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타임 라인이라면 3년 후 서호철이 사망한 후에야 서도겸의 신분이 밝혀진다.그렇다면 설마 그녀의 환생으로 무심코 모든 것이 바뀐 걸까?그 시각 소은영은 서호철의 말을 듣고 얼굴이 백지장이 되었다.‘서도겸 소문에 고아였잖아? 서호철의 손자라니? 이게 말이 돼?’방금 그녀가 한 말을 서호철이 고스란히 들었을 게 뻔하다!서호철의 심기를 건드리면 이번 생은 금융계에서 어떤 활로도 찾을 수 없다.소은영은 멘탈이 탈탈 털린 채 박시언에게 구원의 신호를 보냈다.“어르신, 은영이가 생각이 짧아서 말실수했어요. 아직 어리다 보니 부디 노여움 푸세요.”서호철은 썩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자네 옆에 업계 천재가 나왔다고 들었는데 인제 보니 별 거 아니구먼.”소은영은 사색이 되었다.그녀는 이미 서호철에게 제대로 낙인이 찍혔다.김하린은 이 광경을 쭉 지켜보았다.이렇게 된 이상 박시언의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 남의 집 귀한 손자를 그딴 식으로 헐뜯었으니 연회장에서 내쫓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체면을 준 셈이다.박시언은 입술을 앙다물고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한편 서호철은 한결 부드러운 눈빛으로 김하린을 바라봤다.“김씨 일가의 여식이라고 했나?”김하린은 정신을 가다듬고 먼저 말을 걸어오는 어르신께 머리를 끄덕였다.“네, 김하린입니다.”“김종현 그 자식 젊었을 때 잘생긴 줄 몰랐는데 손녀가 이렇게 예쁘네. 40년 전에 나랑 자네 할아버지가 의형제를 맺었거든. 눈 깜짝할 사이에 자네가 벌써 이렇게 컸어.”‘의형제?’김하린의 기억 속에서 할아버지는 항상 한량 같았고 집안일은 전혀 묻지 않으셨다. 또한 너무 일찍 돌아가서 서호철 어르신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는 아예 들은 적이 없다.김하린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일 때 서호철이 대뜸 그녀에게 물었다.“결혼은 했고?”김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네.”“뉘 집 자식이야?”김하린은 옆에 있는 박시언을 힐긋 살폈다.서호철은 박시언을 보더니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박동준의 손자였네.
배주원의 차가 가까운 곳에 있는 미완성 건물 앞에 도착했다.“X발 손정원 이 새끼가 어떻게 사람을 이딴 곳에 가둬 두냐고?!”배주원은 주위를 쭉 둘러보았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들리는 거라곤 본인의 메아리뿐이었다.서도겸은 차에서 손정원을 끌어냈다. 그는 허둥지둥거리다가 겨우 제대로 섰다.배주원이 앞으로 다가와 발로 툭 차며 물었다.“말해! 하린 씨 어디에 가뒀어?”“그건, 쟤네들이 숨긴 거라. 원래 그 쌍... 김하린 씨를 따끔하게 혼낼 생각이었어요. 돈 받으면 이 건물 폭발시켜서 박시언 목숨도 따내고 거액의 돈도 챙겨서 도겸 씨한테 공을 세워줄 생각이었는데 김하린 씨랑 도겸 씨가 아는 사이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폭발시켜? 여길 폭발시킨다는 거야?”배주원이 두 눈을 부릅떴다.“설마 시한폭탄?”손정원은 겁에 질린 채 머리를 끄덕이며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었다.서도겸의 눈가에 싸늘한 빛이 감돌았고 손정원은 두려움에 휩싸여 침을 꼴깍 삼켰다.“주원아, 얘 꽁꽁 묶어둬. 폭탄 터지거든 얘부터 죽일 테니까.”손정원은 황급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지만 결국 배주원에 의해 사지가 묶였다.미완성 건물은 구조가 매우 복잡했고 지금 서도겸은 김하린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했다. 급선무는 주변에 있는 폭탄을 제거하는 일이다.바로 이때 검은색 벤틀리가 건물에 도착했다.서도겸은 이 차 주인이 박시언이란 걸 한눈에 알아봤다.“대표님, 여기 어디예요... 저 무서워요...”소은영이 두려운 표정으로 박시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박시언은 그녀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넌 차에 있어. 내려오지 말고.”소은영이 머리를 끄덕였다.배주원은 차에서 내리는 박시언을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와이프가 납치당했는데 애인이랑 알콩달콩할 새가 있어요?”“대체 누가 김하린 납치했어?”박시언이 싸늘한 눈길로 서도겸을 쳐다봤다.“내 기억이 맞다면 손정원은 서도겸 씨 부하일 텐데요?”서도겸이 차갑게 쏘아붙였다.“얘가 제멋대로 일을 벌인
