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시윤이가 화를 내자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네 어머니는 네 아버지 몰래 너를 낳았어. 우리는 네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서야 네 존재를 알게 되었어. 네 어머니는 쌍둥이를 낳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찾아도 그날 등록된 쌍둥이에 대한 정보는 없었어.”시윤은 눈썹을 찌푸렸다. 당시 권미란이 그녀들 중 하나를 데리고 갔기 때문에 몰래 흔적을 지웠을 것이다. 남은 시윤은 양현숙에게 주워져 그녀의 아이로 키워졌으니 이렇게 어긋난 것이다.“그럼 저를 어떻게 발견한 거죠?”“네가 공개적으로 네가 시윤이지, 권씨 집안의 넷째 아가씨가 아니라고 말한 후에야 너희 쌍둥이가 흩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어.”기억을 되새겨보자 그날 시윤은 도준이가 ‘형수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라는 오명을 쓰게 될까 봐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권하윤이 아니라고 밝혔었다. 바로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던이 찾아왔다. 알고 보니 이런 이유였다.하지만 시윤은 그들이 자신을 계속 찾았다는 사실에 기뻐하지 않았다. 여전히 얼굴에 거부감과 경계를 드러냈다. “그런데 왜 이 사실을 저에게 알리지 않고 제 소원을 들어주려 한 거죠?”“보다시피, 찰스는 대가족이니 사생아를 인정하기 전에 상대의 품행을 고찰해야 해.”“사생아?”시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네 아버지는 이미 결혼했고, 아이가 셋이나 있단다.”이 말을 듣자마자 시윤은 즉시 도준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더 이상 여기 있고 싶지 않아요. 집에 가고 싶어요.”도준은 시윤을 품에 안고 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어쩐지 곧 죽을 것 같더라니. 나이 먹고도 말을 그따위로 밖에 못하니 다시 태어나는 게 낫겠어.”그 말을 끝으로 도준은 시윤을 데리고 나갔고 노인은 기침하며 숨을 몰아쉬었다....나가자마자 집사가 뒤쫓아왔다.“시윤 씨, 잠깐만요!”집사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방금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요. 시윤 씨의 아버지는 불륜이 아니라 결혼하기 전
시윤은 이 말을 듣고 도윤을 더욱 꽉 껴안았다. 역시 그녀의 아들을 노리고 온 거였다.집사는 시윤의 반응을 보고 조건을 제시했다.“도윤 도련님이 이곳에 남아 어르신의 마지막까지 함께해 주신다면 어르신은 이 정원을 도윤 도련님께 드릴 생각입니다.” 방금까지 반감을 가졌던 시윤은 이 말을 듣자 눈이 커졌다. ‘뭘 준다고? 방금 뭘 준다고 한 거야?’시윤은 도윤의 작은 이마가 갑자기 금처럼 반짝이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셔도 됩니다. 어르신은 정말 시윤 씨의 아버지를 많이 그리워하시거든요.”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집사는 말을 마치고 한쪽으로 물러났다.시윤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도윤이를 남겨야 하나?”도준은 눈썹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당신 방금까지 그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잖아.”“아직도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 정도 보수라면...”도준은 웃으며 시윤의 이마를 톡톡 쳤다.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마음이 흔들린 거야?”시윤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 도윤이한테는 어차피 도준 씨가 있잖아!’이 생각에 시윤은 즉시 당당해졌다.“집으로 가요!”그렇게 말하면서도 시윤은 떠나기 전에 도윤을 데리고 마지막으로 노인을 한 번 더 보러 갔다.‘어르신의 제안을 거절하겠습니다.”노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단 한두 달 만 내 곁에 있어준다면 이 정원을 가질 수 있는데, 정말 거절하실 건가?”시윤은 도준을 보며 말했다. “저희도 돈은 얼마든지 있거든요.”도준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보며 말했다. “당신이 좋아한다면, 이 분이 돌아가신 후에 한민혁더러 사라고 하면 돼.”콜록-노인은 점점 더 심하게 기침을 했다. 그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작은 손이 그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노인이 고개를 들자 도윤이가 시윤에게 안긴 채 작은 몸을 내밀어 연한 색의 눈썹을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노인을 쳐다보고 있었다.순간적으로 노인은 자신의 아들이 다시 살아난 것만 같아 눈물을 흘렸다. 노인은 마른 손으로
