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의 모든 챕터: 챕터 581 - 챕터 590
693 챕터
제581화 냉대를 받다
“빈아. 만약에 진짜 엄마랑 가고 싶다면 아줌마는 너 많이 보고 싶을 거야.”결국 내가 내뱉은 말은 이처럼 온도 없는 대답이 되었다.빈이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래도 얌전하게 웃으며 말했다.“아줌마가 빈이 보고 싶어 할 거라는 거 알아요. 크면 꼭 다시 보러 올게요.”나는 마음이 어수선했다. 내 능력으로 아이 하나쯤 더 키우는 건 문제 없었다. 전에 불임 판정을 받았을 때 입양에 대해서도 고민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빈이의 신분이 문제였다.“응. 아줌마도 시간 나면 보러 갈게.”결국 난 마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게다가 민설아가 그렇게 쉽게 아이를 내게 넘겨줄 리가 없었다.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려 안아달라고 했다.“아줌마, 안아보고 싶어요.”나는 허리를 숙여 빈이를 안아주었다.“그래요, 그럼 저는 대디 찾으러 가요.”빈이는 얼른 나를 풀어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그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빈이를 데려다주려 했으나 그가 거절했다.“아줌마, 빈이 혼자 올라가면 돼요. 아줌마도 엄청 바쁘잖아요. 자주 보러 오지 않아도 돼요. 보디가드 아저씨 둘이나 있는데 심심하지 않아요. 같이 카드 게임도 하고 애니메이션도 보면 돼요.”빈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내 시간을 뺏을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나는 그런 빈이를 보며 멈칫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빈이는 빠르게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몸을 돌려 병원에서 나갔다. 아빠를 봤으니 이제 아이를 보러 가야 했다.차에 올라탔는데 배인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그가 물었다.“아까 빈이한테 뭐라 한 거야?”“아니요. 별말 안 했는데? 왜요?”내 가슴이 조여왔다.“올라와서는 말도 안 하고 갑자기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한참을 울더라고.”배인호의 말투에서 난감함이 느껴졌다.나는 마음이 먹먹했다. 아까 내 반응에 상처받은 게 분명했다. 그렇게 말하지 말 걸 그랬다. 빈이에게 희망을 주고 또 실망을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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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2화 만회하려 하다
“인호야, 지영이 아픈 거 아니니까, 그 이유로 찾아오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어.”엄마는 내가 망설이자 대신 털어놓았다.배인호는 우리 엄마의 말을 듣더니 눈이 반짝였다. 나를 보는 눈빛에서 탐구의 의미가 보였다.마음이 켕기지 않는다면 거짓이었다. 인생에는 난처한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평생 갈고 닦은 연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나는 배인호의 깊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태연하게 웃었다.“네, 엄마 말이 맞아요. 병원 오진이에요.”엄마와 아빠가 시선을 주고받았다. 아마도 오진은 무슨, 일부러 불쌍한 척하는 거라고 생각하실 것이다.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딱히 이 점을 물고 늘어지지는 않았다.“무슨 용건 더 있어? 없으면 가봐. 나도 인제 그만 쉴 거야.”아빠가 전혀 배인호를 배려하지 않고 내쫓았다. 그러고는 아이처럼 눕자마자 이불을 덮은 채 자는 척했다.“인호 씨, 무슨 일 있으면 나랑 얘기해요. 나가요.”미안하기도 하고 난처하기도 해서 그런지 배인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계속 엄마, 아빠의 냉대를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배인호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엄마가 한 말에 크게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태연하게 엄마, 아빠에게 인사를 하더니 몸을 돌렸다.부모님은 내가 배인호와 나가서 얘기하려고 하자 다급하게 나를 말리려 했지만 내가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둘은 내키지 않아도 결국 가만히 있었다.복도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 층은 다 고급 병실이라 조용한 편이었다. 가끔 몇몇 간호사만 갔다 왔다 했다.나와 배인호는 부모님이 우리가 하는 얘기를 듣지 못하게 나란히 걸어 나왔다.나는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미안해요. 오진이라는 거 진작에 알려줬어야 했는데, 바빠서 까먹었어요.”“이번엔 오진 아니래?”배인호가 되물었다. 눈빛으로는 그의 기분을 가늠할 수 없었다.“네, 이번에는 오진 아니래요. 만약에 나한테 속았다고 생각해서 전에 나한테 약속한 그 조건…”나는 알게 모르게 이 포인트를 짚었다. 내가 제일 묻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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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이모건이 찾아오다