박시언의 말을 들은 소은영은 머리를 숙이고 얌전하게 그의 옆에 앉았다. 그녀의 모습은 화들짝 놀란 토끼를 방불케 했다.박시언의 싸늘한 시선은 전생과 똑같았다. 김하린은 순간 마음이 깊게 가라앉았다.고맙다고 말하려 했는데 지금 보니 박시언은 아예 신경 쓰지 않는 듯싶었다.“나 너무 피곤하네. 두 사람 편하게 있어.”김하린이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는 이젠 박시언과 소은영에게 아예 관심이 없다.오늘 밤에 손정원이 쉽게 그녀에게 손을 쓸 수 있다는 건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설명한다.김하린은 언제까지 박시언에게 기댈 순 없다. 자신을 보호할 능력을 슬슬 갖추어야 한다.다음날, 김하린은 일찍 외출 준비를 했다. 이제 막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최미진이 거실에 늠름하게 앉아 계시고 소은영이 옆에 서 있었다. 보아하니 그녀는 금방 운 모양이다.“할머니?”김하린이 미간을 구겼다.최미진은 평소에 더 빌리지에 거의 오지 않는데 오늘은 갑자기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걸까?“시언이가 그러는데 너 2조 원 주고 땅을 샀다며?”최미진은 살짝 죄를 묻는 식으로 그녀에게 캐물었다.김하린은 아래층으로 내려와 어르신의 옆에 앉아서 차를 따라드렸다.“네, 맞아요.”“어젯밤엔 원수를 져서 납치까지 당했고?”“네...”김하린은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우리 집안은 평범한 집안이 아니잖니. 결혼한 여자는 얼굴을 자주 드러내면 못 써. 사업은 남자들이 알아서 하는 거고 너는 지금 임신에 가장 신경 써야 해. 딴마음 품은 것들이 그 틈을 노릴라.”최미진이 의미심장한 눈길로 옆에 있는 소은영을 쳐다봤다.김하린도 그녀를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소은영의 눈시울이 또다시 빨개졌다.“할머니, 저는 단지...”“그 입 닥쳐. 너 따위가 어딜 함부로 끼어들어 끼어들긴!”소은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시언의 안목이 점점 후지단 말이지. 여기가 어디라고 개나 소나 다 들이는 거야!”최미진이 소은영을 대하는 태도를 지켜보면서 김하린은 저도 몰래 전생이 떠올랐다.전생에도
오직 박시언만이 소은영에게 감쪽같이 속고 있다.그는 소은영을 좋아하니까 그 속셈을 보아내기 힘든 법이다.“됐어요, 뭐 딱히 큰일도 아니고. 은영이 오늘 수업 있으니 일단 학교까지 바래다줄게요.”박시언이 소은영에게 곁눈질했다.소은영은 대뜸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이에 최미진이 싸늘하게 말했다.“나 오늘 하린이랑 쇼핑할 거다. 너도 안 바쁜 것 같으니 우리랑 같이 가.”“그렇지만 은영이...”“이 비서 시키면 돼. 명색이 모건 그룹 대표라는 자가 신분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야 되겠니?”최미진이 거침없이 쏘아붙였다.소은영은 하는 수 없이 입술을 꼭 깨물고 말했다.“대표님, 이 비서님이 저 학교까지 바래다주면 돼요. 할머니 노엽게 하지 마세요.”그녀는 최미진을 향해 예의 바르게 허리 굽혀 인사했다.다만 최미진에게 이런 수단은 전혀 안 통했다.박시언이 입술을 앙다물었다.“문 앞까지 바래다줄게.”소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최미진은 박시언이 소은영을 데리고 밖에 나간 후에야 김하린에게 시선을 돌렸다.“시언이가 아직 어려서 저런 여우 년에게 쉽게 홀릴 수 있어. 네가 많이 신경 써야 해.”김하린은 겉으론 머리를 끄덕였지만 속으론 두 사람이 진도가 더 빨리 나가길 바랐다.“너 요즘 시언이한테 점점 더 무심하더라.”최미진이 김하린의 손을 잡고 말했다.“얼른 시언의 마음 사로잡아야 한다. 적어도 통통한 아들 녀석을 낳아야지. 아이만 낳으면 남자 마음 확 사로잡을 수 있어.”“네. 알겠어요, 할머니.”김하린이 웃으며 답했다.하지만 정작 그녀는 박시언의 마음을 사로잡기는커녕 아이를 낳을 생각조차 없었다.박시언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결혼했지만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으니 임신은 더 불가능한 일이다!전생에 모진 애를 써서 박시언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그는 소은영 말고는 아무도 자기 아이를 낳을 자격이 없다고 여겨왔다.김하린은 고작 27살에 난산으로 수술대에서 생을 마감했다.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마저 박시언은 그녀가 빨리 죽
