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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배주원의 차가 가까운 곳에 있는 미완성 건물 앞에 도착했다.

“X발 손정원 이 새끼가 어떻게 사람을 이딴 곳에 가둬 두냐고?!”

배주원은 주위를 쭉 둘러보았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들리는 거라곤 본인의 메아리뿐이었다.

서도겸은 차에서 손정원을 끌어냈다. 그는 허둥지둥거리다가 겨우 제대로 섰다.

배주원이 앞으로 다가와 발로 툭 차며 물었다.

“말해! 하린 씨 어디에 가뒀어?”

“그건, 쟤네들이 숨긴 거라. 원래 그 쌍... 김하린 씨를 따끔하게 혼낼 생각이었어요. 돈 받으면 이 건물 폭발시켜서 박시언 목숨도 따내고 거액의 돈도 챙겨서 도겸 씨한테 공을 세워줄 생각이었는데 김하린 씨랑 도겸 씨가 아는 사이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폭발시켜? 여길 폭발시킨다는 거야?”

배주원이 두 눈을 부릅떴다.

“설마 시한폭탄?”

손정원은 겁에 질린 채 머리를 끄덕이며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었다.

서도겸의 눈가에 싸늘한 빛이 감돌았고 손정원은 두려움에 휩싸여 침을 꼴깍 삼켰다.

“주원아, 얘 꽁꽁 묶어둬. 폭탄 터지거든 얘부터 죽일 테니까.”

손정원은 황급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지만 결국 배주원에 의해 사지가 묶였다.

미완성 건물은 구조가 매우 복잡했고 지금 서도겸은 김하린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했다. 급선무는 주변에 있는 폭탄을 제거하는 일이다.

바로 이때 검은색 벤틀리가 건물에 도착했다.

서도겸은 이 차 주인이 박시언이란 걸 한눈에 알아봤다.

“대표님, 여기 어디예요... 저 무서워요...”

소은영이 두려운 표정으로 박시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박시언은 그녀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넌 차에 있어. 내려오지 말고.”

소은영이 머리를 끄덕였다.

배주원은 차에서 내리는 박시언을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와이프가 납치당했는데 애인이랑 알콩달콩할 새가 있어요?”

“대체 누가 김하린 납치했어?”

박시언이 싸늘한 눈길로 서도겸을 쳐다봤다.

“내 기억이 맞다면 손정원은 서도겸 씨 부하일 텐데요?”

서도겸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얘가 제멋대로 일을 벌인 거예요.”

배주원은 안절부절못하며 그들을 다그쳤다.

“이봐요, 두 분 지금 이러실 때가 아니라고요. 얼른 폭탄 제거해야죠!”

“폭탄이라니?”

박시언이 대뜸 긴장해 하며 되물었다.

“이 건물에 폭탄이 설치되었어요. 저랑 주원이는 폭탄 제거하러 갈 테니까 시언 씨는 하린이 찾는 대로 당장 여길 떠나요.”

서도겸의 말을 들은 손정원이 사지가 묶인 채 바닥에 움츠리고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용없어요. 제가 시체 훼손하고 증거 없애려고 건물마다 폭탄 세 개씩 설치했거든요. 게다가 15분 뒤에 바로 폭발할 거예요...”

“뭐라고?! 그렇게 중요한 걸 왜 이제야 얘기하는데!”

배주원이 손정원의 멱살을 잡고 당장이라도 이 개자식을 때려죽이고픈 심정이었다.

이미 된통 얻어맞은 손정원은 감히 머리를 쳐들 수가 없었다.

“폭탄 제거할 시간 없어. 얼른 하린이 찾아야 해!”

말을 마친 서도겸이 폐기된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배주원이 뒤를 따랐다.

박시언은 기사에게 분부했다.

“은영이 데리고 나가서 내 소식 기다려!”

“네, 대표님!”

기사는 곧장 차를 몰고 폐기 건물 밖으로 나갔다.

소은영이 참지 못하고 질문을 건넸다.

“하린 언니 지금 매우 위험하대요?”

“네, 은영 씨는 절대 함부로 움직이면 안 돼요. 여기 폭탄 설치했대요.”

