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관계, 더 이상 지속하면 안 될 것 같아요.”더 이상 얻을 게 없는데 자기 몸까지 바쳐가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물론 민도준과의 관계에 점점 매료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까지 스스럼없이 그 행위를 지속하려는 남자를 봐왔던 그녀로서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었다.경성에서 명성이 자자한 민도준은 아무리 그런 소문이 터져도 그를 뭐라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그녀는 아니다.그녀는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살 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고 그 어떤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다.때문에 눈앞에 기회가 찾아온 지금 이 관계를 끊어버리는 게 맞았다.그녀의 요구를 들은 민도준은 눈썹을 치켜뜨더니 입을 열었다.“이젠 나랑 관계 유지하는 게 싫다는 건가?”“아무래도 저는 민승현 약혼녀 신분이기에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건 아닌 듯싶습니다.”남자의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할까 봐 권하윤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민도준은 재미를 잃었는지 여느 때보다도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나가.”아까와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주위에는 위험하고 서늘한 기운이 맴돌았다.권하윤은 자기가 민도준의 흥미를 깨트렸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이것 역시 그녀가 원하던 결과였다.때문에 조금의 지체도 없이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권하윤 씨?”구석에서 로건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한민혁은 권하윤을 보자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들여다봤다.‘고작 10분이 지났는데 끝났다고? 도준 형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권하윤은 그가 오해했다는 걸 눈치채고는 끝내 참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민도준의 편에 서서 말했다.“저 상처 치료 다 했으니 이만 가볼게요.”그제야 한민혁은 뭔가 알아차린 듯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아하, 하윤 씨 다쳤었죠? 하하하, 이번에 하윤 씨 공이 컸어요.”하지만 갑자기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뭔가를 참고 있더니 끝내 입을 열었다.“저기, 혹시 질문 하나 해도 돼요?”“뭔데요?”“그 계집애가 잡혀가고 나서 계속 자기가 하윤 씨 이
이미 울면서 뛰쳐나가야 했을 권하윤은 오히려 느긋하게 겉옷을 벗어 옷장에 걸어 넣고는 주방에서 씻은 과일을 바구니에 담아 다시 돌아왔다.그러고는 영화라도 보는 것처럼 두 사람 앞에 앉아 딸기를 입에 넣으며 구경했다.한창 뜨겁게 달아올라 점점 대답해지던 동작은 권하윤의 행동 때문에 점점 굳어졌다.그리고 스스로도 불편했는지 민승현이 끝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씨발, 너 거기서 뭐해? 뭐하자는 건데?”“민정 씨 여기로 데려온 건 나 보라고 그런 거 아니야?”권하윤은 딸기 하나를 꼭꼭 씹어 넘기고는 또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그래서 지금 보고 있잖아.”그녀의 뻔뻔한 태도에 오히려 민승현이 말문이 막혔다.솔직히 그녀 말이 맞았다. 그가 강민정을 굳이 집까지 데려온 건 그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가 원한 건 권하윤이 모멸감을 느끼고 난처하고 분해서 이성을 잃는 모습이었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구경하는 모습은 아니었다.오히려 권하윤의 이런 반응과 눈빛을 보고 나니 그는 자기가 마치 동물원 원숭이라도 된 듯한 모멸감이 들었다.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그 때문에 강민정은 중심을 잃어 하마터면 너머질 뻔했다.게다가 “아”하는 짤막한 비명이 들려왔지만 민승현은 그녀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화가 잔뜩 난 눈빛으로 권하윤을 바라봤다.그 시각, 환한 불빛에 비친 옅은 노란색 니트 원피스는 권하윤의 몸매를 더욱 부각했고 긴 머리는 양 옆으로 갈라져 그녀의 가슴을 덮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민승현은 그녀가 알게 모르게 변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분명 원래와 똑같은 얼굴인데 행동 하나하나에 야릇함이 묻어있었고 매혹적인 눈매는 뭔가 봉인을 해제한 듯 사람의 마음을 홀렸다. 게다가 도톰한 입술 사이로 빨간 딸기 물이 반짝거렸다가 다시 입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은은하게 퍼지는 딸기의 새콤달콤한 향기에 분위기가 점차 이상해질 때쯤, 강민정이 그런 변
