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말고 다의 모든 챕터: 챕터 241 - 챕터 250
343 챕터
제241화
신유리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근무 시간이고 주위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든 관계로 인하여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서준혁은 신유리를 쳐다보더니, 싸늘한 눈동자로 주위를 훑어보다 다시 시선을 신유리에게로 돌렸다.그는 눈꼬리를 내리더니, 경멸 섞인 말투로 말했다.“본인의 일도 다 정리 못 해놓고, 다른 사람의 일로 동분서주하다니, 신유리 씨는 멍청한 건가요? 아니면 일의 경중을 구분 못 하는 건가요?”신유리는 눈을 감고 잠시 사색을 마친 후 답했다.“이게 제 일입니다.”서준혁이 냉소적으로 비웃었다.“쓸데없는 일 말인가요?”신유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 서준혁의 기분이 별로라 신유리가 뭐라 하던 오답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서준혁의 뒤에 서있던 이석민을 보았다. 이석민은 티 나지 않게 신유리에게 눈치를 주었다.신유리는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오늘 이 화제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네요. 저는...”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등 뒤로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하정숙이 굳은 얼굴로 걸어들어오고 있었는데, 등 뒤에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송지음도 함께였다.신유리는 송지음에게 잠깐 시선을 두었다. 그녀가 기억하건대, 송지음은 항상 혈색이 어두웠고, 창백해 보였다.신유리의 생각은 하정숙의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인해 중단되었다.“이제 집으로 오라는 것도 내가 직접 와서 모셔가야 하는 거니?”서준혁이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서준혁의 검은 눈동자는 먹물을 머금은 것 같았다. 눈동자에는 일말의 온정도 없이 냉담한 시선으로 하정숙을 쳐다보며 답했다.“회사 일이 바빠서요.”사실 서준혁의 외모는 대부분 하정숙에게서 물려받은 거나 다름이 없었다. 날카로운 눈매, 짙은 눈동자, 얇은 입술, 우뚝 솟은 콧날, 날렵한 턱선이 닮았다.이러한 외모는 날카로운 인상을 주기 마련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신중하고 냉담한 분위기마저 있어, 날카로운 분위기를 얼마간 상쇄시켜 주었다.하정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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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2화
송지음이 머뭇거리며 서준혁을 쳐다보았다.“오빠... 어머님이 아침에 갑자기 오셨는데, 오빠가 없어서 어쩔 줄 몰랐어. 어머님 기분 상하게 해드린 것 같네...”송지음은 말하며 서준혁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서준혁에게서 이렇듯 무서운 기세가 풍겨 나오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송지음은 저도 모르게 뒤도 반보 물러났다.서준혁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하정숙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있었던 언짢음이 가시기는커녕, 더 가중된 듯한 표정이었다.신유리는 이석민에게 손으로 까닥거리고는 나갔다.서준혁의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최대한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사실은 신유리의 다년간 업무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현재 그녀는 버닝스타를 대표하여 온 입장이다 보니 서준혁과 척을 지면 더 안 좋았다.신유리가 나가려고 할 때 등 뒤에서 송지음의 처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지음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오빠, 화났어?”이석민은 옆에서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서 송지음에게 말했다.“서 대표님께서 금방 계약하고 오셔서 힘든 것 같은데 송 비서는 일단 서 대표에게 쉴 시간을 주죠.”송지음의 낯빛이 조금 오묘해졌다. 그녀는 서준혁을 쳐다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오빠는 내가 버닝스타를 찾아가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오빠가 다쳤는데,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오빠는 신유리한테 피해가 갈까 봐 책임을 묻지 않는 거야?”송지음은 울먹거리며 말을 이었다.서준혁은 눈을 낮춰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그였지만, 송지음은 오한이 드는 것 같았다. 서준혁의 검은 눈동자에 걷잡을 수 없는 한기가 스민 것만 같았다.송지음은 오한을 느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준혁의 눈동자에 서렸던 한기는 오간 데 없이 사라지며 감정 없는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밖의 일은 이석민 씨한테 맡겨, 날씨가 더우니 너는 회사에만 있어.”송지음은 넋이 나갔다. 서준혁의 뜻을 파악한 순간, 그녀는 주먹을 꼭 쥐었다.서준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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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3화
