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의 드레스룸에서 조은혁은 박연희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오늘 그녀는 은색 프린지 드레스를 입었는데 하얗고 가녀린 몸이 고급스러운 원단에 감합되어 있어 매우 고귀해 보였다. 그중에서도 팔뚝과 가슴 부분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이렇게 큰 공간은 사방이 모두 거울로 되어있었다.남자의 장엄함은 여자를 더욱 나긋나긋하게 만들고 그 물기가 섞인 용서를 비는 소리는 조은혁의 눈을 더욱 붉게 만들었다. 그녀의 몸을 끊임없이 놀리는 움직임과 함께 그의 목소리는 뜨거운 기운을 머금고 그녀의 목덜미에 굵게 흩뿌려졌다.“이렇게 감겨놓고도 싫다고... 어?”박연희는 임신한 탓에 몸이 정말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랐다.결국, 조은혁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몸을 탐한 것이다...조은혁의 양복 주머니에 들어 있는 휴대폰이 울리며 계속 전화가 왔음을 알렸지만 박연희에 의해 음소거되고 말았다.이때 조은혁은 이미 정과 욕망에 빠졌는데 어떻게 그런 것을 돌볼 수 있겠는가?그는 박연희에게 매달려 자신과 한번 해달라고 졸랐고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후는 이미 출발 시각이 지난 시각이었다. 그러자 조은혁은 아예 박연희를 끌어안고 거울 앞에 놓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냥 가지 말자.”박연희는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고 그의 어깨에 기대어 가느다란 숨을 몰아쉬었다. 이윽고 조은혁의 말을 듣고는 가늘고 흰 손가락을 뻗어 그의 늠름한 미간을 그리며 속삭였다.“청첩장을 받았으면 어떻게 안 가요? 게다가 오늘 협상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지 않았어요?”박연희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그의 양복바지에 묻은 윤기를 긁으면서도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러자 조은혁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낮게 읊조렸다.“이런 여우 같은 여자를 봤나.”그는 남녀 방면에 있어서 수요가 보통 남자보다 훨씬 강하다.예전에는 많은 여자를 옆에 끼고 살아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지만 이제 그는 박연희 하나뿐이고 그녀는 또 임신 중이니... 사실 대부분 그는 만족하지 못한다.그런데 오늘 박연희의 컨디션이 좋으니 조은혁은
하지만 조은혁은 끝까지 듣지 못했다.그는 마음속에 진시아를 품고 바쁘게 걸어 나갔다. 자신이 오랫동안 기대했던 아기가 이미 어머니의 뱃속에서 요절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그렇게 조은혁은 노기를 띠고 떠났다.한편, 박연희는 홀로 유산의 아픔을 겪고 있었다. 그녀는 휘청거리는 몸을 애써 바로잡으며 아랫배를 감싸 안은 채 땅바닥에 방울방울 떨어지는 피가 서서히 짙은 카펫을 붉게 물들이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았다.아이러니하게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은혁은 그녀를 껴안고 말했었다.“연희야, 우리 앞으로 잘 지내자.”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조은혁은 진시아 때문에 그녀의 뺨을 때렸다.그의 약속은 사실 줄곧 이토록 저렴했다.아이는 여전히 그녀의 몸을 벗어나고 있다.박연희는 고통을 참기 힘들어 몸을 움츠리고 벽을 짚으며 조금씩 계단 어귀로 몸을 옮기며 나지막이 장씨 아주머니를 불렀다.“아주머니... 아주머니...”마침 아래층에 있던 장씨 아주머니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보니 2층에 서 있는 박연희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녀의 치마는 온통 피투성이였다.그 장면을 본 장씨 아주머니는 당장이라도 혼이 다 날아갈 것만 같았다.그녀는 다급히 올라가 박연희를 부축하며 안달복달 울음을 터뜨렸다.“사모님, 사모님... 왜 그러세요!”그러자 박연희는 참담하게 웃으며 마지막 힘을 다해 입을 열었다.“기사 불러서 병원에 데려다줘요. 아이가 유산됐어요.”...같은 시각, 조은혁은 차를 몰고 진시아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수수한 병실 안, 생기가 없는 듯 누워있는 진시아는 왼쪽 다리를 절단하고 자궁을 적출하여 아랫배도 텅 비어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완전한 여자가 아니다.조은혁이 병실에 들어서자 진시아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예전의 그 아리따운 눈에는 강한 원한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하여 다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박연희, 어쩜 그렇게 독할 수 있어요?”“은혁 씨... 저 대신 복수해 줘요. 당신은 나를
