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윤이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몸을 떨고 있자 도준은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다.“그래, 내가 너무 몰아세웠나 봐. 집까지 데려다줄게.”도중에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소혜는 마중하러 나오다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시윤을 보며 깜짝 놀랐다.“형수님,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으세요?”시윤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저 좀 쉬고 싶어요.”소혜가 다시 물으려던 찰나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도준을 보고 입을 다문 채 시윤을 안으로 부축했다....방 안.시윤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자신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석훈에게 전화를 걸어 손발이 차가운 데다가 몸이 멋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했다.나석훈은 그녀의 말을 듣고 대답했다.[뇌의 기억은 생각보다 깊어요. 이전에 이런 증상을 보인 게 바로 민도준 씨 때문이라 뇌가 다시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걸 알아차리고 매우 긴장된 상태에 처해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방금 같은 트러블이 생겼을 때 자기도 모르게 경보를 울려 방금처럼 몸이 경직되고 손발이 차가워지는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아직 초기 증상이니 약을 먼저 드신 후 재검사를 다시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네, 모레 휴식이니 한번 검사하러 가볼게요.”그 후 나석훈은 또 여러 질문을 하는 것을 통하여 시윤의 상태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지 확인하였다.전화를 끊기 전 시윤이가 무심코 말했다.“나 선생님, 방금 경보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만약 도준 씨와 화해한 후에도 트러블이 생긴다면 병세가 악화되는 건가요?”나석훈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죠. 우울증은 사라질 수 있지만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거든요. 어떤 자극으로 인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기분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더 악화될 위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시윤은 이 말을 듣자 핸드폰을 더 세게 쥐었다.‘난 절대 아파서는 안 돼. 우리 도윤이한테 정서가 불안한 엄
도준은 나석훈이 한 말들을 들은 후 손에 든 담배꽁초를 버리며 물었다.“그래서 이런 걱정으로 우리 관계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건가요?”도준이가 단번에 시윤의 생각을 알아차리자 나석훈은 깜짝 놀라며 안경을 다잡았다.“이미 예상하셨나 본데, 맞습니다. 시윤 씨는 아이의 엄마이니 아마 포기하실 겁니다.”이건 나석훈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도준은 시윤이가 도윤을 얼마나 아끼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시윤에게 있어서 도윤은 늘 가장 중요한 존재다. 만약 도윤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면 시윤은 자신이 원하는 걸 포기할지도 모른다.도준은 마음이 좀 초조해졌다.‘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할걸.’...그날 밤, 두 사람은 모두 잠을 이루지 못했다.시윤은 칠흑처럼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며 자신의 감정을 정리했다. 단지 두 사람의 신분만 본다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시윤의 집에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평생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사고는 집안 문제뿐만 아니라 도준에 대한 시윤의 사랑도 포함된다.시윤은 예전의 일들이 여전히 마음에 걸리지만 또 도준을 너무 원망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도준을 진심으로 사랑했었기 때문이다.이로 인해 시윤은 도준을 아예 사랑하거나 미워할 수 없게 되었다. 도준이가 너무 신경 쓰이지만 용서할 수 없었던 건 마찬가지다.다시 도준과 만나보고 싶었지만 또다시 통제할 수 없는 생활에 발을 들여놓은 걸까 봐 두려웠다.만약 아이가 없었다면 맘 놓고 사랑을 쟁취했을 지도 모르지만 도윤이가 있기에 그녀는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만 할 수 없었다.달빛은 방안에 스며들더니 조용히 사라져갔다.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시윤은 안색이 매우 안 좋았다. 양현숙마저 이를 알아차리고 물었다.“시윤아, 어디 아픈 거야? 병원 가봐야 되는 거 아니야?”“괜찮아요, 어제 잠을 좀 살쳤을 뿐이에요. 오늘 리허설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밖에 나가니 아무도 없었다. 도준이 나타나지 않자 시윤은 겨우 숨돌릴 수 있었다. 단지 기쁜 것인지
