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윤은 마구 도리질했다.“무슨 소리예요? 저 아무 생각도 안 했어요.”도준은 손을 들어 시윤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몇 가닥 잡더니 야릇한 눈빛으로 시윤을 바라봤다.“그런데 나는 생각했는데.”이윽고 도준은 점점 붉어지는 시윤의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자기가 내 밑에서 어떻게 내 이름을 부르며 울었는지, 거울에 비친 자기 허리가 어땠는지, 그리고...”“그만!”시윤은 화가 나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서 놀고 있던 도윤마저 시윤을 바라봤다.그제야 시윤은 도윤이 놀랐을까 봐 얼른 달랬다.“너한테 말하는 거 아니야.”도윤이 다시 장난감을 놀기 시작하자 시윤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돌렸다.“어쩜 아들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어요?”도준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내가 뭐? 없는 말 지어낸 것도 아니고. 나 정말 생각했어. 우리 그때 뜨거웠잖아.”“변태!”도준은 피식 웃었다.“뭐야? 내 아이도 낳아 줬으면서 아직도 이렇게 부끄러움이 많아?”시윤은 더 이상 도준의 말에 대꾸하기 싫어 도윤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하루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밤이 되었다.도준은 직접 운전해 두 사람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그러자 소혜가 바로 달려 나와 먼저 도윤을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시윤 역시 그 뒤를 따라 들어가려 했지만 도준이 갑자기 막아섰다.“할 얘기 있어.”“왜요?”시윤은 하루 종일 도준에게 당하고 나니 말투가 좋지 않았다.그러자 도준이 목소리를 낮추며 달랬다.“내가 참지 못했어. 나 무시하지 마, 응?”시윤은 도준이 자세를 낮추고 달래는 투로 말하는 걸 항상 참지 못하는지라 어색하게 몸을 틀었다.“우리 이혼했어요. 이혼한 사이에 무시하는 건 정상 아니에요?”“그래, 이혼했지.”도준은 시윤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우리 이제 남남이니 내가 누구 만나든 상관없지?”순간 어리둥절해진 시윤은 고개를 들어 더 남자다워진 도준을 바라봤다.‘왜 이런 걸 묻는 거지?’‘설마 벌써 새 애인이 생겼
다음날.시윤은 여느 때처럼 연습하러 극단에 도착했다. 이번 달 방송 출연이 있기에 윤영미는 발레극 중 한 부분을 선택해 제자들을 연습시켰다.그렇게 긴장 가득한 연습이 끝나자 시윤은 수아를 포함한 후배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그들 앞길을 가로막았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임우진이었다. 우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시윤에게 인사를 건넸다.“선배, 저 오늘 생일이라 모두를 집에 초대하고 싶은데.”그 말에 수아가 끼어들어 대신 동의했다.“진작 알려주지. 그럼 선물도 준비했을 텐데.”하지만 우진의 시선은 오롯이 시윤한테만 맴돌았다.“선물은 필요 없어요. 선배가... 와주는 것만으로도 기뻐요.”우진이 이렇게까지 말하기도 했고, 후배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어 시윤은 이내 소혜에게 문자를 보내고 후배들과 함께 출발했다....우진의 집은 13평 정도 되는 작은 아파트인데 안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게다가 미리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해물 구이와 바베큐, 그리고 맥주를 시간 맞춰 주문했다.시윤은 본인 주량이 약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맥주를 조금씩만 마셨다.하지만 하필 술 게임을 할 때 여러 번 벌칙에 걸려 술을 마시다 보니 점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시윤은 본인이 취할까 봐 우진에게 먼저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우진이 벌떡 일어나 함께 뒤따라 나왔다.“우리 동네 길이 복잡해요. 게다가 저녁이라 제가 아래까지 데려다줄게요.”시윤은 머리가 어지러워 바로 동의했다....저녁이라 밤바람이 제법 쌀쌀했다. 시윤은 술을 마신 탓에 아무 말이 없었고, 우진은 너무 긴장한 탓에 말하지 못해 두 사람 사이에 침묵만 흘렀다.그렇게 단지 입구에 도착하자 우진은 겨우 손을 비비며 말을 꺼냈다.“선배, 이혼했다면서요?”‘수아가 말해줬나 보네.’시윤은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응.”그 대답에 우진의 눈은 이내 반짝이더니 자리에 곧게 서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선배, 혹시 저를 한번 고려