그런데 김 비서의 표정이 매우 복잡해 보였다.곧이어 그녀는 자신의 상사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대표님, 연희 씨가 유산했어요. 의사는 아랫배가 심한 충격을 받아 유산했다고 말했고 이제... 아이는 이미 완전히 지워졌어요.”조은혁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손가락 사이에 끼워둔 담배와 주변도 잊은 채 오직 김 비서의 그 한마디만이 귓가를 맴돌았다.“아이는 이미 완전히 지워졌어요.”창밖에는 늦가을이 노랗게 어려 있었고 창가엔 하얀 셔츠를 입은 훤칠한 남자가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그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연희 씨는 지금 병원에 계시는데 몸이 매우 허약해요. 대표님, 이곳에서 진시아 씨와 함께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돌아가서 연희 씨와 함께하시겠습니까?”그녀의 말이 끝날 때 조은혁은 이미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이에 김 비서도 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운전기사가 서둘러 운전했고 조은혁은 뒷좌석에 앉은 채 말이 없었다.그는 묵묵히 뒷좌석에 앉아 아이가 생긴 후 박연희와 함께 지냈던 그 기억을 떠올렸다... 사실 그 기억은 매우 달콤했다.박연희는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고 더 이상 그를 떠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하여 조은혁은 그들이 영원하리라 생각했다.그는 심지어 아이의 이름도 다 생각해 놨었다. 조은희, 바로 그와 박연희의 막내딸의 이름이다.그 따귀가 아이를 잃게 한 것이겠지.박연희가 화장대에 부딪힌 장면이 기억났다. 박연희는 애써 화장대를 잡고 그에게 말을 건넸지만 그는 홧김에 그녀의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조은혁이다. 조은혁이 결국 자기 손으로 아이를 죽인 것이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조은혁이 별안간 얼굴을 돌렸고 그의 눈가에는 촉촉한 물기가 어려 있었다....VIP 병실에는 은은한 약물 냄새가 가득했다.박연희는 곤히 자고 있었다.검은 머리카락이 하얀 베개에 깔려 있었고 조용히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의 모습은 연약하다 못해 만지기만 해도 부서질 것만 같았다...조은혁은 침대 곁으로
그러나 박연희는 오히려 손을 빼냈다.그녀는 그의 설명을 듣고 싶지 않았고 그와 함께 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박연희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난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말을 마치고 박연희는 이불을 끌어당기고 혼자 이불 속에서 통곡했다.조은혁에게 있어서 이 아이가 태어나지 않은 것은 단지 유감일 뿐이다.아마 며칠 동안은 슬퍼하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슬픔 또한 잊힐 것이다...그러나 한 여자에게 있어 잃은 아이는 모체에서 산 채로 베어낸 피와 살이며 평생 잊지 못할 고통으로 남을 것이다....조은혁은 하룻밤 내내 그녀의 곁을 지켰다.다음날 그는 중요한 접대가 있어서 별장에 다녀와야 한다며 자리를 비웠다.드레스룸 안은 일찌감치 깨끗이 치워져 있었고 박연희의 유산된 피도 흔적도 없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지만 공기 속에는 여전히 희미한 피비린내가 남아 있었다...조은혁은 옷장 문을 열고 넥타이를 뽑아 매었다.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외출하려던 참이었는데 공기 중의 피비린내를 느끼고 심란해진 마음에 결국 넥타이를 다시 벗고 화장 의자에 털썩 앉았다.그는 손을 떨면서 담배 한 대를 더듬어 꺼냈다.지금은 아이가 없으니 그는 더 이상 피하지 않아도 된다.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땐 언제든지 피울 수 있다.사실 그는 이전에 이미 담배를 끊었다.담배의 매운 연기가 목을 자극했다.그는 은은한 니코틴 냄새 속에서 그와 박연희 사이의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요즘 그들의 감정이 다시 온기를 되찾으며 그들은 마치 신혼 때로 돌아간 것과도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니, 심지어 신혼 때보다 더 좋아졌다... 그 당시 박연희는 너무 풋풋했고 지금은 온화하고 여유로워서 사모님이 되기에 더 적합하다.조은혁은 생각할수록 마음이 답답해졌다.그때, 고용인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입구에서 말을 건넸다.“대표님, 진범 도련님께서 울고 계십니다. 계속 사모님을 찾고 있어요.”그러자 조은혁은 다급히 담배를 끄고 답했다.“아, 진범이를 데려오세요.”고용인은
