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조은서의 얼굴은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손바닥을 넓게 펴 서랍 안을 가리며 유선우에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새로 산 향수 포장을 방금 뜯었거든요.”“그래?”유선우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뿌려봐, 냄새 좀 맡아보게. 그런 말도 있지 않아? 향수는 여자의 가장 훌륭한 잠옷이라는 말.” 유선우의 말투는 사람을 홀리는 특이한 재능이 있어 저도 모르게 그 강인함에 빠져들어 그의 말을 따르게 된다.조은서도 더 이상 그의 말과 행동에 저항할 수 없었고 몇 마디 대화하는 사이, 그는 이미 서랍을 완전히 열었다. 그 안에는 확실히 향수 한 병이 들어있었고 유선우는 향수를 들더니 조은서의 귀밑에 살짝 뿌렸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조은서도 흠칫 놀라는 기색이었다. 유선우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그녀의 얇은 어깨를 움켜쥐더니 코를 그녀의 하얗고 긴 목에 갖다 대 냄새를 한번 맡고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괜찮네.”이 행동에 조은서는 저도 모르게 유선우를 밀치며 말했다. “선우 씨!” 유선우는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아직 그날이 끝나지 않았다며? 왜 자꾸 나에게 꼬리 쳐?”순간 유선우는 서랍 안에 있는 일기장을 발견했고 조은서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그것을 집어 들고 열어 보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는 조은서를 안고 있고 한 손으로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모습은 정말 능글맞은 남편의 모습이 따로 없었다. 유선우는 한장 한장 넘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일기장의 내용까지 한 글자 한 글자 읊기 시작했다. 열여덟 살 조은서의 열정적이고 어리숙한 한 소녀의 걱정거리가 그의 입에서 읊어 나오는 것은 정말 민망함의 극치였다.「오늘 유선우가 나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내가 준 과자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유선우... 혹시 나를 싫어하는 걸까?」「유선우는 나를 싫어한다고 하면서 내가 생리 때문에 치마가 더럽혀지자 자신의 외투를 내 허리에 감싸줬다. 혹시... 그도 나를 몰래 좋아하
진 비서의 말이 끝나자마자 유선우는 바로 대답했다.“알았어. 바로 갈게.”하지만 전화를 끊은 유선우는 바로 떠나지 않았고 그대로 서서 조은서의 얼굴을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 “잠깐 병원 좀 다녀올게. 먼저 자.”조은서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달아오를 것 같던 조금 전의 뜨거운 감정은 어느새 사라졌고 차가운 기분만 엿보였다. 유선우는 침대 옆에 걸쳐져 있는 외투를 손에 쥐더니 그녀의 얼굴을 다시 한번 부드럽게 만지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유난히 어둡고 쓸쓸한 가을밤에 조은서는 또 혼자가 되었다.유선우가 떠나자 조은서는 그제야 긴장을 풀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이런 상황이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다행히 진 비서의 전화가 걸려와서... 다행히 백아현에게 일이 생겨서... 그렇지 않았다면... 조은서는 정말 유선우의 부드러운 유혹에 빠져 몸부림칠 것이며 빠져나오기 위해 또 한 번의 고통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조은서는 화장대에서 내려와 덩그러니 놓여있는 명함과 일기장을 잘 정리해 다시 서랍 안으로 넣었다. 이 일기장에는 그녀의 모든 청춘이 들어있다. 유선우가 아무리 미워도 이 일기장을 버릴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유선우가 한림병원에 도착했을 때 백아현은 아직 수술 중이었다.백아현의 아버지 백정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수술실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고 백아현의 어머니 김춘희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끼는 목소리로 병원 원장을 불러내 해명하라며 소리 지르고 있었다. “우리 아현이는 앞으로 유씨 집안 사모님이 될 사람이야. 당신들이 살려내지 않으면 우리 유 대표가 병원을 망하게 할 거야! 그러면 여기 있는 사람들도 하루아침에 모두 일자리 잃고 밖으로 나앉는 거야! 알아?” 진 비서는 듣기가 거북했는지 유선우가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재빨리 김춘희를 보며 한 마디 경고를 말했다. “유 대표님 오셨어요. 아현 씨 산소 호흡기 떼게 하고 싶지 않으면 그만 말하는 게 좋을 거예요.”늘 거만하고