강민정은 전화를 끊은 뒤 피식 웃었다.‘한민혁이었다니.’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래서 민 사장님이 권하윤의 정체를 안 거였네. 한민혁이 말했을 테니까. 그런데 민 사장님과 권하윤의 관계를 의심했다니. 나도 참.’민승현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권하윤을 민도준이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사실 한민혁도 솔직히 따지면 배경 있는 집안 자제다.약 20년 전만 해도 한씨 가문은 정치권을 꽉 잡고 있을만한 쟁쟁한 인물들이 넘쳐났기에 그들에게 빌붙으려는 사람만 해도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그러던 중 정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서 그들의 지위도 하루아침에 변했다.하지만 한민혁이 그때의 그 한씨 가문 자제라는 걸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때문에 강민정 역시 한민혁을 그저 도민준의 뒤를 따라다니는 동생으로 봤다. 다시 말하면 그저 망나니.그런 사람과 바람을 비우는 것은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다. 적어도 강민정 생각에는.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강민정은 권하윤이 우습게 느껴졌다. 민승현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니 그런 지경에 이르다니.한참 동안 속으로 권하윤을 실컷 비웃고 난 강민정은 속으로 계획을 세웠다. 지금 바로 폭로한다고 한들 권하윤이 인정하지 않을 게 뻔했기에 기회를 봐서 현장을 잡기로.그렇게 한참을 생각하고 있을 때 욕실 문이 열렸다.강민정은 목욕 타월을 들고 이내 민승현에게 다가갔다.“오빠, 얼른 물기 제거해. 감기 걸리면 나 마음 아파.”강민정의 시중을 받자 민승현은 기분이 좋아졌다.“역시 넌 현모양처라니까.”“그게 뭔 소용이야. 부모도 없는 고아라서 공씨 집안 파티에도 참석하지 못하는데.”강민정은 민승현의 몸을 닦아주며 서러운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점차 낮아지는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하윤 언니 정말 부럽다. 당당하게 오빠 곁에 있을 수 있어서. 내가 만약 하윤 언니라면 오빠 정말 잘 내조할 텐데, 불만이 있다고 심술부리지도 않을 거고.”평소에도 강민정의 불쌍한 모습을 보면 견디지
공아름의 손끝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작은 상처가 나있었다.“이거 뭐야?”네일아티스트는 세게 뺨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두려움에 벌벌 떨기만 했다.“죄, 죄송합니다. 방금 손톱을 다듬을 때 실수로 살짝 스쳤습니다. 제…… 제가 핸드크림 발라드릴게요…….”“손 대지 마! 꺼져!”“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네일아티스트는 지체했다간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말이 끝나기 바쁘게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다. 작은 해프닝이 있고 난 뒤 공아름은 좋던 기분도 어느새 사라졌다.그리고 그제야 의견을 묻는 듯 자기를 보고 있는 문태훈을 흘깃 스쳐보며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어느 손을 민도준 씨 몸에 댔는지 확인하고 그 손 부러트려!”지하실.문태훈은 성욕을 풀고 난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무심한 듯 말을 내뱉었다.“이제 가도 좋아.”며칠 사이 여자는 온갖 고문을 당해 이미 눈이 흐리멍덩해져 한참 지나서야 그의 말 뜻을 이해했다.처음에는 느꼈던 분노와 공포는 이미 사라진 채 그저 연신 고맙다는 인사만 해댔다.“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그리고 문태훈이 말을 번복하기라도 할까 봐 그의 비위를 맞췄다.“저 나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게요. 정말이에요.”“죽고 싶으면 함부로 떠들어도 돼.”문태훈은 여자를 경멸하는 듯 가볍게 툭 내뱉었다.그 순간 그는 공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 비위를 맞추며 설설 기던 모습이 아니었다. 약자 앞에서 그는 누구보다도 잔인했다.“아 참, 가기 전 뭐 하나 두고 가야 할 게 있어.”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보디가드들은 점점 여자에게 다가갔고 그 모습에 겁을 먹은 여자는 점점 뒷걸음을 쳤다.“뭐예요?”“싫어, 오지 마.”“아!”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순간 지하실을 꽉 채웠다.“…….”문태훈은 천천히 지하실에서 걸어 나왔다. 여자를 안을 때 받았던 느낌을 생각하니 순간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매번 공아름의 명령으로 여자들을 처리해오면서 그녀들과
