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말고 다의 모든 챕터: 챕터 251 - 챕터 260
343 챕터
제251화
서준혁의 말속엔 마치 수많은 가시들이 빼곡히 박혀있는 듯싶었고 그것을 들은 신유리는 입술을 오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할아버지가 주신 물건들은 소소해보여도 몇 백 만원의 가치가 있는 귀한 것이었다.그리고 수많은 물건들 중 섞여있는 팔찌하나를 서준혁이 기억하고 있는지 신유리는 궁금했다.그 팔찌는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실 때 서준혁이 신유리를 데리고 병문안을 갔을 무렵에 준 의미 있는 물건이었다.할아버지는 서준혁의 면전에서 팔찌를 꺼내들어 바로 그녀에게 건네주었고 서준혁의 할머니가 미래의 손주 며느리에게 남겨준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두 사람의 결혼식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아서 미리 준다는 말까지 보탰다.신유리가 받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찰나 서준혁이 그녀 대신 할아버지의 손에서 팔찌를 건네받았다.그리고 그 팔찌를 신유리는 지금까지도 잘 보존하고 있었고 이번에 돌아가 짐정리를 할 때가 돼서야 할아버지한테 돌려줘야 한다는 사실이 문뜩 떠올랐다.[나는 이미 그 집안 며느리가 아니니까, 가지고 있으면 안 되지.]신유리는 팔찌가 담겨있던 상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이것 때문에 서대표님이랑 또 말하고 싶지 않은데... 할아버지가 속상해 하시면 어떡하지?][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게 더 이상하잖아.]“제가 시간나면 바로 돌려드리러 갈 거예요.”신유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서준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표정은 약간 굳어갔다.할아버지는 이번에 돌아와서는 줄곧 서씨네 집에 같이 살고 계셨는데 하정숙과의 사이가 별로 좋지만은 않아 먼저 음식을 잘하는 식당에서 만나자고 신유리에게 제안했다.그들이 약속한 식당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는 진즉에 도착해 그들을 기다리고 계셨다.서준혁과 신유리가 들어서자 할아버지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유리야, 여기 와서 앉아.”할아버지의 말에 잠시 당황하던 것도 잠시 신유리는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할아버지, 몸은 좀 괜찮으세요?”그녀의 말에 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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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2화
화장실에서 돌아오자마자 신유리는 서준혁의 말을 그대로 다 들어버렸다.그녀는 문 앞에서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할아버지는 신유리가 돌아온 것을 보고서야 메뉴판을 건네주며 말을 했다.“유리야, 뭐 먹고 싶은 거 있니?”신유리는 할아버지의 말에 아주 간단한 요리 두 개만 시켰다. 하지만 정작 요리가 나오자 입맛이 없어 젓가락을 잘 들지 않았다.할아버지는 오늘 기분이 좋으신지 평소보다 많은 양의 음식들을 드셨고 그걸 본 신유리는 할아버지가 소화불량이 될 가봐 그만 드시라고 말렸다.“유리야, 입맛이 없니? 아니면 맛이 없나... 다 내 탓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시켰구나.”할아버지는 신유리가 젓가락을 들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천천히 물었다.“저 요즘 체중관리 좀 하려고요. 요리들 다 너무 맛있어요!”신유리가 연신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고 할아버지는 안심된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이렇게 말랐는데 무슨 관리니. 원래 젊은 여자들을 많이 먹고 건강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보기 좋잖아 더욱.”신유리는 할아버지의 말에 얼른 앞에 놓인 음식들을 마저 먹었고 할아버지는 식곤증이 밀려온다면서 집으로 돌아가 휴식하겠다고 말했다.그러나 돌아가기 전 할아버지는 신유리랑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는 듯 자꾸만 했던 말을 반복했다.“유리야, 나 이번에 성남으로 돌아가고는 아무데도 안 갈 거야. 그러니까 나 좀 많이 보러 와주라, 이 할애비는 네 성격이 너무 마음에 드는구나. 준혁이랑은 다르게 싹싹하고 착한 것이 참 좋아.”신유리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주며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그럴게요, 할아버지.”할아버지가 옆에 있던 간호도우미에게 눈치를 쓱 주자 도우미는 얼른 아까 그 선물주머니를 신유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유리씨, 이건 할아버님이 준비하신 선물입니다.”“이거 사려고 할아버님이 직접 안주까지 다녀왔습니다. 유리씨가 거절한다면 많이 상심하실 거예요.”그 말을 들은 신유리는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었다.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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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3화