우진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무슨 말씀이세요, 선배님이 들으면 오해할지도 몰라요.”상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넌 몇 년을 좋아했으면서 아직도 고백하지 않은 거야?”우진은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제, 제 마음을 표현하긴 했어요.”“자꾸 질질 끌면 남한테 뺏기게 될지도 몰라.”도준을 생각하자 우진은 마음이 좀 복잡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고백하지 않아 시윤이가 마음을 몰라주고 있다고 오해했다.우진은 머뭇거리며 물었다.“그,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몇몇 선배들은 이러쿵저러쿵 방법을 제시하기 시작했다.“오늘이 바로 기회잖아. 공연이 끝나면 바로 고백하는 거야!”우진은 그 말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미리 이야기하지 않고 고백했다가 선배가 저한테 화나기라도 하면 어떡해요?”“넌 겁이 왜 그렇게 많은 거야. 누가 고백할 때 미리 이야기를 해? 어차피 넌 이 무대에서 그 선배한테 반한 거라며, 지금이 바로 네 마음을 고백할 가장 좋은 타이밍이야.”우진은 마음이 두근거렸지만 여전히 걱정되었다.“하지만...”“그만 고민해! 내가 꽃을 준비할 테니 넌 좀 이따 고백하기만 하면 돼.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 고백 안 하면 평생 후회할지도 몰라.”우진은 건방진 모습의 도준을 떠올렸다. ‘어쩌면 선배님은 그런 남자를 더 좋아하는 걸까? 내가 한번 용기를 내면 나한테도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이런 생각에 우진은 결심을 굳혔다.“그래요, 좀 이따 선배님한테 고백할게요!”...7시.학교 공연장의 불빛이 어두워졌다.시윤과 윤영미, 수아는 모두 함께 앉았다. 공연이 시작되자 윤영미는 빈번히 고개를 끄덕였다.“우진이는 재능이 조금 부족하긴 해도 정말 노력하는 아이야.”시윤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게요.”시윤이 말을 마치자마자 윤영미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넌 정반대야! 재능이 정말 뛰어난 데 노력을 너무 안 해!”‘괜히 말을 꺼냈네.’공연이 막바지에 이르자 모든 관계자들이 무대에 올라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
시윤은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그녀가 망설이던 찰나 윤영미가 앞질러 마이크를 받았다.“오늘 공연은 정말 진보가 컸어. 하지만 소원을 빌어도 될 정도는 아니야. 나랑 네 선배님들은 네 공연을 보러 온 것뿐이야. 오늘 공연은 이미 끝났으니 다른 할 말이 있다면 사석에서 얘기해. 오늘 공연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죠. 현장에 계신 모든 분들의 지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윤영미가 말을 꺼낸 이상 아무도 소란을 피우지 않았고 윤영미는 시윤과 수아를 데리고 공연장을 떠났다.시윤과 두 사람이 멀리 나가기도 전에 우진이가 달려왔다. 그는 무대의상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잘못을 저질렀다는 불안함에 떨었다.“선배님, 혹, 혹시 화나셨나요?”우진의 숨길 수 없는 표정을 보자 시윤은 눈살을 찌푸린 뒤 엄숙하게 말했다.“우진아, 내가 여러 번 말했었지. 넌 나한테 그냥 후배일 뿐이야. 왜 굳이 이런 자리에서 고백을 한 거야? 넌 내가 사람들이 지켜보면 어쩔 수 없이 동의할 것 같아 보였어?”“아, 아니에요. 선배님, 전 그게 아니라...”우진은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정말 부인하고 싶었지만 평소 후배들을 잘 챙겨주는 시윤이라면 이런 일 때문에 화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을 통해 시윤이가 감동받기를 바랐다.이런 생각에 우진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선배님, 죄송해요. 제가 너무 막무가내로 행동했어요. 전 선배님이 정말 좋아서 선배님과 도윤이를 보살펴드리고 싶어요. 친구로서도 좋으니 정말 도와드리고 싶어요.”우진이가 아직도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시윤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날 보살펴준다고? 지금 네 실력으로 정말 날 먹여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네 부모님까지 동원해 도와주려던 속셈이었어? 