소은영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미완성 건물을 힐긋 보더니 마음속에 갑자기 사악한 생각이 들었다.

‘김하린 그냥 여기서 죽어버리면 좋겠다!’

“김하린! 하린아! 내 말 들리면 대답해!”

미완성 건물 안에서 김하린이 어렴풋이 눈을 떴다. 귓가에 박시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연신 머리를 내저었다.

‘박시언이 어떻게 여기로 오겠어?’

그는 지금쯤 소은영과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낼 게 뻔하다.

“김하린!”

줄곧 머리가 흐리멍덩했던 그녀는 서도겸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두 눈을 크게 떴다.

‘서도겸?’

자세히 들어보니 배주원과 박시언의 목소리도 들렸다.

‘설마 박시언이 진짜 이리로 온 거야?’

김하린은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지금 이곳은 어두컴컴한 방 안이고 밖에서 희미한 달빛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녀가 있는 곳에서 바깥의 전경이 훤히 다 보였다.

이곳은 미완성 건물이었다!

“읍! 으읍!”

김하린은 큰소리로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입에 테이프가 붙여져 있었다.

‘젠장!’

대체 누가 감히 그녀를 납치한 걸까?

밧줄을 풀려고 안간힘을 써봐도 삼끈이 아닌 나일론 밧줄이라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안돼, 김하린! 침착해야 해.’

그녀는 숨을 깊게 몰아쉬고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까부터 ‘띠띠’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순간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폭탄이야!’

김하린은 즉시 몸을 눕히고 밖으로 기어나갔다.

이 방을 나서자 밖에는 미완성 건물의 복도였다.

이곳은 얼추 십몇 층은 돼 보였다.

김하린은 머리로 옆에 있는 기둥을 들이받으며 박시언 일행이 소리를 듣길 바랐다.

곧이어 그녀는 또각또각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에 김하린은 화들짝 놀랐다.

이건 남자의 구두 소리가 아니라 하이힐 소리였다.

머리를 들어보니 소은영이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소은영은 음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금 차에서 내려와 폐기된 건물 안으로 들어올 때 위층에 있는 김하린이 얼핏 보였다.

김하린만 죽으면 박시언 와이프의 자리는 비게 될 것이다.

김하린만 죽으면 그녀와 박시언 사이에는 더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을 것이다.

소은영은 김하린을 아래로 밀어버릴 기세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김하린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뭐가 잘못됐는지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었다.

이때 박시언도 그녀를 발견하고 황급히 달려왔다.

“하린아!”

박시언의 목소리를 들은 소은영은 재빨리 움츠리고 앉아 김하린의 입에 붙인 테이프를 뜯었다.

“언니 괜찮아요? 지금 바로 뜯어드릴게요.”

김하린은 걱정 어린 소은영의 눈빛을 바라보며 의아했던 마음을 잠시 묻어뒀다.

좀전의 불길한 느낌은 단지 그녀만의 착각이었기를...

“넌 왜 올라왔어?”

박시언은 소은영도 올라온 걸 보더니 미간을 구겼다.

“차에만 있으라고 했잖아.”

“저도 언니가 걱정돼서 함께 찾아보려고 왔어요.”

소은영은 살짝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김하린이 말했다.

“여기 폭탄 있어. 도겸이랑 주원 씨는? 다들 얼른 도망쳐야 해!”

“가자.”

박시언은 김하린을 번쩍 안아 올리고 아직도 주변에서 그녀를 찾고 있는 서도겸과 배주원에게 말했다.

“하린이 찾았어요. 얼른 가요!”

두 사람은 박시언의 목소리를 듣고 서로 마주 보더니 재빨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배주원이 물었다.

“손정원 어떡해?”

서도겸이 차갑게 말했다.

“걔는 여기 남겨둬.”

배주원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게 왜 하필 도겸이를 건드리냐고?’

한편 소은영은 박시언을 뒤따라오며 그의 품에 안긴 김하린을 보고 있자니 질투가 저절로 차올랐다.

“앗!”

그녀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고 이에 박시언이 머리를 돌렸다. 소은영은 하이힐 굽이 부러졌다.

“미안해요, 대표님... 발목이 접질린 것 같아요.”

