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자.”하은철이 이서가 승낙하기도 전에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그녀가 반지를 끼고 있는 사진을 찍었고, SNS에 게시하였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는 연예부 기자에게 연락하여 이 소식을 신문의 1면에 실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불과 몇 시간 후, 이서와 은철이 결혼한다는 소식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게 되었다. 이 소식은 많은 대중을 놀라게 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하은철은 윤수정을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요? 왜 윤이서랑 결혼한다는 거예요?] [머리 아파 죽겠어요, 연예계보다 명문가가 더 복잡한 것 같아요.] [윤이서는 이미 결혼한 거 아니었어요?] [윤수정은 식물인간이 되었다던데요?][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왜 갑자기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거예요?] [잘 모르겠어요. 교통사고가 났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는 아무도 몰라요.][어머나, 정말 엉망진창이네요.] [...]비록 많은 대중이 혼란스러움을 표했으나, 축복을 보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선남선녀가 따로 없네요. 정말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생각해요.] [맞아요, 원래 정혼을 맺었던 건 윤이서랑 하은철이었잖아요.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갔을 뿐이에요.] [윤수정처럼 악독한 여자보다는 윤이서가 하은철에게 더 잘 어울리죠.] [...]인터넷이 이렇게 떠들썩한데, 어떻게 인터넷을 붙잡고 사는 하나가 이 소식을 모를 수가 있겠는가. 심소희가 참지 못하고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심소희: 형부도 보셨겠지?] 하나가 이미 이서가 기억을 잃게 된 전후 상황에 대하여 알려준 덕분에 두 사람도 지환의 정체를 알게 된 상황이었다.[서나나: 알고 계실 거야. 이서 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계실 텐데 모르실 리가 없어.] [서나나: 그럼 형부는...]소희는 차마 채팅을 이어 나갈 수 없는 듯했다. 나나도 침묵을 지키며 채팅하지 않았다. 하나가 침묵을 깨며 말했다. [임하나: 내가 걱정되는 사람은 형부가 아니라
바로 이때, 갑자기 임하나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상언에게서 걸려 온 전화임을 확인한 하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는 도무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는 듯했다. ‘내가 본인한테 전화하려고 한다는 걸 알았던 걸까?’ 하지만, 하나가 정신을 차리는 사이에 전화는 끊어져 버렸다. 하나의 마음이 순식간에 처량하고 두려워졌다.‘다시 전화를 걸어야 할까?’그 순간, 다시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상언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을 확인한 하나는 너무도 기뻤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받자, 또 후회하지 말고.’ [하나 씨.]상언 역시 하나가 전화를 받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어안이 벙벙한 듯했다. “네.”하나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무슨 일 있으세요?” [그게...]상언이 깊은숨을 들이마셨다.[하나 씨한테... 사과하고 싶어서요. 그날 진료실 입구에서 하나 씨한테 화를 내려던 건 아니었어요.] 하나가 등을 꼿꼿이 세웠다. [지환이가 이서 씨를 속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지환이 잘못이에요. 지환이를 도와 하나 씨를 속인 저도 잘못한 거고요.][그날...]“이 선생님은 잘못한 거 없어요.”하나가 상언의 말을 끊었다.“적어도 그날, 그런 상황에서 이 선생님이 잘못한 건 없으세요.” “그때 형부를 들여보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평생 후회했을 거예요.” 하나가 말했다. 수화기 너머의 상언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하나가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 “왜 그래요? 제가 말실수라도 한 거예요?” [아니요...]정신을 차린 상언이 대답했다.[전... 하나 씨가 아직도 화가 났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반응일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어요.] 하나가 붉은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내가 융통성이 있을 줄은 몰랐다는 거예요?”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허, 그런 뜻으로 말한 거 맞잖아요.” 몸을 일으켜 베란다로 향하는 하나의 말투가 다소 경쾌해졌다.“
[정말이에요! 또 하나 씨를 속이는 거라면 저는 정말 천벌을 받을 거예요!] 임하나가 피식 웃었다.“그건 이 선생님이 가장 잘 아시겠죠. 만약 또 나한테 숨기는 게 있다면, 그땐 정말 하늘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정말 없어요.]상언은 마음을 꺼내어 하나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여기는 듯했다.[하늘에 맹세할게요.] “그래요, 이번 일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저를 속인 적이 없으니까 한 번은 믿어줄게요.” 이 말은 들은 상언은 순식간에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그럼 우리...]“우리 이야기는 접어두고, 이서랑 형부에 대한 것부터 말해봐요.” 의자에 앉은 하나가 달갑지 않다는 듯 물었다.“정말 이대로 이서랑 하은철이 결혼하는 걸 지켜만 봐야 한다는 거예요?” [마이클 천 선생님도 이서 씨가 기억을 떠올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하셨잖아요.]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상언이 말했다. [다만, 이서 씨가 기억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라야겠죠.]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린 하나가 상언을 불렀다.“맞다, 이서가 기억을 되찾으면, 그때는 하씨네 어르신의 죽음에 관한 충격에서도 벗어날 수 있겠죠?” 하나의 질문을 들은 상언은 또 한 번 멈칫했다. [계속해서 이서 씨의 기억을 잃게 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때도 이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그래요, 다른 방법이 없다면...”하나가 조용히 읊조렸다. “지금은 당장 눈앞에 닥친 일에만 집중하자고요.” 하나는 상언과의 전화를 끊자마자, 이서의 전화를 받았다. [하나야, 나 좀 도와줘.] 수화기 너머의 이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뭐야, 어디서 몸을 숨기고 있기라도 한 거야?’ 하나의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이서는 화장실에 몸을 숨긴 채, 하나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하은철과 결혼을 약속한 이후, 이서는 줄곧 불안감을 느꼈고, 핑계를 대고 화장실로 달려가 하나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서야
