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어?"임가영이 그에게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훈의 나지막한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 있었고, 가까이 오지 말라는 분위기가 온몸에 배어 있었다.그는 담담하게 그녀를 한 번 힐끗 보고는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임가영은 참지 못하고 그의 뒷모습을 향해 물었다. "육지훈, 네가 정유안 씨한테 변호사 찾아 준거야?”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대답했다. "그래, 그게 왜?”"왜? 꼭 혜인이한테 이래야만 해?”임가영은 앞으로 달려가 그의 앞에 섰다."나는 이미 이혼 하겠다고 했고, 두 사람이 원하는 대로 했는데, 근데 왜 이러는건데?”"내가 원하는 대로?”육지훈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네가 원하는 대로겠지.”순조롭게 이혼을 해야만 그녀가 오랫동안 숨겨왔던 남자와 같이 있을 수 있을 테니까.그리고 그 남자는 아마도 진평화겠지.임가영은 그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처음부터 이혼을 원한건 너잖아. 근데 이제 와서 말을 바꾸려는 거야?”육지훈은 꿈쩍도 하지 않고 말했다."네 친구를 놔주라고? 그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야?”"그럼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임가영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도대체 뭘 원하는지.”육지훈은 입술을 찡그리며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말했다."지난번에 봤던 그 속옷, 괜찮던데.”임가영은 갑자기 멍해졌다가 순간적으로 얼굴이 붉어졌다."너 지금 나 희롱하는거야?”그녀는 괴로워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육지훈, 너 진짜 너무한다. 도대체 날 뭘로 보는 거야?”육지훈의 눈동자가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그가 그녀의 턱을 잡으며 한글자 한글자 말했다. "네가 날 뭘로 보면, 나도 똑같이 널 뭘로 보겠지!”말을 마친 그는 빠른 걸음으로 위층으로 걸어갔다.임가영은 그가 다른 침실로 간 줄 알았는데, 위층에 도착해서야 육지훈이 그녀의 침실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잠깐만 나가 있으면 안 돼?”임가영은
“사모님, 대표님은 오늘 밤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으니 먼저 주무시는 게 어떠세요?”장희숙은 아직 켜져 있는 침실 불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물었다.임가영의 눈가에 실망감이 스쳤다.바로 그때 마당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리자 임가영은 슬리퍼를 신을 틈도 없이 창문 앞으로 뛰어가 창밖을 내다보았다.아니나 다를까, 육지훈의 은색 벤틀리가 차고로 들어오고 있었다.임가영은 심호흡하고 자신이 입은 섹시한 잠옷을 내려다보았다. 심장이 요동쳤다.결혼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육지훈은 항상 손님방에서 잤고 그녀를 만진 적조차 없었다.임가영은 이 결혼이 육지훈이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 그의 할아버지 뜻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하지만 2년이 지났는데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육지훈은 임가영이 대학교도 졸업하지 않아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그녀가 너무 적극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이렇게 생각하며 임가영은 섹시한 검은 레이스 잠옷을 입은 채 조용히 손님방 문 앞으로 걸어갔다. 큰 용기를 내고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임가영은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갔고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육지훈은 아마도 샤워하는 중일 것이다.그런데 갑자기 욕실의 물소리가 멈추고 육지훈이 긴 다리를 뻗으며 욕실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허리에 목욕 타월만 묶고 있었다.마르면서 탄탄한 몸이 드러났고 물방울이 단단한 근육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는 모습에 임가영은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마른 근육 몸매인 건가?“임가영!”육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다 봤어? 누가 너한테 내 방에 들어와도 된다고 했어?”난감한 임가영은 시선을 거두며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넌 내 남편이고 여긴 네 방인데 그럼 내 방이기도 하잖아?”그렇게 말한 후 임가영은 뺨이 주홍빛으로 물들면서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내가 이렇게 입는 거 어때?”임가영의 아름다운 몸매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도자