유선우가 말을 하는 사이 수술실 문이 열렸고 의사가 밖으로 걸어 나오더니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위세척해서 큰 고비는 넘겼어요. 유 대표님, 이번 의료사고는 우리 병원에서도 경찰 조사에 전적으로 협조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유선우는 담담한 얼굴로 진 비서를 보며 말했다. “날이 밝으면 백아현 씨 YS병원으로 옮길 수 있게 준비해 줘.” 진 비서는 턱밑까지 내려온 다크 서클을 그대로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김춘희는 애원하듯 유선우를 보며 말했다. “유 대표, 우리 아현이와 같이 안 있으려고요? 이제 막 죽을 고비를 넘긴 애인데 유 대표님이 옆에 있어 주셔야죠.”그러자 진 비서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유 대표님은 의사가 아니에요.”그 말에 김춘희도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옆에 있던 유선우가 허민우를 보더니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급히 오다 보니 우리 은서를 제대로 위로하지 못했네요. 아마 지금쯤 이불 안에서 제 화를 삼키고 있을 거예요. 나도 빨리 가서 우리 은서 다독여 줘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선배는 우리 은서 걱정 안 하셔도 돼요.”유선우는 손을 들어 시계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아침 출근까지 일곱 시간이나 남았으니 우리 와이프 달래기에는 충분할 것 같네요.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하잖아요. 민우 선배, 선배도 빨리 결혼해서 이 낙을 즐겨야 하는데.”유선우는 정말 보이지 않는 채찍으로 수없이 허민우를 내리치고 있는 듯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허민우가 어찌 못 알아들었겠는가? 허민우는 유선우의 으쓱해 하는 뒷모습을 보며 그저 피식 웃었다. 사실 유선우는 자신이 조은서에게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그 정도가 보통 부부를 넘어섰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조금 전의 그 모호한 말들 모두 한 남자가 한 여자에 대한 소유욕에서 나온 것이다....유선우가 별장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새벽 1시를 훌쩍 넘겼다.그가 차에서 내릴 때 별장 안은 이미 칠흑같이 캄캄했고 고개
다음 날 아침 일찍, 유선우가 깨었을 때 조은서는 옆에 없었다.자리에서 일어난 유선우는 조은서가 어쩌면 옷방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천천히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그곳에는 오늘 입을 양복과 그에 어울리는 손목시계가 준비되어 있을 뿐 그녀는 없었다. 그는 조은서가 1층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 양치를 마친 후, 옷을 갈아입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1층 부엌에서는 고용인이 테이블에 그릇을 세팅하고 있었다. 그리고 갓 구운 빵 두 개와 그가 자주 마시는 블랙커피, 그 옆에는 영어 조간신문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조은서가 평소에 고용인들에게 지시한 것들이다. 유선우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고용인이 공손하게 그를 향해 아침 인사를 했다.그는 테이블에 앉아 신문을 뒤적거리더니 고개를 들어 물었다.“은서는요?”고용인은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사모님이요? 아침 일찍 나가셨어요. 친정 할머니 댁에 가서 며칠만 있다가 오시겠다고 했어요.”유선우는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알겠어요.”말을 마친 후, 컵을 들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있는 그의 입꼬리는 어느새 위로 살짝 올라가 있었다.조은서가 분명 부끄러워 피한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젯밤 유선우가 그런 말을 한 후 그녀는 아무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그 후의 키스로 그녀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고 그녀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유선우는 아침을 먹고 회사에 갈 준비를 했다.차에 타서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유선우는 조은서에게서 온 메시지가 없는지 계속 찾아봤지만 그녀에게서 온 메시지 같은 건 없었다. 그러자 유선우는 아예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조씨 집 아파트.조승철은 이미 퇴원해 집에 있었고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재활센터에서 재활운동을 받으면 된다. 요즘에는 몸이 많이 회복돼 그나마 다행이었다.단지 방에서 자꾸 안 나오려 하는 게 걱정이 되긴 했다. 조은서는 심정희와
