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대표는 의아한 표정으로 박시언을 바라봤다.이렇게 좋은 소식을 부동산에 관련된 사람들이라면 이미 전해 들은지 오래였다.오늘 아침부터 김하린과 연락이 닿지 않았던 박시언의 이마가 찡그려졌다.“안 대표님, 건배하시죠.”소은영은 박시언이 온통 김하린 생각뿐이라는 걸 알고 애써 참으며 박시언에게 술을 따랐다.하지만 박시언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룸을 떠났다.“엇, 대표님!”방 안의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했고 소은영의 표정은 더더욱 일그러져 있었다.그 땅이 어떻게 녹화 구역으로 지정됐지?화장실에서 막 손을 씻은 김하린은 세면대 위에 놓인 휴대폰이 계속해서 울리고 발신자가 박시언인 걸 확인하자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어디야?”박시언의 어투는 그리 친절하게 들리지 않았다.대체 또 뭣 때문에 이러는 거야. 김하린이 말했다.“친구들이랑 저녁 먹기로 했으니까 이따 저녁에 가서 얘기해.”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소은영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시언 씨, 빨리 와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이 말을 들은 김하린은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자기는 밖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면서 나한테는 어디냐고 물어?김하린은 폰을 넣고 고개를 돌려 화장실을 나갔다.룸 문을 닫으려던 소은영은 고개를 들어 화장실에서 나오는 김하린을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서둘러 문을 닫았다.“은영아, 이리 와.”뒤를 돌아본 소은영은 박시언이 문밖에 있는 김하린을 못 봤다는 걸 알고 이렇게 말했다.“대표님, 저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게요.”“그래.”나름 온화한 말투에 주변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소은영이 박시언을 따라 이런 자리에 참석한 게 처음은 아니었다. 남자들은 술자리에 보통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데리고 나왔고, 동행한 여자가 어떤 존재인지 다들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소은영은 아무도 자신을 신경 쓰지 않자 김하린이 가던 방향으로 걸어갔다.그렇게 걷다가 남녀가 수다를 떠는 목소리가 들렸다.“너 안목이 진짜 타고난 것
룸으로 돌아온 소은영의 일그러진 얼굴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그녀가 애써 태연한 척 자리에 앉자 박시언은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어디 불편해?”소은영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저, 저 방금 언니 본 것 같아요.”“김하린?”소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부러 난감한 척 말했다.“언니만 본 게 아니라 지난번 경매에서 본 두 남자분도 있었는데, 그중 한 분이... 언니랑 무척 다정해 보였어요.”서도겸?박시언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서도겸이 떠올랐다.차가워진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성큼성큼 문밖으로 걸어갔고, 소은영도 뒤따라가자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바로 앞에 있어요.”소은영이 앞장섰고 박시언이 문을 열자 룸 안에는 서도겸과 배주원이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배주원은 문을 열고 들어온 박시언을 보고 당황했다.“박시언?”김하린이 보이지 않자 소은영은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곧 테이블 위에 놓인 접시와 수저를 발견했다.“대표님, 저기 접시랑 수저요.”박시언도 이를 눈치채고 눈빛이 더욱 서늘해졌다.“김하린 어딨어?”“김하린?”배주원은 의아한 듯 물었다.“박시언, 네 와이프를 왜 우리한테 물어?”“모르는 척하지 마. 은영이가 방금 김하린 여기 있는 거 봤다고 했어. 어디 갔어?”“은영이 누군데?”배주원은 박시언의 곁에 서 있던 소은영을 보고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너구나. 왜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다니지?”“헛소리가 아니라 내 눈으로 직접 봤어요!”“그래, 뭘 봤는데?”서도겸이 차갑게 말하자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적인 기운에 소은영은 숨통이 조여오는 기분이었다.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는 박시언을 붙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세 분이 웃고 떠들면서 술 마시는 걸 봤어요. 언니한테 음식도 집어줬어요! 두 사람 무척 가깝게 있었고 손도 잡았어요.”진실과 거짓이 섞인 소은영의 말에 서도겸은 피식 웃었고 박시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차가워졌다.“다시 물어볼게, 그 여자 어디 있어?”“실