아빠가 무슨 말을 더 하려는데 엄마가 막았다.무엇이든 도가 넘으면 역효과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나와 배인호는 아직 재결합의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데 더 자극하다가 나의 반항 심리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엄마는 나를 잘 알았다. 전에 모녀 사이에 틈이 생길 뻔한 이유도 너무 강압적으로 내 감정에 관여하려 했기 때문이다.“아빠, 됐어요. 잘 쉬고 계세요. 저는 먼저 들어가 볼게요.”나는 부모님과 인사를 하고는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돌아오니 골치 아픈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이모건이 우리 집 앞에 서서 어두운 표정으로 우리 집 대문을 훑어봤다.세희는 요즘 우리 집에서 지내고 있다. 정서가 안정적이지 않아 별로 집에서 나오지 않았고 나의 두 아이를 돌봤다. 귀여운 두 아이를 보며 마음의 병을 치료하려고 했다.이모건을 본 순간 내 마음이 조여왔다.나는 바로 차에서 내리지 않고 즉시 세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빨리 어딘가 숨어 있으라고 말이다.문자를 보내고 나서야 나는 태연한 척 차에서 내렸다.“허지영 씨.”나를 본 이모건은 이국적인 외모로 약간은 가식적으로 웃었다. 그는 한국어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외국인의 발음이 조금씩 들렸다. 오히려 그게 더 매력적이었다.“제 여자 친구 여기에 있나요?”여자 친구라니,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영국에 약혼녀까지 있는 사람이 무슨 낯짝으로 세희를 자기 여자 친구라고 부르는지 의문이었다. 영국에 요즘 들어 일부다처제가 유행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미안한데, 이모건 씨 여자 친구가 누구죠?”나는 가방을 들고 이모건 앞으로 걸어가 낯선 말투로 물었다.“왜 여기까지 찾아온 거냐고요?”“여자 친구와 조금 다퉜어요. 전화를 안 받아주더라고요. 정아와 민정이네는 이미 찾았는데 없었어요. 그래서 이쪽으로 온 거예요.”이모건은 내가 이렇게 비꼬아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담담한 미소를 유지했다. 하지만 눈가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나는 이모건 어머니의 신분이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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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끼어들지 마
“지영아, 나 내일 여기서 나갈게. 나 때문에 너까지 피해 보는 건 싫어. 너한테 폐 끼칠 수는 없어.”세희는 정말 좋은 친구였다. 지금 오히려 내 생활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하고 있다.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희가 여기 있어야 이모건을 더 빨리 끊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옆에서 사상 작업을 수시로 해주는 원인도 있다.“괜찮아. 그냥 여기 있어. 그리고 너 지금 갈 데도 없잖아. 혼자 있으면 이모건을 더 끊어내기 힘들 거야.”나는 세희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빼앗아 멋대로 전원을 꺼버렸다.“전화도 받지 말고 문자에도 답장하지 마. 조금만 더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세희는 내 손에 든 핸드폰을 보더니 망설이는 듯했다.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일에서 보여주는 박력과 의지를 감정에 좀 나눠주면 안 돼?”다른 건 몰라도 경영에는 정말 소질이 없는 나와 비하면 세희는 정말 뛰어났다. 경영에 천재적인 잠재력이 있었고 일이라면 목숨을 걸었다. 우리끼리 세운 가설도 있었다.만약 우리 네 명 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제일 많은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가설이었다. 답안은 세희였다.“근데…”세희가 갑자기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너도 처리해야 할 일 많을 거 아니야. 아저씨도 몸이 안 좋으시고 돌봐야 할 애도 둘이나 되잖아. 지금은 배인호까지 찾아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이래?”내가 멈칫했다. 처리하기 어려운 감정 문제가 언제 갑자기 내 쪽으로 전이된 걸까.나도 배인호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우리 집 앞에 나타났는지 몰랐다. 무슨 일이 있다면 아까 병원에서 말하면 될 것을 말이다.질문에 대답하기도 전에 아줌마가 올라와 배인호가 문 앞에서 기다린다고 내게 전해주었다.‘이모건은 간 건가?’나는 세희와 눈길을 주고받고는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이모건이 간 건 맞았다. 문 앞에는 배인호밖에 없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며 물었다.“어떻게 돌려보낸 거예요?”“아마도 다른 일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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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5화 수상함