송지음이 문자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에게서 바로 답장이 와버렸고 문자를 확인한 송지음의 의 눈빛은 쌔하게 변했다.경희영은 그런 그녀의 옆에서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는 먼저 물었다.“괜찮아요?”“아, 네. 괜찮죠 그럼.”송지음은 경희영의 물음에 정신을 확 차리는 듯싶더니 입술을 깨물며 대답해줬다.경희영은 송지음의 이마에 자신의 손을 갖다 대며 계속 말했다.“다 제 잘못 이예요. 여기로 오는 게 아니었는데...”그녀는 경희영의 손을 피하지 않은 채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눈망울에는 눈물들이 그득하게 맺혀있는 모습이었다.그런 송지음의 모습에 경희영은 정말로 마음이 약해져만 갔다.그 시각, 신유리는 서준혁과 헤어진 후 택시를 타고 바로 별장으로 향했다.원래 신유리는 바로 성북으로 가려고 하였지만 할아버지한테서 받은 선물들이 너무 비싼 물건들이라 그곳에 놓으면 불안하여 바로 별장으로 간 것이다.이신일행은 아직 돌아오지 않아 임아중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임아중의 기분은 많이 좋아졌는지 아주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신유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그녀는 신유리 손에 들린 선물꾸러미를 보더니 의아해하며 물었다.“뭐 샀어요?”“아, 산 게 아니라 선물 받았어요.”“어머, 완전 대박이시다. 이런 액세서리들 우리 부모님이 사시는 거 봤는데 완전 비싸던데요?”신유리는 이미 서준혁한테서 이 선물의 가격을 알았던 터라 고개만 끄덕이고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다시 내려가려고 할 때, 마침 이신일행들과 딱 마주쳤고 신유리는 이신과 가벼운 눈인사를 건네고는 바로 서재로 들어가 버렸다.어제 미루고 미룬 꽤나 많은 양들의 문서는 오늘 꼭 처리해야 하는 업무이기에 마음이 급한 모양이었다.하지만 서재로 들어서자마자 할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할아버지는 여전히 다정다감한 말투로 그녀에게 먼저 말했다.“유리야, 준혁이가 집에까지 데려다줬니?”“집에 도착했어요.”대답을 하던 신유리가 잠시 멈칫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혹시 무슨 일 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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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4화
송지음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부릅뜨고는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할아버님, 이게 무슨 말씀이세요?”할아버지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대답했다.“조건은 비서님이 직접 제시하시죠. 합당한 조건이라면 제가 다 들어 드릴 테니까. 준혁이가 아직 젊고 혈기왕성해서 놀기 좋아하는 건 아주 정상이죠. 하지만 지금 선을 좀 넘은 것 같네요. 우리 집에선 절대 동의 못해요!”그의 말에 머리가 띵해진 송지음은 도통 무슨 말인지를 이해하지 못해하는 눈치였고 한참을 멀뚱하게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전... 전 진짜 진심으로 준혁오빠를 좋아해요.”“진심?”할아버지는 콧방귀를 끼며 송지음이 건넨 차를 쓰레기통에 부어버리며 대답했다.“당신의 진심이 우리 준혁이에게 무슨 이득을 줄 수 있나요?”송지음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 할아버지의 말에 말문이 막혀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만 있던 할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언짢아하며 말을 꺼냈다.“송비서, 내가 당신이 어떤 수법으로 유리와 준혁이를 헤어지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당부하죠. 당신은 내 눈에 준혁이 아내로써의 자격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만약 송비서가 정말로 똑똑한 사람이라면 지금 바로 나에게 조건을 제시하세요. 그리고 준혁이에게서 당장 떨어지고.”할아버지의 말에 큰 타격을 입은 송지음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그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는 모습이었다.말을 마친 할아버지가 간호도우미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키고 지팡이를 짚은 채 사무실에서 떠나버렸고 송지음은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그녀는 쓰레기통에 처참히 버려진 자신이 탄 차를 보며 마음이 쓰라리게 아파왔다.[일억?][신유리에게는 일억 짜리 선물도 막 사주면서 왜 나한텐 일억으로 준혁오빠한테서 떨어지라고 하는 거야?]송지음은 자신도 모르게 할아버지가 신유리를 바라볼 때의 눈빛과 표정들이 떠올랐다.신유리는 화인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요 며칠 각종 업무들로 눈 코 뜰 새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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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5화
