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감동적이지 않아요.”성연신이 사실대로 말했다.만약 그녀가 돈을 노린 게 아니라고 한다면, 성연신은 오히려 그것은 그녀가 노릴 만큼 자기가 능력 있는 남자가 아니란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심지안은 어이가 없었다.‘이렇게 여자를 모르는 숙맥을 보았나! 보통의 남자들은 이렇게 말하면 분명 감동할 텐데, 왜 이렇게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거지?’심지안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요즘 요리 학원에 다니면서 성공한 요리든, 실패한 요리든 음식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 그녀는 모두 자기 배에 집어넣었다. 그 때문에 그녀의 양 볼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 예전만큼 여리여리하지 않았다.심지안은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부터 같이 조깅할 거예요! 아침마다 저 좀 깨워주세요!”성연신은 의아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갑자기 왜 안 하던 조깅을 한다고 해요?”심지안은 최근 며칠 동안 그에게 아침밥을 지어주기는커녕 적어도 10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그전에 한 번 챙겨준 아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성연신은 그런 그녀가 조깅을 함께 갈 거라고 하니, 기껏해야 사흘 정도 버틸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역시 여자들이란, 이랬다저랬다... 이러니까 비서가 있어야 해.’“진심이에요, 진지하게 살 좀 빼려고요. 연신 씨도 저 살찐 것 같다고 생각했죠!”‘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당신을 유혹하겠어요?’성연신은 그녀의 장단에 맞춰주기 귀찮아하며 대답했다.“전혀 뚱뚱하지 않아요. 살 안 빼도 돼요.”“정말이에요?”심지안은 눈이 번쩍 뜨였고 금세 신이 나서 물었다.“혹시 글래머 스타일 좋아해요?”“좋아해요.”“그래요, 알겠어요!”“뭘 알아요?”성연신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이따가 퇴근하면 알게 될 거예요!”...심지안이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내려오자 백호 아저씨가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차를 타고 공항 터미널로 가서 성수광을 기다렸다.그녀는 성수광을 기다렸지만 뜻밖에도 강아지 한 마리가 먼저
울타리 옆에 서 있던 심지안은 흠칫 놀랐다.“제 연락처는 어떻게 가지고 계신 거죠?”‘부용 그룹 인사팀에서 준 걸까?’“이것은 요점이 아닙니다. 요점은 심지안 씨가 아직 우리 회사에 관심이 있는지입니다. 심지안 씨가 지원하려고 했던 프랑스어 통역직은 확실히 티오가 없습니다. 이민선 씨가 고의로 헛걸음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현재 부족한 직위의 급여와 대우는 프랑스어 통역사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심지안 씨가 맡기 적절한 프로젝트 팀장 직입니다. 만약 관심이 있다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네요.”“매니저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건가요, 아니면 전에 면접을 봐주신 이민선 씨를 만나는 겁니까?”최근에 그녀는 여러모로 성가시게 구는 인사담당자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다시는 그런 자리에 면접을 보러 가고 싶지 않았다.“직접 저를 만나면 됩니다.”“그럼 약속 시간을 정합시다.”...통화가 끝나자, 심지안은 휴대전화를 쥐고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부용 그룹을 이해할 수 없었다.“할아버지와 함께 있지 않고, 왜 여기서 멍 때리고 있어요?”우람하고 훤칠한 몸매를 자랑하는 성연신은 어느새 별장으로 돌아와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물었다.“할아버지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지금은 위층에 쉬러 가셨어요.”심지안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내 일 처리에 의심할 거 없어요, 안심해요.”성연신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안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할아버지는 이미 그녀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애정을 품고 있었으니까.두 사람은 앞뒤로 서서 집으로 들어갔다.성연신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거실에 들어섰고 달라진 인테리어와 소품에 집안 분위기가 바뀐 것 같았다.“집안이 왜 이렇게 된 거예요?”설상가상으로 냉장고 위에 캐릭터 스티커도 붙어있었다.‘세 살짜리 아기도 아니고, 이렇게 붙이면 흔적이 남는다는 것도 모르나?’심지안은 나지막한 소리로 설명했다.“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은 단
