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 Chapter 11 - Chapter 20
693 Chapters
제11화 돌부처와도 같은 인내심
이 게임이 점점 더 재밌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한약을 후후 불어 우아하게 한 모금 마셨다가 1초도 되지 않아 그대로 뿜었다. 언제 돌아왔는지 배인호가 문 앞에서 내가 한약을 뿜는 걸 보고 있었다. 그는 더럽다는 듯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못 마시겠으면 마시지 마!”“무슨 상관이에요.”나는 입을 닦으며 이상해서 배인호에게 물었다.“왜 또 왔어요?”배인호는 넥타이를 풀었다. 그 단순한 동작에서도 멋짐이 묻어 나왔다.“내 집에 내가 오는 데 문제 있어?”배인호는 나의 맞은편에 앉아 무표정으로 말했다.“그러네요.”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약을 계속 마셨다. 하지만 너무 썼다. 나는 아메리카노에도 시럽을 넣어 먹지 않았는데 이건 적응 할 수 없이 썼다. 한약을 넘기기도 전에 또 뿜었다. 이번에는 거리 조절을 잘 못해 더 멀리 뿜었고 배인호의 얼굴과 셔츠에도 튀었다. 배인호의 얼굴은 바로 굳었고 차갑게 나를 노려보았다.나는 너무 써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배인호의 속눈썹에서 떨어지는 한약을 보며 나는 티슈로 그의 얼굴을 닦아주려 했다. 이건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매너였다.배인호는 그런 나의 손을 쳐냈다. 그의 짜증스러운 눈빛에 나는 멈칫했다. 익숙한 씁쓸함이 느껴졌다.“미안해요. 약이 너무 써서.”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손에 있던 티슈를 버렸다.배인호는 대답도 하지 않고 바로 일어나 옷을 갈아입으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때 윤 집사님이 다가와 깔끔하게 주변을 정리했다. 그녀는 부지런하고 세심하게 일 했다.“식사 준비해 주세요.”나는 정리를 끝낸 윤 집사님을 기다렸다가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가서 바삐 움직였다.나는 코를 막고 남은 한약을 마저 마셨다. 밥만 잘 먹는 거로는 살을 찌 울 수 없었다. 일단 몸이 먼저 건강해야 살이 찔 수 있을 것이다.나는 약을 마시고 위층의 연습실로 가서 오래 움직이지 않아 먼지가 쌓인 첼로를 꺼냈다. 그리고 혼자 첼로를 켰다. 낮고 우아한 첼로를 켜는 소리가 연습실을 가득
Read more
제12화 강제 키스
나는 깜짝 놀랐다.“왜? 무슨 일인데 이렇게 급해?”“정아하고 배인호가 싸우고 있어. 네가 빨리 와야 해. 주소 보내 줄 테니까, 빨리빨리!”민정이는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무 옷이나 걸치고 집을 나섰다.내가 클럽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두 사람은 룸에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의 신분 때문에 금방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것이다.내가 온 것을 보고 민정이는 나를 잡아당겨 정아 옆에 앉혔다. 정아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큰 눈으로 배인호를 째려 보고 있었다. 둘은 마치 철천지원수 같았다.배인호도 분노를 삼키지 못하고 맞은 편에 앉아 씩씩거리고 있었고 옆에 노성민은 겁을 잔뜩 먹고 나와 배인호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형수님, 죄송해요. 친구분이 오해한 것 같아요. 사실 그 여자들은 제가 데리고 온 거고 인호형이랑 아무 관계도 없어요.”노성민은 배인호 보다 4살 어렸다. 처음으로 나를 형수님이라고 부른 것 같다.“헛소리하지 마. 그 여자 가슴에 네 그 인호형이 얼굴을 아주 파묻고 있더만, 그래도 아무 사이 아니야?”정아는 노성민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노성민은 거의 울 것 같았다. 그는 처음으로 암컷 사자를 맞닥트린 것 같았다. 아주 무서워 죽을 것 같지?배인호는 싸늘하게 정아를 훑어 보고는 나를 쳐다봤다. 나의 말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나는 그의 눈빛을 못 본 척 정아를 다독였다. “정아야, 괜찮아. 네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 한 거야. 분명 그 여자들은 성민 씨가 부른 걸 거야. 인호 씨 눈이 얼마나 높은데, 그런 가슴만 큰 여자들 안 좋아해.”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아의 남편이 그녀를 배신한 줄 알것이다.룸에는 정적만이 돌았다.“지영아, 너 진심이야?”정아는 민정이를 한번 보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 물었다. 그녀도 내가 배인호와 이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이렇게 침착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정아도 오늘 밤은 참지 못하고 배인호를 욕했지만, 그를 수년간 사랑한 나의
