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법인가요? 말씀해 주세요.”전서훈이 다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마 어느 정도 예상한 게 분명했다.“최면이요.”도예나가 대답했다.“의식을 잃게 하고 사모님의 신분으로 무의식을 열어보는 겁니다. 제 생각에는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전씨 가문이 동의할지 안 할지가 문제였다.다른 행동은 고사하고 사모님의 신분을 이용한다는 것만으로도 전씨 가족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었다.그래서 도예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서훈의 안색이 어두웠다.인상을 찌푸린 서훈이 한참 힘겨운 사투를 벌였다.‘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정말...’어머니의 이름이 전정해와 같이 거론되는 것조차 어머니에 대한 모욕처럼 느껴졌다.어머니를 이용해 전정해의 무의식을 알아본다는 것도 너무 거부감이 들었다.하지만 서훈이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부들부들 몸을 떨기 시작하는 동생을 보는 서훈의 눈빛이 흔들렸다. 유일하게 남은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 정보가 너무 중요했다.서안과 도예나와 같은 피해자는 세상에 수많이 존재했다. 그렇게 피해를 본 사람을 위해서라도 그들은 움직여야만 했다.‘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에 발 벗고 나섰을 거야. 그러니까 어머니도 이걸 원하시지 않을까?’친절하고 다정한 어머니였지만 강인했던 어머니는 전씨 가족의 빛이었다.서훈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서안을 보며 서훈이 말했다.“저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서안이 정신을 차리고 서안의 의견도 물어보고 싶습니다.”도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그들은 서훈의 의견을 십분 이해했다.이어 서훈이 서안을 부축해 자리에서 벗어났다.서훈의 묵인하에 강현석은 인맥을 총동원해 가장 실력 있는 최면술사를 섭외했다.전정해에게 처음으로 최면을 시작할 때, 전정해의 내면은 최면을 무척이나 배척했다.많은 심혈을 기울인 뒤에 최면에 성공했으나 칩에 관한 내용만 물어보면 바로 거부 반응을 보였다. 무의식중에도 저항하는 탓에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강현석과 도예나가 수년간 칩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칩 해체 작업의 난도가 한층 내려갔다.하루의 준비 시간을 거쳐 다음 날 아침 서안은 수술실로 들어갔다.수술 직전 강연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고 서안이 강연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잠시만 기다려줘.”5시간의 수술은 드디어 끝이 나고 서안이 실려 나왔다.창백한 안색과는 달리 서안의 정신은 유난히 또렷했다.서안은 수술실 밖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강연을 달래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잠에 들었다.병실에 누워 고르게 숨을 쉬는 서안을 보며 강연은 도예나의 품에 안겨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서안을 괴롭히던 고통이 드디어 끝이 났다.서안은 이제 안전했다. 두 사람이 가장 많이 걱정하던 문제도 이제 사라졌다.빨개진 강연의 코끝을 보며 강현석은 마음 한 편이 시려왔다.강현석은 아이들 몰래 도예나에게 딸들이 이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며 서러움을 터뜨렸다.도예나는 미소를 지은 채로 강현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당신은 나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이잖아요. 내 생명보다도 더 소중한 사람.”아내의 고백에 강현석은 드디어 마음이 편해졌다.참 좋은 하루였다.이런 매일이라면 더 바랄 게 없었다.도예나를 만나 아이를 낳고 평생을 함께 산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강현석은 알고 있었다.서안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시간은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강씨 가족은 이미 알아서 자리를 피했고, 서훈은 가문의 일 때문에 서안의 옆을 지키지 못했다.그래서 현재 서안의 옆에는 강연만이 자리했다.의사는 서안이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말했었다.그래서 다들 안심하고 떠났으나 서안이 예상보다 먼저 눈을 떴다.강연은 너무 놀랍기도 기쁘기도 했다.“서안 오빠,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요? 물 마실래요? 배고프지는 않아요?”긴장해 허둥지둥하는 강연의 얼굴에 선명하게 드러난 다크써클을 보며 서안은 마음이 아팠다.서안은 고개를 저었고 강연의 손을 꼭 잡았다.