전화기 너머에서 유선우는 통화가 끊어진 휴대전화를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그리고 지금 그는 조은서를 원하며 그녀도 곧 그의 소유가 될 것이다....조은서는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갔다.심정희는 그녀의 표정을 보더니 걱정되는 얼굴로 물었다.“유 서방과 또 싸웠어?”조은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심정희에게 말했다.“며칠 전에는 별로 안 좋았는데 어젯밤에 돌아왔을 때는 태도가 변했어요. 어머니, 저는 선우 씨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심정희는 침실로 들어가더니 이내 티켓 한 장을 들고 나왔다.심정희는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의 엄마가 생전에 그리신 그림들 전시회 티켓이야. 은서야, 마음이 복잡하면 가서 좀 보고와. 저녁에 집에 와서 오늘 빚은 만두 먹는 거 잊지 말고.”엄마 전시회...조은서는 건네받은 티켓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그녀의 어머니는 성이 진씨로서 어린 나이에 이미 업계에서 알아주는 유명인이 되었다. 하지만 하늘이 그 유명세에 질투한 듯 그녀를 일찍 데려갔고 그 후로 그녀가 그린 작품들만 시중에서 돌고 있었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었기에 그 그림들은 한 점당 8억에서 16억의 가치가 있었다.심정희는 조은서가 가고 싶어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다독이며 재촉했다. “바람 좀 쐰다 생각하고 가서 기분 좀 풀고 와.”그 말에 조은서는 바로 알겠다고 대답했다.확실히 그녀는 지금 마음이 너무 혼란스러워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조은서 엄마의 전시회는 B 시에서 가장 유명한 화랑에 전시되어 있었고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화랑 매니저와 따로 면담 후 살 수 있었다.조은서는 그림 한 점 한 점 빠짐없이 모두 찬찬히 보았다.그중에서 그녀는 시가 11억 6000만 원에 달하는 「빗속의 해당화」라는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지금 그렇게 많은 돈이 없다. 그때 집을 판 돈은 아빠와 심정희 어머니에게 노후대책을 마련하시라고 드렸고 유선우가 준 돈은 건드리고 싶지 않았
늦가을 저녁,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여 저녁거리에 황홀함을 더해주었다. 조씨 집 아파트로 돌아간 조은서는 문을 열자마자 거실에서 울리는 유선우의 말소리를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부드럽고 듣기 좋았다.“예전 유학할 때 배수관이 막히거나 하면 혼자 수리하고 그랬거든요.”“옷이 더러워진 건 내일 아침에 가서 갈아입으면 돼요. 어머니 신경 쓰지 마세요.”...‘유선우가 여기까지 왜 왔지?’조은서는 현관문을 닫고 천천히 슬리퍼로 갈아신었고 그 소리를 들은 심정희는 나와서 그녀에게 낮은 목소리로 귀띔했다.“온 지 한 시간 정도 됐어. 근데 마침 배수관이 막혀서 손 좀 봐달라고 했어. 너 데리러 온 것 같은데 맞지?”심정희는 사실 속으로 꽤 놀랐다.곱게 자란 유선우가 이런 궂은일까지 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시 남자란 다 똑같은 물건인가 보다.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할 인간들이다. 조은서는 외투를 벗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은 그냥 여기서 잘게요.”심정희는 그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알겠어. 내가 가서 상 차릴게. 그리고 좀 이따 밥 먹을 때 얘기 잘하고. 괜히 네 아빠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그이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 유 서방에게 불만이 많을 거야.”사실 이런 것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조은서는 다 알고 있다. 유선우는 부엌에서 걸어 나오다가 조은서와 눈이 마주쳤다. 몇 초간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유선우는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어머니에게서 네가 전시회에 갔다는 말은 들었어. 그런데 그림을 보고 왔는데 눈이 왜 그렇게 빨개?”사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조은서는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이지훈의 말에 조은서는 저도 모르게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녀 또한 그렇게 몸을 내던졌지만 좋은 결과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은서는 유선우의 말에 고개를 숙인 채 얼버무리며 입을 열었다.“밖에 바람이 좀 세서요. 눈에 뭐가 들어갔나