할아버지의 한숨소리를 끝으로 그들의 대화는 끝이 났다.신유리는 곧장 할아버지를 근처 식당으로 가 점심을 먹고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하지만 점심도 몇 술 뜨지 않은 할아버지는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그는 수차례 서준혁에 대해 말을 꺼내려고 하였고 신유리는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의 말을 돌렸다.신유리가 할아버지와 함께 검사결과지를 찾으러 가는 길에 응급실을 지나쳤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발견했다.그녀는 응급실안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슬쩍 들여다보았다.할아버지의 검사결과는 큰 문제없이 건강하다는 진단이었고 요즘 시차적응을 못했거니와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해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면서 집으로 돌아가 산책도 하고 운동조 적당히 하라고 귀띔했다.신유리는 의사가 내린 처방전을 받아들고는 할아버지에게 말했다.“약 가지러 갔다 올게요. 원장님 할아버지 모시고 밖에서 기다려 주세요.” 할아버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유원장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그녀가 병원 내에 있는 약국으로 가고 있을 때 뒤에서 어느 여자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오빠, 피 뽑는 거 너무 아파 보이는데...”그리고 들려오는 어느 남자의 목소리는 그런 그녀를 담담히 위로해주며 대답했다.“딱 한번이야.”서준혁이였다.“그래도 너무 무서운 데... 준혁오빠는 날 잘 알잖아요.”길을 가던 신유리의 발걸음은 주춤하는 듯 했지만 들려오는 송지음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그러나 신유리는 자신의 빼빼 마른 뒷모습이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송지음은 그런 그녀를 알아보고 일부로 그런 말을 했을지도?그녀는 자신보다 신유리가 더 잘나가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더욱이 자신을 발밑에 깔고 있는 듯 자신만만한 신유리의 자태, 그것이 너무 싫었다.화인에 입사했을 때부터 늘 그랬다. 여자의 촉 이였던 건지 송지음은 신유리를 딱 보자마자 자신과는 결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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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6화
송지음을 보며 뱉은 말이니 어르신이 누구를 겨냥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송지음은 입술을 깨물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눈에 드리운 애원을 간신히 감췄다.서준혁은 차분하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몸이 아파서 회사에서 쓰러질 뻔했어요." 어르신은 성가시다는 듯이 말을 뱉었다. "그건 걔 사정이고, 가족도 친구도 없고 택시비도 없단 말이냐?"어르신은 견결한 태도로 말했다. "류 사부님, 송 비서보고 이 2 만원으로 직접 택시 타고 집에 가도록 하세요!" 굴욕에 가까운 말에 송지음은 온몸을 떨었고 손은 허벅지에 느슨히 떨어진 채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서준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침묵했다. 그의 어두운 눈동자는 더욱 깊어졌다. 그는 신유리를 향해 말했다. “데려다줘야 해?”마치 의견을 묻는 것 같았지만 신유리가 알고 있는 서준혁은 진짜로 데려다 줄 생각이었다면 그렇게 물어보지 않을 것이다. 그냥 그녀가 거절하길 바랐을 뿐이었다. 그녀도 여기 남아 더 이상 송지음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창문을 통해 건네받은 약을 류 사부님에게 줬다. “할아버지 약이에요. 복용 방법도 적혀 있으니 사부님께서 잘 보관해 주세요.”그녀는 아직 분노에 가득 찬 어르신을 쳐다보며 말했다. “할아버지, 전 잠시 후에 미팅이 있어서 그만 가봐야 해요. 편히 쉬세요. 의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다 기억하고 있어요.”어르신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냉담한 태도에 말을 삼켰다. 신유리가 떠난 뒤에야 그는 분노에 찬 눈으로 서준혁을 쳐다보며 말했다. “멍청한 놈, 뭔 짓거리를 한 거냐.”서준혁은 류 사부님한테서 약을 건네받으며 물었다.“할아버지 검사보고서는요?”송지음은 이 상황에서 완전히 배제되었고 그녀는 어르신이 빈정거릴까 봐 두려워서 감히 앞으로 다가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무시당하는 것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그녀는 서준혁의 옷을 살짝 잡아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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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7화