세희는 까만색 벨벳 맨투맨을 입고 있었는데 하얀 모유가 묻자 매우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묘한 냄새가 코를 자극해 바로 격하게 반응이 올 것이다.나는 그래도 엄마라 아이가 가끔 모유를 토해도 정상이기에 이 냄새에 적응했지만 세희는 미혼인지라 그 냄새를 받아들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나는 세희가 이 정도로 반응이 클 줄은 몰랐다. 세희는 옷깃에 묻은 냄새를 킁킁 맡더니 목구멍에서 꿀꺽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어가 토했다.로아는 토하고 나니 시원한 듯했다. 입가와 옷에 묻은 자국을 처리하는 것 외에 다른 문제는 없었다. 로아는 억울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세희 이모가 왜 저러지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로아 몸에 남은 자국을 닦아주며 말했다.“로아야, 덕분에 세희 이모 토까지 하고…”로아는 나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작고 귀여운 입가에 보조개 두 개가 쏙 들어가 있었다. 웃으니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빨며 자기 다리를 만지기 시작했다.나는 화장실로 가서 세희의 상태를 살폈다. 안에서 세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괜찮아. 로아나 잘 보살펴. 샤워하고 옷 갈아입혀야 하는 거 아니야?”“그래.”나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로아를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 준비를 했다.로아를 샤워시키고 나오는데 세희가 진이 빠진 듯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야, 너 설마 내장까지 다 토한 건 아니지?”세희는 의자를 찾아 앉더니 내 얼굴을 꼬집으며 난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하, 위장이 안 좋아서 그래.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정서의 영향도 크대. 요즘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지 로아가 뱉어낸 모유 냄새를 맡자마자 바로 내장을 다 토해낼 듯이 토했어.”로아는 잠옷을 입고 엉덩이를 위로 든 채 앞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세희의 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인지 세희는 정신을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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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부모의 마음
“민설아!”그때 이우범의 목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말투에서 엄격함과 불만이 느껴졌다.민설아는 놀란 듯 뒤를 돌아보더니 그런 이우범을 비웃었다.“우범 선배, 여긴 어쩐 일이에요? 좋아하는 여자한테 하면 안 될 말이라도 할까 봐 그래요?”이우범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민설아의 손목을 과격하게 끌어당겼다.“따라와.”“안 가요!”민설아가 이우범의 손을 홱 뿌리치더니 말했다.“그냥 일 얘기 하러 온 거예요.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요.”“네, 맞아요. 근데 틀어졌죠. 미안해요. 저는 아직 일이 남아 있어서. 이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네요.”이우범이 민설아를 잡고 있으니 나는 빠르게 자리를 뜰 수 있었다.민설아는 내가 가려고 하자 갑자기 이우범에게 캐물었다.“선배, 진짜 지영 씨한테 얘기 안 할 거예요? 선배가 지영 씨를 위해서 뭘 잃었는지?”나는 걸음을 멈추고 이우범을 돌아봤다.민설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나는 잃은 거 없어. 됐지?”이우범은 인내심을 잃은 것 같았다. 나를 보지도 않고 민설아를 잡아당겨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그들의 모습이 점점 멀어졌고 나도 쫓아가서 묻지는 않았다. 그냥 마음속에 의문만 남았을 뿐이다.하지만 민설아는 이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회사와 협력하려 하지 않았고 나만 계속 물고 늘어졌다. 내가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다른 주주를 사적으로 연락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다른 주주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독단적으로 아무렇게나 결정해서 회사가 큰 손해를 보게 될 거라고 말이다.사실 엄마의 생각은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회사의 다른 주주는 민설아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도 엄마는 알고 있다. 그리고 내 엄마니 당연히 나의 판단을 믿어주었다.하지만 회사는 나와 엄마만 결정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다른 주주까지 설득하자면 행동으로 우리의 결정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업무상의 고려로 나와 엄마는 잠시 포지션을 바꿨다. 나는 병원으로 가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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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7화 단번에 내 생각을 까밝히다