서호철은 외손녀를 무척 애지중지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전…”“그만!”강한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박시언을 향해 쏘아붙였다.“누군가 했더니 박시언 씨였네요. 내연녀 관리 똑바로 하셔야겠어요. 운 좋게 돈 많은 남자한테 빌붙은 가난한 대학생이 감히 내 앞에서 큰소리를 내요?”내연녀라는 말을 들은 소은영의 얼굴은 금세 굳어졌고 반박하려던 찰나 박시언이 그녀를 말렸다.그의 표정도 잔뜩 굳어 있었다.소은영은 박시언의 모습에 너무 충격을 받아 감히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은영이가 잘못 보고 오해했습니다. 이 식사는 제가 대접할 테니 다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됐어요, 강씨 가문은 고작 그런 돈 필요 없거든요.”강한나는 박시언의 체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오늘 일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 손님 보내.”경호원 몇 명이 박시언과 소은영을 룸 밖으로 내보냈다.룸을 나설 때쯤 박시언의 얼굴은 극도로 어두워져 있었다.“시언 씨... 저, 전 정말...”“됐어, 오늘 일 다시는 꺼내지 마.”박시언은 가슴 속 분노를 억누르면서도 소은영을 향한 말투는 나름 부드러웠다.소은영은 죄책감에 입술을 깨물었다.잘못 볼 리가 없는데! 분명 김하린이 수작을 부린 것이다!박시언과 소은영이 자리를 뜬 뒤에야 옆 방에서 강한나의 옷으로 갈아입은 김하린이 들어오며 말했다.“고마워요, 언니.”강한나가 말했다.“고맙긴, 한 가족끼리 무슨.”“흠흠.”배주원이 헛기침했고 그녀의 말에 의아해하는 김하린을 뒤로한 채 서도겸이 말했다.“오늘 너한테 누나 소개해 주려고 했는데 박시언 때문에 망쳤네. 일단 집에 가, 박시언한테 들키지 말고.”“그래.”김하린도 같은 생각이었다. 막 나가려다가 그래도 강한나한테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서도겸의 사촌 누나인 강한나는 그보다 두 살 위였고 해외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서도겸이 그녀를 소개하는 자리에 인사도 하지 않고 이대로 가버릴 수는 없었다.“언니, 다음에
끼익-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희미한 불빛이 안으로 비쳤다.“김하린.”박시언의 목소리가 무거웠다.김하린은 못 들은 척했다.박시언은 다시 언성을 높였다.“김하린!”김하린은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채 얼굴을 찡그렸다.“이 밤에 왜 내 잠을 방해하는 거야?”“일어나!”박시언의 말투에는 억눌린 분노가 가득했다.김하린도 씩씩거리며 일어나 문 앞에 서 있는 박시언을 바라보며 물었다.“박시언, 미쳤어?”그런데 갑자기 박시언이 앞으로 달려들었고 김하린은 깜짝 놀랐다. 이윽고 침대 위에서 박시언이 그녀를 덮친 자세가 되었다.문간에서 희미한 빛이 박시언의 몸 위로 쏟아져 들어와 왠지 모르게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김하린은 순간 숨이 멎을 뻔하다가 다시 침착함을 되찾았다.“뭐 하는 거야?”“저녁에 어디 있었어?”“친구랑 저녁 먹었어.”“어느 친구?”김하린은 얼굴을 찡그렸다.“내가 너한테 일일이 말해야 할 의무는 없지 않아? 잊지 마, 우리는 단지 필요로 서로를 이용하는 것뿐이야.”“그래?”박시언이 피식 웃자 김하린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고 곧 박시언이 그녀의 잠옷을 찢어버렸다.“법적으로 넌 내 아내니까 아내의 의무를 다해야 하지 않겠어?”“박시언! 너 미쳤어!”박시언의 힘이 워낙 세서 옷을 완전히 찢으려는 것을 본 김하린은 참지 못하고 그의 뺨을 때렸다.짜악-날카로운 따귀 소리가 울려 퍼지고 방 안은 금세 조용해졌다.김하린이 차갑게 말했다.“박시언, 난 네 장난감이 아니야!”김하린을 덮치고 있던 박시언의 몸이 굳어지고 조금 전 격한 움직임으로 인해 가슴이 들썩이고 있었다.“나가!”김하린이 문을 가리켰다. 화가 난 탓인지 눈가가 다소 붉어져 있었다.박시언은 다시 평정심을 되찾은 후 일어나 김하린의 방을 나섰다.방의 문이 닫히는 순간 박시언은 미간을 꾹 눌렀다.미친 거야,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짓을.곧바로 박시언은 뒤돌아 손잡이로 손을 뻗었지만 망설이다가 결국 들어가지 못했다.방 안에서 김하린은 조금 전