제 가슴에 떨어진 시윤의 작은 머리를 본 도준은 우진과 대화하는 것조차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는지 이내 시윤을 들어 안고 떠나갔다.그 뒤에서 우진은 시윤이 두 손으로 도준의 목을 끌어안는 걸 바라보며 주먹을 그러쥐었다. 심지어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소년처럼 눈이 이글거렸다.‘두 사람이 이젠 이혼도 했는데, 왜 쟁취하지 않아? 민도준한테 맞설 용기조차 없으니 선배가 너 안 좋아하지. 무조건 선배한테 내 결심을 보여줘야 해.’...한편, 차 안.“물...”도준이 시윤 대신 안전벨트를 매주기 바쁘게 시윤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목말라. 물.”도준은 곧바로 물 하나를 시윤의 입가에 댔다.“입 벌려.”시윤은 고분고분 입을 벌리고 물을 마시더니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왜 이렇게 차갑지? 너무 차가워.”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차가워야 정신 차릴 것 아니야.”도준은 이내 생수병 뚜껑을 받아버렸다. 어두운 불빛 아래 힘 있는 팔 덕에 남성미가 한층 더해졌다.도준은 생수병을 던져 버리고 손을 들어 시윤의 얼굴을 잡더니 엄지로 입술에 묻은 물을 닦아주었다.“그렇게 차가워?”‘냉동했던 물인데 안 차가울 리가 있나? 이것도 질문이라고 하나?’시윤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차가워요.”새빨갛게 달아오른 입술이 말 하면서 열린 순간, 남자의 뜨거운 혀가 안으로 파고들었다.“싫어... 읍...”도준은 마구 젓는 시윤의 팔을 꽉 잡아 등 뒤로 묶더니 몸을 바싹 붙였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몸이 부딪히며 시윤은 더 이상 피할 곳도 없어졌다.오랜만인지라 도준은 힘 조절도 하지 않아 술에 취했던 시윤마저 정신이 들었다. 시윤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피하려 했지만, 도준이 시윤 먼저 턱을 잡으며 말했다.“착하지? 움직이지 마. 차갑다며? 내가 따뜻하게 해줄게.”“싫어요.”조금 정신이 돌아온 시윤은 몸을 버둥댔지만 손이 묶인 탓에 움직일수록 오히려 도준의 욕망을 더 건드렸다.아니나 다를까 도준의 숨결은 더 거칠
시윤은 도준의 음산한 말투에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도준이 아무나 찾아도 된다고 했던 말이 떠오르자 다시 화가 치밀어 겁도 없이 도준의 속을 긁었다.“그게 도준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 우리 이혼했으니 아무나 만나도 된다면서요? 도준 씨도 다른 사람 만날 수 있는데, 저라고 왜 안 되는데요?”그 말에 위험한 분위기를 내뿜던 도준은 이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고딩어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방금 전 무서운 분위기는 사라지고 오히려 농담기 섞인 허스키한 목소리만 남았다.“아, 그러니까 내가 지난번에 그 말을 했다고 지금까지 삐져 있었어? 질투해서?”“누가 그렇대요? 얼마나 기뻤다고. 도준 씨가 다른 여자랑 사귀면 제가 도윤이한테 새아빠, 새엄마 부르는 방법까지 가르쳐 줄게요. 두 사람 축복해 줘야 하니까.”도준은 그 말에 피식 웃더니 손으로 시윤의 얼굴을 쓸어내렸다.“자기가 이렇게 배려심이 넘치는 줄 몰랐네. 그래, 도윤이 새엄마 될 사람인데, 자기가 골라주는 건 어때? 명문가 여식? 아니면 연예인? 그것도 아니면 자기처럼 유연한 발레리노나 찾을까?”도준이 진지하게 상대를 고르기 시작하자 시윤은 화가 나 얼굴이 벌게졌다.“제 마누라도 아닌데,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도준은 시윤의 반응을 관찰하며 눈웃음을 쳤다.“자기도 내 마누라잖아. 그러니 자기 말 들어야지. 자기가 만나라는 사람 만날게. 어때?”‘뭐야? 지금 뭐 이직하기 전에 새 직원 찾아놓고 가라는 것도 아니고.’시윤은 점점 날카로운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도준은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긴 손가락으로 시윤의 머리카락을 감았다.“자기가 내 취향 제일 잘 알잖아. 안 그래?”그 말에 시윤은 끝내 폭발한 듯 도준의 손을 뿌리쳤다.“나쁜 놈! 사람도 아니야!”시윤은 높은 소리로 대뜸 욕설을 퍼부었다. 감히 도준을 이렇게 욕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오직 시윤 뿐일 거다.이미 붉어진 시윤의 눈시울을 보며 도준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자기한테 욕먹은 나도 안 울었는데
