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의 모든 챕터: 챕터 601 - 챕터 610
693 챕터
제601화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나다
새 병원에 도착한 뒤 나는 바로 입원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새로 다시 검사를 받아야 했다.나는 2, 3일 동안 모든 것을 정리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주일 뒤면 수술을 받을 수 있었는데 나는 걱정이 되어 마음속에 돌덩이가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다행히도 아빠의 상황이 나쁘지 않았고 암세포도 억제되어 진행이 늦어졌다.수술 날짜를 기다리던 중 해외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상대방은 유창한 영어로 아빠의 입원을 시켜줄 수 있다고 했다. 검사와 수술 스케줄도 앞당겨줄 수 있다는 말에 해외 병원에서의 치료는 이미 포기했던 나는 깜짝 놀랐다.“죄송하지만 무슨 이유로 우리 아버지의 순서를 앞당길 수 있다는 거죠?”나는 혼란스러워 물었다.“저희 쪽에 한 환자분의 수술이 취소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의 입원과 수술을 앞당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영 씨 언제쯤 오실 수 있으신가요? 저희 쪽에서 의료진과 병실을 준비해 두겠습니다.”해외 병원의 태도는 아주 친절했다.나는 순간 멈칫했다. 금방 새 병원에서 안정되어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데 바꿔야 할까?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는 가족들과 상의한 뒤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자 아빠가 내게 물었다.“무슨 일이야? 외국에서 온 전화니?”“아빠, 전에 그 해외 병원에서 아빠 입원을 시켜주겠다고 하네요. 수술도 미리 잡아주고요.”나는 시간을 아끼려고 간단하게 설명했다.“그쪽에 가서 수술받는 거 어때요? 전에 알아봤는데 그쪽 병원의 의료 수준이 훨씬 더 높더라고요. 아빠 상황에는 더 좋을 것 같은데.”아빠는 내 말을 들으시더니 바로 거절하셨다.“나 안 가. 네가 전에 예약해도 반년 뒤에나 받을 수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갑자기 수술할 수 있다는 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거 같아. 난 안 갈 거야.”고집을 부리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나는 다급해졌다.“아빠 그쪽 병원에 한 환자분이 수술을 취소하셨대요. 그래서 앞당길 수 있는 거예요. 저희는 돈만 내면 되는 거고요.”나는 거짓말을 했
더 보기
제602화 나와 함께 감당하다
아빠와 내가 모두 자기를 무시하자 민설아도 더 질척거리지 않았고 가는 동안 조용했다.목적지가 같은지 민설아는 또 아빠가 입원하시게 될 병원에 나타났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비행기에서 왜 그렇게 조용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결국 목적지가 같았기에 그녀는 서두르지 않은 것이었다.“정말 우연이네요. 우리 같은 비행기에 목적지까지 같았네요.”병원에서 민설아는 내게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난 친구 만나러 왔어요.”나는 그녀에게 대답하지 않고 그냥 아빠의 입원 절차를 와 수술 스케줄을 잡았다. 국내에서 이미 검사를 받았지만 더 신중해야 했기에 검사들을 다시 받았다. 나는 이것저것 처리하느라 민설아의 쓸데없는 말을 들어줄 시간이 없었다.그녀는 급해하지도 않고 옆에서 내가 끝나기를 지켜보더니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그녀의 말투에 질투가 가득했다.“인호 씨가 대신 예약 문제를 해결해 준 거죠?”다행히 아빠가 옆에 안 계셨다. 나는 바로 그녀를 째려보았다.“민설아 씨, 당신 친구 만나러 온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여기서 나한테 시간 낭비할 필요 있어요?”“왜요? 내 예상이 맞았어요?”민설아의 미소는 싸늘했다.“항상 인호 씨와 더 엮이고 싶지 않다는 지 뒤돌아보지 않을 거라는 건 사실 다 핑계였죠? 단지 고귀한 척하고 싶었을 뿐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한 인호 씨를 어떻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이혼을 아주 잘 활용한 건 인정해요.”“민설아 씨는 머릿속에 온통 사랑밖에 없나 봐요?”이곳이 해외 병원이라 다른 사람들이 우리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민망했을 것이다.민설아는 미련이 가득해 보였다.“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요? 하지만 내 인생은 허지영 씨 때문에 망가졌어요. 난 이제 아무것도 없는데 허지영 씨를 원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글쎄, 당신이 죽지 않았다고 예상하지 못한 내 탓을 해야 하는 걸까? 나도 민설아가 살아 있다는 걸 알았다면 배인호와의 결혼을 거절했을 것이다.