잠시 후, 조은혁이 가볍게 입을 열었다.“난 이곳에서 너와 함께 있을게.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야.”그러자 박연희는 지극히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박연희는 남자의 치졸한 거짓말을 들춰내지 않고 그의 연기에 맞춰주며 싸늘한 눈빛으로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역할을 흉내 내고 있는 조은혁의 모습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더 이상 그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남자의 약속은 자정이 넘으면 신데렐라의 크리스털 구두처럼 먹통이 되어 추한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조은혁은 종일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심지어 휴대폰을 꺼놓기도 했다.황혼 무렵에 이르러 진범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작은 머리로 꾸벅꾸벅 졸면서도 절대 자려 하지 않자 조은혁은 그제야 아들을 안으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난 진범이 집에 데리고 가서 잘게. 내일 아침 일찍 올 거야.”그리고 박연희는 아무런 말도 없이 담담하게 그를 응시했다.종일 전화를 꺼놓았으니 저녁에는 틀림없이 진시아를 보러 갈 것으로 추측했다.그러나 박연희는 여전히 그를 폭로하지 않았다.단지 그가 떠날 때 가볍게 한마디 거들뿐이었다.“진범이는 밤에 한 번 분유를 먹여야 해요. 잊지 마세요.”그러자 조은혁은 고개를 숙이고 어깨너머로 아들을 바라보며 답했다.“알겠어. 걱정하지 마.”그렇게 조은혁은 진범이를 안고 별장으로 돌아갔다.침대에 눕자마자 진범이는 곧 단잠에 빠졌고 작은 몸은 이불 속에서 후끈후끈한 열기를 내뿜었다. 참으로 차분하고 보기 좋았다... 조은혁은 침대 옆에 앉아 손을 뻗어 아들의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졌다.그는 진범이를 사랑한다.진범이는 박연희의 외모와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아 아버지의 마음속에서는 완벽한 아들이었다.이윽고 조은혁은 진범이를 보면서 휴대폰을 켰다.종일 걸려온 전화는 68통. 그중 62통은 진시아로부터 걸려온 전화이다.잠시 생각해보던 조은혁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여자는 울고 있었다. 그녀는 구슬픈 목소리로 자신을 이렇게 내버려 두냐고, 정말 이대로 내버려 두느
장숙자는 아연실색했다.“사모님, 어디 가세요?”박연희는 고개를 숙이고 긴 속눈썹을 가볍게 떨었다.“곧 끝날 거예요, 곧 자유로워질 거예요.”장숙자는 그녀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하지만 장숙자는 지금의 박연희에게는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모님이 진시아 씨의 다리를 절단한 것에 대해 장숙자는 감복하여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싶을 정도였다. 이 얼마나 큰 박력인지.사모님은 예전에는 개미도 죽이지 못했다.장숙자는 차를 부르고, 또 그녀를 시중들어 옷을 갈아입게 했다.옷을 갈아입힌 후, 장숙자는 짙은 색 캐시미어 목도리를 가져다가 박연희에게 단단히 둘러주었다. 장숙자는 마음이 아파서 입을 열었다.“제가 같이 갈게요. 저는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박연희는 가볍게 장숙자의 손을 잡았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이 아이는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어요. 어찌 되었든, 낳고 키울 수 없었어요.”장숙자가 벼락을 맞은 듯 했다.세상에!방금 그녀가 무엇을 들었지?장숙자가 겁에 질려 박연희를 쳐다보자 박연희는 빙긋 웃었다.“돌아와서 얘기 해 줄게요.”말이 끝나자 그녀는 장숙자를 두고 병실을 나갔다....30분 후, 박연희는 진시아의 병원에 도착했다.날이 어슴푸레 밝았다.그는 검은색 디올 코트에 같은 색의 스틸레토 힐, 검은 머리를 뒤로 묶은 채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온화하고 청아했다.4층 VIP병실.간호사는 그녀를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막으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 “아가씨, 죄송합니다. 이 층 전체는 이미 다 예약되었습니다. 잘못 오신 것 같네요.”박연희는 진시아의 명함을 내밀었다.“전 진시아 씨의 여동생인데 아프다는 것을 알고 해외에서 찾아왔어요.”그녀가 입은 옷이 값도 꽤 나가고, 백은 더욱 귀한 가죽으로 된 것이었다.간호사는 의심하지 않고 말했다.“진시아 씨 여동생이시구나. 그럼 얼른 들어가보세요. 아, 진시아 씨의 남자친구도 있어요, 사이가 정말 좋으시죠. 진시아 씨가 다친 이