다른 건 말할 것도 없고, 네가 도윤이를 보살필 수 있을 것 같아? 나랑 훈련하는 시간마저 똑같으면서 어떻게 보살펴줄 건데? 왜? 이것마저 그만둘 생각이야?”“전...”우진은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시윤의 신상도 밝혀졌다.[이 사람은 얼마 전 ‘지젤’의 수석 배우 아니야?][맞아, 그 배우는 경서에서 엄청 유명한 그분과 결혼했다고 하지 않았어?][나 알아! 바로 민 사장님이잖아!][두 사람 이혼했다던 소문도 있는데, 서로 마음이 변한 거 아니야?][부자들이 뭔 사랑을 하겠어? 민 사장은 딱 봐도 일편단심 할 만한 사람은 아이야.][그래서 수석님은 이제 그 남자 발레리나랑 만나는 거야?][이 남자는 ‘지젤’의 서브잖아! 이런 짝사랑 이야기는 정말 예쁜 것 같아!][두 사람 정말 잘 어울리네.][두 사람 잘 됐으면 좋겠어!]...이 영상은 시윤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퍼졌다. 인터뷰를 하려고 연락 온 기자들이 벌써 세 명이나 생겼기 때문이다.시윤은 몇 개의 플랫폼 아래에 해명을 하려고 했지만 곧 새로운 댓글에 밀려났다. 그녀의 계정은 오랫동안 쓰지 않았기에 글을 올려도 아무도 바지 않았다.결국 시윤은 이전에 알고 있던 기자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었고, 우진과 함께 인터뷰를 하여 해명하기로 했다.우진은 자신이 한 잘못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두말없이 시윤의 집 앞에 도착했다.두 사람이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지프 한 대가 곧장 우진을 향해 달려왔다. 지프는 마치 맹수처럼 우진을 향해 돌진했는데 당장이라도 우진을 치어 죽일 것 같았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우진을 죽을 준비를 하고 눈을 감았으나 곧 귀를 찌르는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차는 그와 1미터를 사이 두고 멈추었다.우진과 시윤은 모두 이 상황에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곧 차 문이 열렸다.차에서 내린 남자는 무서운 기운을 내뿜으며 걸어왔다. 남자는 키가 매우 높아 압도적인 분위기를 내뿜어 다가올수록 시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도준은 사악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훑어본 뒤 미소를 지었다.“죄송합니다. 브레이크를 밟는 걸 깜빡했거든요.”...우진이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시윤
“심문이라니? 그럴 리가.”도준은 비스듬히 우진을 쳐다보며 사악하게 입꼬리를 올렸다.“난 후배님과 이야기하러 온 거야.”시윤은 불안한 예감이 들어 입을 열려고 했으나 우진이가 먼저 말했다.“마침 저도 민 사장님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요.”우진은 긴장된 마음에 온몸이 경직되었지만 떨리는 손으로 한적한 곳을 가리켰다.“저쪽으로 갑시다.”도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즐거워했다.“좋아요, 그럼 이야기 좀 하죠.”시윤은 도준의 포악한 수단을 봤었기에 막으려고 했지만 소혜가 그녀를 막아 나섰다.“형수님, 가지 마세요. 괜히 형수님한테 불통이 튈지도 몰라요.”이 말을 들은 시윤은 더욱 두 사람이 떠나는 걸 보고 있을 수 없었다.“잠깐만!”우진은 고개를 돌려 정중히 말했다.“저도 더 이상 선배님한테 폐를 끼칠 수는 없어요. 걱정 마세요. 저도 이젠 성인이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알고 있어요.”하지만 시윤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예전에 도준이가 은우를 괴롭히던 섬뜩한 기억들이 선명하기에 더 이상 주변 사람이 자신으로 인해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시윤이가 따라가려던 찰나 양현숙이 집안에서 뛰어나왔다.“시윤아! 도윤이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 게다가 이마도 엄청 뜨거워!”“뭐라고요?”시윤은 집안으로 달려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도윤을 보며 아이를 안고 초조하게 말했다.“빨, 빨리 병원으로 가요!”바람을 맞으면 병이 더 심해질지도 모르기에 소혜는 빠르게 뛰어나가 차를 잡았다. 시윤이가 도윤을 안고 차에 오르려던 찰나 갑자기 뒷길에서 차가 부딪힌 것 같은 큰 소리가 들려왔다.‘우, 우진이야!’시윤은 하마터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그녀는 아이를 소혜에게 맡겼다.“먼저 저희 엄마랑 같이 병원으로 가요. 도착한 후 주소를 보내주시면 곧 갈게요.”말을 마친 후 시윤은 황급히 뒷길로 뛰어갔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도준 한 사람밖에 없었다. 도준은 전조등이 부서진 차 앞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시윤을