시윤은 그 말에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그럼 두려울 때 언제든지 멈추길 원해도 된다는 거야?도준은 시윤이가 방금처럼 밀어내지 않자 손가락으로 시윤의 얼굴을 문지르며 손을 목덜미로 내렸다.과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도준의 손이 닿는 곳마다 짜릿함이 전해졌다.술에 취한 것인지 차 안이 답답해서인지 시윤은 도준의 애써 본능을 참고 있는 표정에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두 사람의 시작은 시윤이가 도준을 쫓아다니며 구애했었다. 두 사람이 정식으로 만난 후에도 시윤이가 질질 끌려다니며 도준의 주도하에 모든 것을 통제당했다. 하지만 도윤이가 구애하겠다고 했기에 시윤은 도저히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도준에게 너무 많이 속았기에 시윤은 동의하기 전에 조심스럽게 물었다.“도준 씨가 구애했는데도 제가 거절한다요?”도준은 눈썹을 찡긋거렸다.“그래?”시윤이가 긴장해하자 도준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나 보지. 자기랑은 상관없어.”도준의 말을 듣자 시윤은 그제야 안심되었다.“그래요.”시윤이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하자 도준은 마음이 근질근질해서 소리 없이 다가갔다.“방금 그 말 동의한다는 거야?”시윤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알면서 뭘 물어요.”도준은 웃으며 고개를 숙여 삐죽 내민 시윤의 입술에 키스하려 했지만 닿기도 전에 시윤이가 고개를 돌려 피했다. 시윤은 가는 손가락으로 도준의 가슴을 찌르며 그와 거리를 두었다.“도준 씨는 구애하는 입장이니 저한테 함부로 손대시면 안 되죠.”불빛이 어두웠지만 시윤의 잘난 척하는 표정은 매우 잘 보였다. 도준은 오히려 이런 시윤의 모습이 귀여워 보여 그녀의 뜻대로 뒤로 물러났다.“그래, 자기 말 들을 게.”도준이가 정말 물러서자 시윤은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차가 한참 달린 후 시윤은 갑자기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시윤은 창밖을 가리키며 물었다.“이건 저희 집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잖아요.”도준
시윤은 집에 들어선 후 숨을 돌리기도 전에 소혜가 도윤을 안은 채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형수님,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요?”“아, 술을 좀 마셨거든요.”“그럼 목에 빨간 자국은 뭐예요?”시윤은 목을 가리며 말했다.“알, 알레르기에요!”“그러시군요, 알레르기가 목에만 생길 수 있었나?”시윤은 얼굴이 뜨거워지더니 얼버무리며 대답했다.“도윤이를 저한테 주시고 이만 쉬세요.”시윤은 말을 마친 후 도윤을 안고 방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도윤을 침대에 눕힌 후 시윤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아들, 네 아빠가 엄마랑 다시 만나고 싶다며 엄마한테 들이댔어. 원래 거절하려고 했지만 우리 아들과 아빠 사이가 좋아 보여 어쩔 수 없이 동의했어.”도윤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시윤은 또 강조하듯이 말했다.“모두 우리 아들 때문에 동의한 거야.”도윤은 졸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이튿날.시윤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마자 탁자가 부러질 듯이 차려진 아침밥을 보며 소혜에게 물었다.“소혜 씨가 한 거예요?”소혜는 만두를 물고 고개를 저었다.“도윤이 아빠가 보내온 거예요.”시윤은 깜짝 놀랐다.“네?”그리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더니 물었다.“도준 씨는 어디에 있는 거죠?”“오빠가 밖에서 하도 찬바람을 맞아 배가 안 고파 안 먹는다네요.”시윤은 그가 일부러 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좀 신경이 쓰였다.“그러든지 말든지.”시윤은 자리에 앉아 만두를 한 입 깨물자마자 양현숙과 도준이가 안으로 들어왔다,도준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눈썹을 찡긋거리며 물었다.“맛있어?”콜록-시윤은 당황스러운 마음에 기침을 멈추지 못했다.“왜 들어오신 거죠? 밖에서 찬바람 맞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양현숙이 질책하듯이 말했다.“그게 뭔 소리야. 민 서방이 어젯밤 널 데려다준 것도 모자라 아침부터 이것저것 챙겨 가져왔는데 민 서방을 집 밖에 서있도록 내버려둔 거야?”시윤은 목이 멨다.“그, 그게 아니라...”도