유선우는 그녀의 긴 생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늦은 밤이라 그의 목소리는 한결 더 섹시하게 들렸다. “바이올린을 켜면서 차준호에게서 얼마나 벌었다고 그래? 몇십만 원? 몇백만 원? 그 돈으로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외식 한 번 하기도 어려워.”조은서는 그의 어깨에 기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쩌면 그녀의 그까짓 돈이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하지만 조은서에게는 그녀가 용기를 낼 수 있는 전부였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녀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할 능력을 갖고 싶었다. 더 이상 유선우의 눈치를 보며 생활하고 싶지 않았고 그와의 잠자리가 끝난 후 그에게서 수표를 받는 상황도 두 번 다시 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조은서가 아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유선우는 모두 알고 있었다.그는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넓은 손바닥으로 그녀를 감쌌다.그렇게 유선우는 오랫동안 그녀를 안고 있었다.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조은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선우 씨, 나 샤워해야 해.”그러나 유선우는 그녀를 놓아줄 생각은커녕 오히려 그녀의 손을 잡더니 손가락으로 깍지를 낀 채 그녀와 이마를 맞댔다. 그의 오뚝한 콧날과 살을 맞댄 갑작스러운 친근함에 그녀는 말할 수 없는 유혹을 느꼈다.조은서는 도저히 이런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어 고개를 들며 말했다.“선우 씨, 이러지 마세요.”유선우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뭘 그러지 마? 너도 좋은 거 아니었어? 너의 몸이 말해주고 있는데?”성인 남자인 이상 유선우도 그녀의 생리가 끝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어젯밤 조은서는 유선우를 속였던 것이다. 유선우의 말에 조은서는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친정에서 유선우가 집에서하던 대로 행동하면 아빠와 어머니에게 못난 꼴을 보이게 될까 걱정되어 최대한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유선우는 그녀의 작은 볼에 뽀뽀하더니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옷을 헤치며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유선우 또한 오늘처럼 이렇게 온화하고 인내심
조은서의 말에 유선우는 손을 뻗어 침대 헤드라이트를 켰다.그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아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네 생각에는? 내가 왜 이러는 것 같아?”조은서는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유선우는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어두운 밤에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도 더 진지하게 들렸다. “조은서, 나는 누구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나는 잘 몰라. 하지만 처음으로 여자에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어. 나 스스로를 지키고 있었던 소신을 포기할 만큼. 집에 와서 배수관을 수리할 만큼 한 여자에게 계속 신경을 쓰고 있어.”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가 단지 같이 잠자리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은서야, 내가 정말 오로지 나의 욕구만 충족시키려 한다면 주위에 널리고 널린 게 예쁜 여자들이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그러자 조은서도 이내 한마디 했다.“말리지 않을게요.”그 말에 유선우는 가볍게 웃었다.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그의 훤칠한 외모는 한결 더 늠름해 보였고 짙은 눈썹은 성숙한 남자의 멋을 계속 풍기고 있었다. 만약 이런 사람이 어린 아가씨를 찾으려 한다면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을 거라는 것을 조은서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유선우는 그녀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나도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은서야, 나는 너와 아이를 낳고 싶어.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어. 하지만... 애보다 더 원하는 게 너의 마음이야. 네가 일기장에 썼던 것처럼 너의 눈에는 나만 보였으면 좋겠어.”이런 말을 하고 있는 유선우는 처음에는 그저 그녀를 붙잡기 위해 뭔가 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말을 꺼내니 점점 더 진심이 어우러져 욕심이 커졌다. 과거를 전부 다 잊고 조은서와 다시 시작하고 싶다.조은서를 정말 사랑한다!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이 스쳐 지났지만 유선우는 그 생각들을 부정하고 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