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을 데리고 인아 만나러 갈 거니 무릎 꿇고 직접 사과하세요. 그럼 시체라도 온전히 남겨드리려니까.”성혜인은 웃음을 터뜨리려 하는 찰나 설기웅이 우악스럽게 목을 졸랐다.“인아가 그렇게 됐는데 지금 웃음이 나와? 양심도 없는 미친 년이네, 이거.”성혜인이 그를 차갑게 바라보더니 씩 웃었다.“설 대표님, 저는 당신 친여동생이 참 측은해요. 그래도 당신들을 보러 가지 못해서 참 다행이죠. 이런 악랄한 짓을 하는 당신의 얼굴을 보면 얼마나 역겹겠어요.”설기웅의 손이 저도 모르게 바들바들 떨렸다. 마음이 무언가에 찔린 듯 불편했다.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한 변명을 했다. 지금의 불편한 마음은 모두 성혜인 때문이라고. 성혜인이 괜히 이상한 말로 자신의 마음을 후벼파는 것이라고.“이제 죽기 직전에도 이렇게 자신감 넘치나 보자.”그는 성혜인을 홱 놓아주고 한쪽에 조용히 앉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혜인 역시 그를 상대하기 싫기는 마찬가지였다. 말할수록 짜증이 나는 상대였다.차는 곧 설인아가 사는 곳에 멈췄고 몇 명의 경호원이 그녀를 결박한 채 차에서 내렸다. 설기웅은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가 설인아의 상태를 보려 했다.설기웅이 올 것을 미리 짐작한 설인아는 불쌍해 보이도록 몸을 한껏 움츠려 앉았다. 발갛게 부은 눈과 마구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그녀의 정신상태가 온전치 않아 보이도록 했다.그녀를 본 설기웅이 그녀를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인아야!”천천히 고개를 들어 오빠를 확인한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오빠, 나 너무 무서워. 눈만 감으면 그 남자들 얼굴이 아른거려. 아버지도 날 보고 싶지 않아 하시는데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집에 가고 싶어... 흑흑. 우리 가족 이제 다시 예전처럼 화목하게 지낼 수는 없는 거야? 오빠...”설인아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경호원들에 의해 끌려오는 성혜인을 발견했다. 그녀는 갑자기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설레서. 너무 기뻐서 떨린 것이었다.줄곧 설기웅이 얼른 성혜인을 처리했으면 좋겠다
설인아가 오빠의 팔을 껴안았다.“역시 오빠가 날 제일 사랑해. 오늘 밤부턴 악몽 안 꾸게 될 거야! 오빠, 고마워.”그녀는 설기웅의 품에 안겨 입꼬리를 올렸다. 뒷마당의 불빛이 설인아의 얼굴을 훤히 비추었다. 성혜인은 그녀가 얼마나 의기양양한지 표정을 두 눈 똑똑히 볼 수 있었다.하지만 상관없다. 오늘 밤 여기서 정말 죽게 된다면 앞으로 평생 이 두 사람의 얼굴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두 경호원은 철장을 잠근 뒤 설기웅의 명령을 기다렸다.설기웅은 조금 망설였다.그는 항상 자신에게 묻곤 했다.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말이다.그러나 그는 한 가정의 오빠로서 가족을 지킬 의무가 있다. 설인아는 그의 가족이며 성혜인은 남이다.“사장님, 배를 강 중심으로 몰고 내려간 뒤에 밀어버릴까요?”설기웅이 입을 뻐끔거렸다. 차마 그러라는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그의 망설임을 보아낸 설인아가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넘어질 것처럼 휘청거렸다.이 모습에 설기웅은 순간 결심을 굳혔다.“밀어버려.”“예.”경호원 몇 명이 철장을 보트 위로 올렸다. 보트를 타고 수십 미터를 나간 뒤 철장을 밀어버리려 했다.기슭과 인접한 곳은 강물이 너무 얕기 때문에 확실히 죽이려면 강 중심으로 나가야 했다.보트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 설기웅은 자신의 심장이 무언가에 의해 끝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 공포감이 순식간에 설기웅을 덮어버렸다.문득 어렸을 때 설의종이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네 동생은 몸이 안 좋아. 처음 태어났을 때도 고생했으니 앞으로 양보 많이 해야 해. 알겠니?”“아버지, 그럼 여동생이 잘못하면요?”“네 가족인 이상 절대 잘못하지 않을 거야.”“그럼 저와 우현이가 잘못한다면요?”“벌을 받아야지. 너흰 오빠로서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니.”이 철칙은 설기웅의 뼈에 새겨지다시피 했기에 몇 년 동안 그는 무조건 여동생이라면 감싸고 돌고 도왔다.설인아가 밖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든 간에 그는 설인아를 위해서라면 어