이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실례지만, 안에 사람 있어요?”이서가 발아래를 바라보자, 문 아래 빈 공간으로 한 사람의 다리가 보였다. “있어요.”“윤이서 씨 맞죠? 남자 친구가 들어온 지 오래됐다고 걱정하길래 내가 대신 들어와 봤어요.” “윤이서 씨, 괜찮아요? 혹시 도움이 필요한 거예요?” 이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이야기를 듣던 하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이만 돌아가 봐.] “그래.”[내가 한 말, 꼭 기억해야 해.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알았지?] “그래, 알겠어.”순순히 대답하고 전화를 끊은 이서가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인자한 노인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이서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서 역시 예의상 노인에게 인사를 건넸는데, 이 인사가 그녀의 걷잡을 수 없는 수다 본능을 불러일으킨 듯했다. 그녀는 이서를 잡고 은철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여자 친구한테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남자 친구는 난생처음 봐요. 아마 아가씨는 상상도 못 할 거예요. 남자 친구가 화장실 입구에 서서 오고 가도 못하고 있더군요.” “아이고, 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재미있네요.” 이서가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노인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남자 친구가 평소에는 표현을 잘 안 해주나 봐요?” 이서가 고개를 들어 눈앞에 서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에이, 그런 눈으로 쳐다볼 거 없어요. 여태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딱 보면 딱 알죠.” “묵묵히 챙겨주고 생색내지 않는 사람인 것 같더군요. 저런 남자를 만난 건 복이에요, 복.”“그런가요?”이서는 고개를 숙인 채 노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은철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나한테 묵묵히 헌신해 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은철을 비꼬는 이 생각은 마음속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어떤 이의 희미한 실루엣 역
하은철의 눈빛에서 관심을 느낀 이서의 마음속에 잔잔한 파도가 일었다.“괜찮아, 이만 돌아가자.” “그래.”은철이 이서와 손을 잡기 위해 팔을 뻗었지만 이서가 자연스럽게 피하며 입을 열었다. “아까 그 할머님...” “아, 밖에서 한참 기다렸는데도 안 나오길래, 나 대신 살펴봐달라고 부탁드린 거야, 왜?” “아무것도 아니야. 너에 대해서 좋은 말씀을 너무 많이 해주시길래 네가 고용한 사람은 아닌가 싶어서.” 은철의 얼굴에 만연했던 웃음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은철은 고개를 돌린 이서가 이상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그녀를 따라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그분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하셨는데?” “아무것도 아니야.이서는 은철과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듯했다.“은철아, 나 좀 피곤해.”“그래? 그럼 결혼식에 대한 세부적인 대화는 내일 다시 나누자.”“결혼식? 결혼식을 벌써 올리려고?”이서가 걸음을 멈추고 다급하게 물었다. ‘결혼식은 한 달 후에나 할 줄 알았는데...’ “조금 빠른가?”은철이 이서의 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나는 최대한 빨리하고 싶어. 사실, 내일 당장이라도 혼인신고부터 하면 좋겠어.”이서는 억지로 웃음 짜냈지만, 어떠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침묵을 지키던 이서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은철의 눈빛이 다소 차가워졌다. ‘이서가 결혼을 승낙하긴 했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일러. 혼인신고 하기 전까지는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작은 아빠가 이서랑 결혼할 때 가짜 신분을 사용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일이 복잡해질 뻔했어.’ 은철은 즉시 주 집사를 불러 이서와 지환의 사실혼 관계를 없던 일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같은 시각, 방에 들어온 이서는 휴대전화를 꺼내어 최대한 빨리 H선생님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하나에게서 얻지 못한 답을 H선생님에게서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아니, 분명히