이 순간 육지훈은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오늘 술자리에서 요리가 문제 있었는지 아니면 술이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는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침대 위에 누워 있는 부드럽고 향기로운 여인의 몸에 닿자 육지훈의 욕망은 더욱 솟구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임가영의 무력한 목소리와 반응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한 시간 정도 지나자 육지훈은 지쳐서 잠들었다.임가영은 온몸이 짓눌린 듯 뼛속까지 고통이 느껴졌다. 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다급히 치마를 입은 뒤 더듬거리며 어두운 방에서 나왔다.허둥지둥 대며 엘리베이터에 타자 마침 한 젊은 여성과 부딪쳤다.“죄송합니다.”임가영은 창백한 얼굴로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버튼을 눌렀다.정유안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고개를 돌려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한 채 틈 사이로 임가영을 바라보았다.육지훈의 아내 아닌가? 그녀의 자리를 빼앗은 여자!여기 꼭대기 층에는 로열 스위트룸밖에 없는데 설마 임가영이 육지훈의 방에서 뛰어나왔단 말인가?그럼 그들은... 한 건가?마음속에서 질투심이 들끓었다.지금까지 얼마나 노력했고 오늘 술자리에 있던 사람들까지 매수해 시간도 계산하고 약까지 준비했는데 결국 또 임가영에게 뺏긴 것이다!정유안은 신속히 방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잠든 육지훈의 숨소리만 들렸다.그제야 정유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지더니 입고 있던 옷들을 전부 벗고 육지훈의 곁에 누웠다....클럽에서 나온 임가영은 육지훈의 별장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육지훈이나 별장에 있는 도우미들이 그녀의 모습을 볼까 봐 겁이 났다.결혼 생활 2년 동안 육지훈은 임가영의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보는 남자에게 순결을 빼앗긴 것이다.이런 생각을 하자 임가영은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택시를 잡은 그녀는 일단 본가로 가기로 했다. 적어도 일단 어디 가서 샤워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니까 말이다.임가영이 집으로 돌아왔을
임가영은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울먹였다.“내 말 좀 들어봐. 내가 어제...”“그만해.”육지훈은 그녀의 말을 가로막으며 옷깃의 붉은 입술 자국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자국은 분명히 그 사건 이후에 남겨진 것이었다.육지훈의 어조는 차분하고 냉정했다.“지난 2년 동안 널 내버려둔 것도 내 책임이야. 그런 일을 한 너를 탓하지는 않겠어. 하지만 가영아, 육씨 집안은 순결하지 않은 여자를 사모님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임가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 모든 설명이 부질 없어졌다.하긴 누가 이런 말을 믿겠는가?게다가 설사 자신이 나희애 임주희 모녀에게 당했다는 것을 밝힌다고 해도 순결을 잃은 건 사실이었다.임가영은 씁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물었다.“그럼 네 말은 이혼하자는 뜻이야?”육지훈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에게는 네가 이혼을 원한다고 말해 줬으면 좋겠어. 네가 바람을 피우고 외도를 했다는 걸 할아버지한테 들키지 않는 게 마지막 체면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이때 임가영은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떨어지려는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았다.한참 후, 그녀는 심호흡한 뒤 말했다.“그럼... 내 물음에 답해줄래?”“말해.”육지훈의 눈빛은 바다처럼 깊어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임가영은 그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너 밖에 따로 만나는 사람 있어? 결혼한 지 2년이 지났는데 조금이라도 나를 좋아하긴 했어? 만약 그 여자가 없었다면 날 좋아했을까?”육지훈은 눈을 살짝 감고 담담하게 말했다.“미안해. 결혼하던 날 내가 말했잖아.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건 육씨 집안 사모님 자리뿐이라고.”육지훈은 임가영의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하지만 임가영은 여자만의 직감으로 육지훈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이틀 안에 변호사에게 이혼 합의서를 작성하라고 할 테니 서명하고 할아버지께 가서 설명해 줘.”육지훈은 마치 오늘 저녁은 뭐 먹을 거냐는 듯이 가벼운 태도로 이혼에 대해 이야기했다.