“아빠, 만수무강하실 거예요.”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이 한마디를 덧붙였다.엄마, 아빠가 없는 생활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당황하고 쓸쓸했지만 그렇다 해서 이우범에게 의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내 것이 아니다.아빠가 멈칫하더니 난감한 듯 웃었다.“나도 만수무강하면 좋지. 로아와 승현이 커서 결혼하는 것도 보고, 너의 새로운 의지와 버팀목이 되는 것까지만 봐도 나와 네 엄마는 시름 놓고 떠날 수 있을 텐데.”“그런 말 하지 마요. 아직 멀었어요.”나는 아빠가 더는 말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렇게 슬픈 화제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또 이우범 얘기가 나오는 건 더 싫었다.아빠는 그래도 눈치가 빨랐다. 내 기분이 다운된 걸 발견하고는 바로 얌전하게 이 화제를 논하지 않았다.아빠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는데 갑자기 빈이가 떠올랐다. 사실 아빠와 그냥 층만 달랐기에 보러 가기 편했지만 저번에 내가 상처 준 일이 떠올랐다.그러다 그냥 가보지 않기로 했다. 가서 희망을 주는 게 오히려 더 잔인했다.점심이 가까워지자, 아빠가 내게 귀띔했다.“지영아, 우범이한테 전화하는 거 잊지 말고. 바쁜 거 아는데 하루가 멀다고 이렇게 찾아오니, 잘 대접해 줘야지.”“네, 알겠어요. 이따가 바로 전화할게요.”내가 얼른 대꾸했다.아빠는 내가 얼렁뚱땅 넘어갈까 봐 그러는지 기어코 자기가 보는 앞에서 이우범에게 전화해 점심 약속을 잡으라고 했다.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이우범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우범은 전화를 받는 속도가 아주 빨랐다.“여보세요?”“우범 씨, 지금 병원 근처에요? 근처에 맛있는 식당 하나 아는 데 가볼래요?”나는 아빠를 힐끔 쳐다봤다. 아빠는 뿌듯하다는 눈빛으로 내게 답하고 있었다.“네, 주소 보내줘요. 15분 정도 걸리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이우범의 목소리는 가볍지도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은 게 듣기 좋았다.“네.”나는 전화를 끊고 아빠에게 물었다.“이제 좀 마음에 들어요? 이따 바로 아빠가 좋아하는 우범 씨 진수성찬으로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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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시비를 걸다
‘인호 씨와 빈이가 왜 여기 있지?’빈이의 옷차림을 보니 외투 안에 입은 환자복 옷깃이 보였다.“빈아, 이렇게 추운데 왜 나왔어? 감기 걸리면 어떡하려고?”나는 그쪽으로 다가가 몸을 숙여 빈이의 손을 잡았다. 빈이는 기뻐하다가 손을 뺐다.“안 추워요. 병원에 있는 게 너무 심심해서 나와 놀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아빠한테 데리고 나와달라고 했어요.”빈이가 얌전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손을 빼는 그 동작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일부러 내게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이우범도 나를 따라 걸어왔다. 내가 다시 몸을 일으키자 마침 이우범과 배인호 사이에 껴 있었다.“다른 사람이랑 나와서 밥 먹을 시간도 있고, 한가하네.”배인호가 갑자기 이렇게 툭 던졌다. 시선은 이우범에게로 꽂혔다. 배인호가 말한 다른 사람은 역시나 이우범이었다.“일이 좀 있어서 같이 밥 먹으러 나온 거예요. 밖에 추우니까 얼른 빈이 데리고 병원으로 들어가요. 그러다 감기 걸리면 시끄러워지니까.”나는 빈이의 몸을 걱정해 이렇게 귀띔했다.배인호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말투가 매우 언짢았다.“너랑 상관없는 일이야. 일단 너부터 잘 관리해.”“나랑 왜 아무 상관이 없어요. 난 그저 빈이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지.”나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전에는 내게 빈이를 돌봐달라고 하더니 지금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니 어이가 없었다.지금 이 아이에게 감정이 생긴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건 이미 늦었다.“뭐 어떻게 걱정할 건데? 애 엄마를 대체하기라도 할 거야?”배인호는 화통이라도 삶아 먹은 듯 말투에 나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나는 당연히 민설아의 자리를 대체할 수 없었다. 이 부분도 내가 제일 고민되는 부분이었다. 빈이가 민설아 곁으로 돌아가는 게 싫었다. 책임감 없는 엄마 옆에서 아이가 삐뚤어질까 봐 걱정이었다. 하지만 결국엔 민설아의 아이라 내가 빈이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이우범은 배인호가 나를 이렇게 대하자 차가운 목소리로 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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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다