신유리는 송지음이 먼저 와서 시비 걸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외할아버지 일에 대해서는 아직 송지음한테 따지지도 않았는데 그녀 먼저 날뛰기 시작했다.다만 외할아버지 일을 생각하면 이연지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마음이 초조해지더니 신유리의 눈빛은 약간 어두워졌다.그녀는 밖에 얼마 머무르지 않고 바로 공사 현장에 가서 이신을 찾았다.미래의 전시회는 성남에서 처음 열기 때문에 준비 할 때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그러나 신유리가 현장에 가자 이신은 없었고 곡연이 도면을 보며 세부 위치를 검사했다.그녀는 처음에 신유리를 보지 못했는데 누군가 인사를 하는 바람에 발견하고는 고개를 돌려 신유리에게 물었다.“어쩐 일이세요?”“뭐 도와줄 거 없어?”신유리가 말했다. 곡연은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이쪽은 모두 기술직이에요. 언니는 이런 거 모르잖아요. 이신이랑 허경천 걔네는 부서 쪽에 갔어요.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같이 갈 수 있었는데.”“그래. 좀 늦었네.”곡연이 한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런 기술 방면의 일에 대해 그녀는 확실히 잘 몰랐고 게다가 여기에 있으면 되려 짐이 될 것 같았다.신유리는 차라리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곡연에게 말하려 할 때 마침 그녀는 고개를 번쩍 들고 눈을 반짝이더니 약간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신유리는 멈칫하더니 물었다.“왜 그래?” “오늘 건축자재 시장에 가서 자재들을 계약해야 한다는 걸 깜빡했어요.”이번에 버닝 스타는 한 번에 두 개의 주문을 받았다. 게다가 계약 시간까지 비슷하다 보니 다들 바삐 돌아쳤다.그녀가 많이 불안해하자 신유리는 옆에서 물었다.“지금 가도 돼?” “되긴 되는데 여기 물건도 오늘 다 확인해야 해요.”신유리는 눈을 내리깔았다.“그럼 내가 가도 괜찮을까? 특별히 전문적인 문제가 필요했던 게 아니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곡연은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아니에요, 그냥 목재 더미에요. 서류를 줄 테니 그대로 확인만 하면 돼요.” 공사 현장을 나오니 3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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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8화
서준혁은 아주 일찍 도착했다. 그의 어깨에 묻어 있는 물기로 봐서는 밖에 비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알 수 있었다.채리연은 웃으며 손짓했다. “밥 먹었어? 아직 안 먹었으면 같이 먹자.”서준혁은 눈길을 잠시 떨구었다가 검은 눈동자로 무심히 신유리를 쓸어보았다. 신유리는 한창 무표정으로 창밖의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비가 내리더니 서준혁이 오기 전에 더 세졌고 또 점점 더 세질 추세였다. 비가 오는 날에는 택시를 잡기 어려웠다. 신유리는 지난번에 어깨를 다쳐서 요즘에 이신과 임아중에게 운전을 금지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도 택시를 타고 왔다. 그리고 차를 몰고 왔더라도 지금 돌아가기에는 어려웠다. 그녀는 야맹증이라 밤중에 운전하기에는 위험이 컸다. 신유리는 조금 망설였다. 만약 오늘 저녁 돌아가기 힘들면 그녀는 가까운 호텔을 찾아야 했다. 하정숙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무슨 저녁이야, 사람 데리러 온 거지 저녁밥 먹으러 온 것도 아니고.”채리연은 낮은 소리로 일깨워주었다. “정숙아, 말 좀 조심해.”하정숙은 무심하게 말했다.“당신이야 언제나 좋은 사람 역할만 하지. 누구는 이미 여기에 눌러앉아 갈 생각이 없잖아.”그녀는 하마터면 신유리의 이름까지 밝힐 뻔했다. 신유리의 마음속에는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다. 하정숙은 마치 그녀가 끈질기게 서준혁에게 매달리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녀는 단지 신유리를 겨냥하는 것이 습관이 되걸까?신유리는 냉담하게 말했다. “사모님은 왜 송지음을 좋아하지 않는가요? 저는 오히려 두 분이 말씀하는 게 똑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분명 닮은 점이 있을 텐데요.”“무슨 뜻이냐?”하정숙은 낮은 소리로 호통쳤다. 신유리는 이전에 그녀를 존경했다. 하정숙이 화를 내면 즉시 자세를 낮추고 달래주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따지고 보면 하정숙과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반대로 하정숙은 매번 그녀를 볼 때마다 항상 고고한 자태를 하고 있었다. 마치 신유리가 여전히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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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9화