짝-고요한 방 안에는 오직 귀를 찢는 듯한 따귀 소리만이 반복되고 있었다.밖에서는 사교성이 뛰어나고 친절한 부사장이며 민 씨 집안의 셋째 딸이었던 민시영은 지금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를 마구 때리고 있었다.손바닥이 불타듯 아팠지만 그녀의 가슴속 분노는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그녀가 남자를 얼마나 때렸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시영은 숨을 헐떡이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 때 케빈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채찍으로 바꾸세요. 손이 아프실 겁니다.”민시영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날 배려하는 척하지 마. 네가 그러면 내 마음이 약해질 거라고 생각해? 착각하지 마!”시영은 서랍에서 케빈을 여러 번 때렸던 채찍을 꺼내어 세게 휘둘렀다.한밤중이 되자, 케빈의 상반신은 더 이상 멀쩡한 부분이 없을 정도로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시영은 케빈을 내려다보며 그의 앞에 서서 물었다. “이제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겠어?”케빈은 방금 출소한 상태였고 짧은 머리로 인해 차가운 인상을 주는 얼굴이 더욱 서늘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눈을 내리깔고 순종적인 모습이었다. 마치 길들여진 짐승처럼.“제가 민재혁과 손을 잡으려 했고 그를 죽이려 했던 것이 잘못입니다.”퍽-시영은 또 한 번 케빈에게 채찍질을 했다.“틀렸어! 너는 내 개야. 개는 주인의 명령을 어겨서는 안 돼!”케빈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채찍 끝이 그의 얼굴을 때렸다. 케빈의 눈가에는 곧 피가 맺혔지만 그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듯 눈을 내리며 잘못을 인정했다.“네, 잘못했습니다.”“케빈, 기억해. 네 목숨은 내 거야. 내가 살라면 살아야 하고 죽으라면 죽어야 해. 이것이 네가 나에게 진 빚이야!”이 말은 채찍 상처보다 더 아팠다. 케빈의 얼굴에는 고통이 서려 있었고 그는 고개를 더욱 숙였다. “네, 아가씨.”케빈의 몸에 가득한 피를 보며 민시영의 눈가에 순간적으로 눈물이 맺혔지만 그녀는 다시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나 씻을 거야.”케빈은 땅에서 일어나 욕실로 가서 물을 틀었다.비록
케빈은 그렇게 시영을 도와 몸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그녀가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록 그곳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아가씨, 다 씻었습니다.”시영은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케빈은 일어나서 수건을 가져와 시영의 머리를 닦아주려고 했으나, 그녀는 갑자기 케빈의 목을 끌어안았다.호흡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케빈은 침을 꿀꺽 삼켰다.시영은 그의 눈가에 있는 상처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키스해 줘.”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영은 물속으로 눌러졌다. 시영의 머리가 욕조 가장자리에 부딪히려 하자 케빈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감쌌다.욕조의 물이 반쯤 넘쳤고 물속의 남녀는 미친 듯이 뒤엉켜 있었다.날이 희미하게 밝아올 때, 케빈은 시영을 침대에 눕히고 일어났다. 시영은 케빈의 손목을 잡고 잠에 취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영의 목소리는 전혀 공격적이지 않았고 다소 허스키했다.“가지 마.”“네.”케빈은 침대에 오르지 않고 침대 머리맡의 카펫에 앉아 벽에 기대어 시영의 손을 잡았다.시영은 최근 케빈이 감옥에 있는 동안 그를 구하려고 애썼기 때문에 이제 겨우 편안한 잠에 들 수 있었다.손에 닿는 따뜻한 촉감은 시영을 십여 년 전, 처음 케빈을 만났던 순간으로 되돌려 놓았다......“시영아, 이 사람은 케빈이야. 네 보디가드야. 앞으로 너의 모든 외출에 케빈이가 동행할 거야.”당시 시영은 열두 살이었다.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건장한 케빈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케빈 오빠, 잘 부탁해.”케빈은 그때 열여덟 살이었다. 그는 전쟁으로 악명 높은 국경 지역에서 자랐다. 케빈은 열 살 때 부모를 죽인 원수를 총으로 죽였고, 열세 살에 사설 용병이 되었다. 열일곱 살에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시영의 아버지 민용재에 의해 구출되어 국내로 왔다.케빈은 이미 마음이 무뎌져 있었다. 시영의 공주 치마와 그 가녀린 손을 보더니 그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가
