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자 바람은 더 이상 피부를 에는 듯 매섭지 않았고, 기온도 차츰 풀어졌다. 게다가 해원은 봄이 일찍 찾아오기에 벌써 봄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보름 정도 지나자 소혜는 벌써 도윤을 돌보는 데 익숙해졌고, 도윤도 새로 온’베이비시터’를 받아들인 듯했다. 게다가 시윤도 이제는 다시 극단을 나가기 시작했다.도윤이 아직 어려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하기에 도준이 해원에 도윤 보러 오기로 했다. 만나는 날이 다가오자 시윤은 전날 도윤의 기저귀와 젖병, 분유와 이유식을 챙겼다. 그러다 도윤이 도준과 있으면서 적응하지 못할까 봐 장난감도 몇 개 준비했다.준비를 마치니 11시가 가까워졌다.시윤은 그제야 욕실에 들어가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샤워할 때면 시윤은 음악을 듣거나 좋아하는 발레극을 보곤 하는데 오늘에는 왠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그뿐만 아니라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초조함이 밀려왔다.‘도준 씨가 내일이면 오네.’이건 두 사람이 이혼한 뒤, 처음으로 만나는 거다. 시윤은 도준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심지어는 내일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까지 생각하기 시작했다.본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인지한 시윤은 저를 때리고 싶은 마음마저 생겼다.‘이혼도 했는데 뭘 입는지는 왜 신경 쓰는 건데?’그렇게 밤새도록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다음날 깨었을 때 시윤의 눈 밑에는 검푸른 다크서클이 생겨났다.시윤이 2층에서 내려와 보니 소혜가 카드로 도윤과 장난치고 있었다.“이것 봐. 이건 사과, 이건 배, 이건 귤...”도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포동포동한 손으로 그 중의 카드 한 장을 골라냈다.그제야 소혜는 자기가 골라낸 게귤이 아니라 오렌지라는 걸 알아차리고 엇색하게 웃었다.“하하하, 이걸 다 아네?”도윤이 말은 아직 할 줄 모르지만 소혜는 왠지 도윤이 저를 경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뭐야. 조그만 게 하나도 안 착하잖아.’“소혜 씨.”때마침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
시윤은 피식 웃었다.“도윤아, 오늘은 아빠랑 놀러 갈 거야. 아빠한테 안겨야지.”시윤은 말하면서 도윤의 손을 떼어내고는 도준에게 아이를 넘겨주었다.그사이 도준의 시선은 오롯이 시윤에게만 향할 뿐 도윤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도준을 바라보던 도윤은 아빠가 저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걸 발견하고 눈을 흘겼다....시윤은 오늘 오전 연습만 있어 일찍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점심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기 바쁘게 도준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왜요?”“도윤이가 계속 울음을 안 멈추는데, 시간 나면 좀 올래?”도준이 얘기할 때,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도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이에 시윤은 걱정돼서 다급히 말했다.“배고파서 그런 거 아니에요? 분유 먹였어요?”“먹였어, 그런데도 계속 울어.”“아마 환경이 바뀌어 적응이 안 되나 봐요. 저도 연습이 끝났으니 바로 갈게요. 어디예요?”그 말을 듣는 순간 도준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사냥감을 잡은 듯한 포식자의 미소를 지었다.“골든 빌라야.”시윤은 얼른 외투를 걸치며 대답했다.“알았어요. 바로 갈 테니까 그사이 먼저 달래고 있어요. 너무 울면 목쉴 수 있으니까.”전화를 끊은 도준은 울부짖던 도윤을 바라봤다. 그랬더니 도윤도 관중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이내 울음을 멈추고 하품했다.심지어 도준은 재밌다는 듯 눈썹을 치켜 올리고는 손에 있는 젖병을 건네자 도윤은 울지도 않고 스스로 젖병을 쥐고 분유를 먹기 시작했다.그걸 본 도준은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애 하나는 잘 낳네. 내 장점만 쏙 빼닮았어.’그로부터 약 반 시간 뒤, 초인종이 울렸다.도준이 도윤을 힐끗 보자 도윤은 뜻을 이해했는지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심지어 방금 전 통화할 때보다 더 세게 울어댔다.그제야 도윤은 문을 열었고, 시윤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도윤이는요?”도준은 소파 쪽을 가리켰다.“저기.”그러자 시윤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도윤을 품에 안았다.“아유, 우리 도윤이, 뚝