권하윤의 심장박동 수는 순간 높이 치솟았고 송골송골 맺힌 땀이 등줄기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남자는 더 이상 며칠 전의 떠보는 말투가 아니었다. 그런 확신에 가득한 말투 때문에 순간 불안한 예감이 휘몰아쳤다.하지만 권하윤은 정신을 가다듬고 애써 침착한 모습을 유지했다.“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제 약혼자가 밖에서 기다려서 나가봐야 할 것 같네요. 실례합니다.”하지만 그녀에게 쉽게 빠져나갈 구멍을 내어줄 문태훈이 아니었다. 그는 일부러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민승현 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전에 얘기가 잘 통해서 대화하다가 전한테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주더라고요.”그리고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한 역겨운 눈빛을 짓더니 한걸음 더 다가왔다.“권하윤 씨가 어릴 때부터 몸이 안 좋았는데 반년 전에 글쎄 큰 병이 걸리고 난 뒤 갑자기 기적처럼 완치했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가주님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는데 그렇게 좋은 의사가 있다니 추천 좀 해줘야겠는데요.”그 말을 듣는 순간 권하윤의 가슴은 덜컹 내려앉았다.문태훈이 말하는 가주라는 사람은 문태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만약 권하윤이 죽지 않은 데다가 죽음을 위장하고 경성으로 도망쳐 왔다는 걸 그 사람이 알게 되면…… 그 결과는 정말 상상하기도 끔찍했다.뼛속 깊이 파고드는 공포에 권하윤은 치가 떨렸다.그녀는 지금 무조건 문태훈을 안정시켜야 했다. 만약 문태훈이 모든 사실을 그 사람에게 흘리는 순간 그녀는 다시 되돌릴 수 없을 테니까.한참을 고민한 끝에 권하윤은 끝내 입을 열었다.“뭘 원하는데요?”바로 누그러진 권하윤의 태도에 문태훈은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다.“계속 권하윤으로 살고 싶다면 그렇게 해요. 하지만…….”권하윤에게 한걸음 더 다가간 문태훈은 그녀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저 경성에 친구가 많지 않아 혼자 놀기 심심해서요.”권하윤은 남자의 말에 헛구역질을 참으며 순종적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문태훈 씨만 괜찮다면 제가 가이드 해드릴게요.”
공아름은 오늘도 역시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등장했다. 수작업으로 짜인 빈티지 무늬 벨트로 허리를 둘러싸 라인을 부각했고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은 유럽적인 느낌을 물씬 풍겼다.하지만 그녀가 그토록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요란하게 등장했지만 민도준의 카리스마에 뒤덮여 존재감마저 미약해졌다.고급 원단으로 만든 슈트는 그의 근육 라인을 감싸고 있었지만 그의 야성미와 남성 호르문은 그것을 뚫고 밖으로 흘러나왔다.그 때문인지 늘 기고만장하던 공아름도 그의 옆에서는 그저 순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권하윤은 민도준을 언젠가는 또 만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만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두 사람은 서로 눈이 마주치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민도준은 민승현의 팔들 두른 권하윤의 손을 뚫어지게 바라봤다.연두색 옷소매 사이로 나온 새하얀 피부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얼마 전의 광경이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권하윤의 두 팔은 그의 어깨를 감싼 채 그의 등에 빨간 손톱자국을 남기던 그 장면 말이다.깊고도 짙은 눈동자에는 순간 웃음기가 더해졌다. 너무나도 존재감 있는 그의 미소에 건하윤의 심장은 심하게 요동쳤다.그녀는 끝내 참지 못하고 먼저 눈을 피했지만 민승현의 팔을 두르고 있는 손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졌다.술 파티 자리인지라 당연히 술이 빠질 수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몇 명씩 모여 잔을 부딪히며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그제야 권하윤은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구석 자리로 숨어들어 민도준의 도움을 청할 기회를 엿봤다.하지만 그녀가 전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도움을 요청했을 때 민도준이 들어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겠지만 지난번 민도준은 분명 그녀에게 흥미를 잃은 듯한 눈치였기에 그녀가 다가간들 무시당할 게 뻔했다.그녀가 한참을 고민할 그때 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방금 공아름 봤어요? 아주 민도준 씨한테 꼭 붙어있는 꼴을 봐요. 그러고도 공씨 집안 아가씨는 무슨.”익숙한 이름에 술을 마시는 척 고개를 돌려