시윤은 절대 도준과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차 문을 열자마자 조수석에 꽃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시윤은 멍하니 도준을 쳐다보며 물었다.“도준 씨가 산 꽃이에요?”“당연하지.”도준은 유혹하는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선물 없으면 자기가 화낼지도 모르잖아.”그 꽃은 향기가 아주 좋았다. 아침부터 이런 꽃을 받게 되니 시윤은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도준은 손가락으로 시윤의 볼을 찌르며 물었다.“어때, 마음에 들어?”시윤은 기쁜 내색을 하고 싶지 않아 머리를 치켜세웠다.“뭐 괜찮긴 하네요.”...극장에 도착한 후 시윤이가 차에서 내리기 전 도준은 그녀의 귓가에 있는 잔머리를 올려주며 말했다.“끝나면 연락해, 데리러 올게.”“그럴 필요 없어요. 오늘 리허설을 하기에 언제 끝날지 잘 모르거든요.”“리허설?”도준은 시윤을 흘겨보며 물었다.“그놈도 있는 거야?”“그럼요. 우린 한 팀이니 당연히 함께 리허설을 해야죠.”시윤은 말을 마친 후 경계하는 표정으로 도준을 쳐다보았다.“설마 임우진 씨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건 아니죠?”도준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왜, 걱정돼?”시윤은 부인하려던 찰나 이전에 도준 때문에 질투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거들먹거리기 시작했다.“제 후배인 임우진 씨가 저 때문에 다치기라도 한다면 제가 어쩔 수 없이 임우진 씨를 직접 보살펴드려야겠죠. 그러니 괜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시윤의 잘난 척하는 표정을 보자 도준은 어이가 없어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그 말은 날 위해서라도 그놈한테 손을 대려면 차라리 죽이는 편이 좋다는 거지? 역시 자기가 훨씬 더 똑똑하네.” 시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부, 분명 선택권은 저한테 있다고 하셨잖아요!”도준은 입꼬리를 올린 후 날렵한 콧대로 시윤의 얼굴을 스치며 귓가에 대고 말했다.“우리 둘 사이의 일은 당연히 자기한테 맡길 거야. 하지만 괜한 남자랑 어울린다면 내가 직접 없애버릴 수도 있어.” 도준은 말을 마친
시윤이가 거절하려던 찰나 우진은 부탁하듯이 말했다.“선배님, 제가 춤을 배우기 시작한 건 학교에서 선배님의 춤을 추는 걸 봤었기 때문이에요. 이제 저도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는데 선배님이 계신다면 긴장이 풀릴 것 같거든요. 제가 윤 선생님과 수아 누나도 불렀는데 함께 와주시면 안 될까요?”원래 거절하려고 했지만 윤영미와 수아도 간다고 했고 춤에 관한 일이기도 했기에 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우진은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다행이에요. 그럼 제가 입장권을 가져다드릴게요.”우진이가 몸을 돌리려 하자 시윤은 그를 불러 세웠다.“여분이 있다면 두 장 줄 수 있어?”우진은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물론이죠. 친구랑 같이 오시게요?”“응, 도준 씨랑 같이 가려고.”우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아, 네. 민도준 씨도 함께 와주신다면 저야 영광이죠.”...티켓은 수아가 대신 시윤에게 전달해 주었다. 우진은 마음이 복잡해 추태를 부릴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시윤은 우진이가 그녀만 초대하고 싶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헛된 희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처음부터 희망이 없었다면 실망하지도 않을 것이다.순간 시윤은 뭔가 깨달았다.‘우진이한텐 희망을 주고 싶지 않지만 도준 씨한텐 왜 희망을 준 거지?’‘설마 도준 씨와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이미 확신하고 있었던 거야?’‘이건 안 돼!’양현숙은 이미 넘어갔기에 자신만큼은 절대로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이런 생각에 시윤은 차라리 소혜랑 함께 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해야 할 말은 이미 다 했으니 굳이 도준이가 가지 않아도 상관없다....오후 6시.시윤과 수아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오다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도준의 차를 보자마자 누군가가 시선을 가렸다.“선배님, 내일 공연할 때 해야 할 동작이 조금 헷갈려서 그러는데 조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안 됩니다.”시윤이가 말하기도 전에 옆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준은 극장 입구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