그 시각, 주방.시윤은 앞치마를 두르고 긴 머리를 뒤에 묶어 올린 채 채소를 썰고 있었다.앞치마의 끈은 시윤의 가는 허리를 더 굴곡져 보이게 했고 귀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여성미를 더 부각했다.그때 마침 채소를 썬 시윤이 담을 그릇을 찾는 듯 두리번대다가 발꿈치를 들고 캐비닛에 올려둔 그릇을 향해 손을 뻗었다.그릇이 너무 안쪽에 있어 애를 먹던 찰나, 혼 하나가 쑥 나와 시윤이 집으려던 그릇을 꺼내주었다.도준은 가녀린 여자를 제 품 안에 가두고는 힘 있는 팔로 조리대를 짚었다.몸에 힘을 싣느라 바짝 당겨진 팔뚝으로 핏줄이 울퉁불퉁 튀어 올라 순간 시윤을 사로잡았다.시윤은 귀까지 빨개지더니 고개를 돌려 도준을 바라봤다.“왜 나왔어요?”“도윤이 자.”그 시각 도윤은 방 안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심심해하고 있었다.하지만 시윤은 그 말에 껌뻑 속았다.“그래요?등에 닿은 남자의 몸이 너무 선명해 시윤의 시선은 점차 흐트러지기 시작했다.“가서 쉬고 있어요. 저 금방 끝낼게요.”“도와줄게.”도준은 끝내 시윤의 뒤에서 물러나 시윤이 채소를 써는 사이 옆에서 고기를 다졌다. 도준의 칼솜씨는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지만 그 모습이 너무 무서운 게 흠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완성되었고, 식탁 위에 김이 모락모락한 음식들이 하나둘 올라왔다.도윤에게 이유식을 먹이려고 방에 갔던 시윤은 아이가 여전히 자는 걸 발견하고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 의자에 앉았다.“도윤이가 여기서 이렇게 잘 잘 줄은 몰랐네요.”도준은 부끄러움도 없는지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응.”그렇게 한참 동안 식사를 하던 그때, 도준이 갑자기 물었다.“극단 돌아갔던데, 적응돼?”“연습을 오랫동안 쉬어서 그런지 아직 몸에 익지 않은데, 윤 쌤이랑 선배들이 도와준 덕에 그나마 괜찮아요.”시윤은 말을 마치고 도준을 바라봤다.“그러는 도준 씨는요? 회사 일은 순조로워요?”“괜찮아. 자기가 보고 싶어 문제지만.”시윤은 잠깐 멍해 있다가 어색하게 눈을 피했다.“장
시윤은 마구 도리질했다.“무슨 소리예요? 저 아무 생각도 안 했어요.”도준은 손을 들어 시윤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몇 가닥 잡더니 야릇한 눈빛으로 시윤을 바라봤다.“그런데 나는 생각했는데.”이윽고 도준은 점점 붉어지는 시윤의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자기가 내 밑에서 어떻게 내 이름을 부르며 울었는지, 거울에 비친 자기 허리가 어땠는지, 그리고...”“그만!”시윤은 화가 나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서 놀고 있던 도윤마저 시윤을 바라봤다.그제야 시윤은 도윤이 놀랐을까 봐 얼른 달랬다.“너한테 말하는 거 아니야.”도윤이 다시 장난감을 놀기 시작하자 시윤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돌렸다.“어쩜 아들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어요?”도준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내가 뭐? 없는 말 지어낸 것도 아니고. 나 정말 생각했어. 우리 그때 뜨거웠잖아.”“변태!”도준은 피식 웃었다.“뭐야? 내 아이도 낳아 줬으면서 아직도 이렇게 부끄러움이 많아?”시윤은 더 이상 도준의 말에 대꾸하기 싫어 도윤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하루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밤이 되었다.도준은 직접 운전해 두 사람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그러자 소혜가 바로 달려 나와 먼저 도윤을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시윤 역시 그 뒤를 따라 들어가려 했지만 도준이 갑자기 막아섰다.“할 얘기 있어.”“왜요?”시윤은 하루 종일 도준에게 당하고 나니 말투가 좋지 않았다.그러자 도준이 목소리를 낮추며 달랬다.“내가 참지 못했어. 나 무시하지 마, 응?”시윤은 도준이 자세를 낮추고 달래는 투로 말하는 걸 항상 참지 못하는지라 어색하게 몸을 틀었다.“우리 이혼했어요. 이혼한 사이에 무시하는 건 정상 아니에요?”“그래, 이혼했지.”도준은 시윤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우리 이제 남남이니 내가 누구 만나든 상관없지?”순간 어리둥절해진 시윤은 고개를 들어 더 남자다워진 도준을 바라봤다.‘왜 이런 걸 묻는 거지?’‘설마 벌써 새 애인이 생겼
