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린은 매우 진지했다.이 말은 진실 반, 거짓 반이다. 김씨 일가는 확실히 한때 위풍당당하던 김씨 일가가 아니다. 이 또한 전생에 박시언이 김하린에게 점점 더 냉랭해진 이유이기도 하다.박시언에게 이 결혼은 오직 이익 관계로 얽매인 결혼이다 보니 그녀가 모든 이용 가치를 잃으면 박시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전생에 김씨 일가는 철저하게 몰락했고 김하린은 박시언에게 쓰레기 취급을 당하며 가차 없이 버려졌다.“지금 네가 에반을 운영하겠다고? 농담하지 마!”배주원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서도겸의 곁눈질로 대뜸 입을 다물었다.그는 곧장 단어 사용에 신경을 썼다.“하린아, 내가 널 얕잡아보는 게 아니라 네 전공이 아예 금융 쪽도 아니고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배운 적도 없잖아. 에반 홀딩스가 지금 아무리 빈껍데기 회사라고 해도 그 큰 가업을 네가 어떻게 감당하겠어? 수많은 임원진을 다 설득할 수 있겠어?”“그건 나도 알아.”“알면서 왜...”서도겸이 또다시 배주원을 째려봤다. 이에 배주원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네가 에반 홀딩스를 운영하는 건 너무 비현실적이야.”“에반은 우리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산업이야. 내가 반드시 지켜내야 해. 체계적으로 배우진 못했지만 나도 나름 방법이 있어.”“무슨 방법?”“학교 다니면 되지.”“학교?”배주원은 그녀의 사고방식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박시언이 투자한 금융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는 건 괜찮을 것 같아.”“자신 있어?”“응.”김하린은 홀가분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박시언이 투자한 그 학교는 국제 금융 학교라서 안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금융계 전문가들이다. 그녀의 말처럼 그리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이 학교를 설립한 수십 년 동안 오직 소은영만 빈곤 가정 학생 출신이다. 그녀도 높은 점수와 박시언의 추천으로 겨우 입학했다.한편 김하린은 이 방면에 대한 기초가 전혀 없으니 입학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배주원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인맥을 동원해서 들어갈 생각이야?”
박시언은 병원에서 밤새 소은영과 함께 있었다. 오전에 갑자기 이 비서한테 전화가 걸려왔고 그는 미간을 살짝 구기며 전화를 받았다.“입시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학교 측에서 오늘 갑자기 전화가 왔는데 입시 명단에서 사모님 이름을 보았다고 합니다. 실례지만 대표님, 사모님께서 혹시 대표님께는 미리 말씀하셨나요?”어제 김하린은 분명 최미진과 함께 쇼핑하고 있었는데 대체 언제 시험을 신청하러 갔다는 걸까? 박시언은 어리둥절해졌다.“알겠어요.”박시언은 전화를 끊은 후에도 인상이 펴지지 않았다.‘김하린 또 무슨 수작인데?’“대표님, 학교에서 전화 왔나요? 저 얼른 돌아가서 수업 들을게요.”소은영이 병상에서 어느새 잠이 깼다.“이 비서더러 학교에 얘기하라고 했어. 오늘은 병원에서 푹 쉬어. 방금 전화도 네 일이 아니야.”“그럼 무슨 일인데요?”소은영은 의아한 듯 박시언을 쳐다봤다.박시언은 학교에서 후원하는 학생이 분명 소은영 한 명뿐이었으니까.“김하린.”그는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나 먼저 가봐야겠어. 푹 쉬고 있어.”소은영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박시언이 나간 후에야 그녀는 나지막이 구시렁댔다.“김하린이 우리 학교랑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지?”그 시각, 김하린은 한창 A 대학교를 거닐었다. 그녀가 박시언의 와이프인 관계로 교장과 부교장이 옆에서 A대의 교육 시설과 일부 캠퍼스 환경을 소개해주고 있었다.김하린은 원래 예쁜 데다가 오늘 포니테일을 묶어 청순하고 풋풋한 대학생을 방불케 했다.주변을 오가던 학생들은 저도 몰래 김하린을 엿보며 그녀의 정체를 추측하고 있었다.곧이어 박시언의 차가 A대 교문 밖에 도착했다.안소이는 그 차가 왠지 조금 눈에 익었다.“가람아, 저기 좀 봐봐. 저 차 소은영 남친 차 맞지?”그녀들은 전에 이 차가 소은영을 픽업하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다.“그러네. 어젯밤에도 은영이 저 차 타는 거 봤어.”유가람이 의아한 듯 물었다.“은영의 남친이 병원까지 실어준다고 하지 않았어? 이렇
