잘게요.”

심정희는 그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알겠어. 내가 가서 상 차릴게. 그리고 좀 이따 밥 먹을 때 얘기 잘하고. 괜히 네 아빠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그이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 유 서방에게 불만이 많을 거야.”

사실 이런 것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조은서는 다 알고 있다.

유선우는 부엌에서 걸어 나오다가 조은서와 눈이 마주쳤다.

몇 초간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유선우는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머니에게서 네가 전시회에 갔다는 말은 들었어. 그런데 그림을 보고 왔는데 눈이 왜 그렇게 빨개?”

사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조은서는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이지훈의 말에 조은서는 저도 모르게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녀 또한 그렇게 몸을 내던졌지만 좋은 결과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은서는 유선우의 말에 고개를 숙인 채 얼버무리며 입을 열었다.

“밖에 바람이 좀 세서요. 눈에 뭐가 들어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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