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이미 결혼한 몸이다!배은란은 절대 지조 없는 여자는 되지 않을 것이다.배은란은 서민용에게서 걸려온 3통의 부재중 전화를 보니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서민용에게 너무 미안해 다시 전화를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문자를 보냈다.[나 오늘은 바빠서 스튜디오에서 야근해야 해. 내일 들어갈게.]서민용은 곧바로 답장을 보내왔다.[알았어.]그가 더는 묻지 않자 배은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돌연 다리에 힘이 풀린 그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복잡한 마음에 침대 옆에 있는 서철용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이게 옳은 일이 맞는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정말 방법이 없었다.서민용과 함께 해외로 나갔던 3년 동안, 그녀는 각지 모든 병원에 가보았지만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간 결국 오장육부가 서서히 고장 나 죽고 말 것이다.현재 서민용은 약물에만 의존하여 겨우 생명의 끈을 유지하고 있다.배은란은 서철용을 제외하고는 부탁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전연우는 장소월이 입원한 층 전체를 독점했다.이틀 후 의식을 회복한 장소월은 병원 침대에 앉아 종양 전문의들에게 말했다. “수술은 하지 않겠습니다.”“장소월 씨, 걱정 마세요. 저희가 직접 소월 씨의 수술을 집도할 거예요. 소월 씨가 치료에 협조하기만 한다면 높은 확률로 수술에 성공할 수 있어요... 아니면 몸은 정말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질 거예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직 젊은 나이잖아요...”장소월의 백옥 같은 얼굴엔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았고, 눈동자는 공허하게 텅 비어 있었다. “살고 싶지 않아요.” “수술 안 하겠어요. 아무도 저한테 강요할 수 없어요.”“장소월 씨... 그건...”“됐어요! 다들 나가요!” 전연우가 문을 걷어찼다.사람들은 모두 화들짝 놀랐다.그들이 나간 후, 전연우는 더는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고 장소월에게 가까이 다가가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대
“그들을 위해 복수하고 싶다면 몸 회복하고 직접 날 죽여. 그렇지 않으면... 다음은 인씨 가문이 될 거야.” 잔인한 말을 내뱉은 뒤, 전연우는 얼음처럼 날카롭게 번뜩이는 눈으로 문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 가능한 한 빨리 수술을 준비해 주세요. 거부한다면 수술대에 묶어요.”전연우는 말을 마친 뒤 병동을 떠났다.그녀의 말은 모두 강영수를 위해 복수를 하겠다는 말뿐이었다. 전연우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르다간 무슨 일을 저지를지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문밖에서 전연우가 경호원에게 지시했다.“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똑바로 감시해.”“네, 대표님.”사무실 안.서철용은 장소월을 치료하고 그녀가 무사히 평화롭게 살게 해주는 것만이 그녀에게 속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창문 앞에서 전연우가 담배에 불을 붙이자 서철용은 환풍구를 열어 연기를 내보냈다.“네 마음이 안 좋다는 거 알아. 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졌으니 해결할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어.”“지금은... 정말 너답지 않아.”전연우가 물었다. “제일 빨리 할 수 있는 수술 시간은 언제야?”서철용은 손에 든 서류를 닫으며 말했다. “내일이야. 오늘 밤부터 금식해야 해.”전연우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끄고 몸을 돌려 그와 마주 섰다. “내일 수술의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돼?”“...”서철용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네 글자 내뱉었다.“십 퍼센트.”겨우 10%?서철용은 입술을 앙다물고 일어나 그에게 걸어갔다. “이미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고 종양이 뇌신경을 누르고 있어. 만약 수술 중 조금이라도 사고가 나면...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어. 그리고...”죽을 수도 있다!“모든 알 수 없는 변수를 차단할 수는 없어... 그래서 나도 단언은 못 해.”“최선을 다해 소월 씨를 살리겠다고 약속할게.”전연우가 깊게 어둠이 내려앉은 눈으로 말했다.“왜 암에 걸린 거야? 이미 자궁 적출 수술도 받았잖아?”서철용이 대답했다. “원인을 설명하기 어려운 병