밥을 반쯤 먹었을까, 임아중의 친구가 와서 공손하게 그녀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임아중을 불러갔다.곡연은 송지음이 있는 방향으로 한번 보고는 신유리에게 가십거리를 묻는 듯 물었다.“송지음이 어떻게 김명우와 같이 밥을 먹는 걸까요? 김명우가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 했잖아요?”신유리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쳐다보는 곡연을 향해 담담히 답했다.“아마도. 세진 그룹과 화인 그룹의 이야기도 이젠 사오 년 전이지. 그걸 모르더라도 다른 건 알 수 있잖아? 김명우 손에 꽃다발 들려있는 거 몰랐어?”곡연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말했다.“내가 보기엔 서준혁도 바람맞은 거네.”신유리는 답하지 않았다. 서준혁의 사생활이 어떻든, 그녀와는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돌아온 임아중의 표정이 얼마간 굳어 있었다. 그녀는 신유리를 보며 힘겹게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잘 먹었어?”신유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아무 일도 아니야. 한 친구가 생일 파티 하는데 나더러 오라네.”곡연이 답했다.“그거 좋은 일 아니에요?”“거절했어. 나랑 안 친하거든.”임아중의 일은 그녀들도 더 깊이 묻기 어려웠다. 하지만 임아중의 기분이 안 좋아졌다는 사실은 명확해 보였다.식사 시간은 끝을 향해 갈수록 지루해졌다. 임아중도 피곤해서 집에 가 쉬고 싶다고 했다. 하여 신유리는 곡연과만 별장으로 돌아왔다.별장에는 이신도 와 있었다. 그는 신유리를 보며 물었다.“화인 그룹에 간 일은 어떻게 됐어?”“장담할 수 없어. 내가 갔을 때는 서준혁의 어머님도 계셨어. 하지만 그의 모습으로 보건대 더 이상 추궁은 하지 않을 것 같아. 송지음이 다시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서준혁은 하정숙 앞에서 주동적으로 이 화제를 돌렸다. 그로 보건대 그는 이 사실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하였다. 하지만 아직 자신을 높이 보고 있기에, 여전히 버닝스타에서 만족할 만한 태도를 보여줘야 했다.이신이 나지막이 말했다.“화인 그룹은 버닝스타와 계약 해지를 하지 않을 거야. 주동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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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4화
강모연은 태연한 신유리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강모연이 한 말도 거짓은 아니었다. 당시 서준혁이 처음으로 신유리를 데리고 왔을 때, 강모연은 서준혁이 진심으로 신유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서준혁이 처음 여자를 데리고 집에 왔다는 사실은 둘째치더라도, 서준혁이 그녀를 향한 보호도 굉장히 강했다.하정숙과 서창범의 관계는 좋지 않아, 서준혁은 어려서부터 그녀 옆에서 자랐다.강모연이 기억하는 서준혁은 어떠한 일에서도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이었고,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얘기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여 예전부터 서준혁이 반사회적인 인격 혹은 정서 불능인 상태로 자랄까 봐 걱정됐다.하지만 서준혁이 머뭇거리며 친구를 데려와도 되냐는 말에 생각이 바뀌었다.당시 강모연은 확실히 너무 놀랐다.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이런 일에 관하여 물은 적이 없는 서준혁이었다.하여 처음에 강모연은 서준혁이 데려오는 친구가 여자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냥 서준혁이 사귄 선후배거나 친구라고만 생각했다.솔직하게 얘기하면, 어떠한 측면에서는 서준혁과 강모연이 더 모자 관계 같았다, 심지어 서준혁이 처음 화인 그룹을 물려받을 때도 그녀를 찾아 상담했을 정도이니 말이다.하지만 진정한 의미로 강모연이 신유리를 기억하게 된 계기는 하정숙 때문이었다.하정숙은 서창범 때문에 가정환경이 평범한 여자들은 눈에 차 하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항상 각박하게 신유리를 괴롭히려 했지만, 항상 서준혁에게 가로막혔다.그로 인해 두 모자는 크게 싸워 안 좋은 꼴을 보였다.강모연은 옆에서 모든 걸 지켜봐서 잘 알고 있었다. 서준혁은 필사적으로 신유리를 지키려 했다.이후, 강모연은 남편과 함께 연해로 가 성남시의 일은 더 이상 듣기 힘들어졌다. 가끔 서준혁과 통화할 때면 신유리에 대해 두 마디 정도 들을 수 있었다.하지만 얼마 전 돌아와서 하정숙과 대화 나누고 나서야 신유리와 서준혁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강 여사님.”신유리의 목소리가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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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화