당황한 설우현이 곧 그를 따라 나갔다.“반승제 씨, 무슨 일이에요?”반승제는 그를 상대하지 않은 채 헬기에 올라탔다.함께 사다리를 타려던 설우현은 하마터면 반승제의 발에 차일 뻔했다.“반승제 씨! 아니, 매번 왜 그러는데. 무슨 일인지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그리고 내가 오늘 찾아온 것도 중요한 일 때문인데 이렇게 막 대하면 안 된다고.”말을 마친 그는 고집을 부리며 결국 헬기에 올라탔다.반승제는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설우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혜인이한테 아무 일 없길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설기웅은 내 손에 죽을 테니까.”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과 함께 설우현은 곧바로 그 영상을 떠올렸다. 설마 형이 복수하려는 건 아니겠지?얼른 설기웅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마음이 불안해진 설우현은 다시 나미선에게 전화를 걸었다.나미선은 전화를 아무렇지 않게 받았다.“엄마, 형님 어디 갔어요?”“네 형 성혜인 데려갔다. 인아를 괴롭혔으면 벌받아야지.”설우현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엄마고 형이고 왜 이렇게 똑똑하지 못한 일들만 하는지.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헬기가 이륙했다.그는 전화를 끊고 반승제에게 말했다.“인아가 사는 곳을 알고 있어. 형 성격상 혜인이 납치했더라도 먼저 인아 쪽에 데려갔을 거야.”헬기는 그곳으로 방향을 틀었다.10분쯤 비행했을 때 서주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거의 5일 동안 서천에 머무른 서주혁은 얻은 단서를 가능한 가장 이른 시일 내에 반승제에게 알려주려고 했다.“주혁아.”휴대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반승제의 목소리에 서주혁이 안도하며 다른 한 손으로 자료를 정리했다.“서천 쪽 병원이 바로 설씨 가문 사모님이 그해에 딸을 낳았던 곳이야. 병원에서 그 시간대에 많은 사람들을 이직시켰고 그 이직한 사람들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모두 1년 내로 죽었어.”“다 죽었다고?”반승제는 조금 놀랐다. 이는 설씨 가문의 아이가 바뀐 배후에 거대한 음
그의 손이 잠시 허공에서 멈칫했다.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서주혁은 여전히 지도 위의 그 주소를 향하고 있었다.“그런데 혜인 씨의 기억과 주위 사람들의 기억이 맞아떨어지지 않아. 이웃의 말에 따르면 임지연과 혜인 씨는 자주 자리를 비웠다고 해. 성휘는 줄곧 밖에서 일하느라 집에 대해 신경 쓸 틈이 없었고… 그래서 난 혜인 씨 기억이 혹시 일부 조작됐거나 사라진 거로 생각해. 혜인 씨는 눈치를 못 챈 거고.”이에 따라 성혜인도 임지연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임지연을 떠올리면 기억하는 것은 오직 그녀가 성혜인을 보호하려 했다는 것과, 엄청난 사랑을 주었다는 것. 그러나 더 디테일한 부분은 기억나지 않았다.할아버지, 할머니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고 그저 자신을 싫어했다는 것만 어슴푸레 기억했다.외삼촌이 엄마를 어떻게 도운 건지도 몰랐으며 고등학생 때 외삼촌 집에 일 년간 머물렀던 곳만 기억했다.반승제의 안색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대답이 없자 전화 건너편의 서주혁이 이름을 불렀다.“반승제?”“응.”“나는 아무래도 혜인 씨가 설씨 가문의 진짜 딸 같아. 임지연은 양어머니가 아닌 친어머니이고. 아까 말랬던 미치광이가 임지연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고 했어. 그때 임지연의 곁에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녔기 때문에 상황이 좀 복잡해서 더 구체적으로 조사하긴 힘들어. 사실 네가 나미선의 사진을 혜인 씨에게 보여주기만 하면 알 거야. 임지연과 생김새가 똑 닮았으니까. 그리고 설 회장님과 친자확인을 해도 돼.”말을 마친 서주혁이 그제야 안도한 듯 숨을 크게 쉬었다.반승제가 출국하기 전에 맡긴 모든 일을 끝마친 셈이다.목덜미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헤친 서주혁은 생각했다. 이번 단서를 찾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고. 정신병원 조사를 위해서만 수십만 건의 인적 사항을 꼬박꼬박 추려내야 했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서주혁의 팀이 데이터 처리에 능하다는 것이었다.반승제와 그 뒤에 앉은 설우현 역시 이어폰을 끼고 있었