병실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장소월이 집어던진 물건들이 여기저기 깨지고 부서져 있었다. 또한 바닥 군데군데에 피가 고여 있어 간호사가 청소하고 있었다.장소월은 다행히 의식을 찾았다. 하지만 환자복 전체가 피로 얼룩졌고, 몸 상태는 더욱 악화된 것 같았다. 그가 자리를 비운 그 짧은 시간 안에 이 지경이 되었다니.전연우는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고통이 전해졌다.장소월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발버둥 쳤다.“난 수술 안 할 거야. 이거 놔...”그녀의 팔은 간호사에 의해 단단히 압박되어 있었다.그녀는 문밖에서 들어오고 있는 사람을 보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넌 나가. 보기 싫어.”전연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섞인 복잡한 얼굴로 말했다.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수술해.”장소월은 그를 쳐다보며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살아서 수술대에서 내려오지 못하도록 저주할 거야.”장소월은 전연우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고통을 보았다.그녀의 죽음 때문에 슬퍼하는 걸까?그건 장소월에게 있어 조롱거리일 뿐이었다.그녀는 전연우는 절대 감정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전연우가 말했다.“앞으로는 그런 말 하지 마. 넌 괜찮을 거야.”“그 말... 날 위로하려는 거야, 아니면 널 위로하려는 거야? 나보다 내 몸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어...”“전연우, 내가 언젠가 죽으면... 꼭 널 저주할 거야...”“널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모두 떠나고...”넌 평생 고독하게 살다가 쓸쓸하게 죽어가게 만들 거야...장소월은 말을 채 끝내기 전, 진정제 약효 때문에 잠이 들었다.모두가 그 말을 들었지만 단 한 사람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수간호사님 준비됐어요.” 함께 온 간호사가 머리를 자르는 도구를 들고 옆의 수간호사에게 건네주었다.수간호사는 난감한 얼굴로 전연우의 옆으로 걸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보호자분, 수술 전에 아가씨의 머리를 깎고 두개골을 열어 피를
서울 감옥.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음산하고 어두운 감옥 안, 허름하기 그지없는 누더기를 걸친 송시아가 손발이 꽁꽁 묶인 상태로 깨어났다.강지훈은 단추를 목 끝까지 잠근 검은색 제복을 입고 눈까풀 위 흉측한 흉터를 번뜩이고 있었다.“오랫동안 그 사람과 함께 다녔는데도 아직 처녀라니. 생각지도 못했네.”“너희들, 데려가서 씻겨. 죽게 만들면 안 돼.”“네. 알겠습니다.”“나쁜 자식.” 송시아는 돌연 분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남자에게 반 발자국도 다가서기 전에 곤봉이 그녀의 다리를 후려쳤다. 송시아는 비참한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럽게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강지훈은 모자를 눌러쓴 채 힘없이 널브러진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지금까지 내 영역에서 감히 나를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어. 네가 처음이야.”“나는 네 주인님의 여자고, 너는 그 사람의 개에 불과해. 전연우가 알면 널 절대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강지훈은 수많은 여자들과 놀아봤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몸을 팔러 나온 창녀들이었고, 심지어 그는 인씨 가문 고고한 사모님과도 함께 뒹굴었었다. 송시아는 그가 처음으로 손대본 처녀였다. 하여 침대 위에서 그 여인들에게 했던 거친 방식에 비하면, 송시아에게는 최대한 자비를 베풀고 있었다.“...다시 한번 그런 말을 지껄이면 내가 직접 그 입을 꿰매 버리겠어.”“...”“처음 가진 잠자리라고 하니, 이제부터 넌 내 사람이다. 반경 수십 킬로미터 내엔 사람 한 명 없는 황량한 들판뿐이니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고분고분 내 말을 잘 듣기만 하면 나가서 놀게 해줄게.”그가 떠난 후 송시아는 다른 교도관들에게 끌려 검은 타일로 둘러싸인 큰 욕조가 있는 곳으로 끌려갔다. 방금 전 그곳보다 크게 다르지 않은 열악한 환경이었다.그곳에 가는 동안 송시아는 오랫동안 성욕에 굶주린 남자들에게 수차례 모욕을 당했다. 욕조 안, 송시아는 몸의 더럽혀진 곳을 씻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 어느 때에도 강지훈과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고는 전