소은영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그녀는 전에 허영심에 차서 룸메이트들의 끈질긴 질문하에 박시언이 제 남자친구라고 거짓말을 둘러댔다. 만약 이 거짓말이 들통난다면 그녀는 감히 기숙사에 남아있을 면목이 없다!틀림없이 룸메이트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것이다!소은영은 한참 망설인 후 답장을 보냈다.[알았어. 너희들은 일단 가만있어. 난 내 남친 믿어.]말을 마친 그녀는 이불을 걷고 문밖에 있는 간호사를 불렀다.“저기요, 저 퇴원할래요!”A대 밖에서 김하린은 박시언에게 끌려 차 안에 들어왔다.“설명해 봐.”박시언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이에 김하린은 직설적으로 대답했다.“나 A대에서 금융을 배우고 싶어.”“안돼.”“네가 뭔데 안된다는 거야?”“난 네 남편이야. 그러니까 절대 안 돼!”박시언의 말투가 더 싸늘해졌다.“김하린, 네가 무슨 꿍꿍이인지 내가 모를 것 같아?”“뭐라고?”“은영이가 이 학교에 있으니까 일부러 따라와서 괴롭히려는 거잖아!”“박시언,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야. 착각하지 말아 줄래?”“하린아, 전에 네가 은영의 옷 스타일 따라 하는 거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렇다고 이렇게 선 넘는 건 무례야. 말했잖아. 넌 영원히 내 와이프야. 아무도 네 자리 못 뺏어.”“진짜 아무도 못 뺏어? 시언아, 내가 만약 김씨 일가의 딸이 아니었다면 넌 나랑 결혼했을까?”김하린은 차가운 시선으로 박시언을 쳐다봤다.순간 박시언은 말문이 턱 막혔다.결국 그녀와 박시언 모두 이 문제의 답안을 잘 알고 있다.만약 이때 신분이 더 높고 박씨 일가 사모님 자리에 더 적합한 여자가 나타난다면 박시언은 여전히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와 이혼할 것이다.“A대는 네가 들어오고 싶다고 해서 바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내 와이프라고 시험 면제받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마. 나도 절대 너 안 도와줘.”“오직 내 실력으로만 시험 볼 거야. 너한테 기댈 일 없어.”“고작 네가?”박시언이 차갑게 웃었다.“하린아, A대가 우스워? 쉽게 들어
유가람이 분노 조로 말했다.“어쩐지 그 여자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더라니. 여우처럼 생겨서 감히 임자 있는 남자를 뺏어? 퉤! 뻔뻔스러워!”“왜? 난 그 여자 꽤 예쁘던데.”안소이가 말했다.“은영아, 네 남친 절대 방심하면 안 돼. 딴 여자한테 뺏길라.”유가람이 말을 이었다.“그럴 리가. 은영의 남친이 은영이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어떻게 그런 여자한테 넘어가겠어?”“걱정해줘서 고마워 얘들아. 하지만 걱정 마. 나랑 내 남친은 전혀 문제없어.”소은영이 가볍게 웃었다.이때 안소이가 말했다.“근데 그 여자도 우리 학교에 온다고 들었어. 게다가 금융을 배운대. 아마도 은영이 너 때문에 오는 것 같아.”“뭐라고?”소은영은 화들짝 놀랐다.‘김하린이 A대에서 금융을 배운다고? 말도 안 돼!’안소이가 말했다.“진짜야. 내가 일부러 학교 모집실에 여쭤봤는데 그 여자 왔다고 교장 선생님이랑 부교장까지 함께 따라다녔대. 딱 봐도 돈이 많아 보인다던데 아마 인맥을 써서 들어올 생각인가 봐.”유가람도 의아했다.“우리 학교에 죄다 돈 많은 사람들인데 그 여자는 대체 정체가 뭐래? 너는 알아?”안소이가 머리를 흔들었다.“몰라. 아무튼 여태껏 아무리 돈 많은 사람이 와도 교장 선생님이랑 부교장까지 친히 마중 나간 적은 없잖아. 그 여자 어마어마한 집안 출신일 거야.”“아니 그렇게 예쁘고 돈도 많은데 왜 굳이 임자 있는 남자를 뺏어? 참 이해 안 돼.”안소이와 유가람이 한 마디씩 주고받았고 소은영은 마음이 심란하기 그지없었다.김하린이 A대에 오면 그녀가 전에 한 거짓말은 바로 들통날 게 아닌가?오늘 박시언이 아침 일찍 병원을 나선 걸 되새겨 보니 아마 이 일 때문일 듯싶었다.그 시각 소은영의 전화가 울렸다.그녀는 기숙사 밖에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병원에서 너 퇴원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거야?”박시언은 관심 조로 물었다.“공부하는 데 방해될까 봐 먼저 돌아왔어요.”“공부가 아무리 중요해도 네 건강이 우선이야. 요 이틀은 강의 안 들어도 돼