더 보기
제603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저와 지영 씨는 친구예요. 친구 가족이면 제 가족이기도 하죠.”이우범의 대답에 나의 눈빛이 반짝였다.친구? 좋다. 이 관계는 내가 꿈꿔왔던 바로 그런 관계였다.이우범이 직접 한 말이라 나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심리적 부담감이 많이 줄어든 나와는 반대로 아빠는 조금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눈앞에서 자기 마음속 최고의 사윗감이 딸의 친구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시며 많이 속상해하셨다.“아빠, 먼저 쉬세요. 저 우범 씨하고 나가서 밥 좀 먹고 올게요.”나는 이우범과 단둘이 얘기를 나누고 싶어 아빠에게 말했다.아빠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빠의 눈동자에서 빛나던 불꽃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그래, 가 봐.”나는 이우범을 데리고 병실을 나왔다. 그는 수술받는 아빠를 보러 멀리에서 와줬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마음에 나는 감동했다.나에게도 내 가족에게도 그는 정말 흠잡을 데 없이 잘해주었다.엘리베이터가 도착했을 때 이우범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조금 굳은 얼굴로 말했다.“먼저 밥 먹지 말고 병원에 남아서 아저씨를 돌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근처에 레스토랑 있어요. 지난번 한국에서 못 샀던 밥 이번에 살게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여기 병원 간호사들이 와서 아빠 돌봐줄 거고.”이우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을 뻗어 내 손목을 잡더니 병실 문 쪽으로 데려갔지만 들어가지는 않았다.나는 그가 왜 이러는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우범 씨, 왜 이러는 거예요? 설명 좀 해줄래요?”예전 같았으면 밥을 사겠다는 내 말에 이우범은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한 끼도 먹고 싶지 않다는 그가 많이 이상했다.하지만 민설아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떠오르니 나는 은연중에 뭔가가 떠올랐다. 이우범이 바로 나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 그를 쳐다보았다.이우범이 입술을 움찔거리며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는데 갑자기 민설아의 목소리가 한쪽에서 들려왔다.“우범 선배, 왜 여기 있어요?”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더 보기
제604화 변화
“내일이에요. 왜요?”내가 물었다.“너 혼자서 아저씨 모시고 간 거야?”배인호는 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서는 계속 물었다.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네, 나 혼자에요.”이우범은 오늘 막 왔고 순간 나는 그가 떠오르지 않았다. 요 며칠 동안 나 혼자서 아빠를 챙겼기 때문이다.“허허, 그래?”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배인호는 비웃음을 날렸다. 나를 믿지 않는 듯 해 오늘 이우범이 왔다는 말을 바로 하려고 했지만 배인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이우범 지금 거기 있지 않아?”“인호 씨가 어떻게 알았어요?”나는 이 일을 아직 정아와 애들에게도 하지 않았기에 조금 놀랐다.하지만 다음 순간 방금 다녀간 민설아가 떠올랐다. 분명 그녀가 배인호에게 알려줬을 것이다.이런 식으로 나와 이우범이 얽히는 것을 배인호는 가장 걱정했다. 그가 나와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이런 일에서는 양보하지 않고 내게 화를 냈다.“맞아요. 오늘 왔어요.”나는 배인호 말투에서 불쾌함과 질투를 느꼈지만 더 해명하지 않았다.“그럼, 너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배인호의 목소리를 들으니 점점 더 화를 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내가 어떻게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까?그가 며칠 전 퇴원한 뒤 서울로 돌아갔는지 아니면 병원에 남아 빈이를 기다리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고 그는 말없이 짜증을 내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조금 불안했지만 화장실에 너무 오래 있을 수가 없어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내가 나오니 이우범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이우범이 친구를 만나러 갔다고 하셨다.“지영아, 아빠가 네 일에 간섭하려는 게 아니라 우범이는 정말 어디 흠잡을 데 없다는...”아빠는 편찮으시고 난 뒤에 더 잔소리가 많아지셨다.“아빠, 전에 이우범이 어떻게 했는지 아시잖아요?”나는 아빠의 말을 끊었다.“전 마음을 터놓지 않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지 않아요.”아빠는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이우범이 어떤 짓을 했는지 나는 부모님께 모