하지만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박시언이 자신을 믿어주길 바라지 않으니까.이어서 김하린과 박시언은 나란히 차에 올라탔고 심지어 박시언은 일부러 친한 척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 모든 것은 단지 최미진 앞에서 쇼하는 것뿐이다. 김하린은 누구보다 잘 안다.박시언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커왔다. 그는 최미진을 매우 존중하고 지극히 효도하고 있다.김하린도 더는 까발리지 않고 적당하게 박시언에게 맞춰주며 연기했다.“그 땅은 어떻게 처리할 셈이냐?”최미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다만 이 말은 김하린에게 물은 게 아니라 박시언에게 묻고 있었다.박시언이 앞에 앉아서 백미러로 김하린을 힐긋 쳐다봤다.“하린이가 산 땅이니 알아서 처리하겠죠.”최미진은 김하린에게 시선을 돌렸다.“부지에 관한 일은 시언이한테 맡겨. 여자는 남편 뒷바라지 잘하고 아이만 잘 키우면 돼.”“할머니, 박씨 일가의 일은 당연히 시언이가 관리해요. 다만 이 땅은 제가 우리 집안 어르신들을 대신해서 산 거라 그분들이 알아서 하실 거예요. 제 손도 안 거치거든요.”김하린의 말을 들은 최미진은 말투가 조금 바뀌었다.“나중에도 이런 일은 되도록 간섭하지 마. 넌 이미 시언이랑 결혼했으니 모든 행동이 박씨 일가를 대표하고 있어.”“네, 할머니.”김하린이 순순히 대답했다.최미진이 어떤 성격인지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안다.이 타이밍에 대뜸 독립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엄청난 번거로움만 살 게 뻔하다.“시언아, 난 저녁에 고스톱 약속이 있어서 네가 하린이 집까지 바래다주거라. 업무는 잠시 내려놔. 아내를 챙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니?”최미진의 말속에 다른 뜻이 담겨 있었다.박시언은 미간만 찌푸릴 뿐 더 많은 불만을 표출할 순 없었다.“알았어요, 할머니.”김하린은 백미러로 그의 눈빛을 바라보며 바로 알아챘다. 그는 분명 또 그녀의 탓으로 돌릴 것이다!이거 참 괴로워도 말 못 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기분이었다.김하린은 숨을 깊게 몰아쉬며 억울한
박시언은 안색이 어두워지고 몸도 살짝 굳었다. 김하린은 그런 그를 억지로 비집고 안에 들어갔다.방안에 불빛이 흐릿하고 거실에 어느새 근사한 저녁 식사가 마련되어 있었다.이 광경을 본 김하린도 표정이 확 변했다.이건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최미진의 아이디어였다. 어쩐지 백화점에서 나온 후 한사코 박시언더러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라고 하더라니, 이 타이밍만 노린 거였다.“김하린, 너 참 대단해.”“나 아니야.”김하린이 해명하려고 했지만 박시언은 이미 쇼핑백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고개도 안 돌린 채 문을 박차고 나갔다.하지만 밖에 나와보니 기사가 차를 몰고 떠나갔다.이 광경을 본 김하린은 최미진의 의도를 철저하게 알아챘다. 오늘 밤에 두 사람이 함께 보내지 않으면 최미진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용쓰지 마.”김하린이 말했다.“네가 거실에서 자. 난 안방에서 잘게.”박시언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째려봤다.“경고하는데 수작 부리지 마.”말을 마친 후 그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박시언은 증오에 찬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 이에 김하린도 저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봐, 김하린. 이게 바로 네가 박시언 좋아한 대가야. 아무리 좋아해도 저 사람 눈엔 그저 하찮은 수법이나 쓰는 여자밖에 못 돼.’실은 김하린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박시언에게 그녀는 이렇게까지 볼품없는 여자였다니!김하린은 테이블 앞으로 다가가 정성껏 차려놓은 만찬을 내려다봤다.박시언은 입맛이 없다고 하지만 그녀는 최미진과 함께 종일 쇼핑하느라 지칠 대로 지쳤다.“진짜 안 먹어?”“입맛 없어.”박시언은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었다.김하린도 인사치레로 물어볼 뿐 진작 머리를 숙이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그녀가 더는 신경 쓰지 않고 저녁을 먹자 박시언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김하린은 이전보다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또 정작 어디가 달라진 건지 콕 집어서 말할 수도 없었다.박시언의 이런 눈빛을 느꼈는지 김하린도 고개 들어 그에게 물었다.“너도 먹게?”“안 먹