오늘은 김하린이 입시 보는 날이다. 모건 그룹 대표 사무실 안에서 박시언은 컴퓨터의 시간을 확인하며 물었다.“김하린 오늘 아침에 시험 보러 갔어요?”“네, 사모님께서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 지금쯤 아마 수능장에 들어갔을 거예요.”박시언이 고개를 끄덕였다.“교장한테 미리 말했죠?”“네, 다만...”“다만 뭐요?”“사모님은 이번에 대학원 입시를 보는 거라 교장이 굳이 간섭하지 않아도 못 붙을 게 뻔하답니다.”“대학원이요?”박시언은 원래 그녀가 대학 입시를 봐도 합격할 가능성이 매우 적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대학원 입시를 본다고?! 김하린 완전히 미친 걸까?“걔 신경 쓸 거 없어요.”박시언이 차갑게 말했다.‘창피를 당하겠으면 마음껏 해.’한편 김하린은 수능장에 도착했는데 이 안에서 그녀가 제일 어렸다. 시험관도 저도 몰래 그녀를 두어 번 쳐다봤다.수능장에 있는 대부분 사람들은 곧 30대가 되는 금융계 인사들이고 그녀가 전에 TV에서 봤던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만큼 이 학교는 금융교육계에서 명실상부한 학부이다.그 시각 소은영은 일부러 강의동 수능장 복도를 서성거렸다.1학년 입학시험은 이 건물에서 치를 텐데 수능장을 몇 개나 돌아다녀도 김하린의 그림자조차 없었다.‘설마 김하린이 제 분수를 알고 물러선 걸까?’소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그녀의 많은 번거로움을 덜어준 셈이니까.“은영아, 여기서 뭐 해?”이제 막 강의동에 들어온 유가람이 1층 수능장을 서성이는 소은영을 발견했다.소은영이 대답했다.“나 지금 제2 강의동에 수업 들으러 가려고. 같이 가.”“2동도 오늘 수능 봐. 단톡방에서 말했잖아. 우리 오늘 3동에서 수업해.”“그래?”소은영은 휴대폰을 열어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2동에서 대학원 입시를 진행한다고 했다.하지만 매년 대학원생으로 진학하는 학생은 매우 적다. 현재 3학년 학생들 중에서도 오직 소은영만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고 있고 내년이 돼야 수능을 볼 수 있다.유가람이 말했다.“우
소은영은 흠칫 놀랐다.‘김하린이 왜 여기 있지?’잠시 후 문 앞의 인기척 소리에 안에 있던 시험 감독이 걸어 나오며 버럭 화냈다.“다들 어느 과 학생들이야? 여기 수능장인 거 안 보여? 싹 다 나가!”주위 학생들은 뿔뿔이 도망쳤지만 유가람만 한사코 소은영을 잡아당기며 시험 감독에게 말했다.“선생님, 저희는 3학년생이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라 올해 어떤 문제가 나왔는지 미리 챙겨가서 공부하고 싶어요.”시험 감독은 소은영을 보더니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그녀는 박시언이 후원하는 학생인지라 시험 감독도 흔쾌히 시험지를 건넸다.소은영은 시험 문제를 본 순간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아쉽네. 한태형 못 봤어.”유가람은 실망한 듯 고개를 숙이고 곁눈질로 소은영을 쳐다봤는데 그녀가 줄곧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에 유가람이 의아해서 물었다.“너 왜 그래?”소은영은 고개를 내저었다.“올해 나온 문제가 너무 어려워. 내가 시험 봤어도 합격하기 힘들 거야.”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김하린도 절대 못 붙을 것이다.소은영은 박시언이 올해 시험을 치르지 말라고 한 게 내심 다행이라고 느껴졌다.‘대표님은 올해 시험 문제가 어려운 걸 진작 알았었네.’박시언이 자신을 편애한다는 생각에 소은영은 몰래 기뻤다.수능장 안에서 김하린은 한참 열심히 시험을 보고 있었다. 시험 시간이 반쯤 지난 후 수능장 밖에 꽤 큰 인기척이 들려왔다.“쾅!”누군가가 수능장 문을 힘껏 박차고 열었다. 곧이어 두 명의 경호원이 빨간 머리 남자를 짓누르고 안으로 들어왔다.그 남자는 시험장 좌석에 꽉 짓눌린 채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김하린은 이 남자가 살짝 눈에 익었다.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이 남자는 한씨 일가의 둘째 도련님 한태형일 것이다.기억 속 전생의 한태형은 무례하고 난폭한 성격이었지만 장사에 능한 두뇌를 가졌다. 그녀가 죽기 전에 한태형은 병약한 형 한태윤의 뒤를 이어 한씨 일가의 오너가 되었다.이러고 보니 한태형도 나름대로 실력이 있는 것 같았다.“나 안 해!”