분명한 건 서안은 강연의 머릿속 이상한 생각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강연의 미묘한 표정을 본 서안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우뚱했다.눈앞 잘생긴 외모의 남성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강연은 양심에 찔렸다.“수술을 금방 마쳤으니까 절대 방해하지 않을게요.”강연은 얼굴이 화끈거렸고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그리고 어떻게 아픈 사람을 상대로 내가 그러겠어요?”“...”“침대 크니까 빨리 올라와.”서안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여긴 VVIP 전용 병실이라 침대가 일반 사이즈보다 훨씬 크고 폭신해 두 사람이 누워도 충분했다.그리고 같이 눕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둘은 연인 사이인데.또한 강연이 자신을 “방해”한다고 해도 서안은 아무 의견이 없었다.아직 어리기만 한 강연을 보며 서안은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서안의 고집에 강연은 별수 없이 침대에 올라갔다.코를 찌르는 소독수 냄새와 서안의 체향이 섞이자, 강연은 익숙하기도 긴장되기도 했다.심장이 콩닥거리는데, 귓가에 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착하지 우리 자기, 빨리 눈 좀 붙여.”등을 일정한 속도로 다독이자, 강연은 바로 눈꺼풀이 무거워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잠에 빠졌다.어두운 불빛 아래 곤히 잠든 여인의 옆선을 보며 서안은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이튿날.서훈은 아침 댓바람부터 달려와 강연과 교대를 하겠다고 난리를 쳤다.강연이 무슨 이유인지 묻기도 전에 강씨 가족도 병실에 도착했다.세훈과 제훈은 강연을 데리러 온 것이었다.그들은 서안의 옆을 지키는 사람이 서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두 오빠 몰래 전씨 그룹의 대표인 서훈이 몰래 강연을 향해 윙크를 날리며 신호를 줬다.“...”강연은 두 오빠가 방금 무언의 전쟁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제야 강연은 등 뒤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맞은편 서안의 얼굴을 확인해 보니 역시 어이없어 보이는 눈치였다.강연은 세훈, 제훈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
동생 바보 제훈은 애교로 무장한 강연에 속수무책이 되었다.“알겠어 알겠어. 그만 잡아당겨, 옷 구겨지겠어.”제훈은 여전히 무뚝뚝하게 말했지만, 올라간 입꼬리가 그의 마음을 솔직하게 알렸다.“알려줘요. 오빠.”강연이 고개를 살짝 쳐들고 눈꼬리를 예쁘게 접으며 물었다. 동그란 두 눈에는 별을 박아놓은 듯 반짝였다.“세상에서 제일 멋있고 대단한 우리 셋째 오빠! 제발 좀 알려줘요.”제훈은 드디어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제훈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여전히 정면을 주시했지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애교로 다 넘어가려고 하네.”“부모님은 본가에 잠시 계실 거라고 했어. 이번에 집을 비운 시간이 좀 길었고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잖아. 잠시 집에서 쉬면서 우리 일들을 처리하겠다고 하셨어.”“정말?”강연의 눈이 반짝거렸다.“그럼 엄마한테 안겨 잘 수 있다는 말이네?”강연이 뒷좌석에서 난리를 치는 동안 제훈은 백미러로 몰래 강연을 살피며 미소를 지었다.“아버지한테 넌 보물 1호인데, 오늘 저녁 어머니 뒤만 졸졸 따라다니다가는 아버지가 크게 실망할지도 몰라.”“흥흥, 그게 뭐요.”강연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난 엄마가 더 좋은걸.”“쯧.”제훈이 혀를 차며 말했다.“내 앞에서만 우쭐하지.”강연이 혀를 내밀고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당연하죠. 내가 바보도 아니고 다른 사람 앞에서 어떻게 이러겠어요.”제훈이 또 웃음을 터뜨렸다.“그럼 오빠는요? 휴가는 며칠인 거예요?”“나? 나는 길어.”제훈은 정면을 주시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이번에는 따로 처리해야 할 사적인 일이 있어서. 언제 모두 정리될지는 나도 모르겠어.”“그래요.”강연은 짤막하게 대답할 뿐 더 묻지 않았다.그런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익숙했다.“셋째 오빠 잠깐만!”강연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요?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내가 묵는 오피스텔로 가는 거 아니에요?”여긴 매니저 조혜영이 구해준