육지훈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1시가 넘었다.별장은 섬뜩할 정도로 조용했고 거실에는 야간 조명 하나만 켜져 있었다. 임가영은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육지훈은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의 말에는 조급함이 묻어났다.“이혼, 그건 이미 오늘 점심에 합의한 거 아니야? 재산에 관해서는 섭섭하지 않게 해줄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육지훈은 임가영이 재산을 더 나눠 가지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임가영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육지훈, 그 여자 때문에 나랑 이혼하고 싶은 거야?”육지훈의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금세 평정심을 되찾았다. 더 이상 임가영에게 숨기고 싶지도 않았고 숨길 필요도 없었다.“그래. 내가 빚진 게 있으니까.”육지훈은 솔직하게 인정했다.임가영은 자조하듯 웃으며 말했다.“네가 정말 위선적이라는 걸 오늘 깨달았어. 오늘 점심에는 네가 피해자인 척 나한테 죄책감 느끼게 하고 이혼을 강요하더니 말이야. 그때 너 기뻐하고 있었지? 마침내 내 약점을 붙잡아 억지로 너와 그 여자를 만족시키려고 했잖아.”육지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더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임가영, 그럼 오늘 너한테 다 털어놓을게. 순서를 따져도 나랑 먼저 만난 건 유안이야. 네가 우리 집에 어떻게 시집왔는지 잘 알잖아. 이제 너도 다른 사람과 만나고 있으니 아쉬울 게 없잖아. 그러니까 서로 놓아주자, 어때?”“싫어!”임가영의 어조는 가벼웠지만 말투는 날카로웠다.“난 속는 게 싫어. 지난 2년 동안 너와 그 여자는 나를 바보 취급하고 속임수를 썼어. 내가 너희를 그냥 놔줄 것 같아?”육지훈은 눈썹을 만지고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으며 이를 악물고 물었다.“그럼 네가 원하는 게 뭐야?”“나 이혼 안 할래.”임가영은 이 말을 내뱉고 침실로 걸어갔다. 돌아서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2년 내내 남편이 자신을 돌아봐 주기를 기다렸다.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 세상 대부분의 결혼은 시간이 지나서 감정이 조금씩 생
누가 그렇게 부르도록 허락한 거란 말인가?육지훈은 임가영을 꾸짖으려 했지만 그녀가 이미 전화를 끊은 뒤였다.정유안의 안색이 좋지 않은 얼굴을 바라보던 임가영은 마침내 전례 없는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유안 씨, 봤죠?”임가영은 정유안 앞에서 휴대폰을 흔들며 말했다.“남편이 데리러 온다고 하네요. 유안 씨가 지훈이와 먼저 만났든 말든 지훈이가 본가로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나 임가영이에요!”임가영은 말을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나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유안 씨 천천히 마셔요. 커피는 내가 살게요.”그렇게 말한 후 임가영은 커피숍을 걸어 나갔다.며칠 동안 답답하고 막혀 있던 가슴이 이 순간 드디어 숨통이 트였다....곧 육지훈의 차가 임가영을 데리러 해성 대학교 입구에 도착했다.할아버지가 직접 그를 키웠기 때문에 그는 항상 할아버지를 존경했다.이 때문에 육지훈은 할아버지를 화나게 하지 않기 위해 임가영을 데리러 직접 왔다.그녀가 차에 타는 것을 본 육지훈은 차갑게 말했다.“임가영, 앞으로는 그렇게 부르지 마.”“알았어.”임가영은 순순히 동의했다.그녀는 정유안이 자신을 찾아온 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육지훈이 정유안에 대한 마음을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어쩌면 그는 임가영이 자신의 여자를 괴롭혔다고 말할지도 모른다.육지훈은 그녀가 말대꾸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조금 전 호칭에 대해 추궁하지 않고 본가를 향해 차를 몰았다.육씨 집안 저택은 해성의 남쪽에 있는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었다.몇 년 전 외국의 한 거물이 1600억 원을 주고 이 저택을 사려고 했지만, 육정근은 가소로운 듯 미소만 지었다.매달 15일은 육씨 집안의 가족 연회 날이었다. 육지훈의 아버지와 새어머니도 참석했다.이때 육지훈의 이금란은 미소를 지으며 육정근에게 말했다.“아버님, 우리 세빈이가 요즘 아버님 건강이 좋지 않으시고 천식이 또 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특별히 외국에 전문가를
