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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영상에 여자 얼굴 나오게 해

“부른 지가 언젠데 이제야 기어 들어와?”

권하윤을 대하는 강수연의 태도는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하지만 권하윤은 그런 그녀 대신 제발 저리는 듯 눈을 피하는 강민정을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

“왜 부르셨어요?”

“그걸 내가 꼭 말로 해야겠어? 여자애가 행실이 그렇게 천박한 것도 모자라 감히 승현의 얼굴에 먹칠을 헤? 권씨 가문에서 그렇게 배워먹었어?”

“어머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언제 천박하게 굴었다고 그러세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천진한 표정에 강수연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승현에게 매달려 몸에 그런 자국까지 남겨놓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밖에서 몸 파는 년들하고 뭐가 달라!”

하지만 강수연의 말이 끝나는 순간 권하윤이 아닌 강민정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듯한 난감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표정을 숨기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강수연을 위로했다.

“이모, 심장도 안 좋으신데 화내지 마세요.”

“언니도 얼른 이모한테 사과하세요.”

뻔뻔한 태도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제가 잘못했다면 사과하겠는데 어제 승현 씨와 같이 있은 사람 저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이냐? 네가 아니면 누군데?”

“민정 씨 어머님이 묻잖아요. 어제 민승현이 누구랑 있었는지.”

강민정은 훅 들어오는 공격에 당황하더니 이내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빠가 누구랑 같이 있었는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어제 저는 제 방에만 있었는데.”

“민정 씨는 당연히 방에 있었겠죠. 민승현과 같이.”

“닥쳐!”

강수연은 화가 잔뜩 나서 권하윤의 말을 잘랐다.

“민정과 승현은 친남매나 다름없는 사이야. 그런데 어떻게 두 사람에게 그런 누명을 씌워!”

아주 적재적소에 눈물이 강민정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게 말이에요. 언니. 아무리 인정하기 싫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내요? 전 승현 오빠를 친오빠처럼 생각해요.”

그녀는 강수연이 권하윤의 말을 믿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어릴 적부터 두 사람은 모녀처럼 지냈기에 그런 강수연이 자기 말고 권하윤을 믿을 가능성이 없었다.

그렇게 세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마침 민승현이 밖에서 들어왔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촌 여동생이 눈물을 흘리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달려가 강민정을 품에 안으며 눈물을 닦아줬다.

“민정아 왜 그래? 누가 그랬어?”

“오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흐느끼던 강민정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민승현을 바라보며 불쌍한 표정으로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강민정의 그 모습에 민승현은 가슴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곧바로 마음 아픈 듯 그녀를 품에 안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울지 마. 무슨 일이야? 오빠한테 다 말해. 오빠가 편 들어줄게.”

그런데 그때.

“승현아, 마침 잘 왔어. 권하윤이 글쎄 네가 쟤 방이 아닌 민정이 방에서 밤을 보냈다고 하지 뭐니!”

강수현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민승현은 그대로 굳어버리더니 권하윤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이 년이 엄마한테 그새 일러바쳤어? 그런다고 내가 너한테 갈 거라고 생각해? 꿈 깨!’

“그럴 리가요!”

한 치의 고민도 없는 부정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권하윤을 노려보며 버럭 화를 냈다.

“나 어제 분명 네 방에 있었는데 왜 이런 거짓말을 해? 경고하는데 앞으로 다시 한 번 그딴 헛소리로 민정이 이름에 먹칠하면 민씨 가문 문턱도 넘지 못할 줄 알아!”

“승현아, 그만해. 저런 애한테 화내서 뭐해?”

강수연은 고고한 자태로 권하윤을 같잖다는 듯 흘겨봤다.

“권하윤, 아직도 할 말 있어?”

한 가족이 편을 먹고 바깥사람인 저를 배척하는 꼴을 보니 권하윤은 웃음이 났다. 증거를 앞에 내놓지 않는 이상 강수연이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저도 더 이상 할 말 없어요.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너 감히 시어머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승현이에게 망신을 줘도 유분수지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다니! 오늘 제사상 치우는 건 네가 혼자 다 해! 다른 사람 도움받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마!”

-

권하윤은 본채 홀에서 제단 위에 놓인 꽃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이드들은 소식을 접했는지 그 누구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고 대신 뒤에서 수군수군 서로 얘기하기 바빴다.