“강연아, 네가 어쩐 일이야?”송예은은 강연을 보고 조금 놀란 눈치였다.강연은 며칠 동안 강씨 가문과 전씨 가문에 일이 생겨 잠시 집을 비운다고 미리 조혜영에게 언질을 해두었다. 그래서 예은은 당분간 강연이 돌아오지 않는 줄만 알았다.오늘 강연을 만나자 조금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큼, 그게 본가에서 지내려고 짐 챙기러 왔어.”강연이 설명했다.“지금 나가려고?”“뭐 좀 사러 가려고 했는데 급한 건 아니야.”예은이 말을 이었다.“무슨 짐을 챙기려는 거야? 내가 도울까?”“그러면 고맙지.”강연이 입꼬리를 올렸고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오빠가 밥을 사주겠다는 사람이 바로 송예은인건가?’‘설마? 오빠랑 예은이는 겨우 한번 만난 사이인데 어떻게 알고?’강연은 생각에 잠긴 채로, 방으로 돌아와 예은과 짐을 정리했다.사실 챙길 게 별로 없었으므로 강연은 필요한 신분증이나 생필품을 대충 챙겼다.본가에 아주 큰 드레스룸이 따로 있었으므로 옷을 챙길 필요는 없었다.짐을 정리하고 예은은 강연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제훈의 차는 아주 눈에 띄었다. 강씨 가문의 제일 평범한 차라고 해도 고가 카이엔이었고 주차만 해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강연이 앞으로 걸어가자, 주변 사람들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강씨 가문 공주님을 데리러 온 거였어? 그럼, 뭐 이상한 것도 없지.’“제훈 오빠?”강연과 예은이 차창으로 다가갔고 짙은 선팅 탓에 안이 보이지 않아 차창을 똑똑 두드렸다.차창이 천천히 내려가고 제훈의 차갑지만, 청초한 외모가 드러났다.“모두 챙긴 거야?”덤덤하게 말했지만 목소리가 아주 듣기 좋았다.“네.”강연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예은이 도와줬거든요.”제훈의 시선이 자연스레 예은을 향했다.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해진 예은이었지만 제훈의 주시에 갑자기 긴장해졌다.마치 사냥감에 노려진 먹잇감이 된 기분이었다.예은은 애써 제 기분을 숨기며 속으로 역시 강씨 가문의 카리스마는 남다르구나, 라
강씨 가문 셋째 도련님이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지 놀랍기도 했지만, 송예은은 제훈이 대체 자신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지 궁금했다.차 문이 열리고 몸에 알맞게 맞춘 슈트를 입은 제훈이 걸어 나왔다. 긴 보폭으로 걸어오는 그의 기럭지에 보는 사람은 마음이 떨렸다.햇빛에 비친 제훈의 외모는 또 어떠한가. 뒤에 후광이 비쳐 들고 한시도 시선을 뗄 수 없었다.예은은 연예계에서 몇 년 동안 일하며 꽤 인지도가 있는 배우로 성장했고 그동안 잘생긴 배우들을 수없이 만났었다.기질, 외모, 기럭지, 서안을 제외하고 제훈과 비교할 수 있는 상대는 존재하지 않았다.예은은 어느새 입이 벌어졌다.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제훈의 그림자가 예은의 앞으로 성큼 다가왔고, 얼굴은 차갑지만, 예상과는 달리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송이가 자주 송예은 씨를 언급했었습니다. 예은 씨가 가장 친한 친구이고 자주 송이를 도왔다고 들었는데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밥 한 끼 같이 하시죠. 제가 감사의 마음으로 밥을 사겠습니다.”“네?”예은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예쁜 눈망울에 의문이 가득했다.“아... 그게... 좋아요.”‘셋째 도련님은 쌀쌀맞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 아니던가?’‘왜 갑자기... 이렇게 친절한 거지?’예은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제훈의 뒤로 남겨진 강연은 경악에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네.’‘그렇게 차갑고 무뚝뚝하던 셋째 오빠가 먼저 대시하는 걸 다 보다니.’‘해가 서쪽에서 뜬 건가?’‘밥이라도 잘못 먹은 거야?’강연은 세윤과 제훈이 평생 솔로로 살 것이라고 내기를 했었다.그런데 강철 솔로에게 꽃이 피는 봄이 찾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강연은 소름이 돋은 팔을 내리쓸며 뒷좌석에 앉았고, 옆에 앉은 예은과 앞쪽의 제훈을 번갈아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었다.“예은 씨는 강연과 어떻게 만난 거예요?”제훈이 먼저 대화를 주도했다.강연은 바로 허리를 세우고 조용히 팝콘 먹을 준비를 했다.‘오빠가 먼저 예