더 보기
제605화 좋은 결과
나는 정아와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전화를 끊었다.배인호가 현재 나를 대하는 방식은 확실히 이전과 많이 다르지만 너무 늦었고 모든 것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누구 전화에요?”이우범은 어느 순간 내 뒤에 서서 물었다.나는 고개를 돌리며 핸드폰을 집어넣고서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정아에요. 아빠 수술 어떻게 됐는지 묻더라고요.”“언제 한국으로 돌아갈 거예요?”이우범은 갑자기 말을 바꾸며 이 일을 물었다. 그는 꼭 내가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것 같았다.아빠는 수술을 받으신 뒤 몸 상태가 안정될 때까지 잠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상황 봐서요. 왜요? 우범 씨 바쁘면 먼저 돌아가도 돼요. 나 혼자서도 괜찮아요.”나는 이 상황을 틈타 이우범이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여기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빠는 더 마음이 흔들려 내가 다시 이우범과 잘 되길 바랄 테니 말이다.이우범은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뭔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그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그 반응에 나는 불안해졌다. 만약 이우범이 독심술을 할 수 있다면 그는 내 마음속에 떠오른 ‘어서 돌아가’라는 한 마디를 알아챘을 것이다.실제로 이우범과 배인호를 비교하면 이우범이 더 상대하기에 어려웠다. 배인호가 지금 여기 나타난다면 아빠는 망설임 없이 그를 쫓아낸 뒤 나에게 배인호와 죽을 때까지 다시 엮이지 말라고 경고할 것 같았다.이우범은 그와 달랐다. 그는 우리 부모님 마음속의 원픽이었다. 전에 부모님이 내게 다시는 감정사에 강요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더라도 이우범이 조금만 더 존재감을 어필하면 부모님은 또 흔들렸다.“지영 씨하고 아저씨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나도 함께 있을게요.”뜻밖에도 이우범은 이런 말을 하는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나는 그를 또 어떤 이유로 쫓아낼 수 있을까?지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조용히 자리에 앉아 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이건 긴
더 보기
제606화 꽃을 가져온 사람
나는 사실 입맛이 별로 없었고 이우범도 마찬가지였다.우리 두 사람은 근처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스테이크로 배를 채웠다.이때 이우범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근심 섞인 눈빛이었지만 내가 무슨 일인지 묻기도 전에 사라졌다.그는 몸을 일으켰다.“밖에 가서 전화 좀 받고 올게요.”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레스토랑 밖으로 나가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우범이 나를 피해 전화를 받는 일을 드물었다. 아무리 민설아의 전화라도 그는 아주 태연한 태도로 내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받았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나를 피했다.나는 나도 모르게 이우범이 누구와 전화 통화를 하는지 추측했다.10분 정도 지나자 그는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왔다.“미안해요. 회사에서 온 전화예요.”분명 회사에서 온 전화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얘기하든 이우범의 자유였기에 나는 굳이 더 묻지 않았다.“우범 씨 그러면 먼저 돌아가 봐요.”나는 부드럽게 말했다.“회사 일이 급한 것 같은데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말아요. 아빠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났으니까 우범 씨도 걱정하지 말고 가 봐요.”“그래요. 하지만 조심해요. 말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죠?”아까 아빠도 말했었고 지금은 나도 이우범에게 빨리 돌아가 회사 일을 해결하라고 하니 그는 더 고집부리지 않았다.나는 그가 민설아를 얘기하고 있다는 걸 당연히 알고 있었다.민설아는 아직 이쪽에 있었다. 그 누구도 그녀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몰랐기에 그녀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이우범이 돌아간다고 했으니 내가 대신 아빠에게 말할 테니 그에게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아빠에게 인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이우범의 차가 떠나는 것을 보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병원으로 돌아갔다.마침 간호사가 아빠에게 링거를 꽂고 있었다. 병실은 아주 조용했고 은은한 꽃향기가 병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나는 침대 옆에 놓인 화분을 발견했다. 아름다운 흰 꽃잎에 푸른 잎사귀가 무성한 꽃이 흰 꽃병에 꽂혀 있었다. 향