하지만 지환은 결국 마지막 순간에 주먹을 거두었고, 주먹은 이상언의 코만 스치고 지나갔다. 십년감수한 상언이 가슴을 치며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지환아, 너...” 지환의 음침한 눈빛이 상언을 향하자, 상언은 즉시 하려던 말을 삼켰다. 글러브를 아무렇게나 내던진 지환이 즉시 탈의실로 향했다. 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임현태가 상언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이 선생님, 이런 상황에서는 대표님께 어떻게 해드려야 할까요?” “설마 이대로 주저앉게 내버려두실 건 아니죠?” “내버려두는 거 말고는 달리 좋은 방법이 없잖아요?” 상언이 난감하다는 듯 되물었다. 현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대표님께서 사람 때문에 상처받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지환이 녀석도 사람이잖아요.” 감회에 겨운 표정을 지어 보인 상언이 옷을 갈아입고 나온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가 황급히 지환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지환아, 집에 가려고?”지환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한 상언과 현태가 지환을 따라 차에 올랐다. ‘늦은 밤이라 도로에 차가 별로 없어서 다행이야. 대낮에 이렇게 난폭운전을 했다면 분명 사고가 났을 거야.’ 30분 후, 세 사람이 탄 차량이 한 술집 앞에 멈춰 섰다. 상언과 현태가 상황을 채 인지하기도 전에, 차에서 내린 지환은 술집으로 걸어 들어가 버렸다. 그는 익숙한 복도를 따라 룸으로 향했다. 지환은 이 술집의 단골손님이라 할 수 있었기에, 그가 왔다는 것을 알아차린 술집 사장이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대표님, 잘 지내셨어요?” “두 배 더 주세요.”지환의 말을 들은 사장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네, 알겠습니다.”“107호실에 원래 드시던 양의 두 배 더 넣어드려!” 처음에 상언과 현태는 두 배로 늘어난 것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종업원들이 끊임없이 양주를 들고 와 책상 위를 채우고, 바닥까지 늘
임현태와 이상언이 눈을 마주쳤다. 결국 상언이 입을 열었다. “그럼, 당연하지.” “이서는 곧 하은철이랑 결혼하게 될 텐데?” 지환이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룸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이서는 이미 모든 과거를 잊었어. 심지어는 나라는 사람의 존재조차도... 하지만, 이서를 탓할 수 없다는 건 나도 잘 알아. 이서가 날 잊은 건 내가 선택한 일이었으니까. 나도 다 안다고...”지환의 목소리는 점점 더 침울해졌고, 룸 안의 두 사람은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나는 단지 잠시 취하고 싶을 뿐이야. 1초라도 이서를 잊어버리고 싶다고. 그것도 안 된다는 거야?” 서로의 눈을 마주친 현태와 상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묵묵히 지환의 곁에 앉았다. “마실 거면, 우리랑 같이 마시자.”상언이 술 한 병을 들고 지환을 바라보며 말했다.“친구가 뭐 별거야? 힘들 때 같이 있으면 친구지.”현태 역시 호기롭게 술병을 열었다.“대표님...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같이 마셔 드릴게요.” 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젖혀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바로 이때, 상언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하나에게서 결려온 전화였다. “쉿, 하나 씨야.”상언은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댄 후, 구석에 이르러서야 하나의 전화를 받았다,“하나 씨, 무슨 일이에요?” [잠이 안 와서 그러는데, 저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 상언은 뛸 듯이 기뻤지만 아직 술을 마시고 있는 지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곤란하면 안 와도 돼요.] 하나의 낮은 목소리는 상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듯했다.[그냥 자죠, 뭐.] “기다리세요, 금방 갈게요.”말을 뱉은 상언은 곧바로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거두어들일 수는 없었다. “집에 있는 거죠?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갈게요.” 전화를 끊은 상언이 지환에게 다가갔지만, 한참 동안 우물쭈물하며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지환 고
재빨리 지환을 바라본 임현태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대표님...”“가야 된다는 거죠?”지환이 입을 열었다. 현태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가보세요, 난 괜찮으니까.”지환이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다. 하지만 그는 결코 괜찮다고 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밖이에요?]수화기 너머에서 다시 심소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바쁜가 보네요. 그럼 방해하지 않을게요.]“아니야!”현태가 불쑥 말했다. 그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난처해하기 시작했다. “이만 가봐요.”지환이 다시 입을 열었다.“가게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별일 있겠어요?” 인상을 찌푸린 채 망설이던 현태는 결국 소희를 만나러 가는 것을 택했다. “대표님, 이 술집에만 계셔야 해요. 만약 대표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이 선생님께서 저를 가만두지 않으실 거예요.” “알겠으니까 이만 가 봐요, 난 세 살짜리 어린 애가 아니에요.” ‘농담할 여유는 있으신가 봐.’현태는 지환의 농담을 듣고 나서야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소희에게 갈 수 있었다.현태가 떠난 후, 룸에 홀로 남은 지환은 마침내 모든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고개를 젖힌 채 모든 술병을 비운 지환이 허탈하다는 듯 술병을 집어 던졌고,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이서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듯했다. 술에 취했던 탓일까. 코끝이 시큰시큰해지고, 두 눈이 눈물로 젖어 들자, 아른거리던 이서의 모습이 서서히 멀어져갔다. 지환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천만여 마리의 개미가 심장을 갉아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환이 손을 들어 가슴을 눌렀지만 마음의 통증은 점차 더 악화되는 듯했다. 지환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의 통증은 계속되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의 통증이 잦아들지는 않았다. 지환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마음의 통증은 시종일관 잦아들지 않았고, 오히려 심해지는 듯했다. ‘이서가 하은철이랑 결혼을 할 줄이야.’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