순간 권하윤의 심란하던 마음은 남자를 보는 순간 이상하리만치 차분해졌고 목소리는 예전과 달리 잔뜩 흥분해 있었다.“안 갔어요?”기쁜 기색이 역력한 권하윤의 얼굴을 빙 둘러보던 민도준은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왜? 나 보고 싶었어?”“아, 아니지. 우리가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했으니 나 보고 싶어 했을 리는 없겠네.”담담하게 뱉은 몇 마디 말에 권하윤은 하려던 말이 모두 목구멍에 막혀 나오지 않았다.잠시 뒤에야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낮은 자세로 입을 열었다.“농이 지나치네요. 전에는 제가 사리분별을 못했습니다.”그 말을 듣고 있던 민도준은 느긋하게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이제는 사리분별이 되나 보지?”권하윤은 이내 앞으로 걸어가 민도준 손에 든 라이터를 받아 들더니 그보다 하나 낮은 계단에 서서 고분고분한 태도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마치 남자의 비위를 맞추기라도 하는 듯한 태도와 애정 어린 눈빛은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전에는 제가 너무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며칠 동안 생각해 봤는데 민 사장님 곁에 있는 건 제 복이더라고요. 이해득실만 따지며 성질을 부리면 안 됐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전에 블랙썬에서 당차게 거절했던 걸 애써 포장하는 권하윤의 모습에 민도준은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그는 권하윤의 턱을 들어 올리며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설마 듣기 좋은 말 몇 마디 했다고 내가 다시 받아줄 거라고 생각해?”남자의 말을 듣는 순간 권하윤의 미소는 그대로 굳었다. 잠시 멈칫하던 그녀는 이내 손을 들어 민도준의 팔을 잡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가 민도준 씨를 원해요.”손 끗으로 민도준의 팔 위에 야릇하게 선을 그리던 권하윤은 눈을 들어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처음에 긴장하고 겁에 질린 듯한 모습과는 달리 어느새 눈에서 야릇함이 흘러나왔다.그런 변화는 사실 민도준이 조련해낸 것이다.그는 여자의 그런 변화를 보자 그녀의 턱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더 주었다.“나를 원한다고?”“좋아
“이 술 내가 특별히 사람 시켜서 만든 건데 안 마시면 저 섭섭새요. 권희연 씨.”공아름의 말에 권희연은 쟁반 위에 놓인 술병을 힐끗 바라봤다. 하지만 술병에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벌써 강한 알코올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그녀는 벌써 공아름이 건네오는 술을 3잔이나 마셨다. 그것도 번마다 점점 독한 술로.더욱이 방금 먹은 술은 마치 그녀의 위에 구멍을 뚫을 듯 뜨거워 구역질을 참으려고 갖은 애를 써야 했다.하지만 공아름은 그녀에게 계속 술을 권해왔다.웨이터가 술을 코앞까지 대령하는 순간 권희연은 거절할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공아름을 보면서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공아름 씨, 저 정말 더 이상 마시지 못하겠어요,”술기운이 올라 얼굴에 홍조를 띤 채 연약한 자태를 취하고 있는 권희연을 보자 공아름은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오호라. 네가 그런 불여시 같은 눈빛으로 민준 씨를 홀린 거였네?’민도준에게 무시당했던 분노는 모두 화살이 되어 권희연에게 겨눠졌다. 공아름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권희연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그 술 저년 입에 처넣어!”“싫어, 이거 놔. 놔!”보디가드가 권희연을 붙잡자 현장에 있던 손님들은 모두 놀랐다.물론 명문가 규수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 암투를 벌이기는 해도 모두 신분을 고려해서 말 몇 마디 하는 게 다였지 공아름처럼 직접 폭력을 사용하는 건 처음이었다.게다가 공아름이 이 정도로 교만하다는 것도 사람들은 금시초문이었다.권희연의 입이 보디가드에 의해 억지로 벌려지는 걸 보는 순간 권하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공아름 씨.”권하윤은 권희연에게 억지로 술을 부으려는 보디가드 앞에 막아서며 입을 열었다.“희연 언니가 술을 잘 마시지 못하니 제가 대신 마실게요.”솔직히 권하윤은 갑자기 영웅심리라도 발동한 게 아니었다. 그저 같은 가문 일원으로써 권희연이 가문에서 가장 중요한 패라면 권하윤 본인은 그저 쓰다 버릴 패이기 때문이었다.그런데 만약 권희연이 이런 일을 당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