성연신은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부자연스럽게 답했다.“응.”지안의 말이 듣기 좋아 수광은 마치 복덩이를 얻은 느낌이었다.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며 말했다.“허허허 말이라도 고맙구나, 지안아.”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수광은 지안의 부모님과 아직 만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심가네를 조사한 정보를 떠올리고는 지안 앞에서 말을 꺼내지 않으려 참았다.‘됐어, 내 직접 따로 만나보지.’수광을 배웅하고 지안은 냉장고에 붙였던 여자아이 그림을 뗀 후 행주로 풀 자국을 박박 지웠다.열심히 행주질을 하면서 지안은 말했다. “전처럼 깨끗하게 지워놓을게요. 베란다에 화분도 옮길 거예요. 전처럼 다 돌려놓을게요.”눈치껏 행동하는 모습을 보니 연신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그동안 내가 너무 원리원칙대로 행동했나.’원을 산책시키려 목줄을 챙기면서 그는 말했다.“그만해. 이대로도 충분해. 할아버지가 올 때마다 이러면 번거롭잖아.”“그렇긴 해요.”지안은 마침 귀찮았던 참이라 행주를 놓고 씻으러 갔다.욕실로 향하던 지안은 돌연 고개를 돌려 연신에게 물었다.“맞아, 혹시 부용 그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내일 면접 보거든요.”“일 찾은 거야?”“네. 오늘 연락받았어요.”연신을 보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의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지안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연신은 악의 없는 다소 차분한 목소리로, 그러나 정곡을 찌르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보광이 좋다고 하지 않았나? 이렇게 빨리 바뀔 마음이었나?”지안은 또 어떤 게 연신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알 수 없었다. 예의상 미소를 지었다.“내가 한 게 있지, 어떡해요. 가고 싶어도 이제 못 가요. 보광하고는 인연이 없나 봐요”연신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답했다.“부용도 나쁘진 않아.”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안은 이런 성질머리에 익숙해졌는지 상처받지 않았다.내일 면접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려 침대에 누웠다.침대에 눕자마자 연신에게 서프라이즈를 선
비서의 말은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의미든 심전웅의 입장에선 모욕적이었다.그 말을 듣고 심전웅은 손을 뻗지도 거두지도 못했다.겨우 평온함을 되찾은 심전웅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비위생적이죠.”하지만 성수광은 받아주지 않았다.심연아는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해 말을 꺼냈다.“참 할아버지, 손녀 분과 함께 오신다고 알고 선물 준비했는데 손녀 분이 좋아할지 모르겠네요.”최고급 품질의 화장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수광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했다.“손녀는 일이 있어서 못 왔어요.”심연아는 수광의 말이 끝나자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정말 만나고 싶었는데... 분명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분일 거예요.”“그건 그렇죠.”수광은 수염을 만지며 영특한 지안을 떠올렸다.집안의 애물단지에게 사랑을 알게 하고 이렇게나 빨리 결혼을 했으니 지안은 영특하긴 하다.종업원이 문을 두드리고는 주문한 음식을 서빙했다.전복, 샥스핀, 바다제비집, 불도장 등 각종 진귀한 음식들이 테이블에 차려졌다.음식들을 보니 심연아는 심전웅이 지불했을 금액이 계산됐다. 고개를 들어 수광을 바라보니 음식에 전혀 관심 없는 표정을 짓고 있어 온몸이 더 꼿꼿하게 굳었다.하지만 방금 손녀 얘기를 꺼냈을 때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걸 깨닫고 다시 손녀 얘기를 꺼냈다.“할아버지, 여기 디저트 정말 맛있어요. 이따가 포장해서 드릴 테니 손녀 분이랑 같이 드셔보세요. 분명 달달한 디저트 좋아할 거예요.”“그러죠. 어릴 때부터 디저트라면 사족을 못 썼어요.”심전웅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다급히 입을 뗐다.“제가 보낸 서류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그 땅이 앞으로 값이 엄청 뛸 겁니다. 지금이 딱 투자하기에 좋은 타이밍이에요. 거기에 신사옥을 지으면 손해 보진 않으실 겁니다.”제 발로 찾아온 투자자들은 난진 그룹의 비전에 관심을 가졌다. 분명 발전 가능성은 있지만 심전웅의 눈에는 현재 앞에 앉아 있는 이 나이 든 투자자는 사업 이외의 일에 더 관심이 있