그날, 케빈은 돌아온 뒤 그 시계를 한참 동안 보다가 결국 팔아버릴 생각을 접었다.케빈은 달력을 보더니 오랜만에 펜을 꺼내어 9월 9일에 몇 글자를 적었다. ‘생일’그리고 케빈의 인생은 이날부터 시작되었다....그로부터 2년 동안 케빈은 머리가 아팠다. 시영이가 열여섯 살이 된 이후 그녀는 이상하게 화가 많아지기 시작했다.그녀가 사준 시계를 착용하지 않은 것을 보면 화를 내고, 어제 그녀가 했던 말을 잊어버리면 화를 냈다. 심지어 좋아하는 색을 잘못 기억해도 화를 냈다.케빈은 머리가 아팠다. 심지어 민용재가 셋째 일가의 동향을 묻는 동안에도 자주 딴생각에 빠졌다. ‘방금 몰래 사 오라던 버블티에 뭘 추가하라고 말했었지? 그 하얗고 투명한 것은 펄이었는지 젤리였는지. 노란 덩어리는 무엇이었지?’“케빈.”민용재가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케빈은 정신을 차리고 민용재를 보았다. 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 더욱 음울해 보였다. “케빈, 나는 네 생명의 은인이야. 그 은혜를 잊지 마.”케빈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케빈은 사실 생명의 은혜에 대해 매우 무감각했다. 케빈은 매일이 전쟁과 약탈로 가득한 곳에서 자랐다. 그곳은 주먹이 세거나 무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든 것을 누리고 있었다. 민용재가 그를 구한 것도 그를 셋째 일가의 스파이로 삼아 그들의 동향을 감시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케빈은 민용재에게 별다른 감사를 느끼지 않았다. 케빈이 민용재의 말을 듣는 이유는 그가 민씨 가문의 주인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둘째 부부는 온화했고 셋째는 순수했고 넷째는 중립을 지켰고 다섯째는 어리석었다.가족 간의 다툼은 누가 더 냉혹한가에 달려 있었다. 민용재는 그중에서도 뛰어났다.남쪽 정원을 떠나, 케빈은 버블티를 들고 난원으로 돌아갔다.케빈은 손을 들어 문을 두 번 두드렸다. “아가씨, 저 왔습니다.”“들어와.”케빈은 문을 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시영은 막 목욕을 끝내고 슬립 가운을 입고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등에
시영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거기 서!”케빈은 손을 내린 채 문 앞에 서있었다. 그가 대화를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자 시영은 가슴이 크게 요동쳤다. 시영은 애써 화를 억누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이리 와서 계속 머리를 말려, 명령이야!”케빈은 보디가드였고 시영은 아가씨였다. 그래서 케빈은 그녀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오랫동안 침묵하던 케빈은 다시 다가와 드라이어를 들고 시영의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그가 돌아오긴 했지만, 더 이상 시영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을 지키자 마음이 상한 시영은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그렇게 두 사람은 냉전 상태에 빠졌다. 시영은 일방적으로 케빈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고 올 때 인사도 하지 않고 그의 차를 타지 않았다.냉전이 3일째 되던 날, 케빈은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가려는 시영을 막아섰다.“아가씨, 밖은 위험합니다.”민용재는 오랫동안 그와 연락하지 않았지만 케빈은 민용재가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시영은 엄숙한 얼굴의 케빈을 바라보며 고개를 들었다. “날 걱정해 주는 거야?”케빈은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할까 봐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차가웠던 소녀는 갑자기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음 주 내 열여덟 번째 생일에 함께해 줘야 해. 그리고 내 소원 하나를 들어줘야 해.”케빈은 그녀가 왜 생일에 집착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시영은 민 씨 가문의 유일한 손녀이자 사랑받는 존재였기 때문에 생일은 매우 성대하게 치러졌다.연회장에서 케빈은 어두운 구석에 서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눈부시게 빛나는 시영을 바라보고 있었다.비록 시영은 겨우 열여덟 살이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런 자리에 익숙해져 있어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시영은 상류층 아가씨처럼 거만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친절하게 대했다.옆에서 보디가드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저런 공주님은 어떤 사람이 어울릴까?”“시영