권씨 가문에서 사람을 피 말리는 것에 비하면 이건 어린이 장난 수준이었지만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권하윤이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놓은 잔들을 치우려 할 때 다른 손 하나가 불쑥 나와 그녀를 잡았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원혜정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권하윤을 따스한 눈길로 바라봤다.

“잔은 제가 치울 테니 동서는 접시부터 치워요.”

원혜정의 도움 덕에 시간은 많이 단축됐다.

게다가 이건 그녀가 원혜정에게 두 번째로 받는 도움이었다.

“고마워요.”

정리가 끝난 뒤 권하윤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했고 원혜정은 그녀를 남원으로 초대했다.

“다섯째 숙모가 사람은 무척 좋아요. 오늘은 그저 마음이 급하셔서 그런 걸 거예요. 그러니 너무 마음 쓰지 말아요.”

“네, 전 괜찮습니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원혜정은 차를 빈 잔에 따르며 권하윤에게 건넸다.

“이 차는 차밭에서 직접 공수해온 건데 한 번 마셔봐요.”

“향이 은은하고 맛있네요.”

예의가 묻어나는 평가에 원혜정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그러면 더 마셔요. 여기 많으니까.”

하지만 차를 마실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눈꺼풀은 추를 달아놓은 듯 무거워 자꾸만 감겼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차린 권하윤은 이내 몸을 일으켰다.

“형님, 저 피곤해서 먼저 돌아가 볼게요.”

하지만 원혜정이 그녀를 막아섰다.

“너무 내외하지 마요. 여기 저뿐이니 휴식하고 가요. 제가 객실 치우라고 메이드에게 일러둘게요.”

권하윤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눈이 자꾸만 감기는 바람에 원혜정이 이끄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혹시 불편하면 누워서 휴식해요.”

걱정 가득한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서 맴돌던 끝에 권하윤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 소파 위에 축 늘어졌다.

“동서?”

“권하윤 씨?”

원혜정은 권하윤을 몇 번 불러보고는 반응이 없자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타이트한 목폴라를 입은지라 한 번에 벗기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두 팔을 빼고 옷깃을 가슴 위까지 들어 올렸을 때 새하얀 피부에 울긋불긋 나있는 낯 뜨거운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원혜정의 손은 멈칫했다.

‘앞에는 상처가 없어.’

그리고 권하윤의 몸을 돌려 등 뒤를 확인하는 순간 회초리에 맞아 갈라터진 상처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피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스스로 처리한 듯한 상처에 원혜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정말 자기 상처를 치료하려고 구급상자를 가져갔던 거였어?’

원혜정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테이블 위에 놓인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전화했다.

“혹시 지금 통화 가능해요?”

“…….”

“확인해 봤는데 확실히 많이 다쳤어요.”

“…….”

원혜정이 통화하는 도중 쓰러져 있어야 할 권하윤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의식을 잃어갈 때쯤 있는 힘껏 혀끝을 깨문 덕에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원혜정이 뒤 돌아앉아 있는 것을 확인하자 바지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하지만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파 틈으로 원혜정이 고개를 돌리는지 확인하면서 말이다.

다행히도 원혜정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여전히 통화하기 바빴다.

“자기 상처 치료하는 데 사용한 것 같아요.”

하지만 권하윤이 핸드폰 비번을 풀고 메시지 화면까지 진입했을 때 원혜정이 전화를 끊는 듯한 동작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

권하윤은 문자를 쓸 새도 없이 최근에 통화했던 사람에게 숫자 1을 보냈다.

그리고 거의 동시 원혜정이 통화를 끝내고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미처 호주머니에 넣지 못한 핸드폰은 그대로 엉덩에 밑에 숨길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튀어나올 듯 긴장한 상황이 계속됐다.

원혜정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는 권하윤을 힐끗 흘겨봤다. 긴 머리카락은 그녀의 얼굴 반쪽을 가리고 있었다.

곧이어 낮은 한숨이 들리더니 원혜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원망하지 마요. 하윤 씨가 민도준과 엮였으니 나도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들어와요.”

그녀의 목소리에 두 보디가드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살살 다뤄요.”

싸늘한 눈빛이 권하윤의 얼굴을 훑었다.

“네.”

보디가드의 대답을 듣고 몸을 돌리던 원혜정은 다시 고개를 돌려 한 마디를 보충했다.

“영상에 여자 얼굴 나오게 하는 거 잊지 말아요.”

이렇게 해야 앞으로 권하윤을 손에 쥐고 흔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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