다음날.시윤은 여느 때처럼 연습하러 극단에 도착했다. 이번 달 방송 출연이 있기에 윤영미는 발레극 중 한 부분을 선택해 제자들을 연습시켰다.그렇게 긴장 가득한 연습이 끝나자 시윤은 수아를 포함한 후배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그들 앞길을 가로막았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임우진이었다. 우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시윤에게 인사를 건넸다.“선배, 저 오늘 생일이라 모두를 집에 초대하고 싶은데.”그 말에 수아가 끼어들어 대신 동의했다.“진작 알려주지. 그럼 선물도 준비했을 텐데.”하지만 우진의 시선은 오롯이 시윤한테만 맴돌았다.“선물은 필요 없어요. 선배가... 와주는 것만으로도 기뻐요.”우진이 이렇게까지 말하기도 했고, 후배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어 시윤은 이내 소혜에게 문자를 보내고 후배들과 함께 출발했다....우진의 집은 13평 정도 되는 작은 아파트인데 안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게다가 미리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해물 구이와 바베큐, 그리고 맥주를 시간 맞춰 주문했다.시윤은 본인 주량이 약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맥주를 조금씩만 마셨다.하지만 하필 술 게임을 할 때 여러 번 벌칙에 걸려 술을 마시다 보니 점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시윤은 본인이 취할까 봐 우진에게 먼저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우진이 벌떡 일어나 함께 뒤따라 나왔다.“우리 동네 길이 복잡해요. 게다가 저녁이라 제가 아래까지 데려다줄게요.”시윤은 머리가 어지러워 바로 동의했다....저녁이라 밤바람이 제법 쌀쌀했다. 시윤은 술을 마신 탓에 아무 말이 없었고, 우진은 너무 긴장한 탓에 말하지 못해 두 사람 사이에 침묵만 흘렀다.그렇게 단지 입구에 도착하자 우진은 겨우 손을 비비며 말을 꺼냈다.“선배, 이혼했다면서요?”‘수아가 말해줬나 보네.’시윤은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응.”그 대답에 우진의 눈은 이내 반짝이더니 자리에 곧게 서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선배, 혹시 저를 한번 고려
제 가슴에 떨어진 시윤의 작은 머리를 본 도준은 우진과 대화하는 것조차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는지 이내 시윤을 들어 안고 떠나갔다.그 뒤에서 우진은 시윤이 두 손으로 도준의 목을 끌어안는 걸 바라보며 주먹을 그러쥐었다. 심지어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소년처럼 눈이 이글거렸다.‘두 사람이 이젠 이혼도 했는데, 왜 쟁취하지 않아? 민도준한테 맞설 용기조차 없으니 선배가 너 안 좋아하지. 무조건 선배한테 내 결심을 보여줘야 해.’...한편, 차 안.“물...”도준이 시윤 대신 안전벨트를 매주기 바쁘게 시윤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목말라. 물.”도준은 곧바로 물 하나를 시윤의 입가에 댔다.“입 벌려.”시윤은 고분고분 입을 벌리고 물을 마시더니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왜 이렇게 차갑지? 너무 차가워.”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차가워야 정신 차릴 것 아니야.”도준은 이내 생수병 뚜껑을 받아버렸다. 어두운 불빛 아래 힘 있는 팔 덕에 남성미가 한층 더해졌다.도준은 생수병을 던져 버리고 손을 들어 시윤의 얼굴을 잡더니 엄지로 입술에 묻은 물을 닦아주었다.“그렇게 차가워?”‘냉동했던 물인데 안 차가울 리가 있나? 이것도 질문이라고 하나?’시윤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차가워요.”새빨갛게 달아오른 입술이 말 하면서 열린 순간, 남자의 뜨거운 혀가 안으로 파고들었다.“싫어... 읍...”도준은 마구 젓는 시윤의 팔을 꽉 잡아 등 뒤로 묶더니 몸을 바싹 붙였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몸이 부딪히며 시윤은 더 이상 피할 곳도 없어졌다.오랜만인지라 도준은 힘 조절도 하지 않아 술에 취했던 시윤마저 정신이 들었다. 시윤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피하려 했지만, 도준이 시윤 먼저 턱을 잡으며 말했다.“착하지? 움직이지 마. 차갑다며? 내가 따뜻하게 해줄게.”“싫어요.”조금 정신이 돌아온 시윤은 몸을 버둥댔지만 손이 묶인 탓에 움직일수록 오히려 도준의 욕망을 더 건드렸다.아니나 다를까 도준의 숨결은 더 거칠