“난 그 사람처럼 너그럽지 않아...”조금 전 몸싸움 때문에 송시아의 치마가 길게 찢어졌다. 그렇게 그녀의 몸은 또다시 남자의 시야에 고스란히 들어왔다...그는 간결한 움직임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테이블 위에 엎드리게 했다.그가 거칠고도 폭력적으로 그녀의 몸속을 관통했다......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끊임없이 쏟아진 비가 서울시 모든 것을 깨끗이 씻어냈다.청연사.기성은은 언젠가 전연우가 이런 곳에 오게 될 거라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그는 독실한 신자처럼 이 황금 불상 아래 무릎을 꿇고 있었다...놀랍게도 이 모든 것은 장소월을 위한 것이었다!기성은이 보기에 그는 세상의 경제 명맥을 장악하는 큰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지, 고작 여자 한 명 때문에 이토록 비참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장소월도 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그 당시 강영수는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었다. 기성은은 그가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기적적으로 다시 깨어났다.그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장소월는 그를 위해 매일 같이 이곳에 와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대표님은 알고 있었지만 결코 막지 않았다...왜냐하면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기 때문이었다.그는 종래로 그와 같은 것들을 믿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전연우는 이것 말고는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기성은이 더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대표님, 이런 건 소용없습니다.”“한 번 해보지 뭐. 만에 하나라도 소용이 있을 줄 어떻게 알아?”장소월의 수술은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졌다. 서철용은 그녀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어 수술대에서 내려오면 완치되더라도 영구적인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그녀는 지금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로 수술실에 누워있다...전연우는 수술 동의서에 사인한 순간부터, 길을 잃은 것 같았다...전연우는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장소월이 죽은 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항상 이성적이고 현명했던 전연
기성은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 길을 선택한 이상 이젠 돌이킬 기회가 없다.당시 장소월을 제거하고자 독한 일을 행했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을 뼈에 사무치게 후회하고 있다...하늘이 어두워지자 화려하고 정갈한 전당 안에서 타오르던 촛불이 바람에 흔들렸다. 문 밖의 우중충한 날씨를 보니 곧 폭풍이 몰아칠 것만 같았다.전연우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었다.기성은이 마지막 전화를 받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왔다.“대표님, 병원 측에서 아가씨의 수술이 거의 끝나간다고 전해왔습니다. 저희 이제 돌아가 봐야 합니다.”전연우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깊은 눈동자 아래에는 이전의 불안감보단 차분함이 내려앉아 있었다.“지금 몇 시야?”“저녁 8시입니다. 저희가 병원에 도착하면 아가씨의 수술이 거의 끝나있을 겁니다.”절 담장 뒤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한 명은 주지 스님이었고, 다른 한 명은 7, 8살 남짓한 어린 동자 스님이었다.“사부님... 저분 우리 절에 기부하신 분 아닌가요?”“그렇게 돈이 많은데 왜 아직도 고민이 있는 걸까요?”“이 세상 모든 사람 누구에게나 삼천 가지 번뇌가 있는 법이란다.”“알겠습니다, 스승님.”하산길은 울퉁불퉁 웅덩이가 가득 파여 있어 걷기 쉽지 않았다.차는 거세게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빠르게 고속도로를 달렸다.병원에 도착한 뒤에도 전연우의 몸에선 절에서 피운 향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그가 병실로 들어가려고 할 때, 기진맥진한 얼굴로 벽에 기대어 안을 살펴보고 있던 서철용이 그를 막아 세웠다. “수술은 잘 됐어. 이제 깨어날 수 있느냐에 달렸어.”“잘 됐으면... 됐어.”“이거 무슨 냄새야?” 서철용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청연사에 가서 향이라도 피운 거야?”전연우가 그런 일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과거 그에 대한 서철용의 인식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리는 순간이었다....서철용은 그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삼켜버리고는 화제를 돌렸다. “수술 끝났으