금방 올라온 신유리는, 발길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려 이석민을 바라보았다.방금 이석민의 말투는 매우 친숙했다. 그는 어색한 듯 기침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소통에 문제가 생기리라 걱정되어, 서 대표님께서 사람이 모두 모인 후 회의를 시작하자 하셨습니다. 이신 대표님은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먼저 가 계시면 제가 서 대표님을 모시고 가겠습니다.”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가려 했지만,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발길을 멈추고 이석민을 향해 물었다.“회의 마치신 후, 서 대표님께서 기타 일정 있으신가요?”“오전에는 없습니다. 오후에는 포럼이 있으세요. 용건 있으신가요?”“네.”신유리는 가볍게 대답하고 이석민에게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회의실 앞에 도착해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안쪽에서부터 문이 열렸다. 허경천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오고 있었다.그는 신유리를 쳐다보더니 여전히 찌푸린 표정으로 물었다.“왜 정말 왔어요?”“이석민 씨가 연락이 왔는데, 제가 안 오면 안 될 것 같았어요.”그는 고개를 들어 회의실 안의 이신을 쳐다보았다. 이신의 표정이 허경천보다는 평온해 보였지만, 냉철함은 감출 수 없었다.신유리가 물었다.“정말 계속 여기서 기다리신 거예요?”“그렇지 않으면?”허경천이 냉소적으로 답했다.“화인 그룹이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는 오고부터 여기서 기다렸어요. 누가 보면 집에 회사가 없는 줄 알겠어요.”허경천과 곡연은 집안에 권력도 돈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냥 이신을 따라 취미 삼아 같이 있는 것이었다.이랑의 일로 인하여 그들이 손해 배상하고 회의하는 것은 정상적인 과정이었으나, 서준혁은 이들을 회의실에 한 시간 넘게 방치하고 있었다.허경천은 이신과 함께 사업을 하며 냉대받은 적이 없어 더욱 화가 났다.신유리는 눈을 내려 고민 후 나지막이 말했다.“처음부터 제가 함께 왔어야 했어요.”허경천이 뭐라 답하려 했지만, 이신의 돌려진 눈빛을 보며 멈칫하고는 혀를 찼다. 그러고는 중얼거렸다.“유리 씨한테 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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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6화
이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유리가 마침 입을 열려던 참에 허경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래도 그를 찾으러 가겠다고요? 그렇게도 무례한 데 굳이 시간까지 낭비하면서 보러 갈 필요가 있을까요?”허경천은 오늘 화인 그룹에 대한 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은지라 이신이 이 자리에 있는데도 전혀 거리낌 없이 말했다.“역시 화인 그룹 대표님은 다르네.”신유리는 이신을 바라보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별로 찬성하지 않는 모습이었다.그녀는 입을 오므리고 나지막이 말했다.“이왕 상의하러 온 거라면 상의해 봐야죠, 그리고 그에게 따로 볼 일도 있어서요.” 이신은 기다란 속눈썹을 내리깔고 눈동자에 드리운 고민을 가린 채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다릴까?”신유리는 멈칫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건축자재 시장에 갈 거면 먼저 가는 게 좋겠어. 이따가 찾으러 갈게.”이신은 떠나기 전에 여전히 신유리에게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아래층에서 반 시간 정도 기다릴게.”신유리는 그의 말에 흔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이신을 바라보았다. 비록 그의 얼굴에 냉랭함이 가시지 않았지만 미간에는 부드러움과 어쩔 수 없어 하는 기색이 어려있었다.그리고 걱정되는 마음도 마찬가지였다.신유리의 기다란 속눈썹이 떨리더니 이내 머뭇거리며 설명했다.“이번 일이 잘 해결되면 돌아가서 설명할게.”계단을 내려갈 때 허경천은 이신을 보며 감탄했다.“난 네가 이렇게 성격이 좋은지 왜 이제껏 몰랐지?”이신은 무표정으로 말했다.“네 성격이 더러워서 그래.”허경천은 되려 욕을 먹고 입을 다문 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신이 아까 신유리앞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렇게 다정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반면 위층에서.신유리는 이석민을 따라 사무실로 갔다. 안에는 쥴리와 낯선 남자가 있었다.이석민은 이내 신유리한테 소개했다.“새로 온 인턴이에요.”이석민의 소리에 업무에 집중하던 쥴리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괜히 말을 이었다.“혹시 네가 대체 불가능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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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7화