“송예은! 너 오해한 거야!”강연이 예은의 손을 잡고 입을 삐죽였다.“셋째 오빠는 절대 악의로 말한 게 아니야. 넌 내 친구인데 오빠가 왜 널 조사하겠어? 그냥... 우리 과거에 대해 궁금해서 물어본 걸 거야.”그 말을 들은 예은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고 고개를 돌려 제훈을 바라보았다.“셋째 도련님, 정말 강연이 과거가 궁금해서 그러신 거예요?”예은의 질문에도 제훈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다.백미러를 통해 겨우 화를 참고 있는 예은을 확인한 제훈이 조금 날카로운 시선으로 말했다.“평소 경계심이 많은 편인가요?”제훈의 물음에 예은은 조금 당황한 듯싶었다.“뭐라고요?”“저는 동생과 동생 친구한테 관심을 가지면 안 되나요? 저는 뭐 동생을 다른 사람과 만나게 하지 못하고 주변 인물에 악의를 가져야만 하나요?”“...”‘나는 드라마에서는 다 그러니까 혹시나 해서 그런 거지.’제훈은 시선을 거두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송예은 씨 혹시 피해망상이라도 있는 거예요? 왜 이렇게 경계하는 겁니까? 말도 안 되는 드라마 너무 많이 보신 거 아니예요?”“...”예은은 독설을 퍼붓는 제훈을 흘깃 노려보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제훈은 백미러를 통해 귀끝이 조금 붉어진 예은을 발견했다. 그리고 몰래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화기애애하던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든 제훈을 보며 강연은 속으로 생각했다.‘제훈 오빠처럼 완벽한 사람도 여자 앞에서 바른 소리만 해대는 무드 없는 남자였어.’그리고 다른 한편 걱정이 되기도 했다.‘예은이 제훈 오빠에 대한 인상이 나빠지면 어떡하지?’겨우 이성에 눈을 뜬 제훈이 이대로 포기할까 강연은 마음을 졸였다.“예은아.”강연이 예은의 옆으로 붙으며 손을 잡았다.“우리 오빠가 한 말 신경 쓰지 마. 무드가 없는 남자라 좀 직설적인 편이야.”강연의 말에 예은은 자신이 오해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사과를 하기에는 조금 내키지 않았다.그래서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이에 강연은 분위기를 띄워보려 계속해서 쫑알거렸다.“우리
제훈이 정말 화를 내는 게 아닌 걸 알아차린 강연은 안심하며 가슴을 두드렸고 송예은과 눈을 마주하며 웃음을 터뜨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재잘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제훈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곧 세 사람은 레스토랑에 도착했다.제훈은 키를 발렛한테 넘기고 뒷좌석 문을 열어 젠틀하게 두 소녀를 부축했다.예은은 조금 당황했으나 예의 바르게 말했다.“감사합니다.”“별걸 다.”제훈은 덤덤하게 말 한마디를 보탰다.“앞으로 날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요.”제훈은 말하며 방금 차에서 내린 예은을 단단한 두 팔로 가뒀다.키가 꽤 큰 제훈은 상대에게 압박감을 가져다줬다.제훈의 차가운 시선이 한 사람만을 향한다면 그 상대는 바로 소름이 돋을 것이다.그리고 이건 예은도 마찬가지였다.예은은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았고 어느새 두 볼도 점점 붉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지 않아도 제훈이 무슨 표정인지 예측이 갔다.차가운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은 얼굴, 예은은 감히 고개를 들어 제훈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안... 안 그럴게요.”그리고 예은은 마치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강연을 향했고 제훈에게서 떨어졌다.뒤에 남은 제훈은 낮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자신감이 붙은 얼굴로 둘을 지그시 바라보았다.레스토랑에서 강연은 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주문했다.제훈은 예은의 앞에 놓인 접시를 보며 물었다.“디저트 좋아하나 봐요?”딸기 케이크를 막 입에 넣은 예은은 조금 당황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렸을 때 집이 가난했는데 먹을 게 없어 설탕을 푼 물을 먹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커서도 단 음식이 좋더라고요.”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마친 예은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디저트를 입에 넣었다.그 모습에 조금의 열등감이나 불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제훈은 이런 예은을 눈에 담으며 더 깊은 생각에 빠졌다.예은의 가정사를 조사해 본 적이 있었다. 가정사가 아주 복잡해 어렸을 때부터 많은 고생을 한 것 같았다. 어른이 되고 강제로 연예계에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