Read more
제13화 덜미가 잡히다
모든 것이 통제 불능일 때 배인호가 갑자기 멈추고 나를 풀어줬다. 눈빛 속에 욕망이 썰물처럼 모두 빠져나갔다.나는 허무하게 그를 쳐다보았고 그는 차갑게 웃고 있었다.“이것 봐 다 숨기고 있으면서.”“뭐라고요?”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이러면서 이젠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배인호는 손을 뻗어 악랄하게 나의 입술 끝을 문질렀다.“그냥 친구들 앞에서 연기하는 거였어. 허지영, 너 지금 밀당하는거야?”그는 이런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나를 떠보려는 것이다. 나는 빠르게 이성을 되찾고 벗겨진 옷을 주어 입었고 침착해지려고 애를 썼다.“당신한테 내가요?”마음속에 비참하고 초라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했다.“배인호, 난 당신하고 밀당 같은 거 하고 싶은 생각 없어. 당신은 지금 잠깐 차가운 내가 적응이 안 되는 거야. 마치 충성스러운 강아지가 갑자기 당신한테 꼬리를 흔들지 않는 것처럼. 당신도 기분 나쁠 순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예요.”“네가 개야?”배인호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나의 비참함에 아무런 반응도 없는 것 같았다.“당신도 알고 있잖아.”나는 흐트러진 옷깃을 잡으며 고개를 떨구고 담담하게 말했다.배인호가 순수한 남자애도 아니고 내가 마음속으로 그를 좋아하는 걸 모를리가 없다. 이미 나는 여러 번 그에게 고백했다. 그는 한 번도 중요하게 생각한 적 없었다. 그를 좋아하는 여자는 많았고 그 여자들과 내가 유일하게 다른 점은 어쩌다 운 좋게 그와 결혼을 했다는 것뿐이다. 배인호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는지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샤워해.”말을 마치고 그는 욕실을 나갔다.나는 신속하게 욕실 문을 잠그고 거울 앞으로 갔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나를 봤을 때 정말 뺨이라도 한 대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왜 거기서 그런 거지? 배인호의 이런 장난에 나는 또 흐트러졌다.나는 3분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다. 빨리 샤워를 마치고 침대로 가 잠에 들었다.배인
Read more
제14화 이혼을 설득 해 주세요
이우범은 함께 밥을 먹자는 말에 조금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는 만나도 인사도 안 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그래도 친한 친구의 일이고 그도 배 씨 가문과 허 씨 가문의 관계가 깊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그래요. 저녁 식사로 하시죠. 저녁에 시간 있습니다.”“좋아요! 그럼, 제가 아는 카페에서 만나요. 거기 커피도 맛있고 조용해서 얘기 나누기 편할 거에요. 여기 카톡 추가하면 위치 보내 드릴게요.”나는 열정적으로 핸드폰을 건넸다.이우범은 핸드폰을 한번 보더니 볼펜과 펜을 내밀었다.“추가는 하지 않을 겁니다. 여기에 써주세요.”무슨 사람이 이렇게 철벽이란 말인가? 나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다 종이에 휘갈기듯 카페 주소를 적었다.“저녁 8시에 거기서 봐요.”나는 배시시 웃으며 볼펜을 내려놓고 기분 좋게 떠났다.저녁 8시, 이우범은 카페 ‘랑데부’로 가도 나는 없고 서란을 만나게 될 것이다. 둘의 만남이 기대되어 나는 하루 종일 너무 신났다. 이우범과 서란이 만나는 장면이 계속 상상되어 나는 가서 직접 두 눈으로 역사적인 장면을 확인해야겠다.같은 여자를 좋아하다니, 역시 배인호와 이우범은 친구였다. 하지만 이우범이 서란에게 첫눈에 반한 것인지 아니면 알아가면서 좋아하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첫눈에 반한 것이 아니라면 오늘 저녁의 만남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나는 검은색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가발까지 썼다. 저녁 8시쯤 나는 혼자서 카페 ‘랑데부’ 로 갔다.나는 카페로 들어가지 않고 창문으로 엿보았다. 역시 이우범은 이미 도착해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저 자리는 내가 좋아하는 자리인데.그는 심플한 흰 티셔츠를 입고 앞머리는 자연스럽게 내리니 깔끔하고 도도해 몇 살은 더 어려 보였다.서란은? 나는 일하는 곳을 바라보며 그녀를 찾았다. 한참이나 찾았지만 서란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나의 이상한 행동 탓에 이우범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나를 발견하고 일어나서 걸어왔다.