한태형은 예리한 눈길로 그녀를 꿰뚫어 볼 것만 같았다.김하린은 순간 숨이 확 멎었다.마지막 큰 문제를 확실히 그녀가 일부러 잘못 썼으니까.이 문제를 잘못 쓰기 전, 김하린은 이미 다른 문제의 점수를 다 계산해 보았는데 충분히 대학원 합격선을 넘을 수 있었다.남들이 볼 때 그녀는 금융 지식에 대해 전혀 접촉한 적이 없는 사람인지라 갑자기 충격적인 성적을 내놓으면 비난이 난무할 것이고 박시언도 의심할 게 뻔하다.‘그런데 한태형이 어떻게 안 거지?’“너 내 시험지 몰래 봤어?”김하린이 정색하며 물었다.“시험장에서 함부로 두리번거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 시험지를 훔쳐보면 안 되는 거 몰라? 너 이거 커닝이야!”한태형은 우습다는 듯이 몸을 기울이고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나 백지 냈어.”김하린도 전혀 겁먹지 않은 채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그래? 너 혹시... 한 문제도 모르는 거야?”한태형이 미간을 확 구겼다.이에 김하린이 말을 이었다.“한 문제도 못 풀었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내가 일부러 마지막 문제를 잘못 썼다고 하는 거야?”한태형이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녀가 대뜸 가로챘다.“네가 대시하는 방식이 아주 독특한 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난 공부 못하는 애들은 별로라서. 기회 되면 다음에 또 봐.”김하린은 한태형의 팔 사이를 빠져나갔다.한태형은 그런 그녀가 너무 웃겼다.‘내가 대시를 해? 게다가 공부도 못한다고 내가?’이때 문밖의 경호원이 말했다.“도련님, 사장님께서 시험 끝나는 대로 바로 집에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한태형은 휘파람을 불었다.그는 원래 A대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인제 보니 나름 흥미진진했다.“형한테 전해요. 나 A대 다닐 거예요.”경호원은 화들짝 놀랐다. 순간 본인들이 잘못 들은 줄로 착각할 뻔했다.집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도련님은 한사코 A대에 안 다닌다고 거부했으니까.저녁 무렵, 김하린이 더 빌리지 대문에 들어서자 거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최미진이 정색한 얼굴로
김하린은 박시언의 휴대폰을 힐긋 쳐다봤다.박시언은 전화를 받지 않고 일단 꺼버렸다.최미진이 냉랭하게 말했다.“너희 둘 빨리 애부터 가져. 굳이 내가 손 쓸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박시언은 아무 말이 없었다.최미진이 손주를 원하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까.김하린은 할머니가 떠난 후에야 입을 열었다.“학교 측에 연락했어?”“응.”박시언이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나 봐주지 말라고 한 거지?”“왜? 이젠 나한테 사정하고 싶은가 봐? 내가 인맥 써서 A대에 보내줬으면 좋겠어?”박시언이 피식 웃으며 야유에 찬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잘 들어. 설사 내가 A대에 넣어준다고 해도 네 수준으로는 졸업할 수 없어.”“난 단지 네가 함부로 간섭하지 않길 바랄 뿐이야. 만약에 내가 정말 A대에 들어갔는데 네가 교장한테 말해서 입시자 명단에서 내 이름 빼라고 하면 그땐 나도 가만있지 않아.”김하린도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박시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했다.‘이 여자가 이젠 점점 더 당돌해지네.’띠리링.이때 박시언의 휴대폰이 또 한 번 울렸다.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말해.”“대표님, 사모님 성적표가 나왔습니다.”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학교 측의 난감한 목소리에 박시언은 미간을 찌푸렸다.“알았어.”김하린은 맞은 편에 앉아 그의 표정을 바라보며 학교 측에서 미리 그녀의 시험지를 채점했다는 걸 알아챘다.“김하린, 진짜 생각지도 못할 일이야. A대 가려고 감히 커닝을 해?”“나 합격이지? 맞지?”김하린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박시언의 표정을 보아 합격선을 넘은 게 분명했다!“박시언, 기왕 시험에 합격했으니 내가 어떻게 합격했는지는 따지지 마. 밖에서는 모범 부부로 보이도록 협조 잘할게. 그러니까 집안에서는 내가 뭘 하든 신경 꺼.”그녀의 태도는 유난히 강경했다.박시언이 말했다.“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건 나도 간섭 안 해. 다만 그 전에 할머니부터 상대해야 할 거야. 너 A대 간 거 할머니가 아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