시윤은 도준의 음산한 말투에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도준이 아무나 찾아도 된다고 했던 말이 떠오르자 다시 화가 치밀어 겁도 없이 도준의 속을 긁었다.“그게 도준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 우리 이혼했으니 아무나 만나도 된다면서요? 도준 씨도 다른 사람 만날 수 있는데, 저라고 왜 안 되는데요?”그 말에 위험한 분위기를 내뿜던 도준은 이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고딩어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방금 전 무서운 분위기는 사라지고 오히려 농담기 섞인 허스키한 목소리만 남았다.“아, 그러니까 내가 지난번에 그 말을 했다고 지금까지 삐져 있었어? 질투해서?”“누가 그렇대요? 얼마나 기뻤다고. 도준 씨가 다른 여자랑 사귀면 제가 도윤이한테 새아빠, 새엄마 부르는 방법까지 가르쳐 줄게요. 두 사람 축복해 줘야 하니까.”도준은 그 말에 피식 웃더니 손으로 시윤의 얼굴을 쓸어내렸다.“자기가 이렇게 배려심이 넘치는 줄 몰랐네. 그래, 도윤이 새엄마 될 사람인데, 자기가 골라주는 건 어때? 명문가 여식? 아니면 연예인? 그것도 아니면 자기처럼 유연한 발레리노나 찾을까?”도준이 진지하게 상대를 고르기 시작하자 시윤은 화가 나 얼굴이 벌게졌다.“제 마누라도 아닌데,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도준은 시윤의 반응을 관찰하며 눈웃음을 쳤다.“자기도 내 마누라잖아. 그러니 자기 말 들어야지. 자기가 만나라는 사람 만날게. 어때?”‘뭐야? 지금 뭐 이직하기 전에 새 직원 찾아놓고 가라는 것도 아니고.’시윤은 점점 날카로운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도준은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긴 손가락으로 시윤의 머리카락을 감았다.“자기가 내 취향 제일 잘 알잖아. 안 그래?”그 말에 시윤은 끝내 폭발한 듯 도준의 손을 뿌리쳤다.“나쁜 놈! 사람도 아니야!”시윤은 높은 소리로 대뜸 욕설을 퍼부었다. 감히 도준을 이렇게 욕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오직 시윤 뿐일 거다.이미 붉어진 시윤의 눈시울을 보며 도준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자기한테 욕먹은 나도 안 울었는데
시윤은 그 말에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그럼 두려울 때 언제든지 멈추길 원해도 된다는 거야?도준은 시윤이가 방금처럼 밀어내지 않자 손가락으로 시윤의 얼굴을 문지르며 손을 목덜미로 내렸다.과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도준의 손이 닿는 곳마다 짜릿함이 전해졌다.술에 취한 것인지 차 안이 답답해서인지 시윤은 도준의 애써 본능을 참고 있는 표정에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두 사람의 시작은 시윤이가 도준을 쫓아다니며 구애했었다. 두 사람이 정식으로 만난 후에도 시윤이가 질질 끌려다니며 도준의 주도하에 모든 것을 통제당했다. 하지만 도윤이가 구애하겠다고 했기에 시윤은 도저히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도준에게 너무 많이 속았기에 시윤은 동의하기 전에 조심스럽게 물었다.“도준 씨가 구애했는데도 제가 거절한다요?”도준은 눈썹을 찡긋거렸다.“그래?”시윤이가 긴장해하자 도준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나 보지. 자기랑은 상관없어.”도준의 말을 듣자 시윤은 그제야 안심되었다.“그래요.”시윤이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하자 도준은 마음이 근질근질해서 소리 없이 다가갔다.“방금 그 말 동의한다는 거야?”시윤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알면서 뭘 물어요.”도준은 웃으며 고개를 숙여 삐죽 내민 시윤의 입술에 키스하려 했지만 닿기도 전에 시윤이가 고개를 돌려 피했다. 시윤은 가는 손가락으로 도준의 가슴을 찌르며 그와 거리를 두었다.“도준 씨는 구애하는 입장이니 저한테 함부로 손대시면 안 되죠.”불빛이 어두웠지만 시윤의 잘난 척하는 표정은 매우 잘 보였다. 도준은 오히려 이런 시윤의 모습이 귀여워 보여 그녀의 뜻대로 뒤로 물러났다.“그래, 자기 말 들을 게.”도준이가 정말 물러서자 시윤은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차가 한참 달린 후 시윤은 갑자기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시윤은 창밖을 가리키며 물었다.“이건 저희 집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잖아요.”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