Read more
제15화 시부모님의 방문
“어? 너 다시 시작하려고?”민정이는 놀라며 물었다. “나한테 어울리는 기회만 있다면 당연히 하지. 아니면 내가 뭘 하겠어?”나는 우리 가문의 기업에 들어가서 밑바닥부터 시작해 볼까 고민했지만, 내가 원래 하던 일도 아니고 아직 엄마 아빠도 건강하셨기에 내가 나설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나의 꿈을 펼치고 싶었다.민정이는 다리를 ‘탁’ 치며 말했다.“나도 진즉에 말하고 싶었어. 왕년에 서울대 첼로 여신이 가정주부로 산다는 게 너무 아쉽잖아. 넌 걱정하지 마. 내가 우아한 음악회 있으면 적극 추천할게.”나는 손을 잡으며 말했다.“좋아.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 오늘은 내가 살게. 많이 먹어.”술을 마시고 다들 헤어지고 각자의 집으로 갔다. 나는 이기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와 달라고 했다. 전화를 끊자,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영누나?”고개를 돌려보니 기선우였다.“선우야, 네가 여기에 왜 있어?”“근처에서 알바하고 금방 퇴근했어요. 누나 술 마셨어요?”기선우는 나의 몸에서 나는 술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나는 어지러워 이마를 짚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술기운이 올라와 머리가 더 아팠다.“선우야, 차 운전할 수 있니?”기선우는 대답했다.“네, 누나 불편하시면 제가 운전해 드릴게요.”역시 착했다. 나는 차 키를 기선우에게 전해주고 다시 이기사님에게 전화해서 오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 주었다.“누나... 이거 누나 차에요?”기선우는 앞에 검은색 파라메라 차량을 보고 눈이 반짝였다. 놀라움과 부러움이 묻어났다. 남자는 나이가 많든 어리든 차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나는 울리는 머리를 잡고 대답했다.“응. 내 거야. 네가 내비게이션으로 찾아서 청담동으로 가줄래?”“청담동이요?”기선우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아마 그곳의 집값이 비싸다는 걸 들어 본 모양이다. “뭐 하고 있어? 나 머리 아파 죽을 것 같아.”나는 계속 얼어 붙어있는 기선우의 옆으로 가서 연약하게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이런 건 술기운
Read more
제16화 현명한 어머님
어머님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온다.“인호야, 지영아, 자니?”배인호가 이혼서류를 이불 안으로 잽싸게 감추더니 문을 열었다.“엄마, 늦었는데 아직도 안 주무세요?”“이제 자려고. 그냥 너희 방에 아직 불이 켜져 있길래. 자는지 궁금해서.”어머님과 배인호가 문 앞에서 대화를 나눈다.“어머님!”나도 얼굴에 붙인 팩을 떼어내고는 문쪽으로 걸어가 배인호와 금술 좋은 부부인 척 쇼를 했다.“인호 씨랑 막 잠들려던 참이었어요.”그러면서 배인호의 팔을 끌어안았고 그의 어깨에 달콤하게 기대었다.배인호가 티 나지 않게 나를 흘끔 보더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많이 늦긴 했네. 네 아버지 내일 모레 비지니스 심포지엄에 참석 하러 잠깐 서울에 오신 거야. 호텔에 묵을 생각 없어서 여기서 며칠 지내려고.”어머님이 웃으며 나한테 말했다.어머님은 평소 세종시에 지낸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다.나는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너무 좋아요. 저도 아버님 뵌 지 오래되는데, 요 며칠 오시면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가서 힐링 하는 거예요.”“그래그래, 좋지. 너희들도 얼른 쉬렴, 늦게 자면 안 좋아.”어머님이 몇 마디 더 당부하고는 몸을 돌린다.전생에 내가 크게 착각한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배인호는 집에서 뭐라 하든지 꽂히는 대로 하는 사람이라 내가 최선을 다해 배인호가 나를 사랑하게 만든다면 배 씨 가문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었다.배인호는 서란을 위해 필사적으로 배씨 가문 사람들의 인정과 축복을 얻으려고 했고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가족 간의 정이 그에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만약 나와 어머님과의 관계가 좋았다면, 혹은 내가 아이를 가졌다면, 전생에 게임에서 진 건 내가 아닐 수도 있다.문을 닫고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배인호와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걱정되기 시작하는 문제가 있었다.“소파에서 잘래요 침대에서 잘래요? 아니면 제가 침대 인호 씨가 소파 할래요?”배인호가 아무렇게나 침대에 눕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
Read more
제17화 내가 한짓이야