이를 본 김하린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 내려줘. 이젠 괜찮아.”

“확실해?”

“응.”

박시언은 그녀의 대답을 들은 후에야 바닥에 내려주고 얼른 가서 소은영을 안았다.

마침 같은 층에 도착해 이리로 달려오던 서도겸이 이 광경을 지켜봤다. 그는 김하린의 발목에 난 상처를 한눈에 발견했다.

아마도 나일론 밧줄을 풀려고 몸부림치다가 상처가 난 듯싶었다.

서도겸은 두말없이 앞으로 달려가 김하린을 번쩍 안았다.

그녀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뭐 하는 거야?”

서도겸이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너도 발목 다쳤는데 왜 말 안 해?”

“내 상처는 중요하지 않아.”

김하린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박시언한테는 소은영이 더 소중하거든.”

박시언이 소은영에 대한 편애가 이미 남녀의 경계를 넘어섰다는 걸 모르는 이가 있을까?

김하린도 이 정도의 눈치는 챙겨야 했다.

“바보.”

서도겸이 그녀를 살짝 흔들었다.

“나 꽉 안아.”

김하린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지만 좀 전보다 서도겸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빨리 나가야 해! 폭탄이 곧 터진다고!”

배주원이 소리쳤고 서도겸은 그녀를 꽉 안은 채 마지막 순간에 폐기된 건물에서 뛰쳐나왔다.

한순간 거대한 폭파음과 함께 폐기된 건물은 온통 불빛으로 뒤덮였다.

“타!”

박시언은 소은영을 차에 앉힌 후 고개 돌려 김하린을 태우려 했는데 그녀가 이미 서도겸의 차에 올라탔다.

“대표님, 얼른 가요... 나 너무 무서워요.”

소은영이 잔뜩 겁에 질려 하자 박시언도 마지못해 차에 탔다.

한편 김하린은 나란히 차에 탄 두 사람을 지켜보며 이미 적응한 듯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서 김하린은 아무 말도 없었다.

배주원이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누가 납치했는지 안 궁금해?”

“손정원.”

김하린이 넌지시 대답했다.

“어떻게 알았어?”

배주원은 놀란 듯이 물었다.

“그냥 맞춰본 거야.”

김하린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사실 그녀도 방금 손정원이 떠올랐다.

김하린은 자신의 인맥이 아주 단순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누군가를 건드릴 일은 더더욱 없다. 최근에 있은 가장 큰 이슈는 바로 2조 원으로 그 부지를 낙찰한 것이다.

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전생에 그 부지를 산 사람이 바로 손정원이다.

김하린은 지금 그의 돈줄을 막은 게 틀림없다. 하지만 손정원도 그 부지가 미래에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 모르고 단지 또 다른 의도를 품고 있을 뿐이다.

한편 손정원은 또 서도겸의 사람이다.

그러니까 서도겸도 제때 도착한 것이다!

김하린이 이 기회를 틈타서 물었다.

“서도겸 씨 부하가 날 납치했네. 이러면 계산이 어떻게 되는 거지?”

“일단 빚진 거로 할게.”

서도겸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배주원은 백미러로 서도겸을 힐긋 쳐다보며 이 친구가 대체 무슨 의도인지 전혀 갈피가 안 잡혔다.

손정원이 이렇게 하는 건 그와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 왜 굳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김하린을 구한 걸까? 게다가 되레 본인이 빚지다니?!

더 빌리지에 도착한 후 배주원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박시언은 대문 앞에서 차에 있는 소은영을 안아서 내렸다. 그는 전혀 김하린을 기다릴 기색이 없이 소은영과 함께 나란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 갈게. 다들 오늘 고마웠어.”

김하린이 차 문을 열고 홀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배주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난 또 네가 하린이 기 살려줄 줄 알았는데.”

“걔 그렇게 나약한 사람 아니야.”

서도겸은 두 눈을 감았다.

“가자.”

더 빌리지.

박시언은 한창 소파에 앉아서 소은영에게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김하린이 들어오자 소은영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제가 발목을 접질려서 대표님이 약을 발라주는 것뿐이에요...”

말을 채 맺기도 전에 박시언이 싸늘하게 가로챘다.

“쟤한테 해명할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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