한편 헬기에서.반승제가 전화를 끊은 후 설우현은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그러나 입술을 달싹이기만 할 뿐, 결국 내뱉은 한마디는 빨리 운전할 수 없겠냐는 독촉 뿐이었다.반승제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차갑게 앞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설우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여동생을 지척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이 개보다 못한 놈 같게 느껴졌다.설우현은 여러 가지 감정이 밀려와 순간적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반승제는 냉담한 얼굴로 헬기를 조종하여 목적지로 향했다.“혜인이가 죽으면 설기웅도 같이 순장될 줄 알아.”그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지만 설우현은 온몸에 힘이 빠진 듯 나른해졌다.아버지께서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 말씀하셨었다. 친여동생이 살아있다면 설씨 가문의 주식은 모두 여동생에게 물려줄 것이라고.오빠로서의 그 역시도 여동생이 살아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여동생만 살아있다면 가족이 옛날처럼 화목해질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그 여동생이 성혜인이란다.성혜인은 인간관계에 있어 칼과 같은 사람이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성혜인은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에게는 똑같이 한없이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지만 누군가 제 눈에 눈물을 내면 피눈물을 내게 했다. 그녀는 강하고 냉정하고 과감하다. 설인아와는 다르게.이런 이성적인 사람이야말로 그의 여동생이다.설우현은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다. 그저 눈물이 핑 돌고 눈앞이 흐려지기만 할 뿐.생전 하나님을 믿지 않던 그는 급기야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발 여동생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안전하기를...헬기가 별장 위로 날아올랐고 설우현은 망원경 하나를 들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반승제가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어디 있는지 봐요.”아래를 살펴보던 설우현이 눈에 띈 건 성혜인이 철장 속에 갇히는 장면이었다.“헬기 좀 낮춰봐요. 빨리요! 혜인이 강에 빠질 것 같아요!”그는 손바닥이 땀범벅이 돼서는 조급하게 소리쳤다.“헬기 낮춰봐요. 뛰어내려서 구해볼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던 부하들은 차마 설우현의 미움을 사는 행동을 할 수 없어 철장 문을 열어주었다.설우현은 성혜인을 조심스럽게 끌어안고 깨우기 위해 몸을 흔들었다.“혜인 씨.”“성혜인 씨!”그러나 성혜인은 깨지 못했다. 물속에 잠기면서 숨을 오래 참는 바람에 산소부족으로 기절한 것이었다.설우현은 서둘러 그녀를 보트에 눕히고 인중을 꼬집어 보았다.보트가 아직도 움직이질 않자 그가 고함을 질렀다.“노 저어요! 뭍으로 가라고.”몇 사람이 황급히 노를 젓기 시작했고 배는 뭍으로 향했다.설우현은 곧장 성혜인을 들어 안았다. 당장 병원으로 가려는 요량이었다.반승제의 헬기 역시 뒤뜰에 착륙했다. 헬기의 굉음에 별장 안에 있던 설기웅과 설인아가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밖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설기웅이 먼저 별장에서 걸어 나왔다. 그런 그의 눈에 띈 사람은 뜻밖에도 반승제였다.찾으러 가지도 않았는데 미리 찾아오다니.그러나 반승제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설우현을 향해 걸어갔다.그리고 성혜인을 안아 들고 아무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곧장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설기웅은 당연히 화가 났다. 이곳은 그의 구역이다. 아무도 자신을 이렇게 무시하고 마구 별장 안으로 들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거기 서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설우현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고통을 느낌과 동시에 입안에서 비린 맛이 났다.설기웅이 인상을 찌푸린 채 조금 전의 가격으로 깨진 이를 뱉었다.그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동생이 자신에게 폭력을 쓴 건 처음이었다.줄곧 그가 형으로서 양보해 왔기에 두 형제는 어려서부터 싸운 적 없이 화목하게 지내왔다.게다가 설우현의 눈에 그는 줄곧 어른과 다름없었다.그런 동생이 밑도 끝도 없이 주먹을 휘둘렀으니 설기웅이 황당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그는 반격하지 않았다.설우현은 그의 멱살을 잡고 화를 못 이겨 부들거렸다.“형!”고함을 질렀음에도 울분이 끝까지 차올라 더 이상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반승제는 성혜인을 안은 채 차에 올랐다. 운전석에 올라탄 설우현은 조심스럽게 차를 몰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백미러를 보니 반승제의 품에 안겨 있는 성혜인이 보였다.