“어머님, 걱정 마세요. 인호 씨랑 같이 가서 검사해 봤는데 문제 없었어요. 그냥 요즘 그이가 너무 바빠서 집에 잘 못 들어오다보니 계획이 좀 늦어졌을 뿐이에요.”감동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아쉽게도 나에겐 이 집 며느리로 남을 복이 없었다.“네 아빠랑 나 인호 스캔들 보고 여러 번 뭐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집사람인 네가 단속을 더 잘해야 해. 알겠니?”어머님이 당부했다.내가 단속한다 해서 얌전해질 배인호가 아니었고 곧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질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님의 그 진심 가득한 눈빛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알겠어요, 어머니.”대화를 좀 더 나누고는 아버님 어머님과 같이 아침을 먹었다. 배인호가 아침 일찍 나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하지만 마음에 담아두지는 않았다. 지금 내가 배인호에 대한 생각은 단 하나, 그러든지 말든지였다.아침 식사가 끝나자 나는 차를 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우범을 찾아 따져야 할 게 있었다.이우범이 회진을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기회를 잡은 나는 거짓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물었다.“이 선생님, 잠깐 시간 괜찮으실까요?”“바빠요.”이우범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하얗고 청초한 얼굴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다.“저 보기 민망해서 그러는 거죠?”나는 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원망을 쏟아냈다.“배인호를 이혼하게 설득해달라고 했더니 아버님 어머님을 청담동으로 오게 설득하셨네요. 이 선생님이 언제부터 이렇게 정의로우셨을까. 열 채의 절을 부술지언정 한 사람의 혼인은 깨지 않는다 뭐 이런 신념이라도 생긴 건가요?”이우범은 가볍게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담담하게 말한다.“아저씨랑 아주머니가 저한테 배인호와 그쪽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물으셔서 그냥 간단하게 그쪽이 이혼하고 싶어 한다고 했을 뿐이에요.”이 말을 들은 나는 하마트면 병원에서 난동을 피울 뻔했다.이 사람은 인성을 잘생긴 얼굴과 맞바꾼 건가? 나와 배인호 사이의 많고 많은 문제 중에 하필이면 “나 이혼하고 싶어”
Read more
제18화 첫만남
마키아토가 달기는 했지만 그걸 마신다고 연애하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나는 쓰디쓴 아메리카노 같았고 서란은 달콤한 마키아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때때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머릿속으로 내일모레 그녀와 배인호가 만나는 시간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서울시 비즈니스 심포지엄은 오전 9시 반부터 시작되고 서란은 서빙 알바로 일찍부터 회의장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배인호는 문을 통과할 때 그녀를 발견할 것이고 그렇게 큐피드의 사랑의 화살을 맞을 것이다.“서란 씨, 다른 아르바이트해볼 생각 있어요? 과외 알바 소개해 줄까요? 내일부터 가능한데, 페이도 좋고.”서란이 옆자리 테이블을 정리하는 틈을 타 나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서란이 고맙다는 듯 나를 보며 웃어 보였지만 내 제안은 거절했다.“지영 언니, 생각해 줘서 고마워요. 근데 제가 며칠 뒤면 개학이라 내일모레 임시 서빙 알바까지만 하고 학교 가서 등록해야 돼요.”생각해 보니 개학이 다가오긴 했다.내가 한발 늦었다. 며칠만 더 일찍 말을 꺼냈으면 서란이 배인호 앞에 나타나는 걸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하지만 이내 마음이 다시 놓였다. 배인호와 서연 정도의 인연이면 한 번을 막으면 두 번 세 번 더 막아야 할 것이다...“고맙긴. 그냥 갑자기 떠올라서 얘기해 본 거야.”나는 커피를 한 모금 하고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그럼 이 알바도 그만두는 거야?”“네, 개학하면 시간이 안 나서요.”서란이 아쉬운 듯 주위를 한번 빙 둘러본다. 그러고는 보기 좋게 씩 웃어 보인다.“지영 언니, 보고 싶을 거예요.”나는 조금 난처했다. 서란이 이 모든 걸 안다면 아마도 멀찌감치 나를 피했을 것이다.이때 손님이 들어왔고 서란이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제야 마음이 가벼워졌고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섰다.아마 이 저렴한 가게에 다시 올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운명의 수레바퀴는 이미 돌아가고 있었다. 방관자로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다시 한번 감상하는 게 전생보다 쉽지는 않았다.이우범
Read more
제19화 동상이몽