심전웅은 본인의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 자연스럽게 심연아에게 책임을 전가했다.“그럼 네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란 말이냐?”심연아의 얼굴은 붉어지고 너무 답답했지만 차마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그저 넋이 나간 채로 읊조렸다. “분명 심지안의 스캔들을 빌미로 화를 내는 거 같은데... 무슨 관계일까...”보광과 부용 두 그룹은 모두 도심에 위치했고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지안은 부용에 입사한 첫날부터 회의에 참석했다.동료를 따라 회의실에 들어섰는데 30대로 보이는 남성이 그녀의 옆에 앉으며 인사를 건넸다.“Hi, 반가워요.”지안은 처음보는 남성을 쳐다보며 그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로 시선을 돌렸다. 진욱. 경영팀 총괄 담당자였다.자신에게 왜 인사를 했는지 모르지만 웃으며 화답했다.“현수의 오랜 친구예요. 그때 저한테 지안 씨 추천해줬거든요."지안의 앵두 같은 입술은 ‘오'자를 그리며 놀라움을 표했다.“진현수 씨랑 아시는 분이라구요?”진욱은 웃으며 말했다.“아는 사이 그 이상이에요. 지안 씨 추천서도 제가 써줬는 걸요. 시간될 때 현수랑 셋이 밥 한번 먹어요”지안은 감격하며 답했다. “그럼요. 정말 두 분께 감사드려요!”알게 된지 얼마 안 된 진현수가 자신을 이렇게 신경쓸 줄은 생각도 못했다.보광 중신.서백호가 휴가를 낸 터라 성연신은 급한 일을 마무리 하고 지하에 주차해둔 차를 끌고 회사에서 나왔다.카카오톡을 확인해보니 평소 같았으면 하루에 열 통 이상 연락했을 지안이 오늘 하루 종일 그에게 연락 한 통 없었다.연신은 다소 못 마땅한 듯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일 찾았다고 벌써 저녁 식사 걱정은 하지도 않는다는 거지. 쳇’집으로 돌아왔지만 지안은 역시나 아직 귀가 전이었다. 연신은 지안이 한 시간 정도 늦게 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11시가 돼서야 지안은 택시에서 내렸다.정원에 검게 드리운 연신의 모습을 보자 지안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안 자고 있었어요?”건강을 끔찍이 생각하던
연신은 테이블 앞에 앉아 지안을 기다리며 회사 인트라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확인했다.“스캔들이 터졌어. 부용 그룹의 고위직 모 씨가 팀원 배를 불렸다는군. 병원에서 애를 낳는 걸 봤다는 목격담도 있어!”“혹시 한 씨인가요?”“맞아. 어떻게 알아?”“이미 금융권에선 공공연한 비밀이거든요. 작년엔 그분 아내분이 회사까지 찾아왔어요. 왜 아직도 같이 사는지 모를 정도예요”“아내는 전업주부잖아. 말이 쉽지 이혼하기엔 어려울 거야.”연신이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지만 부용과 관련한 글은 거기까지였다.휴대폰을 닫을 때쯤 지안도 저녁 준비를 마쳤다.“토마토 계란 면이에요. 특별히 계란 두 개로 만들었어요!”연신은 면은 거의 없이 국물로만 반 정도 찬 지안의 그릇을 봤다.“저녁을 먹고 온 건가?”“아니요. 다이어트하려고요. 별로 먹고 싶지 않아요.”원래 늦은 시간에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은데 막 삶은 면을 보니 배가 요란하게 요동쳤다. 면을 조금 더 삶고 싶어졌다.“지금 보기 좋아. 다이어트할 필요 없어.”연신은 진지하게 말했다.회사는 보통 상반기에 일이 몰리는 편이다. 게다가 지안은 입사한지 얼마 안 돼서 배워야 할 게 많았다. 건강 상태가 안 좋으면 제풀에 나가떨어질 거다.“안 돼요. 오늘 3kg나 쪘다고요!”여자가 돼서 몸무게도 조절 못하면 어떻게 남자를 컨트롤할 수 있으랴!연신은 국수 한 젓가락을 뜨며 흑갈색 눈동자로 대쪽같은 지안에게 집중하며 말했다.“다이어트하려거든 내 앞에서는 하지 마.”“저는...”지안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지만 이내 말을 돌렸다.“아 알았다! 다이어트하고 나서 볼륨감 잃을까 봐 그런 거죠. 그런 몸 별로 안 좋아하니까.”연신은 이마를 짚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글래머러스한 몸매를 좋아한다는 건 그냥 둘러댄 말인데 그걸 정말 믿을 줄이야.“그런데요. 신, 남자들은 글래머러스한 몸매 좋아하잖아요. 진짜 뚱뚱한 거 말고.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간 몸매