신유리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이신과 허경천은 아직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녀가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갔고 이신은 물었다.“일은 잘 처리됐어?”“응.”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서준혁이 우리더러 더 합리적인 기획안을 만들어 보내면 된다고 했어.”허경천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오~ 양보하는 건가?”“양보라 할 것도 없고 적어도 기회이니 그때 가서 기획안을 마련하면 내가 가져갈게.”신유리가 나지막이 말했다.허경천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보다 차라리 기획안을 수정하는 것을 더 받아들일 수 있었다.마음이 한결 맑아진 그는 고개를 돌려 이신한테 물었다.“지금 건축자재 시장에 가볼까?”이신은 “응”하고 대답하고 이내 고개를 돌려 신유리를 바라봤다.“가서 자료 준비해 줄게. 건축자재 일은 나도 잘 몰라서.”이신의 얼굴에 잠시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네 일은 잘 처리된 거 맞지?”신유리의 텐션은 보기에 그다지 높지 않아서 일이 제대로 처리된 것 같지는 않았다.이신의 눈빛에는 그녀를 향한 관심이 스쳐 갔고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부드러웠다.“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해.”신유리는 속눈썹을 내리깔더니 대답했다.“그래.” 신유리가 나간 후 사무실에는 서준혁과 송지음만 남았다.송지음은 서준혁을 보며 왠지 모를 감정을 느꼈고 점점 더 서준혁과 연애를 하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서준혁은 이제 그녀한테 전혀 관심이 없어 아래층 비서실에 그녀를 보냈고 인턴도 새로 뽑았다.송지음의 마음속에는 서준혁이 그녀를 버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그녀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오빠...”서준혁은 손에 들린 서류를 훑어보며 대답했다.“무슨 일인데?”“나...”송지음이 입을 열려는 순간 서준혁의 핸드폰이 울렸다.서준혁은 핸드폰 화면을 보더니 이내 표정이 차갑게 변하더니 송지음을 한번 흘겨보고는 전화를 받았다.송지음은 사무실을 나설 때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서준혁이 서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0시가 되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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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8화
그녀는 어르신과 함께 지낸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서준혁이 어렸을 때 어르신을 많이 따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유리는 이전에도 늘 서준혁과 함께 어르신을 뵈러 갔는데 그때마다 어르신은 앞으로 그녀가 서씨 가문의 손자며느리가 될 것이라고 즐겨 말씀하셨다. 그리고 서창범과 하정숙에 비해 서씨네 가문에서도 오직 어르신만이 그녀를 어린애처 이뻐해 줬다. 신유리는 아직도 그녀가 처음으로 서준혁과 함께 어르신을 만나러 갔을 때 어르신이 돈을 챙겨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어르신은 일찍이 그녀 앞에서도 서준혁에게 아내한테 잘해야 한다고 교육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이것 때문에 신유리는 어르신을 뵈러 가기 꺼려했다. 그녀는 어르신의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고 어르신께서 안타까워하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더욱이 어르신의 앞에서 서준혁과 아무 일도 없는 척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거절을 하기도 전에 서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만나러 가지 않으면 아마 할아버지께서 직접 찾아오실 거야.”어르신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찾아오고도 남았다.서준혁의 고집은 대부분 어르신을 닮은 것이었다. 신유리는 숨을 고르며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였다. “만나러 갈게.”서준혁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 “그때 데리러 올게.”신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준혁은 평소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다소 엄격했고 게다가 결단력까지 있었다. 그러나 신유리는 그가 가깝고 신뢰하는 사람을 대할 때 사실 말하기 편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예를 들면 할아버지나 채리연을 대할 때처럼 말이다. 그녀처럼 그렇게 친밀하지 않은 관계라면 그는 비교적 잔인했다. 신유리는 마음속으로 잠시 이런 생각을 떠올렸을 뿐 이내 서준혁과 함께 공사 현장으로 갔다. 허경천은 마침 밖에 있었는데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 눈꺼풀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대표님꼐서 또 감독하러 오셨나 봐요?”그의 말투가 불친절하자 서준혁은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바로 들어갔다. 신유리는 서준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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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9화
