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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운명의 달빛
그날 밤, 운명의 달빛
Author: 은지

제1화

“사모님, 대표님은 오늘 밤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으니 먼저 주무시는 게 어떠세요?”

장희숙은 아직 켜져 있는 침실 불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물었다.

임가영의 눈가에 실망감이 스쳤다.

바로 그때 마당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리자 임가영은 슬리퍼를 신을 틈도 없이 창문 앞으로 뛰어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육지훈의 은색 벤틀리가 차고로 들어오고 있었다.

임가영은 심호흡하고 자신이 입은 섹시한 잠옷을 내려다보았다. 심장이 요동쳤다.

결혼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육지훈은 항상 손님방에서 잤고 그녀를 만진 적조차 없었다.

임가영은 이 결혼이 육지훈이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 그의 할아버지 뜻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2년이 지났는데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육지훈은 임가영이 대학교도 졸업하지 않아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녀가 너무 적극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임가영은 섹시한 검은 레이스 잠옷을 입은 채 조용히 손님방 문 앞으로 걸어갔다. 큰 용기를 내고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임가영은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갔고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육지훈은 아마도 샤워하는 중일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욕실의 물소리가 멈추고 육지훈이 긴 다리를 뻗으며 욕실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허리에 목욕 타월만 묶고 있었다.

마르면서 탄탄한 몸이 드러났고 물방울이 단단한 근육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는 모습에 임가영은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마른 근육 몸매인 건가?

“임가영!”

육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 봤어? 누가 너한테 내 방에 들어와도 된다고 했어?”

난감한 임가영은 시선을 거두며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넌 내 남편이고 여긴 네 방인데 그럼 내 방이기도 하잖아?”

그렇게 말한 후 임가영은 뺨이 주홍빛으로 물들면서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이렇게 입는 거 어때?”

임가영의 아름다운 몸매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도자기처럼 고운 얼굴은 빨갛게 물들었고 긴 속눈썹은 청순하면서도 전류를 방출하는 듯이 유혹적이었다.

육지훈은 자신의 아내에게 이런 면이 있는지 몰랐다. 평소와 다른 눈빛을 감추었지만 목구멍은 점점 뜨거워졌다.

육지훈은 재빨리 자신의 옷을 꺼내 입고는 임가영에게 다른 옷 하나를 던졌다. 그러고는 절제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방으로 돌아가.”

임가영은 바보가 된 듯한 느낌에 그를 탓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절친 하혜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혜인은 강성 최고 재벌의 도련님인 육지훈이 피 끓는 젊은 나이에 얼굴도 잘생기고 돈도 많으니 다가가는 여성이 엄청 많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또한 이렇게 오랫동안 여자와 아무 관계도 갖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밖에서 충분히 만족하지 않은 이상 집에 들어와서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임가영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설마 밖에서 따로 만나는 사람 있어?”

육지훈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채 눈을 살짝 깜빡였다. 그리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는데 가장 잔인한 말을 차분하게 내뱉었다.

“가영아, 우리가 결혼한 날 내가 너에게 말했잖아.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건 육씨 집안 사모님의 자리뿐이라고. 그 외에는 원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가 이 말을 할 때마다 임가영의 모든 신경을 휩쓸고 지나가는 무력감과 절망이 다시 한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쳤다.

아마도 육지훈의 눈에 임가영은 육씨 집안을 넘보는 가난한 집 딸일 뿐일 것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육지훈은 수년 전 그가 임가영의 세상을 따뜻하게 비추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임가영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육지훈은 이미 그녀를 위해 문을 열어젖혔다.

“가서 쉬고 앞으로는 이런 옷을 입지 마. 너한테 안 어울려.”

그것은 분명 임가영을 내쫓는 의미였다.

임가영은 너무 부끄러워서 빨개지다 못해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방에서 나왔다.

침실로 돌아온 직후 아버지 임명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아빠, 미안해요. 지훈이는 내일 할머니의 생신 연회에 가지 않을 것 같아요.”

임가영은 자신이 육지훈을 설득할 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임명재는 무거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결혼한 지 2년이 지났는데 육 서방은 우리 임씨 집에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어. 처음부터 내가 우리는 육씨 집안과 안 어울린다고 했잖니. 그런데 네 엄마가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아빠.”

임가영은 다른 사람이 엄마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게 싫어서 아버지의 말에 끼어들었다.

“내가 원해서 결혼한 거예요!”

...

다음날.

임가영은 할머니의 생신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혼자 본가에 갔다.

자신이 할머니 앞에서 존재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모든 손님이 참석하기 때문에 그녀도 할머니에게 축하드리러 가야 했다.

계모 나희애는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다.

“어머, 가영아, 왜 육 서방이랑 같이 오지 않았어? 네가 결혼한 지 2년이 지났는데 육 서방 얼굴도 한 번 못 봤네.”

할머니는 술잔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쳤다.

“우리 임씨 집안이 가난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겠지. 오늘 이렇게 중요한 날에도 육 서방은 나를 신경 쓰지도 않는 것 같구나.”

여동생 임주희는 기회를 잡은 듯 비꼬면서 말했다.

“언니, 형부 눈에 할머니가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언니를 신경 쓰지 않는 거 아니야?”

여러 사람의 조롱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파리처럼 윙윙거렸다.

임가영은 씁쓸한 마음에 잔에 담긴 술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너무 독한 술을 마셔서 그런지 임가영은 곧 취해서 의식을 잃었다. 나중에는 완전히 기절했다.

차 안에서 나희애와 임주희는 임가영의 양 옆에 앉았다.

“엄마, 임가영을 조 감독에게 보내기만 하면 내가 조 감독의 새 영화 서브 여주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임주희는 흥분한 듯 눈빛이 반짝였다.

나희애는 마치 도둑이라도 된 듯 당부했다.

“이 일은 네 아버지에게 알려서는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임가영을 그렇게 아끼는 네 아버지가 우리를 가만두겠어?”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주희가 말했다.

“이미 조 감독과 연락해서 방 번호를 알아냈어요. 시에릭스 클럽 꼭대기 층에 있는 로열 스위트룸이에요.”

그러자 나희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임가영이 뭐가 잘났다고 육씨 집안에 시집가는 거야? 얘 엄마가 그때 육씨 집안 어르신을 수술해 준 것뿐이잖아. 죽기 전에 딸을 그쪽 집안에 시집 보내려고 발버둥 치더니. 결국은 부잣집을 넘보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뻔뻔하기도 해라!”

임주희도 옆에서 덧붙였다.

“맞아요! 내가 그 집안에 시집가는 게 맞죠. 내가 얘보다 못한 게 뭐가 있는데요?”

나희애는 이를 깨물고 말했다.

“그럼 오늘 밤에 얘를 나락으로 보내자!”

...

나희애와 임주희 모녀는 와인에 수면제를 많이 넣지 않았다.

임가영은 자기 몸 위에 있는 남자의 거친 호흡과 뜨거운 체온을 느끼자 바로 잠에서 깼다.

“웁... 이거 놔!”

방에 불이 켜져 있지 않아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임가영은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쳐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남자는 밀어내는 임가영의 손을 쉽게 꽉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따뜻한 입술을 대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착하지? 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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