서란은 우리에게 헤드셋을 나눠주러 온 것이었다. 그녀는 공손하게 헤드셋을 우리가 앉은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고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다음은 배인호였고 똑같이 미소를 지었다.배인호는 보기 드물게 그녀를 보며 웃었다. 곧이어 한 마디 덧붙였다.“고마워요.”서란이 그에게 남다른 의미임을 알 수 있었다.서란의 시선이 다시 한번 배인호로 향했고 그 시선에는 경이로움이 묻어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일편단심이라고 해도 이렇게 잘생긴 얼굴을 보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소녀는 “고마워요”라는 말 한미디로 얼굴이 달아오를 만큼 수줍음이 많았다.혹시 반할 가봐 배인호를 보고도 못 본척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이 소소한 에피소드는 금방 지나갔다. 심포지엄이 시작되었고 주요하게는 서울시와 세종시의 연합 발전 및 주변 도시의 발전에 대한 토론과 실현 가능한 방안을 작성하는 것이었다.서울시는 최근 몇 년간 무서운 기세로 발전했고 그중 여러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라 확장이 필요했다.나는 잘 모르는 내용이라 아빠의 견해, 배인호의 생각, 아버님의 의견을 듣는 것 외에 나는 줄곧 홀로 사색에 잠겨 있었다.심포지엄이 끝나고 아빠가 찾아왔다.“영이야, 여긴 어쩐 일이야?”“집에 있으려니까 심심해서 와 봤어.”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아빠는 내가 태생부터 장사나 정치와는 안맞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런 행사를 지겨워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 내가 여기에 있으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인호랑 같이 온 거냐?”아빠가 고개를 돌려 배인호를 쳐다보았다. 배인호는 멀지 않은 곳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동작 하나하나에서 그가 상위자임을 알 수 있었다.기타 비즈니스 거물들과 비기면 배인호는 젊은 편이었지만 이미 그는 빼어난 능력자였다.“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보기 좋네. 집사람으로서 이런 자리에 참석해 그 자리를 잘 지키는 것도 필요해.”아빠가 의미심장하게 당부했다.“사돈, 오랜만입니다.”“아이고 이게 누굽니까. 우리 배 사장님 아
Read more
제20화 기선우의 도움 요청
집에 돌아왔을 땐 이미 어둠이 내린 뒤였다.청담동은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집에 도착했고 나는 이 기사한테 들어가 보라고 했다.아버님 어머님은 집에 있었지만 배인호는 아직이었다.“지영아, 인호는? 같이 들어오는 거 아니었어?”혼자 들어오는 나를 보고 어머님이 물었다.“심포지엄이 끝나고 친구랑 밥 먹었어요. 인호 씨 이미 들어온 줄 알았는데.”나는 놀란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내 추측이 맞다면 배인호는 오늘 집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사냥감이 생겼으니 그의 마음은 진작에 다른 사람한테 가 있을 것이다.아버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들이 세종시로 돌아가기 전인데도 이렇게 밖으로 돌아치는데 돌아가면 이 집을 호텔처럼 사용할게 뻔했다.“인호한테 전화해. 안 받으면 친구들한테 전화 돌려!”아버님이 성질을 내더니 손을 저으며 말했다.어머님이 나한테 눈치를 주었고 나는 전화기를 건넸다.돌아오는 건 욕밖에 없을 텐데 멀리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 일을 어머님께 돌린 건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 같았다. 배인호가 자기 어머니를 욕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배인호의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진 않았지만 이우범 빼고 있어야 할 번호는 다 있었다.어머님이 전화기에 저장된 연락처들 뒤지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서너 사람쯤 연락했을 때 스피커폰으로 노성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인호 형, 형수님 전환데?”“안 받아!”배인호의 목소리에서 짜증이 가득 묻어 나왔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이 모든 걸 똑똑히 듣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이 맞장구를 치는 소리도 같이 들려왔다. 그 사람들한테 난 그저 사랑받지 못해 원망으로 가득한 여자일 것이다.“형 어머니신데...”노성민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맞장구 소리가 갑자기 끊겼고 배인호가 전화를 넘겨받았다.“엄마?”“인호 너 지금 어디야. 저녁은 집에 들어와서 먹어야지. 맨날 이상한 별 볼일 없는 애들이랑 어울리고 다니다 몸 망가지면 어떡해!”어머님은 평소에 부드럽고 차분한 분이셨지만 지금은 기세가 호랑이 같
Read more
PREV
123456
...
70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