말을 마치자마자 뒤에서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선배님, 지금...”고개를 돌리자 우진이와 경비원 아저씨가 뒤에 서있었다.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은 우진을 보자 시윤은 깜짝 놀랐다.“이 땅에...”우진이가 말했다.“방금 실수로 페인트 통에 부딪히게 되어 제가 경비원 아저씨를 부르러 갔거든요.”시윤은 그제야 동그란 페인트통이 화단에 부딪힌 것을 발견하고 말문이 막혔다.방금 전의 화가 순식간에 사라진 시윤은 고개를 돌려 도준을 보았다. 입을 열려던 찰나 경비원이 웃으며 말했다.“어차피 페인트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배상할 필요 없어요. 제가 좀 이따 사람을 불러 청소만 하면 그만이에요.”우진은 시윤과 도준을 보며 고개를 떨구었다.“경비원 아저씨, 저도 같이 갈게요.”두 사람이 떠나자 시윤과 도준 두 사람만 남았다. 자신이 오해했다는 것을 깨달은 시윤이가 입을 열었다.“미안해요. 제가 방금...”“괜찮아.”도준은 웃으며 말했다.“내 이미지가 너무 나쁜 탓이지 뭐.”도준이가 웃고 있었지만 시윤은 오히려 가슴이 답답했다. 시윤은 서둘러 설명하려고 했다.“제가 방금 많이 혼란스러웠거든요. 왜냐하면...”도윤이가 아팠기 때문이다.“말 안 해도 돼.”도준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네 후배가 걱정되었던 거겠지.”시윤은 정말 우진이가 걱정되긴 했었다. 도준이가 예전처럼 또 무고한 사람을 죽일 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정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시윤은 땅바닥의 얼룩덜룩한 붉은 페인트를 보며 지금 두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들어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방금 시윤의 말은 도준에게 상처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에 마침표를 찍었다. 방금 자신이 한 날카로운 말을 생각하자 시윤도 더 이상 설명할 용기가 생기지 않아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도준은 그녀의 처진 머리를 보았는데 마치 방금 말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그는 입술을 오므리며 예전처럼 손을 들어 시윤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지만, 손이
시윤은 마음이 좀 불안했다.“그런 거 아니에요. 저랑 우진이는 선후배 사이일 뿐이에요. 이미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해 해명하기로 이야기도 마친 상태에요.”시윤은 말하면서 도준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했으나 도준의 핸드폰은 꺼진 상태였다.“왜 전원이 꺼져있는 거지?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건가?”이에 소혜는 웃음을 터뜨렸다.“안 좋은 일이 생기다뇨. 오빠는 지금쯤 아마 비행기에 있을 거예요.”시윤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비행기요? 어디로 간 거죠?”“경성이요.”도준이가 경성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듣자 시윤의 머릿속에는 온통 도준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데려다주진 않을 게.”‘그 말은 정말 떠난다는 거야?’시윤은 정신이 혼미해져 소혜가 하는 말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다. 소혜는 연속 그녀를 몇 번이나 부르며 손을 뻗어 눈앞에서 흔들었다.“형수님, 괜찮으세요?”시윤은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왜 그래요?”소혜는 그녀의 떠도는 눈빛을 보자 음흉하게 웃었다.“형수님, 우리 오빠를 놓치고 싶지 않다면 쫓아가셔도 돼요. 도윤이는 제가 잘 보살피고 있을 게요.”“그게...”시윤은 마음이 조금 흔들렸지만 방금 했던 날카로운 말들을 생각하자 다시 기죽었다.끝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됐어요, 차라리 떨어져 있는 편이 좋을 지도 몰라요. 전 피곤해서 올라가 잠깐 쉬고 있을 게요. 도윤이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절 깨워주세요.”-침대에 누운 시윤은 매우 피곤했지만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온통 자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분명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으면서 아직도 예전과 똑같아요!”시윤은 이제야 깨달았다. 달라지지 않은 사람은 도준이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시윤은 줄곧 지난 기억으로 현재의 도준을 부정하고 있을 뿐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 시윤은 핸드폰을 켜고 우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선배님, 무슨 일이세요?]시윤은 잠시 망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