‘왜 다들 나한테서 사람을 찾는 거야?’이모건은 전 여자 친구를, 노성민은 전처를 찾았다.“나도 정아가 어딨는지 몰라요.”내가 솔직하게 말했다.“허허, 그럴 리가요. 지영 씨한테까지 비밀로 할 사람이 아니에요. 하늘을 날든 땅을 파든 꼭 찾아낼 거라고요.”내가 말하려 하지 않자, 노성민은 내 앞에서 맹세했다.“날든지 파든지 알아서 해요.”나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노성민은 할말을 잃었는지 멍해서 나를 쳐다봤다.나는 노성민을 지나쳐 차로 향했다.이우범은 우산을 들고 창가로 다가와 내게 귀띔했다.“비 오니까 운전 천천히 해요. 나는 먼저 서울로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빚진 점심은 다음에 다시 먹는 거로 하죠.”“네.”나는 이우범에게 서울에는 왜 가는지 묻지 않았다. 그가 전보다 바빠진 건 정상이었다.이우범이 가고 나서야 나는 차를 운전해 병원으로 향했다.아빠는 내가 이우범과 밥도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걸 알고 내가 일부러 후진 식당을 골라 빨리 끝내려고 그랬다고 우겼다. 내가 어떻게 설명하든 아빠는 믿지 않았다.나는 아빠의 잔소리를 들으며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사람이 아프면 더 쉽게 정서에 휘둘리는 것 같았다. 전에도 아빠는 내게 잔소리했지만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 나는 아빠에게 대들 수도 없어 그저 묵묵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아빠의 잔소리가 끝나자 나는 아빠와 진지한 얘기를 시작했다.“며칠 뒤에 외국 좀 다녀올게요. 인호 씨가 추천한 그 병원에 아빠 진단 자료를 보내야 해서요.”“배인호가 추천한 거라고?”아빠가 멈칫하더니 물었다.“언제?”“저번에 아빠 보러 왔을 때 병원 얘기를 하러 온 게 더 컸어요. 아빠한테 얘기하지 않은 건 저도 나름의 조사를 했거든요. 지금 조사가 거의 끝났는데 그 병원으로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내가 솔직하게 대답했다.하지만 아빠의 태도는 내 예상을 빗나갔다.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거절한 것이다.“나 안 가. 인호가 추천한 거라며, 안 가.”나는 하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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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아쉬워하지 않아
“맞아요. 우범 씨 저희 부모님 다루는 데는 일가견이 있죠.”나도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고 배인호의 말에 맞춰 맞장구를 쳤다. 결국 배인호의 안색은 흐림에서 폭우로 변했다. 마치 내가 극악무도한 말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빈이는 상황이 점점 이상해지자 입을 열었다.“아줌마, 오늘 보러 와줘서 고마워요. 근데 지금 너무 졸려서 자고 싶어요.”이는 내가 먼저 자리를 뜰 수 있게 핑계를 만들어주는 거나 다름없었다. 여기 더 있다간 배인호와 다투게 될 것이다.“그래, 그럼 푹 자. 내일 다시 보러 올게.”나는 빈이를 향해 부드럽게 웃고는 배인호에게 눈길을 주는 것으로 인사를 대체했다.하지만 배인호는 지금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라 예의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었다.병실 밖, 노성민과 박준은 아직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나오자 둘은 바로 입을 다물었고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나는 그런 둘을 신경 쓰지 않고 아빠에게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 박준이 다가오더니 궁색한 표정으로 말했다.“허지영 씨, 혹시 뭐 하나만 물어도 될까요?”“뭐요?”나는 담담하게 되물었다.“아니다, 질문 두 개.”박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브이 포즈를 취했다.노성민은 멀지 않은 곳에서 마치 특수 공작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리 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 시선이 느껴지자 그는 바로 다른 곳을 쳐다봤다. 벽을 만지작거리다가 화분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직감이 말해주었다. 박준이 말한 질문 2개에서 1개는 무조건 노성민을 대신해 묻는다는 걸 말이다.나는 옅은 미소로 웃으며 말했다.“물어봐요.”박준은 마른기침을 몇 번 하더니 첫 번째 질문을 꺼냈다.“그게… 지금 정아 씨 어디 사는지 알아요? 성민이 저 모자란 놈이 와이프랑 아이들 보고 싶다고 해서…”“잠깐만, 와이프요? 전처가 맞죠.”나는 박준이 잘못 사용한 단어를 짚어냈다.“네, 네, 성민이가 전처가 보고 싶다고 실패한 결혼을 만회하고 싶다고 그러네요.”박준이 갑자기 나를 향해 맹세하기 시작했다.“걱정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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