그 말을 들은 배은란은 깜짝 놀랐다.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배은란은 말없이 서 있었다. 이렇게 나약한 상태의 그를 본 적이 없는 배은란의 눈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올랐다.배은란은 마음속 무언가와 싸우는 듯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결국... 그녀는 매정하게 그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배은란이 병실을 나서려 몸을 돌린 순간, 돌연 서철용이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그녀의 몸이 그의 품 안으로 포개졌다.몸에 가해진 무게를 느낀 서철용은 순식간에 눈을 떴다. 그의 품에 안겨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여자와 마주한 그의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형수님, 내가 잠든 사이에 뭐 하려고 한 거야?”“헛소리하지 마.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이거 놔.” 배은란은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한 손이 더 추가되어 그녀의 허리를 꼭 감싸고 품에 단단히 가두었다.“제멋대로 나한테 안겨놓고 이제 와 어딜 도망가려고? 응?” 서철용이 그녀의 옷 속으로 손을 뻗었다.“윽.”“왜 그래?” 서철용은 이마를 찌푸리는 배은란을 보고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배은란은 그에게 무언가를 들킬까 봐 두려운 마음에 재빨리 옷을 여미고는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네가 가져다 달라고 한 음식, 탁자 위에 올려놨어. 별일 없으면 다시는 나한테 연락하지 마.”서철용은 몇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 그녀를 벽에 밀쳤다. “나한테 보여주고 가.”“나한테 손대지 마! 이거 놔!”서철용은 한 손으로 그녀를 사무실 문에 고정시켜 놓았다. “금방이면 돼.”“...제발 이러지 마.”“형이 너한테 손댔어?” 서철용은 배은란의 허리에 남아 있는 뜨거운 물에 덴 상처와 멍 자국을 보았다.배은란은 힘껏 그를 밀어냈다.“그만해!”“나랑 자려고 했던 목적은 이미 달성한 거 아니야? 내 일에 참견하지 마. 너랑은 상관없어.” 서철용은 어두운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처 치료해야 해.”그가 두려움과
배은란은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서철용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몰랐다. 그녀는 마음속의 불만을 억누르고는 약을 다 바르자마자 옷을 입고 그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나한테는 잘해줘.” 배은란은 눈을 내리뜨리고 말했다. “...우리 일은 비밀로 해줘.”그녀는 하면 안 되는 일을 한 자신이 수치스러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손윗사람으로서 말하는데, 너도 이제 나에 대한 마음을 접고 널 좋아하는 여자를 만났으면 좋겠어.”“네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었지...”“우리 다시는 연락하지 말자.”말을 마친 배은란은 재빨리 휴게실에서 뛰쳐나와 소파에 놓인 가방을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배은란은 오늘 직접 차를 운전해 이곳에 왔다. 입고 있던 옷에서는 여전히 연고 냄새가 강하게 나고 있었다.그녀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호텔에 들러 화상 부위를 피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모두 씻어냈다.그와 관계를 갖게 된 뒤로부터 배은란은 늘 여분의 비슷한 종류의 옷을 차에 넣어두었다.서민용의 눈은 아직 회복되지 못했다. 하지만 후각은 예민해져 있어 언제든 흔적을 알아챌 수 있었다.배은란이 호텔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니 거의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평소 퇴근 후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기도 했다.배은란이 현관으로 들어왔을 때, 도우미가 국 한 그릇과 약을 들고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신발을 갈아 신은 뒤 서둘러 도우미에게 걸어갔다.“아직도 약을 안 먹어요?”“하루 종일 식사도 안 하셨어요. 사모님께서 설득해 보세요. 계속 이러시면 버티지 못할 거예요.”“알았어요. 약은 저한테 주세요. 나중에 먹을 수 있게 죽을 끓여주시고요.”“알겠습니다, 사모님.”배은란은 약을 들고 2층 안방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문 앞에서 심호흡하며 감정을 추스른 뒤에야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민용 씨, 몸이 또 불편한 거야? 왜 하루 종일 밥을 안 먹었어? 도우미한테 죽 끓여 달라고 했어. 조금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