임가영은 육지훈의 말뜻을 이해하고 저도 모르게 침대맡으로 슬슬 피했다.곧 그녀의 종아리가 육지훈에게 잡혀 끌어당겨졌다.육지훈은 무거운 몸으로 임가영을 짓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임가영은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밀어내며 황급히 물었다.“육지훈, 뭐 하려는 거야?”“몰라서 물어? 남자와 여자가 침대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육지훈의 냉랭한 기운이 덮쳐오면서 그는 짐승처럼 격렬하게 임가영의 목에 키스했다.“그만해!”임가영은 겁을 먹고 발버둥 쳤다.“육지훈, 이러지 마! 날 만지지 마!”임가영은 그날 밤의 남자도 이렇게 거칠었던 것이 생각났다.그날 밤 기억이 떠오르는 게 싫었다. 육지훈이 계속 이렇게 하면 임가영은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임가영이 아래서 울고 있으니 아무리 냉철한 육지훈도 더 이상 이런 방법을 그녀를 괴롭힐 수는 없었다.사랑 없이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처벌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육지훈은 임가영을 괴롭히지 않고 두 손을 그녀의 몸 옆에 놓고 불쌍한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왜 울어?”육지훈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이혼하기 싫으면 다른 남자 때문에 나랑 하는 거 거부하지 말아야지! 네 남편은 나야!”육지훈은 여자를 강요하기 싫었다. 더군다나 임가영처럼 다른 남자와 잤던 여자는 더욱 싫었다.그래서 옷장에서 이불과 베개를 꺼내어 바닥에 폈다.임가영은 너무 억울했다.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피임약은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낯선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말해도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다음날 일어났을 때 육지훈은 온몸이 너무 아팠다. 한 번도 이렇게 바닥에 누워서 잔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두 사람이 같이 내려오는 것을 보자 육정근은 마음을 살짝 내려놓았다.이때 육지훈의 휴대폰이 울렸다. 정유안에게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임가영이 흘끗 쳐다보자 사진 한 장이었는데 아마도 정유안이 차린 정교한 아침 식사 같았다. 육지훈은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식탁에 음식
육지훈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임가영에게 다가갔다.그러고는 쪼그리고 앉아 알코올 티슈를 꺼내 무릎에 묻은 얼룩을 닦아주었다.그제야 임가영은 정신을 차렸다.조금 전까지 10분 동안 땅에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너무 집중하느라 이런 사소한 일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었다.이제야 그녀는 무릎이 더러워졌을 뿐만 아니라 옷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아파...”임가영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살살해.”육지훈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조금만 참아.”그의 검고 짙은 머리카락을 바라보자 임가영의 마음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피어올랐다.무릎은 정말 아팠지만 마음은 따뜻해졌다.육지훈은 얼룩을 다 닦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무릎이 다쳤는데 병원에 가서 치료할래?”임가영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아니. 심하지도 않은데 밴드 붙이면 돼. 어서 집에 가자. 할아버지께서 기다리시겠다!”그렇게 말한 후 임가영은 다리를 들어 올려 육지훈이 차를 주차한 곳을 향해 걸어갔다.육지훈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가만히 생각했다. 만약 정유안이 이런 부상을 입었다면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울었을 것이다.방금 임가영이 사람을 구한 장면을 생각하자 육지훈은 그녀에게서 다른 모습을 본 것 같다고 느꼈다.심지어 자부심도 느꼈다. 좋든 나쁘든 임가영은 여전히 그의 아내였다....저녁 식사 때 임가영은 기분이 좋아서 밥을 더 많이 먹었다. 이때 가정부는 검은 탕을 두 그릇 가져와 그들 앞에 놓았다.육지훈은 한약 냄새를 맡고 물었다.“할아버지, 이게 뭐예요?”“결혼한 지 2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나한테 증손자를 안겨줄 준비가 안 됐다며?”육정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약은 해성의 유명한 한의사가 처방한 것이라 효과가 훌륭할 거야. 앞으로 가영이가 임신할 때까지 둘 다 매일 한 그릇씩 마셔.”“네?”육지훈은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약그릇을 바라보다가 임가영을 힐끗 쳐다보았다.임가영도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육정근이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