#전생에 박시언과 결혼한 후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배부터 사로잡아야 한다는 최미진의 말을 듣고, 물에 손도 담그지 않던 그녀는 온갖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하지만 결국 박시언은 그녀의 손맛을 맛보지도 못했다.그 또한 박시언이 소은영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겠지.아침 식사가 준비되고 박시언은 자신의 몫이 없자 미간을 찌푸렸다.“내 거는?”“먹고 싶으면 직접 만들어 먹어.”김하린이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역시나 박시언이 화를 냈다.“김하린!”김하린은 이를 무시하고 빵을 냠냠 먹었다.더 이상 박시언을 좋아하지도 않으니 굳이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난 다 먹었어.”김하린이 다 먹은 접시를 부엌에 가져간 다음 가방을 챙겨 문을 나서려던 찰나 박시언이 물었다.“어디 가?”“오전에 수업 있어.”“째.”“박시언, 미친 거야?”김하린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아침부터 박시언은 유난히 삐뚤어진 모습을 보였다.유미란에게 휴가를 주더니 그녀 혼자 아침밥을 차리게 하고 이제는 수업까지 가지 말란다.잠시 후 박시언은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 땅은 어떻게 된 거야?”이게 목적이었구나. 김하린은 박시언이 물어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어쩐지 오늘 이상하게 굴더라니 전부 다 이득을 보기 위해서였나.김하린이 말했다.“그 땅 이미 팔았어.”“팔아? 누구한테?”“그건 내 자유니까 굳이 당신한테 설명할 필요 없잖아.”“김하린!”박시언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그 땅값이 얼마인지 알아?”“몰라. 그저 내 손에서 오랫동안 썩히느니 빨리 팔고 싶었어.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당연히 팔지.”“너 진짜!”김하린은 자신 때문에 화를 내는 박시언을 바라보면서 은근히 통쾌했다.“왜 그러세요, 대표님? 전에는 그 땅 하찮게 여기셨잖아요. 이제 그 가치를 아셨어요?”박시언은 화를 꾹 참았다.“대체 누구한테 팔았어?”김하린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본 박시언이 다시 물었다.“그 땅이 녹지로 지정될 거란 걸 이미 알고 있었어?
그 일에 관해서는 김하린도 할 말이 없었기에 박시언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했다.“알았어, 갈게.”‘어차피 내 돈 쓰는 것도 아닌데 뭐.’박시언은 그녀 몰래 입꼬리를 씩 올렸다.백화점에 도착한 후 김하린은 외관 설계와 인테리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곧 있으면 쇼핑 거리를 세워야 하기에 기존에 있는 것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었다.그렇게 한참을 둘러보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손을 잡아 왔다. 이에 백하린이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옆을 보니 거기에는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있는 박시언이 있었다.“뭐 하는 거야?”“사진 찍게 손잡는 거잖아.”박시언은 멀지 않은 곳에서 카메라를 들고 두 사람을 찍고 있는 파파라치 쪽으로 고개를 까딱했다.김하린은 그의 고개를 따라 파파라치를 힐끔 보고는 순순히 손을 맞잡았다.그때 박시언이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들더니 카메라를 켰다.“또 뭐 하려고?”“셀카.”“...”김하린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걸 보던 박시언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그녀를 향해 물었다.“웃을 줄 몰라?”그녀도 처음에는 웃으려고 했지만 함께 나란히 서 있는 박시언의 얼굴을 보고는 도저히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하지만 결국 그의 닦달에 잔뜩 굳어버린 입꼬리를 조금 위로 올렸다.그러나 차라리 무표정한 얼굴이 더 나았다.박시언은 찍힌 사진을 보고는 혀를 한번 차더니 휴대폰을 다시 집어넣었다.김하린은 사진 타임이 끝난 건가 싶어 곧바로 매장에 들어가 옷을 골랐다.어차피 박시언의 돈이라 그녀는 원하는 만큼 골랐다.오후, 박시언은 김하린을 데리고 조용한 카페 안으로 들어와 디저트를 주문했다.김하린은 오늘 쇼핑한 물건이 꽤 마음에 드는 듯 기분 좋은 얼굴로 디저트를 먹었다.그 모습이 어쩐지 마음 한편이 따뜻해져 박시언은 휴대폰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반만 내놓은 채 그녀와 셀카를 찍었다.찰칵하는 소리에 김하린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방금 뭐한 거야?”박시언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담담하게 대답했다.“디저트가