진욱은 눈빛을 한순간에 거두어들였다. 신유리는 원래 임아중에게 일깨워주려 했지만 끝내 말하지 않았다. 마침 임아중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앞으로 걸어오는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농구복을 입고 있었고 겉에는 회색 맨투맨을 아무렇게나 걸쳤다. 스포츠머리를 했으며 오른쪽 귀에는 눈에 띄는 검은색 피어싱까지 하고 있었다. 신유리는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렸지만 임아중은 이미 그에게 인사까지 건넸다. “고상민, 이쪽이야.”고상민으로 불리는 남자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얼굴에 불쾌함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요.”말을 마치고 임아중의 옆에 있는 신유리를 보더니 날카롭고 긴 눈이 약간 흔들리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는 별로 다정하지 않은 말투로 임아중에게 물었다. “친구 데리고 왔으면서 또 나를 불러서 뭐 해요?”임아중은 빙그레 웃더니 이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쓸데없는 말이 왜 이리 많아. 오라면 오는 거지.”그녀는 신유리에게 대충 소개했다. “고상민, 성남대학교, 3학년, 미운 동생이야.”신유리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남자 친구?”임아중이 입을 열려는 순간 누군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표정이 갑자기 변하더니 고상민의 팔을 다정하게 끌어안으며 수줍은 듯 말했다. “그래. 동생과 연애하는 게 늙은 남자랑 연애하는 것보다 훨씬 즐겁지.”“아중언니.”부드럽고 청아한 목소리에 신유리가 돌아보니 금방 진욱의 곁에 서있던 그 여자애였다. 눈매가 진욱과 다소 비슷한 것으로 보아 이번 생일파티의 주인공인 진욱의 여동생 진민정일 가능성이 컸다. 임아중은 고상민을 껴안은 채 얼굴의 웃음을 서서히 거두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민정아, 생일 축하해.”진민정은 망설이고 고민하는 얼굴로 임아중과 고상민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아중언니, 우리 오빠가 전에...“임아중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민정아, 내 남자 친구 앞에서 네 오빠 얘기는 꺼내지 마. 우리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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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0화
이정은 원래 신유리가 적어도 좀 난처할 거라고 생각했다. 필경 사람들 앞에서 돈이 부족하다는 말을 직접 들었기 때문이다.신유리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제가 돈이 부족한 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죠? 제가 이씨네 가문에 빚진 돈은 없지 않은가요?”이정은 순간 멈칫했고 신유리는 이미 몸을 일으켜 떠나려 했다. 다만 정재준의 곁을 지나갈 때 그녀는 참지 못하고 걸음을 멈추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정재준 씨, 당신은 그렇게도 저를 싫어하면서 매번 저를 볼 때마다 친한 척하는 게 너무 천한 짓 아닌가?”신유리는 정제준과 이정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임아중에게 먼저 가겠다고 문자를 보내려다가 마침 그녀가 고상민을 끌고 어두운 안색으로 다가왔다. 임아중의 말투도 좋지 않았다. “유리야, 가자. 재수 없어서 더는 이 더러운 곳에 못 있겠어.”신유리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 채 어리둥절해서 고상민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이 약혼녀를 데리고 여동생의 생일을 축하해주는데 뭐가 재수 없는 거죠?”임아중은 냉소했다. “돌았나 봐. 약혼녀를 데리고 오면서 나를 초대하다니, 정말 내가 꺵판 칠까 봐 두렵지도 않나 봐.”“진욱이 초대한 것도 아니잖아.”고상민이 정곡을 찌르자 임아중의 분노가 갑자기 풀렸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애초에 나를 초대하지도 않았어.”임아중은 돌아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별장에 거의 도착했을 때야 갑자기 입을 열었다. “유리야, 왜 내가 너랑 함께 가자고 했는지 알아?”“왜?”“ 너만 아무것도 묻지 않으니까.”차 안은 매우 어두웠고 임아중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친구들은 거의 다 진욱을 알고 있어. 게다가 내가 어떻게 쫓아다녔으며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헤어졌는지, 그들은 똑똑히 알고 있어.”신유리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사실 뭐 말할 것도 없어. 진욱은 애초에 날 좋아한 적이 없어. 그는 노윤지 같은 여자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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