조은혁이 그녀의 손을 잡았지만 박연희가 벗어났다.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갔다.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바람을 피운 남자는 그녀의 눈물 한 방울도 가질 자격이 없었다.그녀는 그렇게 떠났다.그녀는 통로를 걷다가 온몸이 차가워져서 손을 뻗어 코트를 꽉 조였다.뒤에서 조은혁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연희야.”박연희는 돌아서서 그와 눈을 마주쳤고 가볍게 중얼거렸다.“오지 마요.”“조은혁... 오지 말라고!”“이제 와서도 우리가 잘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조은혁 씨, 당신 스스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여자가 괜찮을 것 같아요? 그 여자가 당신에게 조금의 감정도 없이, 그저 당신의 돈과 당신이 자랑스러워하는 그 성적 능력만을 원하는 게 아닌 이상... 하지만 전 할 수 없어요! 조은혁 씨, 난 못해요. 당신과 함께 있을 때, 그리고 당신과 결혼할 때, 전 평생 같이 하기를 바랐어요.”“그래도 괜찮아요.”“적어도 좋게 헤어지는 게 어디예요. 적어도, 마지막 체면은 지켜야죠.”“당신한테 너무 실망이에요.”...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천천히 떠났다.조은혁은 쫓아가지 않고 창가로 가서 박연희가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여윈 몸이 바람에 가볍게 떨리는 것을 보았고, 그는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조이는 것을 보았다.그는 그녀가 아직 산후조리 중이라는 것이 이제야 생각났다.검은색 캠핑카가 그의 시야에서 천천히 움직였다.벨린의 늦가을, 이런 이른 아침에 하늘에서 뜻밖에도 눈이 흩날렸다.아마 조은서가 했던 말인 것 같다.조은서는 눈이 오는 것이 싫다고 했다. 눈이 올 때마다 이별을 의미했고, 그녀가 잃을 게 있다는 뜻이니까.그럼 지금, 그와 박연희도 그런걸까?눈이 내리고 있었고, 그녀는 그를 완전히 떠나려했다......조은혁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박연희는 이미 퇴원했다.그는 또 차를 몰고 별장으로 돌아갔다.차가 정원에 천천히 주차했다. 하얗게 쌓인 눈 위, 차 안에서 그는 조
조은혁은 말이 없었다.그는 단지, 그녀를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그는 이 말들을 그녀가 오래전부터 다 준비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조은혁은 그와 이혼하고 떠나는 것도 그녀가 이미 다 계획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는 조은혁이 그녀를 진심으로 대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녀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한참 뒤 박연희는 다시 한 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진범이는 저한테 줘요.”그는 그녀의 어깨를 껴안았다.조은혁은 좋다고도, 싫다고도 말하지 않았다...사실 그는 마음속으로 그들이 끝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박연희가 그에게 하는 말에서 둘의 감정에 대한 미련도 조금도 듣지 못했고, 조금도 질투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박연희가 그를 좋아하던 마음을 어떻게 깨끗하게 지울 수 있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사랑하지 않으니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떠나고 싶으니 떠난다고 말했다.두 사람이 서로 말 없이 있을 때, 도우미가 전화를 가지고 와서 진시아의 전화라고 했다.도우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진시아 씨가 또 자살시도를 했다고 합니다.”조은혁은 휴대전화를 받아 몇 마디 들었다.그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박연희에게 말했다.“잠깐 다녀올게.”박연희는 대답하지 않았다.그에 조은혁은 또 실망했다.새벽의 눈 속에서 그는 다시 진시아 곁으로 달려갔다.이른 아침, 진시아는 자신의 손목을 베었다.응급처치, 그리고 여자의 히스테리적인 울음소리는 아무래도 사람을 심란하게 했다.처치가 끝나고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조은혁은 몸과 마음이 피곤했다.그가 침실 문을 밀어 열자 안은 어두컴컴한 무드등 하나만 남아 있었고 아이들은 모두 없었다.그녀가 그와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뜻이었다.피곤한 조은혁은 푹신한 침대에 박연희와 나란히 누워 있었다.몸도 마음도 힘들었고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그는 손을 들어 양미간을 가볍게 비비며 말했다.“연희야.”그는 등을 전부 껐다.서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