신유리는 속눈썹을 내리깔고 잠시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의 간절한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유리야, 너 지금도 밖이냐?”신유리는 밖에 억수로 쏟아지는 큰비를 바라보면서 할아버지의 말투에 담긴 관심을 알아차리고 잠시 침묵하고 나서 대답했다. “네. 아직 밖에 있어요.”“너 어디냐? 내가 준혁이더러 너 데리러 가라고 할게. 이렇게 큰비에 운전하지 말거라. 위험해.”할아버지는 즉시 말을 받았다. 신유리는 입귀를 실룩였다. 그녀는 할아버지에게 지금 서준혁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눈가로 무심코 스쳐보니 서준혁은 무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눈동자는 온통 냉소로 차 있었다.신유리는 번쩍 놀라 고개를 돌리며 할아버지에게 서준혁이 데리러 올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는데 할아버지의 맹렬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옆에서 또 류 사부님이 그에게 약을 가져다주는 기척도 들려왔다. 신유리는 금세 미간을 찌푸렸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할아버지는 낮은 소리로 기침하며 허약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괜찮다. 유리야, 비가 너무 많이 오니 조심하거라. 그 나쁜 놈과 화내지 말고.”할아버지는 말하기도 힘들어했다. 신유리는 더 말하고 싶었지만 류 사부님이 급급히 전화를 끊었다. 신유리는 눈을 들어 서준혁의 마뜩잖은 시선과 마주했다. 그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앞에서는 철이 든 척 말을 잘 듣던데 넌 피곤하지도 않아?”그의 검은 동공에 차가움이 얇게 깔렸다. “꼭 이렇게 해야 되겠어?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 구걸해야 기뻐?”신유리는 원래 할아버지 때문에 잠깐 망설였던 것마저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녀는 안색도 변하지 않은 채 서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나한테 뭘 구걸했는데? 서준혁, 넌 항상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지.”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맑은 눈은 가게의 따뜻한 색조의 불빛 아래에서 얼마간 부드러워 보였다. 신유리는 조롱하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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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0화
경희영의 말은 관심으로 넘쳤다. 송지음은 그를 보며 얼굴에 황당함이 스쳐 갔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저 저를 여동생으로 생각한다고 하지 않았어요?”경희영은 얼굴에 쓸쓸함이 넘쳤다. 그는 상처받은 표정으로 송지음을 빤히 바라보았다. “네가 원한다면.”말을 마치고 그는 손을 뻗어 송지음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말투에는 마음 아프고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방금 한 말은 너무 충동적이었어. 없던 일로 해줘.”송지음은 입술을 깨물고 눈을 내리깐 채 짧게 대답했다. 그러나 경희영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는 손길은 피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있어서 경희영의 계산적이고 의도적인 눈빛을 보아내지 못했다. 신유리는 백화점에서 한 시간 넘어 기다렸지만 빗줄기는 아직도 작아지지 않았다. 되려 다시 세졌다.그녀는 반 시간 전부터 모바일 택시 앱으로 택시를 잡고 있었지만 주문받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각 상가가 문을 닫기 시작하자 카페직원도 두 번이나 와서 퇴근해야 한다고 전했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11시가 돼갔다. 곧 백화점도 문 닫을 시간이었다. 그녀는 카페에서 우산 한 자루를 빌려 백화점을 나섰다. 원래 내비게이션에 따라 근처 호텔을 잡으려 했지만 비가 생각보다 너무 세게 내리고 있었다. 금방 백화점을 나서 우산을 펼치자마자 큰비가 우산에 구멍이라도 뚫을 기세로 억수로 쏟아져 내렸다. 신유리는 한 손으로는 우산을 쓰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마치 뒤집힐 것 같았다. 땅에 고인 물도 좀 깊은지라 신유리는 발을 내딛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고인 물은 이미 그녀의 발등을 넘었다. 차량 경적소리는 억수로 퍼붓는 빗속에서 그다지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신유리 앞에 멈춰 섰다. 신유리는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후퇴했다. 차창이 내려지더니 서준혁의 차가운 옆태가 드러났다. 그의 목소리는 빗소리에 얼마간이 씻겨졌다. “타.”신유리는 우산을 받쳐 들고 물었다. “어떻게 왔어?”“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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