더 보기
제607화 가져온 장난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게 배인호와 상의하지 않은 걸까? 그는 지금 많은 일을 겪고 있었고 나 대신 외국에 가서 민설아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우리 집안일로 그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부모님은 내가 배인호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셨다.“일찍 돌아온 건 급하게 결정한 거예요. 나도 인호 씨가 거기 올 줄은 몰랐죠.”나는 옆에 있는 아빠를 힐끗 보았다. 아빠는 이미 누구인지 짐작하신 듯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나를 지켜보셨다.내가 몇 마디라도 더 하면 배인호인 것을 아빠가 아실 것 같아 그의 말을 더 듣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런 다음 아빠에게 말했다.“아빠, 세희한테서 온 전화에요. 세희도 지금 외국에 있는데 아빠 보러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이미 돌아왔을 줄은 생각도 못 했나 봐요.”“세희한테 그럴 필요 없다고 해. 회사 때문에 바쁠 텐데 나한테까지 신경 써주고. 그 마음이면 충분해.”아빠는 손을 저으셨다.실제로도 정아와 애들은 아빠를 보러 오겠다고 했지만 내가 거절했다. 지금 우리 넷 중 그 누구도 한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특히 정아는 아이들도 돌봐야 했고 찰거머리 같은 노성민까지 상대해야 했다.그리고 세희는 이모건을 완전히 끊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 돌아간 이모건은 다시 세희를 찾아갔을 테도 세희도 피할 수 없었다.민정이는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다. 그녀와 정아는 3년 안에 두 아이를 낳겠다는 같은 목표를 갖고 있었다. 어쨌든 모두 키울 여유가 있었으니 걱정할 것은 없었다.“네, 알겠어요. 아빠 제가 가서 입원 절차 마무리하고 올게요. 아마 다시 검사도 받아야 할 거예요. 준비하고 계세요.”나는 대답한 뒤 입원 절차를 밟으러 갔다.그 사이 나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배인호에게 문자를 보내 이곳의 상황을 설명했다.하지만 배인호는 답장이 없었고 나도 바빠서 신경 쓰지 못했다.입원 절차가 끝나니 엄마가 오셨다. 엄마는 다급하게 병실로 들어오시더니 아빠를 보자마자 눈시
더 보기
제608화 고아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민설아 때문에 아빠는 이미 기분이 안 좋으셨다. 배인호까지 나타난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이다.나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배인호는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투덜대진 않았다.“이제 얘기해도 괜찮은 거야?”“네, 괜찮아요. 병원에는 왜 온 거예요?”내가 물었다.“너한테 볼일이 있어서.”배인호는 싸늘한 얼굴로 대답하고서는 사진 몇 장을 꺼냈다.“네가 얘기한 딜런이라는 사람, 이 사람이야?”나는 사진을 건네받았다. 사진 속 남자를 확인하니 내가 전에 본 딜런이라는 사람이 맞았다. 그때 자주 나를 찾아와서 내가 민설아를 찾아 주기를 바랐다. 민설아와 딜런이 마주친 이후로 딜런은 나를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나는 직감적으로 민설아가 이미 딜런을 만나 두 사람 사이의 문제를 민설아가 해결해 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사진을 배인호에게 돌려주며 말했다.“맞아요. 이 사람 찾았어요?”사진의 배경을 보니 외국인 것 같았다.“어, 이 사람이 전에 일했던 보육원도 다 조사해 봤어. 민설아와 아는 사이더라고.”배인호는 대답했다. 이때 병원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며 우리를 쳐다보았고 얘기를 나누기 조금 불편했다.나는 배인호의 말을 끊었다.“우리 조용한 곳에 가서 얘기 나눌래요?”이 일은 빈이가 앞으로 어디에 있을지가 달렸기에 나에게도 중요한 문제였다.“그래, 밥 먹자. 난 아직 아무것도 못 먹었어.”배인호가 대답했다.밥을 못 먹은 것도 문제지만 그의 턱에는 거뭇거뭇 수염 자국이 가득했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가득한 모습이 한눈에 봐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것 같았다. 내가 아빠를 모시고 수술을 받으러 갔다 오는 동안 그도 쉬지 않고 다른 나라에 가서 내가 부탁한 일을 알아보고 있었다.이런 이유로 함께 식사하자는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우리는 근처 레스토랑의 프라이빗 룸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메뉴판을 받아 배인호에게 건넸다.“뭐 먹을래요?”“네가 주문해.”배인호는 딱히 메뉴에 신경
더 보기
제609화 질투에 불타오르다