박시언은 미간을 구겼다. 김하린이 이렇게 쉽게 단둘이 있을 기회를 포기한다고?!인상 속 그녀는 박시언이 소은영을 만나러 갈 때마다 화내고 난리를 피웠었다.“소은영 병원 데려간다며? 얼른 가보라니까.”김하린은 그가 일 초라도 빨리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더 늦으면 서도겸이 휴식한다고 할까 봐 걱정됐고 내일이면 최미진이 또 무슨 계획을 세울지 모른다.“천천히 먹고 있어.”박시언은 상 위의 음식을 텅 비운 그녀를 보더니 별안간 가슴이 답답했다.어렵게 그를 집에 남겨뒀는데 밥만 먹는다고?박시언이 답답한 마음을 안고 집을 떠난 후 김하린은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서도겸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나 오늘 갑자기 일이 생겨서 시간이 늦어졌네. 지금 바로 갈게.”“급할 거 없어.”“이따 만나!”그 시각 배진 그룹 안에서 서도겸은 사무실 통유리창 앞에 서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배주원은 사무실 소파에서 뒤척이며 잠에서 깼다.“김하린은? 몇 신데 왜 아직도 안 와?”“일이 좀 생겼대.”“온종일?”배주원은 기지개를 쭉 켜다가 문득 뭔가 떠오른 듯 그에게 물었다.“너 설마 줄곧 여기서 기다린 거야? 까딱 움직이지 않고?”이 통유리창 앞에 서면 배진 그룹 대문 밖의 모든 상황을 똑똑히 볼 수 있다.서도겸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이에 배주원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와, 살다 살다 별구경을 다 해보네! 왜? 일에 싫증 나서 이젠 사랑의 순애보가 되기로 한 거야?”“못 할 것도 없지.”배주원은 이런 표정을 짓는 서도겸을 전혀 본 적이 없다.그는 전에 항상 첫눈에 반하는 건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똑같은 시나리오가 절친에게 벌어질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곧이어 김하린이 차를 타고 배진 그룹 문 앞에 도착했다.경호원이 그녀를 보더니 재차 확인한 후에야 앞으로 나섰다.“김하린 씨 맞으세요?”“네, 접니다.”김하린이 머리를 끄덕였다.“이쪽으로 모실게요.”경호원이 선뜻 그녀의 가방을 들어주며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김하린은 매우 진지했다.이 말은 진실 반, 거짓 반이다. 김씨 일가는 확실히 한때 위풍당당하던 김씨 일가가 아니다. 이 또한 전생에 박시언이 김하린에게 점점 더 냉랭해진 이유이기도 하다.박시언에게 이 결혼은 오직 이익 관계로 얽매인 결혼이다 보니 그녀가 모든 이용 가치를 잃으면 박시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전생에 김씨 일가는 철저하게 몰락했고 김하린은 박시언에게 쓰레기 취급을 당하며 가차 없이 버려졌다.“지금 네가 에반을 운영하겠다고? 농담하지 마!”배주원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서도겸의 곁눈질로 대뜸 입을 다물었다.그는 곧장 단어 사용에 신경을 썼다.“하린아, 내가 널 얕잡아보는 게 아니라 네 전공이 아예 금융 쪽도 아니고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배운 적도 없잖아. 에반 홀딩스가 지금 아무리 빈껍데기 회사라고 해도 그 큰 가업을 네가 어떻게 감당하겠어? 수많은 임원진을 다 설득할 수 있겠어?”“그건 나도 알아.”“알면서 왜...”서도겸이 또다시 배주원을 째려봤다. 이에 배주원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네가 에반 홀딩스를 운영하는 건 너무 비현실적이야.”“에반은 우리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산업이야. 내가 반드시 지켜내야 해. 체계적으로 배우진 못했지만 나도 나름 방법이 있어.”“무슨 방법?”“학교 다니면 되지.”“학교?”배주원은 그녀의 사고방식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박시언이 투자한 금융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는 건 괜찮을 것 같아.”“자신 있어?”“응.”김하린은 홀가분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박시언이 투자한 그 학교는 국제 금융 학교라서 안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금융계 전문가들이다. 그녀의 말처럼 그리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이 학교를 설립한 수십 년 동안 오직 소은영만 빈곤 가정 학생 출신이다. 그녀도 높은 점수와 박시언의 추천으로 겨우 입학했다.한편 김하린은 이 방면에 대한 기초가 전혀 없으니 입학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배주원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인맥을 동원해서 들어갈 생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