콜록콜록.성혜인이 기침하며 깨어나자 반승제가 얼른 등을 두드려주었다.“혜인아, 괜찮아?”눈을 뜬 성혜인은 눈앞이 흐릿하게 보였다. 강에 끝없이 가라앉는듯하던 느낌이 여전히 생생하여 마치 구렁이처럼 심장을 조여왔다.그 어둡고 차가운 느낌에 성혜인의 입술이 저도 모르게 바들바들 떨려왔다.반승제의 숨결을 느껴서야 조금 안도감이 생겼다.그녀는 힘껏 반승제의 품으로 파고들어 온기를 얻으려 했다.“승제 씨...”반승제는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자신의 무능함에 화도 났다. 분명 지켜줄 거라 했는데 또다시 이런 위험한 상황에 빠뜨리다니.“혜인아, 이제 괜찮아. 아무도 널 건드리지 못해.”성혜인은 고개를 끄덕일 뿐 지쳐서 말할 힘조차 없었다.차는 곧 병원으로 향했고, 병원으로 옮겨진 성혜인은 정밀검사를 받았다.담당 의사가 보고서를 훑더니 말했다.“몸에는 이상이 없습니다만 당분간 몸조리 잘하셔야 할 듯합니다. 임신하셨어요.”갑작스러운 소식에 반승제와 성혜인이 모두 혼란스러워졌다.충격과 놀라움.성혜인은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한참 지나서야 고개를 들며 물었다.“의사 선생님, 정말이에요? 저희 항상 조심해 왔는데 그럴 리가요...”의사가 콧등 위의 안경을 밀어 올리더니 사뭇 진지하게 대답했다.“네. 틀림없습니다. 혹시 두 사람이 콘돔 없이 다른 행위를 하지는 않으셨는지요?”의사의 거침없는 질문에 성혜인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성혜인은 당황하며 우물쭈물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반승제는 누군가한테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듯 어리둥절하게 서 있었다. 귓가에 윙윙 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는 듯했다.의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혹시 아이 원하지 않는 거라면 일찍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이에 반승제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아닙니다! 그게 아니라요...”그가 조심스럽게 성혜인을
방 안이 더욱 조용해졌다.설우현은 당장이라도 성혜인에게 네가 내 여동생이라 알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사실 여동생의 얼굴을 볼 면목조차 없었다.게다가 여동생 얼굴에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남아 있다.“혜인 씨, 누가 때린 거예요?”여동생을 강에 밀어 넣으려던 부하들의 짓이라면 아주 크게 혼내줄 것이다.그러나 성혜인이 퉁퉁 부은 볼을 만지작하며 대꾸했다.“그건 우혁 씨 핏줄에게 직접 물어보세요.”태연하게 대답하는 말 속에 다른 뜻이 있었다.그 말은 수십 개의 비수가 되어 설우현의 가슴에 내리꽂혔다. 그는 마음이 아픔과 동시에 난감함을 느꼈다.형이 한 짓이었구나. 하지만 형은 종래로 여자에게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었는데...그가 손을 바들바들 떨며 성혜인의 뺨을 어루만졌다. 저도 모르게 굵은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성혜인이 깜짝 놀라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부잣집 도련님이 이렇게 우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설우현도 자신의 행동이 과했음을 인지하였다.하여 애써 옷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참으려 했지만 눈물은 그의 마음은 알지 못한 채 하염없이 흘렀다.“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어...”설우현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성혜인이 오히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는 반승제의 소매를 잡고 끌어당기며 반승제가 중재해 주기를 바랐다.하지만 반승제는 조금 전의 일에 충격을 받아 이쪽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의사의 아이를 낳겠냐는 물음에 성혜인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부정적인 생각이 자꾸 뇌리를 스치니 반승제는 점점 슬퍼졌다. 결국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성혜인이 저를 위해 아이를 낳아주고 싶지 않아 한다.모두 그가 이전에 저지른 잘못 때문이니 이제 와서 만회할 수는 없었다.고개를 든 성혜인의 눈에 띈 것은 반승제의 눈물이었다.고개를 돌리니 또 마주친 것은 설우현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다.성혜인은 당황스러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반승제가 왜 우는 건지 잘 알고 있었다. 아이를 갖기 싫어한다는 사실이 그를 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