시영의 명령에 케빈은 눈을 떴다.눈앞에 펼쳐진 것은 다리를 겨우 가리는 얇은 실크 잠옷을 입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시영은 젊고 아름다운 몸매를 뽐내고 있었는데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혔다.케빈은 여태껏 수많은 여자를 봐왔었다. 그의 고향에서 몸을 파는 것은 길거리에서 채소를 파듯이 흔한 일이었다. 여자들은 고객을 유혹하기 위해 풍만하거나 앳된 몸을 거리에 내세우며 가격을 제시하였다. 심지어 몸을 살랑거리며 고객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눈빛은 모두 무감각했다.케빈의 집은 그 골목의 끝에 있었기에 케빈은 매일 그 사이를 지나야 했다. 더러운 거리와 드러난 여성의 몸. 케빈은 보지 않았고 피하지도 않았다.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들은 도살장 쓰레기와 함께 버려졌고, 몸에는 올가미 자국이나 멍 혹은 칼자국이 있었다. 그 여자들은 썩어가는 고기와 함께 썩어갔다.용병으로 일하던 몇 년 동안, 시간이 날 때면 선배들은 케빈을 데리고 여자들을 만나러 가려 했지만 케빈은 그 여자들이 유혹하는 모습을 봐도 전혀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구역질이 났다. 여자의 노출된 피부를 볼 때마다 케빈은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혼란, 더러움, 피비린내...선배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케빈은 홀로 벽을 잡고 토했다. 그 후 그는 혼자서 찬 바람 속에 서 있었다. 그때 케빈은 평생 여자를 만나지 않을 것이고 절대 가정을 꾸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하지만 지금, 시영의 향기로운 방에 서있자 케빈은 마음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고 시선을 돌릴 수도 없었다. 마치 정글에서 독사에게 물린 것처럼 마비된 느낌이 들었다. 피가 끓고 숨통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케빈이 마치 죽은 듯 서 있을 때 시영은 그의 팔을 잡았다. 시영은 발끝을 세우고 드넓은 케빈의 큰 어깨를 끌어안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케빈 오빠, 내 소원은 오빠와 함께 있는 거야.”시영은 이 순간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왔
그날은 케빈이 평생 가장 기억하기 싫은 날이었다.그 폐가에 도착했을 때 우두머리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올 줄 알았으면 첫 번째는 너한테 양보했을 텐데.”케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들었다. 총성이 울리자 상대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표정이 떠올랐다.케빈은 더러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총소리를 듣고 뛰어나왔고 케빈은 주저하지 않고 하나씩 처리했다.마지막 사람을 처리할 때 그가 외쳤다.“케빈! 우리는 같은 편이야. 네가 어떻게 나를 죽일 수 있어...”곧 총소리가 울리더니 그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케빈은 안쪽 방에서 시영을 찾았다. 그리고 외투를 벗어 시영을 감싸고 차에 태웠다.케빈은 시영을 민씨 가문의 개인 병원으로 데려갔다. 괜한 소문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유일한 선택이었지만 장현정과 민용국은 속일 수 없었다.장현정은 숨이 넘어갈 듯이 울었고 민용국은 민용재가 한 짓임을 알고 그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시영은 내내 조용했다. 시영은 치료에 협조하며 검사를 받았고 민용국이 대저택을 향해 가려 할 때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 “놈들이 영상을 찍어 민용재에게 보냈어요.”그 말을 들은 장현정은 하마터면 울다가 기절할 뻔했고 민용국은 주저앉아 자신을 때리며 말했다. “다 내 잘못이야. 우리 딸을 지키지 못한 내 잘못이야. 내가 민용재와 권력을 다퉈서...”혼란스러운 방 안에서 유일하게 시영만이 창밖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시영은 병원에서 반달 동안 머물렀다. 그동안 회사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민용국은 갑자기 회사에서 물러나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장현정은 매일 눈물로 지새웠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억지로 웃는 모습을 선보였다.보름 동안 시영의 병실에는 간병인과 장현정만 있었고 케빈은 한 번도 병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평소 케빈 오빠를 입에 달고 살던 시영도 그를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이 상황은 시영이가 퇴원할 때까지 계속되었다.시영이 퇴원하는 날, 민씨 가문은 가족 연회를 열었다. 시영은 감기와 폐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