‘이렇게 인상만 찌푸릴 거면 차라리 같이 나가자는 얘기를 하지 말던가.’김하린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끝끝내 뱉어내지는 않았다.박시언은 고개를 홱 돌리며 다시 시동을 걸었다.“집에 가면 오늘 쓴 돈 나한테 보내.”그 말에 김하린이 미간을 찌푸렸다.“먼저 나오자고 얘기한 건 너였잖아. 그런데 내가 돈까지 써야 해?”“이건 단지 연극일 뿐이라는 거 잊지 마.”“와이프한테 남편이 이 정도도 못 해줘?”“우리는 계약 부부라며.”김하린은 말문이 막혔다.오늘 박시언의 돈 좀 써보려고 했던 그녀가 멍청했다. 그가 손해 보는 일을 할 리가 없는데 말이다.“쪼잔하게.”김하린은 숨을 깊게 들이켜며 화를 가라앉혔다.그러다 다시 생각해보니 차라리 이러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에게 조금이라도 빚지는 건 싫었으니까.더 빌리지.집에 돌아온 후 휴대폰을 켜보니 기사가 하나둘 쏟아졌다. 그리고 그중에는 그녀와 박시언이 함께 쇼핑하는 사진도 있었다.[모건 그룹 대표 부부 다정히 손잡고 쇼핑][모건 그룹 대표 아내를 보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져.김하린은 많고 많은 제목 중에서 [모건 그룹 대표, 사랑하는 아내의 쇼핑을 위해 거액을 들이다]라는 제목을 보고는 기가 막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거액을 들이기는 무슨.’그녀는 주방으로 들어가 손을 씻는 박시언을 바라보며 말했다.“요즘 내 주머니 사정이 조금 어려워서 그런데 돈은...”“할부로 갚아도 돼.”김하린은 돈을 꼭 받고야 말겠다는 그를 보며 혀를 한번 차다가 곧바로 가방 안에서 카드를 꺼내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자, 됐지?”‘이럴 줄 알았으면 목걸이는 사지 말 걸 그랬어.’“그래.”박시언은 담담하게 대답하고는 다시 할 일을 시작했다.“직접 요리하게?”김하린이 물었다.“아니면?”유미란이 없는 지금 그는 직접 요리해야만 했다.김하린이 하는 요리는 먹을 게 못 된다고 생각했으니까.‘내 음식 솜씨는 못 믿겠다 이거지?’김하린은 그의
다음날.학교 게시판 앞에 학생들이 가득 몰려있다.이제 막 학교에 도착한 김하린은 들어와서부터 줄곧 따라다니는 학생들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그때 한 남자가 큰소리로 외쳐댔다.“뭘 봐! 당장 안 꺼져?”그는 게시판에 붙여져 있는 것들을 거칠게 뜯어냈다.김하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앞으로 걸어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큰 목청의 주인을 발견했다.한태형은 인상을 쓴 채로 손에 든 것들을 사정없이 구겼다.사람들은 김하린의 모습을 보더니 흠칫하며 하나둘 자리를 피했다. 그러다 그녀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후 계속해서 그녀 쪽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김하린은 한태형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며칠 안 본 사이에 왜 또 이렇게 성질이 포악해 진 거야?”“웃어? 너는 이걸 보고도 웃음이 나와?”한태형은 손에 든 것을 그녀에게 던져주었다.김하린은 잔뜩 구겨진 사진을 천천히 펼쳤다. 그러자 거기에는 속옷을 입은 채 섹시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낸 그녀가 있었다.게다가 얼굴 옆에는 [원조교제], [클럽 죽순이], [부정입학], [걸레] 같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김하린은 몇 초간 보더니 그 사진을 한태형을 향해 흔들었다.“이것 때문에 화난 거야?”“그게 아니면 내가 화낼 이유가 뭐가 있어? 김하린, 너는 그딴 걸 보고도 화가 안 나? 멀쩡한 척하는 거야 뭐야.”화가 머리끝까지 난 한태형과는 달리 당사자인 김하린은 태연한 얼굴이었다.“딱 봐도 합성이잖아. 그리고 여기 적혀 있는 것 중에 나와 관련된 거 하나라도 있어? 누가 나 학교에서 내쫓으려고 일부러 이런 짓 하는 게 뻔한데 왜 화가 나?”김하린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 사진을 가방 안에 넣었다.한태형은 문득 얼마 전 클럽 입구 앞에서 김하린이 사진을 찍혀 일어났던 소동이 떠올랐다.“X발, 대체 누가 이딴 짓을 하는 거야? 잡히기만 해봐. 가만 안 둬!”한태형은 험악한 얼굴로 이름 모를 상대에게 경고를 날렸다.김하린은 그 모습을 보며 그저 가볍게 웃기만 했다.만약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