옷걸이에서 정장 재킷을 들고나가는 연신을 보니 쑨난은 숨기는 게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건물 아래에 있는 지안을 보니 순간 연신이 왜 급하게 자리를 떴는지 알 듯했다.쑨난은 턱을 문지르며 의뭉스러운 미소를 띠었다.어쩐지 적극적이더라니. 봄이 왔구나.시장에서 집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지안이 집으로 돌아가려던 순간, 연신이 눈앞에 나타났다.만면엔 반가움이 가득했지만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친구랑 약속이 있었어.”연신은 답하며 자연스럽게 지안의 장바구니를 들었다.“좋네요!”지안은 연신을 따라 주차장으로 향했다.“오늘 수업에서 케익 재료가 남았어요. 집 가서 만들어줄게요.”“그래.”금세 노을이 졌다. 나란히 걷던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로 겹치며 꽤 분위기가 있었다.두 시간 후.지안은 직접 만든 떡과 원의 간식을 연신에게 보여줬다.원은 꽤 입이 커서 몇 입 만에 간식을 다 먹어치웠다. 복슬복슬한 머리를 지안에게 들이밀며 원은 애교를 부렸다.“맛있게 먹었어, 원?”“멍멍멍!”원은 꼬리를 흔들며 생각보다 더 좋아했다. 마치 지안의 말을 이해한 듯 크게 화답했다.지안은 방긋방긋 웃으며 말했다.“고마워. 주방에서 또 가져다줄게.”연신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더 이상 주지 마.”외국에 있을 때보다 원의 몸무게는 2~3kg 늘었다. 둥글둥글 해진 몸은 돼지를 연상케 했다.그 말을 듣자 원의 꼬리는 일순간 바닥으로 축 쳐졌다. 가여운 모습으로 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머금은 채 지안을 바라봤다. 마치 바라는 게 있는 것처럼.지안은 양손을 어깨 높이로 접어 으쓱하며 어쩔 수 없다는 제스처를 취했다.“나 들어갈게, 원!”지안은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진 채 말을 끝맺었다.연신은 지안의 표정 변화를 읽었다.30분 동안 지안은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다.연신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지안이 일이 많다고 원을 다독였다.연신은 긴 다리로 겅중겅중 위층으로 올라가 지안의 침실 앞에 섰다.침실 문은 잠겨있지 않
지안은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나서 언성을 높였다.“통화를 몰래 들은 건가요!?”‘청력에 문제 있나. 몰래 들었다 한들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난 그저 지나는 길이었어.”연신은 손에 든 물 잔을 내보이며 차갑게 말했다.연신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안이 뭇남성과 통화하는 걸 듣고 화가 나긴 했지만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무언가 엿듣는 습관도 없었다.침실로 돌아와 물 한잔 들고나가서는 길에 이런 일을 겪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지안은 해명을 제대로 못하고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연신 앞에서 직접 진현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눈 똑바로 뜨고 잘 봐요. 내가 도대체 언제 희희덕거렸다는 건지!”연신은 무표정하게 비웃었다.“그만해. 아니어도 어색해지는 건도 당신이야.”지안이 화가 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때 수화기 너머로 진현수의 목소리가 들렸다.반갑지만 놀라는 눈치였다.“지안, 어쩐 일로 또 전화했어요?”어째서 이 밤에 잠도 안 자고 전화를 한 거지?지안은 순식간에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아무 일 없어요. 오븐에 넣어둬야 한다고 말하는 걸 잊었지 뭐예요. 인터넷에 올라온 대로 온도나 시간 정확히 안 지켜도 돼요. 보다가 적당할 때 끄면 돼요.”“... 네, 알겠어요.”진현수는 다소 실망한 눈치였다.“네. 그럼 끊을게요.”지안은 전화를 끊고 침묵으로 일관하던 연신을 당당하게 쳐다봤다.“이런 평범한 대화를 ‘희희덕거린다'고 말한 거라고요. 도대체 얼마나 옹졸한 거예요?”“그럼 지금 입고 있는 이 옷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연신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여전히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기껏해야 천 쪼가리 몇 장 걸치고 ‘보통' 친구랑 영상통화를 한다고?“이건!”“내가!”“그쪽을!”“꼬셔보려고 입은 거예요!”지안은 한숨에 마음의 소리를 내뱉었다. 연신에게 몇 발자국 다가가더니 고개를 쳐들고 반짝이는 눈망으로 그를 응시하며 물었다.“이 대답은 만족스럽나요?”연신은 당황하며 자신에게 바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