“그래요. 그럼, 밥 먹은 뒤에 가서 푹 쉬어요.”배인호가 이렇게 우기니 나도 그의 말에 따라 대답했다.배인호의 얼굴은 갑자기 차가워지더니 책장 번지듯이 표정이 변했다.나는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었다. 필요한 정보는 거의 다 알아냈고 이제 그것들을 정리하면 된다.내가 말이 없자 배인호는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우범은 조그마한 부탁이라도 들어주면 그렇게 고마워하고 신세를 갚으려고 하더니, 내 도움은 받고서는 아예 신경도 안 쓰네. 왜 내가 이우범보다 못해?”나는 젓가락으로 집었던 음식을 내려놓았다. 지금 질투하고 있는 걸까?“지금 이거 내가 밥 사는 거잖아요?”나는 고개를 들어 배인호를 바라보았다. 그는 젓가락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나를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지금 이게 나한테 밥을 사주는 거라고? 넌 그저 아저씨가 날 보고 기분이 상하실까 봐 두려운 거잖아. 거기에 딜런의 일을 알고 싶어서 날 이 레스토랑으로 끌고 온 거면서 핑계 대기는.”배인호는 나의 마음을 분석한 뒤 간결하게 정리했다.아주 정곡을 찔렀지만 나는 인정하기가 조금 민망했다.그래서 나는 설명하지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인호 씨, 우리가 지금 어떤 사이인지 잘 알잖아요? 이우범은 적어도 우리 부모님께는 밉보이진 않았어요. 나한테 뭘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설마 인호 씨를 위해서 다시 우리 부모님과 맞서길 바라는 건가요?”순간 나는 말실수를 한 것 같아 말을 멈췄다. 내가 왜 ‘다시’라고 한 거지?전에 그 한 번 때문에 나는 생명을 잃을 뻔했고 막심한 후회를 했다. 방금 내가 한 말은 우리 부모님 마음속에서 배인호의 위치를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그에 대한 나의 마음마저 부정한 것이었다.역시나 배인호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고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나에게 간접적으로 무시를 당했다.“그래, 내가 이우범만큼 부모님에게 예쁨받지 못했다는 거 인정해. 그러는 넌 이번에도 이우범한테 딜런을 조사해 달라고 하지 그
더 보기
제610화 큰일날 뻔하다
나는 내비게이션을 따라 배인호를 목적지까지 데려갔다.“도착했어요.”배인호가 지내는 곳에 도착한 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불렀지만 그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술을 마셔서 이렇게 빨리 잠에 든 걸까?나는 손을 뻗어 그를 흔들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고른 숨소리만이 차 안을 가득 채웠고 아주 깊은 잠이 들어있었다.“인호 씨, 일어나 봐요. 들어가서 자야죠.”나는 또 입을 열었다. 비록 오후였지만 나는 다시 병원에 돌아가야 했다. 여기서 이렇게 그가 자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었다.배인호는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지만 또 깨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본 뒤 다시 눈을 감고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 뒤로는 내가 어떻게 불러도 일어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졌다.이때 배인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아까 내비게이션을 킬 때 화면을 닫지 않아 문자가 보였다. 민설아에게서 온 문자였다.민설아: 빈이가 당신 아이라는 거 알았다면서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나한테서 빈이를 뺏어갈 건가요? 인호 씨 나에게 빈이밖에 없어요. 빈이가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지 인호 씨가 더 잘 알잖아요.”나는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가져와 문자를 확인했다.이제 보니 그동안 민설아는 계속 배인호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래도 많이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튀어나와서 자기의 존재감을 어필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문자와 전화로 배인호에게 연락했다.그녀는 나에게서 배인호는 이미 빈이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테스트까지 했다.배인호는 계속 부정하지 않았지만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나는 배인호가 왜 이렇게 하는지 막연하게 추측했다. 나를 위해 이렇게 한 것일까? 나는 빈이를 불쌍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빈이가 다시 민설아의 옆으로 돌아가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배인호가 빈이의 진짜 밝히지 않고 민설아가 계속 질척거리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은 그에게 좋은 점은 하나도 없었지만 나에
더 보기
이전
1
...
5960616263
...
70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